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16화 (116/298)

< -- 덩치를 키워야겠어. 덩치를. -- >

게슈너는 홀로 레트시로 돌아왔다.

그가 레트시로 돌아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다친 곳도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한동안 실종되었던 게슈너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이 나돌고 있던 상황이어서 게슈너는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게슈너가 그의 상점에 왔을 때, 상점에는 게슈너가 고용한 직원들이 빈 상점을 지키고 있었다.

판매할 물건들까지 깡그리 사라진 상황에서도 그들은 주인인 게슈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게슈너 상점이 다른 직장에 비해서 대우가 좋았던 이유가 가장 컸고, 자넷이 아랫사람들을 아주 잘 다뤘던 탓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게슈너의 상점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장사를 할 수 있 을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이 때, 사람들은 게슈너가 테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테멜에 상점의 물건을 넣고 사라졌던 사람이 자넷이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게슈너가 테멜에서 상점에 진열할 물건을 꺼내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게슈너가 나타난 후에 비었던 창고가 가득 찬 것을 보아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넷도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서 점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으니 더 볼 것도 없었다.

자넷이 상점의 물건을 테멜로 옮긴 후에 테멜을 들고 게슈너를 찾아가서 그와 함께 테멜에 숨어 있다가 이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은 게슈너에게 따로 설명을 듣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사건의 진행을 정리했다.

덕분에 게슈너는 이런저런 변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룻밤이 흐른 후에 어리가 레트시에 퍼진 소문을 종합해서 알려 줬기에 이번 사태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가 쉽게 꾸며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과 추측을 통해서 다듬은 이야기라 별달리 허점도 없었다. 주크와 펄커스 트라이브에서 각각 사람들이 게슈너를 찾았지만 게슈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갔다.

그리고 게슈너는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노란색 등급의 에테르 가드와 웨폰 한 세트씩을 선물했다.

이전까지 한 세트를 마련하려면 600만 에텔론이 필요했던 장비들이고, 새로 가격을 낮춘 것을 고려해도 120만 에텔론이 넘어갈 물건이었다.

당연히 주크와 펄커스 양쪽 모두 만족해 했다.

비록 죽을 위험에 처하기는 했지만 죽은 이들도 없었던 일인데, 그 정도의 보상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그런 물질적인 것 보다는, 게슈너라는 유망한 장인(匠人)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은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게슈너 납치 시도에 대한 사건은 그렇게 무마가 되어갔다.

하지만 이번 일로 복수 대상을 확정하게 된 게슈너는 그냥 그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 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게슈너 나름의 무력 단체를 만들기로 결심을 했다.

물론 그 구성원들은 라훌족이었다.

어차피 레트시의 의회 구성을 위한 여론 몰이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크는 물론이고 레트시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나름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몸집 부풀리기를 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한 자리 차고 들어가야 할 게슈너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게슈너와 자넷은 레트시과 그 부속 마을들을 대상으로 게슈너 경비단을 모집했다.

경비단의 일은 당연히 게슈너 상점과 게슈너에 대한 보호 임무였다.

당연히 헌터가 모집 대상이어야 했지만 게슈너는 화끈하게 젊은 라훌족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헌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 주크가 강력하게 항의를 했지만, 게슈너가 이미 몇 번을 당했던 위기 상 황을 언급하며 자체적인 방어능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니 주크도 게슈너를 막기 어려웠다.

물론 라훌 독립군의 위원들과 네스토, 펠릭스, 타지난 등의 계파 우두머리들이 우려의 뜻을 나타냈지만 게슈너는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이 능력은 우리 라훌들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째서 일부가 독점하며 자신들의 힘을 키우려 하는가? 나는 누구든 원하는 라훌이라면 모두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슈너가 이렇게 말하며 반발하자 독립군 내에서도 이야기가 많아졌다.

