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넷 어리 공방의 안주인이 되다 -- >
"그럼 그 훈련은 제가 좀 시켜 드릴까요? 제게 좋은 것이 있는데 말이죠."
세진의 곁에 바짝 붙어 않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넷이 불쑥 끼어들었다.
"응? 자넷 무슨 말이야?"
"앙, 내가 캡슐을 좀 가지고 왔거든. 영구 캡슐."
"뭐?"
"왜? 없어? 그냥 달라고 해서 챙겨 오면 되는 거잖아."
자넷이 세진의 얼굴을 보면서 벙긋 벙긋 웃는다.
"그게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도 있었던 거야?"
"흐응, 누군 안 되지만 나는 가능하지. 에헷."
둘의 대화에서 빠진 말은 에텔론 상점이지만 듣고 있는 이들은 벗의 본부 정도로 받아들일 이야기였다.
세진은 에텔론 상점에서 영구 회복 캡슐을 몸에 시술해 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라훌 족도 그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상점 밖으로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설마 그 기술들을 어떻게 할 수도 있어?"
"흐응. 그건..."
자넷이 확답을 피했다. 세진은 뭔가 데블 플레인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답을 할 수 있는 문제란 것을 깨닫고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캡슐을 들고 왔다고? 몇 개나 되는데?"
"몇 개 되지."
자세한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세진은 제법 많은 수를 가지고 왔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부모님을 찾아 뵐 때에 좋은 선물이 될 거란 생각부터 하게 되는 세진이었다.
"무슨 이야기죠. 캡슐이라니요?"
김혜인 박사가 먼저 관심을 드러냈다.
"상처를 치료하는 그런 거예요. 일종의 오버 테크놀러지에 해당하고 다시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죠. 그런 거 아시죠? 의도치 않은 결과의 기적 같은 거요. 실험을 하다보면 간혹 벌어지는 일이죠."
자넷의 말에 김혜인 박사는 코쿤을 떠올렸다. 그것 역시 자넷의 말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데 이걸 몸에 주입하면 몸의 상태를 회복시키죠. 외상이나 내상이나 상관없어요. 심지어는 심장에 구멍이 나거나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회복이 되죠. 목이 잘리거나 몸통이 잘려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거의 회복이 된다고 봐야 해요."
"와우, 불사신이네요?"
김형일이 놀란 듯이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당연히 약점도 있죠. 상처를 치료하는 에너지가 그 몸의 에너지를 쓴다는 거예요. 피를 만들고 세포를 재생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죠. 이해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몸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하는 일이니 당연히 한계가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거 잘린 팔다리도 새로 나나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새로 나요. 하지만 잘린 팔다리를 다시 붙이는 쪽을 먼저 권하죠. 일정 시간 동안은 잘린 팔다리를 다시 붙일 가능성 때문에 회복이 되지 않아요. 약 서너 시간 후부터 회복이 되기 시작하니까요."
"그 사이에 찾아서 붙일 수 있으면 붙이란 소린가요?"
"맞아요. 김박사님."
"내가 지금 너무 놀라서 할 말이 없네. 그런 것이 가능하긴 한 겁니까? 세진님 어째 말씀을 좀 해 보십시오."
떡배가 세진에게 하소연 하듯 말을 한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저도 그 혜택을 입었으니까요. 그나저나 그 물건을 아무리 자넷이 만들었다고 해도 외부로 유출을 시킬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세진이 자넷을 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들 복용을 했으니까. 필요가 없는 거지. 그리고 그냥 캡슐로 보관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몸에 들어가면 영구적이지만 밖에 내 놓은 상태로는 유통기간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결정이 쉬웠지. 어차피 버릴 거면 알아서 써라 뭐 이런 거였어."
"그래도 필요한 숫자는 모두 챙겼겠지?"
"대부분 가족도 없으니까 필요 없다고 했어. 물론 배우자가 있거나 가족이 있는 경우엔 그 숫자만큼 가지고 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많았나 보네. 그나저나 그걸 우리 공방 식구들에게 준다고?"
"응. 왜? 싫어?"
"아니. 다만 그거 먹고 네 훈련을 받을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렇지."
