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70화 (170/298)

< -- 너희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 >

로디아드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경험을 했다.

신의 은총이 굳건한 로디아드 안에 몬스터들이 나타났고, 그 몬스터들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보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곳이 어디지?"

"아무래도 하우타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히락 가문의 아들 중에 하나가 그의 시종과 함께 한 쪽에 앉아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하우타칵? 어떻게 우리가 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하우타칵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 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갑자기 둘의 이야기에 새로운 사람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새로운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곧바로 인상을 썼다.

"저리 가라 털거일 종자."

"자히락의 떨거지 니가 그렇게 구니까 지금 여기 분위기가 이 모양인 거다. 지금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 이런 때조차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그렇게 발톱을 세우다간 너나 네 일족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벌써부터 이 안에서 파벌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털거일 종자라 불린 아이도 아직 성인은 되지 못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꽤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도 별것도 아닌 것들이 뭉치고 있지. 우리 다섯 가문을 감히 밟고 올라서겠다는 뜻인 거지."

"미친 소리!"

자히락 가문의 소년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조심해라. 지금 상황을 잘 봐, 여긴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나 여자들, 그리고 제대로 수련을 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다섯 가문 이외의 놈들 중에는 그런대로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놈들이 보인단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우리가 자칫 저들과 충돌을 하게 되면 여기서 몰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거다."

"지랄을 해라. 지금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움직일 기운도 없는데 칼질을 하고 싸우겠다고? 그게 미친 짓이지 별거냐?"

자히락 가문의 소년이 도리에 털거일 가문의 소년에게 냉소를 퍼부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서로 죽고 죽이겠다고? 사방이 꽉 막힌 공간 안에서? 자히락의 소년은 그런 짓이 바로 미친짓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곳이 하우타칵일 거라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어쩔 거냐?"

털거일의 소년이 화제를 바꿨다. 실상 그도 지금 이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분위기가 5대 가문과 그렇지 않은 가문이 서로 나눠지고 있다 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긴? 방법이 있나? 여기 갇힌 상태로? 누군가 꺼내주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는 거지?"

"하긴, 그렇긴 하지. 하지만 도대체 우릴 여기 가둔 이유가 뭘까?"

"어쩌면 바깥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릴 구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막상 우리를 여기 넣은 사람이 몬스터에게 당했다면 지금 하우타칵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길바닥에 뒹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자히락의 소년은 자신들이 하우타칵에 들어온 이유가 안전을 위해서 누군가가 한 일이라고 하다가, 결론은 그 하우타칵이 몬스터 사이에서 굴러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건 정말 끔찍하네? 그럼 우릴 여기서 꺼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고, 결국은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지금까지 물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고. 여자들이 손끝을 갈라서 아이들에게 피를 먹여서 갈증을 풀어 주고 있을 정도야. 젖이 나오는 여자 몇이 나머지 아이들의 목을 축여줬지만 그것도 끝이 났지. 조금만 더 지나면 아이들이 죽기 시작할 거다."

"웃기는 일이야. 나도 조금 있으면 페이러드로 쫓겨 나갈 입장이었지만 세상에 로디아드에 몬스터가 출몰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크크큭."

털거일 소년의 말에 자히락 소년도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다른 곳들도 모두 무너졌을지도 모르지."

"아니야. 그렇진 않을 거야. 분명 신의 은총은 그대로 있었다고."

"그게 있는데도 몬스터들이 들어왔어. 그럼 그걸로 끝난 거 아니야. 솔직히 로페소에테, 그 좁은 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것이 말이 되나? 발전도 없이."

"그게 제일 안전한 길이니까."

"안전? 그래서 그 안전을 위해서 너나 나 같은 놈들은 로디아드에서 쫓겨나서 페이러드로 가야 하는 거냐? 그러느니 차라리 몬스터와 원없이 싸우다 죽으라고 기술이나 제대로 가르쳤으면 오죽 좋아? 그것도 뭔 비기니 어쩌니 하면서 지들끼리만 독점을 하더니 결국 망한 거지 뭐. 망한 거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희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새 둘은 입을 다물 었다. 괜한 소리를 하느라 목이 탔다.

- 아아, 잘들 계신 것이에요. 반가운 것이에요.

벌떡!

"누,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누구요?"

- 아, 역시 그런 것이에요. 너님들은 이상한 것이에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에요. 어디다가 반말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화가 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하루 후에 오기로 하는 것이에요.

"여, 여보시요. 어리, 아니 어리님. 미안하오. 우리가 오래도록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황이라 예를 잊었소이다. 그러니 이해를 하시구려."

그래도 나이를 먹은 이의 상황 판단이 빨랐다.

"여보시오? 혹 그냥 가신 것이오? 이보시오?!"

- 어리는 잠시 고민을 한 것이에요. 그리고 마음이 넓은 어리가 한 번 봐 주기로 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잘 들어야 하는 것이에요.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에요.

