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예거와 프루토 게슈너 공방전을 벌이다. -- >
콰과광! 콰광! 카드득!
"크윽. 누구냐?"
탈예거는 이빨이 듬성듬성 나간 대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의 앞에는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는 수염투성이 얼굴의 사내가 서 있었다.
"프루토라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이니 이름은 알고 가라."
"울컥. 라훌에게 마지막 가는 길이라. 그런 것이 있기는 한가? 허깨비에서 나와서 허깨비로 살다가 소멸의 길을 걷는 우리 라훌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럼 누군지 묻지를 말았어야지."
"나는 탈예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지.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어서 최후의 순간까지 도전할 뿐."
탈예거는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에 회복한 약간의 에테르를 끌어 올려서 몸을 뜨겁게 달궜다.
"호오?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는 말인가?"
"누구나 비장의 한 수는 가지고 있지. 프루토 너도 그런지 모르지만 나정도 나이를 먹을 때까지 수련을 하다보면 그 성취가 높아지지 못하더라고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이제 네게 그걸 보여주마.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할 터!"
"이거 의왼데? 욕심만 많은 똥덩어린 줄 알았는데 마냥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지?"
"크하하하. 어차피 허깨비 인생이다. 그래서 현실에 최선을 다하려 했을 뿐, 그것이 무슨 죄가 될까. 자, 간다!"
탈예거는 몸 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용광로에 들어가서 타오르를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프루토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런 그의 몸과 검이 모두 은은하게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프루토는 그런 탈예거의 모습에서 큰 위협을 느꼈다. 자신은 익스퍼트 최상급이고 탈예거는 상급이지만 그 차이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우세했지만 지금 탈예거의 기세는 자신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콰광! 콰과광!
"크윽 뭐지?"
그럼에도 프루토는 탈예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위력에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뒤로 밀렸다.
"죽어랏!"
뒷걸음질 치는 프루토를 탈예거가 놓치지 않고 따라 붙으며 대검을 휘둘렀다.
프루토는 감히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슬쩍 검면으로 탈예거의 대검을 흘리며 또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검을 흘리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탈예거가 내 뿜는 묘한 기운은 프루토의 생체 에테르를 마구 갉아 먹으며 그에게 내상을 입히고 있었다. 프루토는 탈예거의 공격이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그것은 에테르와 다른 무엇이었다.
"뭐냐? 이건 도대체 뭐냔 말이다."
"크하하하. 마스터라도 지금의 나를 상대하긴 어렵다. 이게 뭐냐고? 이 탈예거가 죽은 후에 이름과 함께 남기려고 했던 탈에거의 비기다. 크하하하. 어떠냐? 응? 어때? 대단하지 않나?"
차창 차차창, 쿠궁. 콰르륵! 쿠당탕!
"커어억!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가 있지? 어떻게?"
프루토는 결국 탈예거의 공격에 십여 미터를 밀려나서 땅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섰다.
검을 바닥에 찍고 몸을 세운 그는 탈예거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둘 사이의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는 반전이 일어났다. 푸욱, 푹, 푹, 푹!
"커억! 이, 이런 비, 비겁한."
멈추지 않고 프루토를 공격하려던 탈예거의 몸에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던 것이다.
탈예거의 부하들을 정리한 프루토의 부하들이 화살을 쏜 것이다.
탈예거의 기세가 만만치 않고, 프루토가 연신 밀리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원거리에서 공격을 한 것인데 의외로 그것이 큰 효과를 보았다.
"커억. 이, 이렇게 가나? 이 탈예거가?"
탈예거가 무릎을 꿇었다.
"뭐지? 이봐, 어떻게 된 거지. 넌 영구 회복 캡슐을 먹지 않았나? 그게 아니라도 너 정도면 회복 캡슐 정도는 먹고 싸움을 시작했을 텐데?"
무릎을 꿇고 겨우 숨을 쉬고 있는 탈예거에게 프루토가 물었다.