"흐응. 말 다 한 거야?"
자넷이 세진을 흘겨보며 손톱을 세우며 장난을 친다. 그런데 그런 세진과 자넷이 주고받는 말은 평범한듯 하면서도 공방 식구들의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잘려도 되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훈련이란 어떤 걸까?
잠깐 상상을 해본 김혜인 박사부터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어쨌거나 자넷의 주머니를 열면서 어리 공방의 이면 공간 공략팀의 전력은 큰 폭으로 증강되었다.
거기다가 마스터인 자넷의 훈련은 그야말로 살벌함 그 자체, 김혜인, 정진이, 선도일, 떡배, 김형일이 매일같이 피떡이 되어서 나뒹굴었다.
사실 그들의 실력은 아직 익스퍼트에도 이르지 못한 실력, 겨우 세진이 만들어준 갑옷의 효과로 익스퍼트의 위력을 내는 것일 뿐, 본 실력은 익스퍼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자넷이 그 한심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나마 선도일의 경우에는 자넷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수련을 하는 사람이란 점을 감안해서 개인 수련 시간을 줬지만, 그렇다고 선도일의 팔다리가 부러지고 잘려나가는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 지옥이야."
훈련장으로 쓰는 지하실에 내려갔다 오면 하나같이 지옥을 봤다고 헛소리를 하면서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씹어 삼킨다.
몸을 회복시키느라 상실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한 가지는 좋아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거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살을 좀 빼고 캡슐인가 뭔가 먹을 걸."
떡배가 정진이의 말을 듣고 먹다 말고 투덜거린다.
자넷이 준 회복 캡슐은 지구에 와서 조금 변화가 있었는지 공방 식구들의 몸 상태를 최고 수준으로 바꿔주지는 않았다. 그저 상태를 현상으로 유지하는데 멈췄는데 그나마 운동으로 몸 상태가 더 나은 상태가 되면 그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떠드는 떡배의 모습은 의외다. 고개를 숙이면 발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뱃살이 빠진 모습이다.
"차근차근 줄어 가는 것을 보는 기쁨도 있잖아요."
"그래도 요즘 내가 내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니까? 그래서 운동을 해 볼까 생각하는 중이지."
"그래도 아저씨는 끌어다 쓸 에너지가 많으니까 좋잖아요. 회복도 빠르고."
"커어억, 그 때문에 남들 한 번 부러질 거 두 번 부러지는 건 생각도 않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을 빼고 말 거야. 아무렴."
"그런데 일단 채워야 뺄 수 있다는 게 문제죠. 지금 그 상태로 굶는다고 해결이 안 된다는 거요. 잊지 마세요."
김혜인 박사가 정진이와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하는 떡배에게 충고를 한다. 지금 빠진 상태에서 굶는다고 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단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다. 그런데 떡배는 몸이 무겁다고 적당히 회복하면 그만 두는 경향이 있어서 체중 감량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걸 꼬 집은 것이다.
"하아, 다시 그 무거운 몸이 되는 것도 두렵지만 그 상태로 훈련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 한 번에 끝날 걸, 난 세 번이나 네 번은 당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지. 그게 문제인 거야."
"그러니까 빨리 살을 빼요."
정진이가 또 끼어들어 떡배를 놀린다.
"모두들 힘이 넘치네요? 오후 교육은 좀 더 격하게 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응접실로 나오던 자넷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하고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식탁 위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모두들 묵묵히 먹는 일에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먹어야 산다. 에너지 회복을 해 놓지 못하면 정말로 회복 불가능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억눌렀다.
"재미있냐?"
"응!"
세진의 물음에 자넷이 활짝 웃으며 단호한 대답을 한다.
"그래서 효과는 좀 있어?"
"당연하지 세진이 만들어준 갑옷이 어디 보통 갑옷이야? 이번에 3등급 화이트 코어를 갈아 넣은 물건이잖아. 당연히 효과가 있지. 오래지 않아서 익스퍼트엔 발을 들일 것 같아."
"그래봐야 3등급 일반 몬스터나 상대할 정도지."