네스토 같은 경우에는 게슈너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펠릭스도 어차피 라훌족만 익힐 수 있는 것이니 수련법을 공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다만 펠릭스의 경우에는 좀 더 독립군의 세력을 강화하고 강력한 상명하복의 체제를 구성하는데 이번 게슈너의 행동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언잖아 했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타지난이었다. 그는 라훌들 모두에게 에테르 수련법을 전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유는 라훌족의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무리 라훌족의 세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반드시 지배와 피지배의 속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라훌 독립군들이 지배자가 되어야 하는데 수련법을 공개해서 널리 퍼트리는 경우 라훌 독립군의 위치가 흔들리게 될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런 타지난의 말은 다른 독립군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속내야 어떻든지 일단 독립군은 라훌 전체를 위한다는 대의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단체였다. 그런데 타지난처럼 욕심을 드러내게 되면 그것은 독립군이란 공동체 자체의 존립 의의를 훼손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타지난도 그걸 알고 있었겠지만 게슈너가 벌이는 일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당연히 게슈너의 그런 행태로 인해서 그를 영입한 프루토와 주크가 또 한 번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끌어 들여서 뒷책임도 지지 못했다고 많은 이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것이다.

"위험했어. 잘못했으면 어디에서 암살을 당했을 거야."

자넷이 세진을 타박했다.

"알아. 하지만 난 독립군의 에테르 수련법을 가르치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그들이 잘못 받아들인 거였어."

세진은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래. 세진이 독립군의 에테르 수련법의 근본이 되는 수련법을 알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저들 독립군은 그걸 모르잖아. 세진이 경비대를 모아서 그들을 헌터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저들이 떠올린 것이 저들의 에테르 수련법인 것은 당연하지."

"뭐 계속 따지고 나오면서 물고 늘어지면 내가 익힌 것을 가르칠 거라고 이야기할 생각이었어. 그것은 자넷이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려 주고 말이야."

세진은 미리 준비해 뒀던 계획이 있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사실이 그랬다. 게슈너는 이전부터 헌터였고, 그가 어떤 경로로 헌터가 되었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게슈너에게 일반 라훌을 헌터로 만들 수련법이 있다고 한들 독립군이 그걸 어쩔 수는 없다. 물론 혹시나 세진과 게슈너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수는 있겠지만 게슈너의 에테르 로드 수련법은 이전에 세진의 생체 에테르바디가 익히고 있던 에테르 로드 수련법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같은 것이지만 지금 상태는 같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다는 말이 옳았다. 수련의 경지 자체가 다르니 에테르 로드의 형상은 물론이고 그 길을 타고 흐르는 에테르의 흐름도 차이가 많았다.

당연히 당시에 세진을 관찰했던 마스터들이 다시 와서 확인을 한다고 해도 동일한 수련법을 익혔다고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물론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해도, 자넷에게 배운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고 둘러댈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세진은 그걸 믿고 경비대에 일반 라훌을 모집해서 헌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독립군에서 미리 오해를 하고 저희들끼리 의논을 해서는 결국 공개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세진으로선 뜻하지 않은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놈들에게 또 다른 에테르 수련법을 알려주는 거잖아. 진짜 그럴 생각이었어?"

"훗, 자넷. 내가 또 다른 수련법이라고 저들에게 보여 주긴 하겠지만 저들이 그 수련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호락호락 보여줄 생각은 절대 아니었지. 그걸 말이라고 해?"

"뭐 그야 그럴 것 같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젠 상관없는 문제잖아. 자넷 네가 배운 것을 가르쳐도 된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 오해를 하는 바람에 일이 잘 풀리긴 했지. 거기다가 우리 게슈너는 이제 라훌족의 희망이자 위대한 개척자로 이름을 높이게 생겼잖아? 축하해."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세진은 자넷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생각을 해봐, 네가 라훌족들에게 새로운 수련법을 널리 퍼트리는 거잖아. 그럼 당 연히 모든 라훌족들이 너를 찬양할 거 아냐?"

"어? 그럼 곤란한데? 독립군 놈들이 무척 배가 아파 할 텐데?"

"물론 놈들도 무슨 수를 내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곳 레트시에선 세진이, 아니 게슈너가 짱이 되는 거야."

"짱? 너 어리하고 어울리더니 이상한 말을 배웠구나?"

