< -- 세진 일행 마추픽추를 가다 -- >
"여행 가신다면서요?"
김혜인 박사가 거실에서 쉬고 있는 세진에게 다가왔다.
"왜요? 함께 가시고 싶습니까?"
세진이 물었다.
"가고는 싶지만 부담을 드릴 것 같아서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을 못하겠네요."
김혜인은 조심스러웠다.
"부담이요?"
"우리들까지 지키시려면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써야 하고 그럴 테니까요."
김혜인 박사는 함께 가는 것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듯 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진은 박사와는 생각이 달랐다.
"우리가 없을 때에 어리 공방에 남아 있는 것은 뭐가 다릅니까?"
"네?"
"어차피 여기가 거기나 별 다를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김박사님이나 정진이씨를 작정하고 노리면 저나 제 친구들이라고 두 분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보장은 없지요."
"호호호. 그건 그렇죠. 대신에 복수는 확실하게 해 줄 거라고 믿어요.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하죠. 그 때문에 세진님 주위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거니까요."
"뭐 덕분에 제 친구들이 걱정이 많기는 합니다. 점점 지켜봐야 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고 말이죠. 하지만 덕분에 그들이 안전하게 지내면서 대리인을 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는 거죠."
"음 그래요? 그럼 우리도 함께 갈까요? 그래도 되나 모르겠네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페루를 선택하신 거죠?"
김혜인 박사는 여기에 둘이 남아 있는 것이나 페루로 함께 가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세진의 말에 부쩍 힘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2등급 몬스터 영역의 처리 의뢰를 받은 곳이 왜 하필 페루냐고 물었다.
"일단 페루에 2등급 영역이 열 곳이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한 나라에서 한꺼번에 많은 곳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요?"
"그 다음은 페루가 선진국이라고 하긴 어려운 나라라는 겁니다."
"네? 그게 왜요?"
"잘 나가는 나라들을 먼저 택하면 어쩐지 우리 벗들이 그들 편인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겠어요? 그러니 적당한 다른 나라를 찾아 본 거죠."
"그게 전분가요?"
"뭐가 또 있을 거 같아요?"
꼬치꼬치 물어오는 박사에게 세진이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제 예감엔 다른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박사는 당황하지도 않고 예감을 들먹인다.
"하하하. 그럼 이번에 가서 확인을 해 보시죠. 이참에 티티카카도 가고 마추픽추도 가고 할 테니까요?"
"설마 정말로 관광을 목적으로 가시는 거예요?"
"싫으세요?"
"호호호. 아니요. 좋죠. 다른 곳에는 다 가 본 것 같은데 남미는 못 가 봤거든요. 딱 좋으네요. 네."
김혜인 박사는 세진이
'싫으면 공방에 남아 계시던지요.'
라고 할 것 같아서 곧바로 좋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서둘러서 소식을 정진이 경호원에게 전한다고 자리를 뜬다. 공방에만 갇혀 지내다가 오랜만에 외국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가서 정진이에게 자 랑을 늘어 놓을 생각인 것이다.
세진은 2층 어리 공방으로 들어가 테멜 안으로 들어갔다.
- 정말로 페루에 가시는 이유가 뭐예요? 세진님? 어리가 중앙 홀로 온 세진에게 물어본다.
"너 페루의 원주민들 어릴 때에 엉덩이에 파란색 몽고 반전이 있다는 거 아냐?"
- 네? 몽고 반점요?
"그래. 몽골인들과 우리 민족, 북아프리카 인디언과 남미 페루 원주민만 가지고 있는 특징이지."
- 그럼 한 핏줄이란 소린가요? 유전적으로 연관성이 깊은?
"뭐 그렇다고 하던데 사실 그거야 수 만 년 전의 이야기니 지금은 그저 친밀감을 느끼는 정도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지."
- 그런데 왜 페루에 가시는 건데요? 다른 나라들도 엄청나게 많잖아요.
"찾아보니까 잉카에 재미있는 곳이 있어."
- 재미있는 곳이요?
"잉카 전설이나 그림 등에 보면 말이다."
- 네 세진님.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 네? 그래서 그거 확인하러 가시는 거예요?
"아니, 그것도 있지만 내가 정말 궁금한 건 스타게이트야."