"아니지. 여긴 몬스터들이 약하다면서? 그러니까 4등급 일반 몬스터까진 가능할 거야. 갑옷에 무기까지 챙겨 줬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그것도 개인도 아니고 단첸데."
"그것도 그러네."
= 그럼 저도 이야기 좀 해도 되요?
어리가 폴폴 날아서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데?"
세진이 그런 어리를 반겨주었다.
요즘 어쩐지 소외되었다는 묘한 오해를 품고 있는 어리여서 좀 다정하게 대해 줘야겠다고 결심한 세진이다.
"그래. 어리 동생 무슨 일 있어?"
= 나한테 맡겨 둔 두 개의 테멜. 그거 역시나 확장이 되고 있어요.
어리가 세진과 자넷에게 아주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들고 온 두 개의 테멜도 역시 다른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단 말이지?"
= 맞아요. 그런데 확장을 하는 이외에는 아직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공간이 늘어나는 정도? 그 정도 효과인 거죠. 저처럼 공간을 멋대로 바꾸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그거야. 어리 동생이 특별하니까 그렇지. 다른 테멜 유지 코어들은 지성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저 테멜을 유지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을 뿐인 거지."
자넷이 어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 하지만 테멜 코어도 뭔가 의지가 있기는 해요. 그러니까 다른 코어를 흡수하고 또 공간을 확장하는 일을 하는 거겠죠. 자넷 말처럼 그게 기능적인 거라고 하면, 그래도 그렇게 공간을 확장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뭔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죠. 그게 아니었다면 제 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워요. 저는 분명히 테멜 코어의 영향을 받았어요.
"아니면 이면 공간 유지 코어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건 무슨 말이야? 세진?"
"난 아직도 테멜 코어가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 것인지,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테멜 코어를 흡수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어쩌면 둘이 결합해서 새로운 확장 코어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
= 우웅.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제가 흡수의 주체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래. 우리 어린 확실히 어리니까. 하지만 지구의 코어와 데블 플레인의 테멜 코어의 우위는 아직 확인을 할 수가 없는 상태지."
"그거 꼭 확인 해야 해? 설마 다시 데블 플레인에서 테멜을 가지고 올 생각이야? 어리도 있고, 예비로 두 개가 더 있는데? 이제 더 가지고 오는 건 괜한 문제거리만 늘리는 거 아닐까? 지금 셋도 많지 않아?"
"그런가? 하지만 뭐 그 중에 하나는 우리 자넷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나하고 어리가 가지고 있으면 되지. 어차피 어리가 가지고 있으면 그건 하나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지."
= 맞아요. 어리는 제 안에 들어온 테멜을 관리할 수 있어요.
"저봐, 그러니까 테멜을 많이 가지고 온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지. 몬스터 코어만 가지고 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헌터룸 관리자도 그랬거든. 그리고 테멜이 여럿이면 사실 각각의 공간으로 나눠서 뭔가 일을 꾸미기도 좋을 것 같고 말이야."
"흐응. 공간이 확장되는 테멜의 수가 많으면..."
"어쩌면 지구에서 인류의 삶의 공간이 줄어드는 만큼 테멜 공간의 확장으로 보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우와, 테멜이 노아의 방주인 것이에요? 멋진 계획인 것이에요.
"노아의 방주? 그건 또 뭐야?"
= 그건 이 어리가 설명을 하겠어요. 자넷은 설명을 잘 들어야 하는 것이에요.
오랜만에 어리가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라고 세진은 생각했다.
'노아의 방주? 어리는 그걸 하고 싶은 건가? 뭐 등급을 몇 개 올리게 되면 가능할까? 지금이 2등급이니까 4등급 이면 코어를 흡수하게 되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제법 넓은 테멜 공간이 나올 테니까.'
세진은 그러면서 이번에 우두머리 우렁각시를 잡았던 이면 공간이 2등급 이면 공간이었던 사실을 살짝 아쉬워했다.
'이번 기회에 3등급 이면 공간을 찾아서 유지 코어를 얻어서 어리에게 흡수시켜야겠다. 저 쪽 테멜 코어는 안심이 안 되서 못 줬지만 이쪽에서야 뭐 벌써 두 번이나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게 세진은 3등급 이면 공간에 대한 공략을 계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