"크크크. 장점만 있는 비기는 없지. 이게 그런 거거든. 이 방법을 사용하면 몸 안에 있던 회복 캡슐도 무용지물이 되지. 거기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급속도로 체력이 고갈되고 말이야. 그럼 한동안 폐인처럼 살아야 하지. 물론 다시 회복 캡슐을 먹고 회복을 할 수는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정말 큰 문제로군. 캡슐을 먹고 회복할 틈이 없겠어. 자, 프루토 이제 끝을 내라. 나도 구차하게 살긴 싫다."
"라훌의 영광을 위해서 협조할 생각은 없나?"
"크크, 지랄. 그래봐야 너희도 똑 같은 것들이다. 라훌의 영광? 내가 과거에 그 말에 속아서 함께 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지? 하긴 그 놈들 하는 짓이 그렇지. 치부라고 생각되면 지워버리려고 하는 놈들이니까 말이야. 크크크. 네스토와 펠릭스, 타지난에게 전해라. 그 더러운 가면을 죽을 때까지 벗지 말라고 말이다. 크하하핫. 울컥! 울컥!"
"탈예거?"
"내 품에 있다. 가지고 가라. 쓸 곳이 있다면 써도 된다. 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었음은 숨기지 마라. 나 탈예거가 살았던 흔적이니. 커어억!"
탈예거는 그 말과 함께 스스로 검을 거꾸로 들고 땅을 지지대 삼아서 칼을 받치고 목 을 힘주어 밀었다.
"이, 이런!"
프루토가 놀라서 말리려고 했을 때, 탈예거는 이미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프루토가 회복 캡슐을 써봤지만 탈예거의 몸은 회복 캡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의 몸은 그가 사용한 비기의 효과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회복 캡슐도 죽어가는 탈예거를 살리지 못했다.
프루토는 죽은 탈예거의 품 속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책을 한 권 얻었고, 그 안에는 일평생 탈예거가 연구해 온 에테르 활용법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치 탈예거가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탈예거의 죽음을 실종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한바탕 격전을 치른 다음날부터 레트시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 대부분의 라훌족들은 그들이 싸움에서 패해서 어디론가 도망을 갔을 거라고 하기도 했고,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여 영원한 종말을 맞이했을 거라고도 했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서 게슈너의 상점은 다시 평온을 찾은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크가 게슈너의 상점을 찾아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때문에 게슈너는 자넷과 함께 주크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주크, 나에게 레트시 라훌족 연합에 함께 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게슈너씨."
"그것이 우리 라훌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고?"
"당연하지요. 이번 사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법과 질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탈예거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지요. 사실 유저 헌터들은 그들을 감시하는 체계가 명확해서 좀처럼 불법을 저지르지 않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라훌들은 그런 법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고 있고, 특히 강자 우선의 가치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일반 라훌들은 점차 하층민으로 취급 받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라훌들까지 모두 함께 가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취지, 나쁘지 않다. 그래서?"
"일단 세력을 규합한 다음에 레트시만이라도 라훌족만의 의결기구를 구성하고 그 단체를 바탕으로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서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로 하여금 공통의 법을 만들고 집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의회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무력단체, 그러니까 법을 집행하는 무력이 필요한데?"
"물론 그런 것도 차후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저 준비 단계에 불과할 뿐이지요."
"그런데 자넷에게 듣자하니 일반 라훌을 헌터로 만드는 비기가 있다고?"
"사실 그게..."
주크는 큰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그와 자넷, 게슈너만 있는 실내를 훑어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힘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모든 라훌족들이 그 비기를 익혀서 헌터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 데블 플레인은 우리 라훌들만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저 헌터를 배제한다는 말인가?"
"그렇지요."
"하지만 유저 헌터들은..."
"애증의 대상이지요. 우리들의 근원이면서 또한 알맹이 없는 껍질들이니까요."
주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유저 헌터들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 문제에 대해서 성급하게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듯 한데."
"그건 아직 차후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일단 그런 고민은 미뤄 둬도 될 일이지요."
주크는 이제 게슈너의 마음이 거의 넘어 왔다는 생각에 조금씩 흥분되는 것을 참느라 힘겨웠다.