- 스타게이트요?
"응, 차원문이라고 하는 건데, 티티카카 호수 아래 절벽에 있다지. 잉카의 초대 황제였던 아무르 무르가 후대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그 절벽에 새겨진 문에 황금 의 원반을 끼워 맞추고 그 문을 통해서 다른 세상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지금도 그 원반 끼웠던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하지. 그거 말고도 잉카에는 차원문에 대한 전설이 제법 있는 모양이야. 거기다가 그곳 원주민 중에서 특이한 언어를 쓰는 이들이 있는데 그게 몇 만 년 전에 신들로부터 받았다는 언어래. 근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
- 뭔데요? 네?
"그 언어가 디지털 언어라는 거야. 쉽게 말하면 컴퓨터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에 딱 알맞은 언어라는 거지. 그리고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그 언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학자들이 말한데. 자연스럽게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고 한다지."
- 우앙. 들어보니까 정말 신기하네요. 그래서요?
"이 녀석아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생각을 해 봐라. 그 스타게이트. 차원문 말이다. 내가 쓰고 있는 듀풀렉 게이트와 닮지 않았냐? 나는 소형이지만 그건 대형인 거지. 내가 에테르 코어를 에너지로 쓰는 것처럼 잉카의 황제는 황금 원반을 에너지나 열쇠로 썼다는 거지."
-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걸 확인하러 가시는 거예요?
"혹시 아냐? 거기에 가면 새로운 게이트를 발견하게 될지 말이다. 뭐 발견한다고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지 않냐?"
-정말 그러네요. 거기다가 우주인이라니.
어리도 이젠 세진만큼이나 페루에 대해서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그 우주인들이 신으로 묘사된 것이 잉카의 전설이야. 그 신들이 문명을 전수해 준 걸로 나오지. - 정말 세진님이 관심을 가질만하네요. 실제로 세진님이 경험한 내용들과 맞춰 봐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니까요.
"그렇지? 사실 라훌족에게 다른 행성에서 온 헌터들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존재 아니겠냐? 뭐 라훌족은 꽤나 발달한 문명에서 시작을 한 경우라서 헌터들을 신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헌터들이 만약에 원시적인 문명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행성에 내려가서 어느 정도 문명을 전파하면 딱 잉카 전설이 생기는 거지."
- 정말 그렇겠어요. 헌터들은 간혹 헌터룸으로 가서 각인도 받고 와야 하니까 그걸 원주민들이 보면 딱 잉카 전설이 나오겠네요.
"그리고 잉카 전설을 확인해서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2등급 이면 공간을 여러 차례 공략할 수 있다는 걸로도 괜찮은 곳이야. 페루란 곳은."
-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번에도 이면 공간 유지 코어 나오면 저 주실 거죠? 네?
어리는 이면 공간 유지 코어에 욕심을 낸다. 그것이 테멜을 조금이라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어리는 이제 또 다른 자신의 몸이 된 테멜의 성장에 욕심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생존을 위해서 에테르에 목을 매더니 이젠 성장 욕구가 강해진 것이다.
"넌 먹어도 별로 소용도 없다면서 뭘 그렇게 욕심을 내냐?"
- 아주 좁쌀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긴 하잖아요. 또 그렇게 부지런히 쌓아 둬야 나중에 3등급 코어도 꿀꺽 하죠. 튼튼한 몸을 길러 둬야 하는 거라고요.
"하긴, 그게 문제긴 하다. 3등급 코어를 줬는데 어리 네가 더 이상하게 변해버리면 정말 곤란하긴 하지."
- 세진님, 저 방금 들었어요. 분명히 들었다고요.
"뭘?"
세진은 발끈하는 어리의 말에 태평하게 되물었다.
- 더 이상하게 변한다고 하신 거요. 그거 지금 어리가 이상하게 변했다고 하시는 거잖아요. 그쵸. 그쵸. 맞죠?
"어휴, 그럼 어리 니가 처음의 너와 같다고 생각하냐? 조기 축구에 한 번 갔다 온 뒤로 확 변하더니 그 후로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잖아. 그러다가 테멜 코어와 하나가 된 후로는 더 그렇지. 넌 아니라고 생각하냐?"