"뭐 어쨌거나 이제 경비대만 잘 모아서 훈련을 시키면 되는 거네?"

자넷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세진도 그런 자넷을 끝까지 놀리지는 않았다.

"하하하. 이제 두고 봐, 아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이니까 말이야. 내가 경비대 훈련장에 만들어 놓은 것이 제 역할을 하기만 하면 우리 경비대는 그야말로 콩나물 크듯이 크게 될 거야."

"콩나물?"

"몰라? 콩에 물 뿌려서 키우는 거 말이야."

"몰라. 그래서 뭘 어쩌자고? 그렇게 키우면 얼마 크지 못하고 죽을 텐데? 그렇게 키워서도 다시 콩을 수확할 수 있나?"

자넷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콩나물국을 먹은 적이 없네? 이참에 그거나 만들어 먹자. 시원하니 좋아. 빵과 함께 먹어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걸로 스프를 끓이는 거야?"

"아, 그렇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콩나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래. 세진 니 말대로 아무튼 성장이 굉장히 빠를 거란 말이지? 네가 만든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면?"

"맞아. 거기에 내가 만드는 에테르 가드에 적용된 방식을 훈련장 벽과 천정과 바닥에 골고루 만들어 뒀어. 거기서 훈련을 하면 에테르 가드를 입고 훈련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거야."

"그냥 하나씩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할 거야?"

자넷이 경비대원에게 에테르 가드를 모두 하나씩 지원하잔 소리를 한다.

"야, 정신이 있냐? 그거 하나에 지금 팔리는 가격으로 20만 에텔론이고 웨폰 없이 한 세트가 100만 에텔론이다. 그걸 새로 모집한 경비대에게 줘? 그럼 그거 받은 놈이 다음날 출근을 할 것 같으냐?"

"안 올까?"

"나 같아도 안 오겠다. 멀리 다른 도시로 가기만 해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텐데, 뭐 하러 위험한 경비대를 하겠다고 남아 있겠냐?"

"그런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대를 하면서 장비를 주느니 차라리 안 주는 것이 좋겠지. 나중에 정말로 믿을 수 있을 정도가 되거나 혹은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써먹을 때가 되면 모를까 그 전에 에테르 가드를 지급하는 일은 없을 거야."

세진은 아무리 자신의 부하로 뽑은 라훌족이라도 그들에게 에테르 장비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그것이 세진에게 그리 큰 액수의 물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 찬가지였다.

"그건 세진이 알아서 해야지 뭐. 세진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아참, 그건 알지? 세진, 아니 게슈너가 레트시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생겼으니까 그 힘을 이용해서 나를 좀 밀어 줘야 한다는 거?"

"의원 선거 할 때?"

"응. 당연하지."

"밀어주긴 뭘 밀어 주냐? 너하고 나하고 친하다는 건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는데. 넌 그냥 나가기만 하면 당선이지.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의원장도 노려볼 수 있을 걸? 알지? 이게 모두 내 덕인 거?"

"호호호. 알지. 알고 말고. 하지만 난 의원장 보다는 아무래도 감사원장 정도가 좋을 것 같아. 그 쪽이 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말이야."

"뭐 주크에게 의원장을 맡기기로 했던 계획대로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도 이번 일로 독립군에서 좀 더 입김이 강해졌을 테니까 나쁘지 않고."

"그래. 원래 계획대로 하자. 괜히 무리하지 말고. 응?"

"자넷이 원하면 그래야지. 알았다. 그렇게 하자."

세진은 자넷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무리한 계획 변경이 좋은 것은 없었다. 이대로 자넷은 외부에서 라훌족을 장악해 나가고, 세진은 독립군 내부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틈을 벌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지난과 그 일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타지난과 라하, 하파트, 후안, 제이앤, 알프론까지만 정리를 할 수 있으면 세진의 복수는 끝이 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세운 세진의 계획은 그곳이 종착역이었다.

그 첫 단추가 될 경비대가 이제 겨우 싹을 심게 되었다. 세진은 새로 경비대가 된 젊은 라훌들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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