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80화 (180/298)

< -- 예상이 어긋나는 일은 흔하기 짝이 없다 -- >

"세진님 큰일 났습니다."

"엉? 왜? 무슨 일이야?"

세진은 모처럼 밖으로 나왔다가 선도일이 새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달려오자 덩달아 놀란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뭐? 그거야 이미..."

"그게 아니라, 이면 공간이 아닌 현실 공간에 우두머리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

"세진, 큰일이야!"

세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방문을 박차고 자넷이 들어왔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현실에 나와?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세진은 자넷도 선도일과 같은 이야기를 들고 뛰어왔음을 직감하고 그렇게 물었다.

"미친 거지. 얼마 전부터 2등급 이면 공간 공략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놈들이 결국 사고를 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세진이 자넷을 보며 물었고, 선도일은 그런 세진과 자넷의 대화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간단하게 생각을 한 거지. 4등급 우두머리는 그대로 두고 이면 공간 유지 코어만 박살을 낸 거야. 그럼 몬스터 영역은 사라지는 거니까."

"미친 거 아냐? 그렇게 되면 우두머리가 현실로 나가서 거기서 몬스터들을 만들어 낼 텐데?"

세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지금 그곳을 중심으로 4등급 몬스터들이 아주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모양이야. 뭐 그래도 우두머리 몬스터를 중심으로 뭉치는 모양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우두머리 몬스터가 이동을 한다는 거지."

"허! 한 마디로 4등급 몬스터 군단이 활개를 치게 생겼다는 소리네? 제약도 없이?"

"그런 거지."

"어디야?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곳이?"

세진이 자넷을 보며 물었다.

"옴스크라고 하던데 러시아에 있는."

"옴스크가 어디야? 젠장 아무튼 러시아 놈들이 사고를 친 거란 말이지?"

세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때문에 카자흐스탄하고 몽골이 신경이 바짝 곤두선 모양이야. 몬스터들이 남동쪽으로 움직이고 있거든.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다른 곳에 비해서 인구 밀도가 낮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거야. 옴스크 동쪽으로 몇 십 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몬스터 영역에서 벌어진 일인데, 거기서 나온 4등급 우무머리 몬스터가 이동 방향을 동쪽으로 잡았거든. 정확하겐 남동쪽이지만."

"맞습니다. 지금 그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듣고 있던 선도일이 끼어들었다.

"젠장, 그래서 몬스터들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야? 규모가?"

"위성으로 감시하고 있는데 대략 300마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더 늘어나진 않고 있습니다."

"미치겠군."

"뭐 그래도 그나마 다행일지 몰라."

"무슨 소리야?"

세진이 '그나마 다행' 운운하는 자넷을 보며 물었다.

"만약에 인구밀집 지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어 봐, 그럼 어떻게 됐겠어? 아마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을 걸?"

"다른 건 몰라도 우두머리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를 생산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거지?"

"그야 한 번도 우두머리 몬스터를 살려둔 상태로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제거한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지. 아마도 이면 공간이 사라지면 당연히 그 안에 있던 몬스터들도 한꺼번에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

"그런 거면 1등급이나 그런 곳에서 실험을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그런 짓을 했데?"

"그러게, 그것도 이상하긴 하네."

세진도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실상을 알아보면 일이 벌어진 것은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는 2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간 이들은 공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보 획득을 위한 탐사가 목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2등급 정도로 보이는 몬스터 영역이었다. 몬스터 영역의 넓이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곳에 4등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나타났으니 옴스크 주정부에서 그 이면 공간의 정보를 얻기 위해 탐사대를 넣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운이 좋았던지 무사히 이면 공간 안쪽의 사정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데 성공하고 아울러서 이면 공간의 중앙부까지 전진을 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행운을 모두 써 버렸다. 행운을 모두 써버린 그들은 당연히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던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에게 발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그런 중에 이리저리 흩어진 대원중에 하나가 우두머리 몬스터가 자리를 비운 곳으로 거꾸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코어 탐지기를 이용해서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확인하고 채집해 버린 것이다.

사실 그 대원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면 공간이 무너지면 이면 공간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사라질 거라는 간단한 계산을 했던 것이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군병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라고 할 일이다. 물론 그 대원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몬스터들의 공격에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전 세계인들이 모두 주목할만한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죽어버린 것이다.

뭐 그 사정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세진이나 자넷도 이 엄청난 사태가 전혀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인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 큰일났습니다."

"뭐?"

선도일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긁어 대더니 갑자기 세진을 바라보며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공격을 했답니다."

"공격?"

"러시아에서 폭격을 했다고 합니다. 공중 폭격으로 4등급 몬스터들을. Father of All Bombs를 썼다는데 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워낙 위력이 강한 폭탄이 어서 흙먼지들 때문에 관측이 안 되고 있습니다."

세진은 선도일의 말에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못해도 수십 개의 4등급 코어가 생겼겠군. 사방으로 흩어졌을 거고, 그걸 모두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거야. 러시아에 4등급 몬스터 영역이 생기겠군. 거기다가 어쩌면 6등급 몬스터가 나오고, 이면 공간에는 6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생길지도 몰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격을 한 거지?"