"그래서 내가 도와야 할 것이 뭐라는 거지? 경제적 지원인가?"
"그것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게슈너씨의 영향력이 차후로 점차 커질 것을 생각하면 그 발언권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게슈너씨의 상품은 충분히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유저 헌터들의 호감도 쌓아서 이후 우리들이 의회 정부를 구성할 때에 그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힘이 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뜻에 동참하는 정도로군."
"일단은 그렇지요. 그러면서 은연중에 저희의 뜻을 다른 일반 라훌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해 주시면 좋고요."
"어렵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내게 손해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아, 정말 고맙습니다. 역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신 분입니다. 누구처럼 욕심에 눈이 멀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으시니 말입니다."
주크가 활짝 웃는 얼굴로 게슈너를 추켜세웠다.
"나는 이기적이다. 내게 손해가 되었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이번 제의를."
"아! 하하하. 무슨 그러 말씀을. 어쨌거나 저희 뜻에 동참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넷씨는..."
"선택은 자넷의 몫이지. 자넷은 어떻게 생각하지?"
"저야 물론 기회가 생겼으니 물러설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그 비기라는 것은 안전한 것인가요?"
"물론입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그것의 도움으로 지금 이 수준에 올랐습니다. 그것도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에텔론 상점의 각인도 도움이 되나요?"
"하하하. 물론이지요. 이 비기는 쉽게 이야기하면 에테르를 소유하고 운용하게 해 주는 능력입니다. 그 외에 에테르를 이용한 기술들은 각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지요."
"그렇군요. 뭐 저야 헌터라는 타이틀만 있어도 족하니까요. 제 목표는 다른 데 있죠."
"어쨌건 자넷이 배운다는 것을 나도 배우고 싶은데? 그것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확인도 하고 싶고."
게슈너의 말에 주크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이지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자자, 여기 비기가 적인 책이 있습니다. 이걸 보고 익히시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이것을 두 분 이외에 다른 분에게 익히거나 혹은 정보를 누설하시면 정말 곤란하다는 겁니다."
주크의 말에는 은근한 칼날이 들어 있었다.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다. 걱정하지 마라."
"저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마세요. 오직 세상에 저 하나만 있는 몸이에요. 여기 게슈너씨에게 의탁하고 있는데 게슈너씨도 함께 익히는 것이라니 그것도 문제가 아니죠.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게슈너와 자넷이 주크에게 단단한 약속을 했다. = 역시 그 놈들인 거예요? 전에 세진님 고문하고 그랬던 놈들? 주크가 돌아가고 게슈너가 주크가 주고 간 책을 살피는데 지금껏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분의 나무에 앉아있던 날도마뱀이 펄펄 날개짓을 해서 게슈너의 어깨에 올라 앉으며 물었다.
"맞아. 에테르 로드 수련법의 기초가 담겨 있네. 그런대로 잘 다듬었어. 부작용도 없을 것 같고 말이야.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들이 조금 과격하네. 위험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어. 그렇지만 다른 부분은 크게 나쁘지 않아. 아니 좋아."
"그럼 내가 익혀도 되겠네요?"
"자넷이 익혀도 좋겠지. 기초적인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기라고 할만 하겠어. 그 때, 나를 관찰하던 이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났던 모양이야. 이 정도로 파악을 해 내다니 말이야."
"이런 것이 퍼지면 정말로 라훌들의 세상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 데블 플레인은."
"그걸 헌터룸 관리자들이 두고 보느냐의 문제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랜드 마스터급 헌터들 몇 명만 투입해도 전세 역전이야 금방일 테니까요. 라훌들 중에서 그랜드 마스터가 몇 명 나와야 그나마 전력이 대등 해지고 그러겠죠."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지. 거기다가 내가 끼어들게 되었으니 라훌 독립군은 좀 더 상황이 어려워지게 될 거야. 내 복수가 시작될 테니까."
"호호호. 재미있겠어요. 우리 셋이서 라훌 독립군을 무너뜨리는 건가요?"
= 제가 그랬잖아요. 스펙타클 첩보물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요. 재밌을 거예요.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