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짧아도 길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 자넷 돌아오다. -- >
어리와 함께 데블 플레인으로 넘어 온 세진은 먼저 어리의 테멜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을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어리가 에테르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범위의 어느 곳이건 테멜 공간을 이용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먼저 어리 테멜로 들어간 이후에, 어리 테멜에서 열 수 있는 출구를 세진이 원하는 곳에 열고 나가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세진은 원거리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어리가 순간 이동을 해서 세진의 곁으로 이동을 하면 다시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내심 어리처럼 그냥 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세진은 어리의 테멜을 들어가는 능력과 나오는 능력을 이용해서 이동을 하는 것이어서 어리를 중심으로 일정 공간 이상을 벗어난 이동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제약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세진이 어리 테멜에 있는 동안 어리가 열심히 순간 이동을 해서 목적지로 가면 될 일인 것이다.
어쨌건 적어도 몇 백 Km 범위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세진에게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그 다음으로 세진에게 생긴 능력은 어리의 테멜 공간을 어리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진도 어리의 테멜 공간의 구조를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때에 필요한 에테르를 세진이 직접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여서 구조 변경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어리의 테멜 공간 안에서는 순식간에 주변 환경을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어리 테멜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생긴 능력이었다. 물론 어리가 그러하듯이 세진도 여러 곳을 한 꺼번에 살필 수는 없었다. 빠르게 여러 곳을 훑어서 볼 수는 있어도 집중해서 볼 때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는 눈과 귀의 한계와 비슷한 범위 안의 모습만 확실하게 보고 들을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어리가 관리하는 여러 테멜들 역시 세진이 원하면 어리 테멜과 같은 방식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세진의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보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다. 물론 지구에 놓고 온 순둥이 테멜에 계시는 분들을 데블 플레인에서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순둥이 테멜이 어리 테멜 안에 들어와 있고, 어리의 관리를 받는 경우라면 세진은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차앗!"
크라라락! 츠릿. 서걱! 파카강!
세진의 창이 덩치 큰 거인족 몬스터의 몸통을 스치고 지날 때마다 다양한 소리들이 났다. 때론 미끄러지고, 때론 베고, 때로는 에테르가 서로 부딪혀서 충돌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생체 에테르의 대부분이 봉쇄당한 몬스터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자이언트 포핸드는 남색 등급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지만 세진의 창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다.
세진의 주력 스킬인 디버프에 당한 상태로 공격을 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뒤쪽에서 나타나 창을 찌르는 세진을 자이언트 포핸드는 어떻게 잡을 도리가 없었다.
쿠구궁!
결국 마지막 힘까지 잃고 쓰러진 자이언트 포핸드 앞에 세진의 모습이 나타난다.
쓰러진 자이언트 포핸드의 머리가 세진의 허벅지 높이까지 온다. 괜히 거인족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 중에서도 유독 물리적인 공격력이 강하고 또 생체 에테르의 양이 많아서 좀 처럼 사냥을 하지 않는 몬스터가 자이언트 포핸드다.
하지만 세진은 굳이 그런 몬스터를 찾아와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 이젠 완전 익숙해진 거 같아요. 테멜로 들어왔다가 곧바로 몬스터의 등 뒤나 옆으로 이동하는 것이 거의 순식간이에요.
세진의 어깨 위에 어리가 나타나서 쫑알거린다.
어리는 이곳에서도 어리 앵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날도마뱀으로 하려고 했지만 앵무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면서 그대로 고집을 부려서 어리 앵무의 모습으로 세진의 어깨를 차지했다.
"이젠 숨 쉬듯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니 이 포핸드 녀석을 이렇게 쉽게 잡았지."
= 하긴 공격을 모두 테멜 이동법으로 피했으니 어려울 것도 없긴 했겠지.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테멜 이동법 이거 벨런스 파괴 같아요.
"응?"
= 그렇잖아요. 솔직히 남색 등급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포핸드를 이렇게 잡아 버리면 그게 사기 아니면 뭐예요?
"야, 이놈아. 솔직히 테멜 이동법에도 문제 많잖아. 테멜 출입구가 사실 아무렇게나 열리는 거냐? 응? 에테르 파장이 심한 곳에서는 열리다 마는 경우도 많지. 들어갈 때도 그렇지만 나올 때도 못 나오고 기다려야 하는 때가 어디 한두 번이냐?"
세진이 어리에게 버럭 항의를 했다.
사실 테멜 이동법이란 것이 제법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약점이 있었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싸우는 곳이라면 아마 그 이동법을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테멜의 출구나 입구가 에테르가 불안정한 공간에서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칫 몬스터의 공격을 테멜로 들어가서 피하려고 하다가 입구 열기가 실패하면 그야말로 대책도 없이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나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아주 짧은 시간에 입구를 열고 들어가서 출구를 열고 나오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칫 실수하면 입구로 못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출구로 못 나오는 것이야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테멜 안에서 상황을 보면서 조금 기다렸다 나가도 될 문제니까. 하지만 입구를 못 열어 몸을 피하지 못했을 때의 대가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진은 지금 데블 플레인에서 생체 에테르바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수련을 위해선 본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본체로 생활하고 있는데, 몬스터를 상대하다가 몸을 피하지 못해서 큰 부상을 입은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세진이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은 어리가 세진을 테멜로 끌어 들이는 응급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진 보다는 어리가 만드는 테멜 출입구가 훨씬 견고하다. 그래서 몬스터에게 맞아서 빈사상태가 된 세진을 어리가 입구를 만들어서 테멜로 끌고 들어와서 회복 시간을 벌어준 것이 몇 번이나 되었던 것이다.