"러시아의 발표로는 자신들 때문에 생긴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선도일이 세진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러시아의 사태를 듣자마자 곧바로 세진에게 달려온 모양이다.

"문제를 해결해? 그게 아니겠지. 이건 문제를 더 키운 꼴이잖아. 이제 6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걸 어쩌자는 거야?"

세진이 신경질을 냈다.

"세진님 그건 또 다르게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어요. 어차피 그 몬스터들이 있던 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이에요. 거기에 4등급 이면 공간이 생긴다고 해도 러시아로선 큰 손해는 아니에요. 그 몬스터들이 다른 인구 밀집 지역까지 이동을 하게 되면, 그게 정말 재앙이 되는 거죠. 차라리 사람 없는 곳이 4등급 이면 공간을 발생시키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거기다가 그 지역으로 사람들의 진입을 금지하면 코어의 유출도 막을 수 있죠. 4등급 이면 공간으로 인한 몬스터 영역, 거기에 6등급 몬스터가 있는 곳이면 4등급 코들을 누가 꺼내가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말이죠. 코어가 움직이지 않으면 당연히 4등급 이면 공간도 그곳에 있는 것이 유일한 것이 되요."

조금 전부터 들어와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혜인이 조금 다른 분석을 내 놓았다.

"러시아가 그런 생각으로 폭격을 했다고 봅니까? 김박사님은?"

"뭐, 그렇겠죠. 거기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4등급 몬스터 영역을 지니게 되고, 또 6등급 몬스터까지 등장을 하게 되면 어떤 의미로는 러시아가 제일 유리한 입장이 되는 거죠. 몬스터 연구에 있어서는 말이죠."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6등급까지 몬스터들 관찰할 수 있는 곳을 지니게 되는 거니까. 어차피 일은 벌어진 거고, 그렇게라도 이득을 보겠다고 핑계를 대고 4등급 몬스터 사냥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세진은 전적으로 김혜인 박사의 의견에 동감했다.

러시아가 엎어진 김에 뭐라도 주워들고 일어서려고 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Father of All Bombs는 러시아의 믿음을 배반했다.

다른 4등급 몬스터들은 모두 쓸어버렸지만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는 죽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폭발 때문인지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의 이동 방향이 서쪽으로 바뀌었다. 거의 직선으로 움직이는 우두머리 몬스터의 이동 선상에는 첼랴빈스크, 우파, 카잔, 모스크바 등의 거대 도시들이 걸려 있었다.

거기다가 이동하는 우두머리 몬스터의 곁으로 다시 새로운 4등급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허공에서 솟아나듯 생겨나는 몬스터들은 우두머리 몬스터가 만들어내는 부하들이었다. 거기에 다시 Father of All Bombs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러시아의 관리들은 고심을 거듭했다.

몬스터들의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루에 200Km정도의 속도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작은 마을을 만나면 그 속도가 더 줄어들었다. 인간에 대한 강력한 적대감은 그것들의 감각에 걸리는 인간들을 말살시키는 것으로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자칫 첼랴빈스크까지 그것들이 이동을 하게 되면 러시아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핵을 사용하기도 난감했다. 핵이 아닌 다른 방법이 없는 러시아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들의 국토에 핵을 쓰기는 망설여지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라도 10kt 정도의 핵배낭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처리가 가능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몬스터가 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격을 하지 못해서 만약 몬스터가 살아남게 된다면 다시 핵을 사 용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상황이 다급해진 러시아는 곧바로 어리 공방으로 대사를 보냈다.

주한 러시아 대사는 곧바로 어리 공방을 찾아와서 프랜드에서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 프랜드는 5등급 몬스터를 완전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자칫하면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는 문제지요."

세진은 러시아 대사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도와주십시오. 프랜드는 그럴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공헌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인류를 위한 공헌? 후훗, 그래서 인류의 대축제를 그 따위로 망쳤나 보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면 하는 수 없는 거고. 제가 꿈이라도 꾼 모양이죠. 꿈에서 올림픽을 하는데 그 나라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더라고요. 그 후유증이 남아서..."

"올림픽이라니요? 그게 무슨..."

"꿈이라니까요. 꿈. 여하튼 저는 피곤해서..."

러시아 대사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세진의 냉대에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올림픽이라니?"

"나도 모르겠네? 그냥 꼬장이라고 할까? 이상하게 그렇게 하고 싶네?"

세진의 말에 자넷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어차피 해 달란다고 냉큼 해 줄 것도 아니었잖아. 우리가 무슨 자원 봉사자도 아니고 말이야."

"뭐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이유를 대려면 좀 그럴 듯한 걸로 대지, 꿈이 뭐야? 꿈이."

"아, 그게 꼭 그렇게 하고 싶더라니까? 개떡 같은 갈라쇼!"

"응?"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오늘 내가 왜 이러나 몰라. 좀 쉬어야겠다."

"그, 그래. 그러 쉬어."

자넷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세진은 오늘따라 조금 이상한 자신의 태도를 되새기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4등급 우두머리? 뭐 그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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