- 아니죠. 전 이상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점점 자라고 있다고요. 두고 보세요. 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숙녀가 될 거라고요. 아니 이미 숙녀라고요.
"그래. 숙녀 해라. 숙녀. 너 숙녀 맞아."
- 에헤헤. 맞죠? 그런 것이에요. 어리는 이제 숙녀가 된 것이에요. 보세요. 이 몸을 봐도 다 컸잖아요.
"너, 그 인형 옷 제대로 입히고 다니라고 그랬지? 저렇게 헐벗게 해 놓지 말고 응?"
- 핏 세진님은 이상해요. 남자들은 이런 모습 좋아한다고 했는데.
"시끄럿!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서는. 저걸 그냥 키즈락을 걸어 놓을 수도 없고 원."
세진은 혀를 차며 한동안 외국 여행을 해도 어리 공방에서 나가야 하는 물품들이 차질 없이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을 했다. 떠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 뒀다가 떡배의 동생들에게 날짜 맞춰서 택배로 보내라고 할 계획이었다. 떡배 동생이 아니라 심부름센터에 맡겨도 되는 심부름일 뿐이니 부담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물건들 자체는 중요하지만 그걸 누가 훔치려는 시도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누구보다도 물건을 받아야 할 주인들이 먼저 나서서 범인을 찾아 주리를 틀 것이 분명한 일이다.
"내가 미친 거여. 내가."
"왜 그럽니까? 형님."
"내가 지금 특별기 타고 있잖어."
"그렇죠. 특별기죠."
"그게 이상하지 않냐? 형일이 넌 평생에 널 위한 특별기를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긴 하냐?"
"그야..."
"그야?"
"없죠."
"그렇잖어. 여기 누가 자신이 특별기를 타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한 사람이 있을까? 뭐 세진님이나 김혜인 박사님은 혹시 모르지만."
꼬독! 꼬독! [저는 경호원이라서 언젠가 그런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경호 대상자를 위한 특별기긴 했지만요.]
"어머나, 나도 그랬는데. 역시 우리 경호원들은 대충 같은 생각을 하나 봐요?"
"그참, 내가 말하기를 자신이 특별기를 타는 상상이라고 했는데, 그건 자기를 위한 특별기를 말하는 것이지. 뭐 암튼 내가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지. 아무렴."
"그래서 미친 거라고 하신 거예요? 형님?"
"그렇지. 뭔가 가슴이 막 부풀어 오르는 것이 달리 표현한 말이 없었지."
"형님. 어째 형님은 말을 해도 꼭 그렇게 듣기 이상한 말만 합니까?"
"내가 뭘?"
"뭐가 부풀어 올라요?"
"가슴이... 야! 이 가슴이 그 가슴이냐? 응? 왜 꼭 내가 말을 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듣고들 그래? 너 니가 이상한 거지 내가 이상한 건 아니란 말이지."
꼬독! 꼬독! [선입견이 무서운 겁니다.]= 어리는 미안해. 가끔. 이런 상황은. 어리 날자 배 떨어지길 바라지 않았어.
"저건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세진님 꼭 저거도 데리고 가야 해요?"
정진이가 어리 앵무의 존재를 새삼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 저거. 저거. 저거 봐라. 아무나 보고 저거래. 저게.
"크아악. 아무리 봐도 저건 그냥 새가 아니에요. 뭐 저런 새가 다 있어요?"
= 천재. 사람도 천재가 있고, 정진이가 있다. 앵무새도 천재 어리가 있고 바보 앵무가 있다.
"뭐? 뭐야?"
= 바보 앵무도 있고, 정진이도 있다.
"크아아악."
"얘는 왜 멀쩡하다가 새만 보면 이렇게 변하나 몰라. 진정해 응? 진이야 진정!"
김혜인 박사가 좌석에서 일어나려는 정진이를 붙들어 앉힌다.
"어리, 너 조용히 하고 있어. 자꾸 말썽 피우면 새장 안에 넣어 둔다."
세진도 상황을 보고 어리를 어른다. 그러는 중에도 세진 일행이 타고 있는 특별기는 중간에 한번 주유를 위해 착륙하는 것을 제외하곤 줄곧 날아서 열 세 시간 만에 그들을 페루의 수도 리마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