= 그래도 이젠 잘 하시잖아요. 조금 전에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잘 하셨고요.
"그야 그만큼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그런 거지. 참, 그런데 어리야."
= 네?
"그건 어떻게 되었냐? 너 에테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더니?"
세진은 한동안 물어보지 못했던 연구에 대해서 물었다.
테멜 안에서 에테르를 이용하는 것은 테멜 코어가 된 어리에겐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 힘으로 공간을 형성하고 또 구조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원래 테멜 안에서는 몬스터도 만들어진다. 테멜 안에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는 부족 코어를 지는 몬스터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리의 능력으로 에테르를 코어로 만들고자 했다. 물론 그것은 이후 그것을 거꾸로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세진과 어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에테르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또 에테르에서 원래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에테르를 이용해서 코어나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도를 하는 중이었다.
= 저도 카피 정도는 하죠. 그러니까 직접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한 몬스터들은 제 가 만들어 낼 수가 있어요. 하지만 코어는 아직 못 만들어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안되나봐요.
"몬스터를 만들어도 그걸 어리가 통제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냥 만들어 내는 것 뿐이지. 역시 부족 코어를 흡수하야 가능한 걸까?"
= 그러게요. 만들 수는 있지만 거기서 끝이죠. 그것들은 원래 짜여져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일종의 인형과 같아요. 정말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 보긴 어렵죠. 그리고 세진님이 코어 구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테멜 코어이면서 부족 코어인 거요.
어리가 어째서 아직 안 주냐는 듯이 투정을 부린다.
"그래. 그랬지. 그리고 알다시피 지금 열심히 구하는 중이잖니."
= 그렇겠죠. 게슈너 상점 점원들이 말이죠.
"그야 뭐..."
세진은 슬쩍 딴 곳을 본다. 넓은 응접실에 헌터 몇 명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젊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어차피 생체 에테르바디의 외모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게슈너의 비법은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것입니까?"
유난히 얼굴이 길어 보이는 헌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의 얼굴은 종족 특성일 것이다. 여러 종족 중에서 얼굴이 유난히 긴 종족이 몇 있었다.
"그게 아무리 에테르 가드나 웨폰을 분해해 봐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 똑 같이 모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저희도 곤란합니다."
마주 앉은 헌터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머리카락 색이 은색인 것이 특이하다.
"그것 참, 그것만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다면 엄청난 상품이 될 텐데 말입니다. 사실 외부에서 이곳 데블 플레인으로 기술을 전파하는 통로는 막혀 있지만 이곳의 기술을 밖으로 가지고 가는 것에 대해서 제약이 없지 않습니까. 그 게슈너의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우리가 만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면 다른 개방된 데블 플레인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요. 게슈너란 놈이야 라훌이니 어쩔 수가 없다지만 우린 다른 데블 플레인에도 접속이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우리 회사의 힘을 보태면 괜찮은 장사가 될 건데 말이지요."
"그건 그렇고 저는 자넷 니카드 테니, 그 여자가 게슈너의 에테르 가드와 웨폰을 상품으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손을 떼고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인 얼굴의 헌터가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코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외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테니 회사에서 손을 대기엔 좀 약소하긴 하지요. 워낙 큰 기업이니... 솔직히 이야기해서 안 그렇습니까?"
"뭐,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정말로 게슈너에게서 손을 떼긴 한 겁니까?"
"그렇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게슈너는 사라지고 헌터가 지금 그 게슈너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은발의 물음에 수인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게슈너가 사라지다니요?"
얼굴이 긴 헌터가 놀라서 물었고, 지금까지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던 다른 헌터들도 몸을 바로 세웠다.
"이건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정확한 것인데, 라훌족 게슈너는 죽었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넷 그 여자가 한동안 운영을 했지요. 물론 아시는 것처럼 단지 이곳 데블 플레인 내에서만 그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후에 자넷 그 여자가 휴가를 마치고 떠난 뒤에 헌터 한 녀석이 그걸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말이지요."
"아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허, 그렇다면 진작 말씀을 해 주셨어야죠. 그랬으면 벌써 그 헌터를 회유했을 거 아닙니까?"
은발의 헌터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이야길 한다.
"하하하, 그게 어렵습니다. 그 헌터가 제이비아에 있거든요."
"네? 제이비아요? 음 그건 좀 곤란하군요. 거긴 아무래도 쉽게 건드릴 수가 없지요. 그 헌터가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유희를 즐기는 분들은 어지간하면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곳이니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곳에서 머무는 사람을 건드리는 것은 미친 짓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두고 보고 있는 거지요."
"아쉽군요. 그런데 그 헌터는 어디 출신이랍니까?"
"비밀이라더군요. 제 능력으론 파고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그렇다면 접근할 기회가 있다고 해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 정도 보안이라면 자칫..."
"그렇지요. 아무튼 욕심은 나는데 쉽게 어쩔 수는 없는 사람이지요."
"그래도 어떻게 보상을 주는 걸로 하고 계약을 해도 이익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헌터라면 라훌족처럼 함부로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어려워요. 어려워."
헌터들은 좋은 사업 아이템을 눈앞에 두고도 막상 잡을 길이 없어 아쉬움만 토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