노인의 부름에 다시 어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 잘 듣는 것이에요.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작당을 한 것이에요. 그들은 지금까지 로페소에테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테르켓트의 악몽을 만들어 온 것이에요.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테레켓트의 악몽은 로디아드 귀족들의 인구 감소 계획으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테르켓트의 일부 지역에 대한 악몽이 이루어진 것이에요. 이 중에는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짐작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에요. 늙은 테르텍치 당신도 그런 것이에요. 대답을 하는 것이에요. 알고 있었던 것이에요?

노인은 목소리의 질문에 잠지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충 그러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소. 그 테르켓트의 악몽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로디아드의 권력자들이 벌이는 일이란 사실 을."

노인의 대답에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들도 로디아드에 살고 있는 귀족과 그 식솔, 혹은 고용인이었지만 정말 그런 일은 상상한 적도 없었던 이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 정직한 대답인 것이에요. 그래서 어리는 선물을 주는 것이에요.

어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무리지어 앉은 앞쪽에 바가지가 담겨 있는 물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 물이다!"

"물? 물이라고?"

"어디?"

- 서둘지 않은 것이에요. 물을 급하게 먹다 채하면 약도 없는 것이에요. 아이들도 급하게 물을 먹이면 안 되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물을 향해 달려들다가 몇은 물통을 엎었고, 몇은 주먹다짐을 했다. 하지만  어리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조금씩 질서를 찾아갔다. 그들은 아이들부터 물에 적신 천을 이용해서 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 계속 듣는 것이에요. 어리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 권력을 유지한 로디아드의 귀족들은 더 이상 사람들 위에 군림할 명분을 잃은 것이에요.

"하지만 귀족들은 몬스터를 잡아서 신의 은총을 유지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로 인해서 로페소에테가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 늙은 테르텍치는 듣는 것이에요. 테르켓트의 농부가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만들어서 늙은 테르텍치를 먹여 살린 것이에요. 늙은 테르텍치가 몬스터를 잡는 것과 테르켓트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은 가치가 같은 것이에요. 그리고 몬스터를 잡다가 죽은 귀족보다 테르켓트와 에프레드, 소르메드에 간혹 나타나는 몬스터에 희생되는 이들의 수가 더 많은 것이에요. 위험한 곳에서 일하기는 오히려 그들이 더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어리의 말에 로디아드에서 끌려 들어온 이들은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오는지 이해 를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리는 더 길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에요. 그곳에는 신의 은총도 없는 것이에요. 몬스터들은 언제나 여러분을 노릴 것이에요. 그곳에서 여러분은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이 갈 곳에서 가까운 곳에 이번 테르켓트의 악몽에서 구해진 사람들이 머무는 도시가 있는 것이에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들은 수가 많고 또 테르켓트의 악몽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이에요. 어쩌면 그들은 로디아드의 귀족이란 이유로 당신들을 죽일지도 모르는 것이에요. 그건 여러분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는 원래 로디아드의 귀족들에게 신도시의 방어를 맡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계획을 바꿨다. 어리는 로디아드의 사람들은 신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마을에 정착을 시킬 생각이었다. 아마도 상당수의 귀족이 아닌 고용인들은 신도시로 가서 정착을 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허름한 집들과 기초 도구들 이외에는 그다지 주어지는 것이 없었다. 먹을 것도 그리 넉넉하게 주지 않았으니 어렵고 힘든 정착 생활을 시작해야 할  터다. 그나마 이들의 무력이 신도시의 사람들에 비해서 강력하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만약 이들이 신도시를 약탈하려 한다면 아마도 세진과 자넷은 이들을 다시 로디아드에 넣고 그곳에 몬스터를 풀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리는 그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 알아두는 것이에요. 사람을 공격하거나 혹은 속이는 어떤 행위도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에요. 힘을 내세워서 뭔가 하려 하면 아주 곤란한 일을 당할 것이에요. 그리고 충고를 하자면 테르켓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당신들 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럼 이제부터 두 시간 후에 여러분은 몬스터들이 있는 마을로 가게 되는 것이에요. 준비는 알아서 하는 것이에요.

어리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어리의 말은 충격이었다. 테르켓트의 악몽을 그들이 가족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얼마 전에 다시 그 일을 벌였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신의 은총이 없이 몬스터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재미있겠군. 적어도 심심하진 않겠어."

"젠장, 앞으로 편히 잠을 자긴 틀린 건가?"

"그나저나 이거 곤란하네. 진작 비기들을 좀 더 배워 둘 것을. 하긴 가르쳐 달래도 안 가르쳐 줬겠지. 빌어먹을 노인네."

"자자, 모여 보세. 일단 모여서 힘없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보호할 대열을 짜 봐야지 되지 않겠나."

"여기서 서로 눈치보고 있을 때가 아니네. 모이게 어서."

"야, 이 새끼들아 모이라고. 응? 이제 귀족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필요 없거든? 쉽게 이야길 해 주면 제 몫을 못 하는 놈들은 굶어도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알아 듣냐?"

이런 저런 고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중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능력이 있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지휘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로디아드 출신들의 혹독한 적응기가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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