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버렙 스페이스와 어리의 헌터룸 -- >
오버렙 스페이스.
사람들은 이면 공간이 겹친 곳을 그렇게 불렀지만 동양권에선 또 다르게 복지(福地)라고 부르기도 했다.
복이 깃든 땅이란 의미로 이런 저런 수련에 더없이 좋은 명당(明堂)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다.
더구나 이런 복지(福地)는 어디나 같은 것도 아니었다.
어떤 곳은 에테르의 양이 많고, 또 어떤 곳은 적었다.
세진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겹쳐진 이면 공간의 등급이 높을수록 에테르의 양이 많아진다.
그래서 3등급까지 겹친 경우에는 데블 플레인과 비슷한 정도의 에테르 양이 되고, 4 등급이면 1.5배, 5등급까지 있으면 2배, 그 6등급이면 3배, 7등급이면 4배 이상의 에테르 농도가 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세진 일행이 확인한 것은 6등급 이면 공간까지 겹쳐진 곳이었다.
아직 세진도 7등급까지 겹친 이면 공간은 발견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어리가 있다고 해도 에테르의 양을 일일이 확인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어리의 탐지 범위 안에 들어와야 에테르의 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묘하게도 그 탐지 범위가 어리의 일반적인 탐지 범위가 아니었다.
지금의 어리는 적어도 10km내에 들어가야 에테르가 밀집된 오버렙 스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세계 전체를 확인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땅 위가 아니라 바다 밑이거나 혹은 공중에 있는 것이라면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세진도 당연히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7등급까지 충첩된 오버렙 스페이스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세상은 이 오버렙 스페이스의 등장으로 시끄러워졌다.
몬스터들은 1등급 몬스터 영역 정도의 범위에서 움직였고, 그런 1등급 몬스터 영역도 새로 늘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공략이 완료되어 사라진 이면 공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 둘씩 이면 공간의 공략이 이루어질 때마다 이제 사람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결국 모든 이면 공간이 사라지면 에테르 코어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든 것이다.
당연히 이전의 석유 카르텔, 지금은 에너지 카르텔로 변신한 숨은 힘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팜, 즉 농장을 유지하면서 몬스터 사냥을 계속하는 쪽으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그런 결정이 있은 후, 각 나라에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몬스터 영역이 만들어졌다.
이전에 국립 공원을 지정했던 것과 유사한 형식으로 이면 공간 공략을 금지하는 몬스터 영역이 설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 영역은 대부분 3등급 몬스터 영역이고 등급 혼합형이어도 3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나오지 않는 그런 몬스터 영역이 지정이 되었다.
당연히 목적은 한 가지였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하면서 에테르 코어를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복지(福地) 혹은 오버렙 스페이스라 불리는 곳에 대한 정책도 정해졌다.
일단 새롭게 나타나는 몬스터 영역에 대해서는 그곳의 에테르 농도를 측정한 후에 그곳이 오버렙 스페이스인지 확인을하고, 오버렙 스페이스로 판명이 되면 공략을 금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사실상 새로 나타나는 몬스터 영역은 전부가 거기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수가 이전 1등급 몬스터 영역의 수와 비교하면 1%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거기다가 몬스터 사냥은 그곳에서도 할 수 있었다. 1등급 몬스터는 당연히 복지(福地)의 몬스터 영역에서 돌아다니니 사냥이 가능하고, 그 이상의 몬스터는 단계를 거쳐서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면 사냥을 할 수 있었다.1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서 다시 2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다시 3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써야 하지만 어쨌거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천공기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계의 강대국들 사이에는 남모르게 오버렙 스페이스 쟁탈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에테르의 농도가 짙은 곳, 다시 말해서 5등급 이상의 이면 공간이 중첩된 곳들이 주된 목표가 되었다.
그런 곳은 일종의 능력자 양성소가 들어서게 되면 그 효과가 엄청날 거라고 예상이 되니 당연한 일이다. 자국의 영토 안에 있는 오버렙 스페이스는 물론이고 다른 약소국에 있는 오버렙 스 페이스 역시 선점의 대상이 되었다.
힘의 논리는 명확해서 강대국이라 불리는 곳들은 알게 모르게 오버렙 스페이스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미친 거 아냐? 자기 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땅에 있는 걸 왜 지들이 가지고 난리를 치는 거야? 아무튼 도둑놈들이라니까."
정진이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면서 투덜거렸다.
"아직 국가 단위로 이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생각들이 있어서 그런 거야.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거지."
김혜인 박사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한다.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모두 응접실에 모여서 티타임을 가지는 중이다.
"자꾸 문제를 일으키면 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대복지를 모두 날려 버릴 거야. 아직은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 선을 넘으면 우리가 나서서 대복지(大福地)의 이면 공간 을 공략해 버리는 수가 있어."
세진이 식구들 앞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뭐 사실 그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이번에 우리 벗(友)에서 새로운 몬스터 대책을 수립했어요. 솔직히 밖에서들 아무리 난리를 친다고 해도 우리에겐 안 되지요."
자넷이 식구들을 한 번 훑어보면서 콧대를 세웠다.
"뭐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떡배가 물었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특별대책으로 우리가 받아들였던 이민자들 중에서 전사들을 뽑기로 했어요."
"전사라니요? 설마 일반인들에게 몬스터 사냥을 하라고 시킬 생각입니까?"
선도일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따지고 보면 군인들도 대부분 일반인이지요. 그들이 몬스터 사냥을 하잖아요. 그거하고 뭐 다를 것도 없는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맞습니다. 일반인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희생자가 많이 나올 겁니다."
김형일도 반대를 하고 나섰다.
"호호홋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들에게 직접 몬스터 사냥을 시킬 생각이 없어요. 혹시 그런 거 들어 봤어요? 버튼 전쟁이라고?"
"버튼 전쟁?"
"그거 사람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벙커 속에 숨어서 단추만 눌러서 무인 무기를 사용해서 서로를 공격하는 그런 형태의 전쟁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선도일이 뭔가 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그런 거죠."
"그럼 이번에 뽑는 사람들에게 무인 무기를 사용하게 할 거란 말입니까?"
떡배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그럼 무슨 로봇이나 전차 같은 걸 사람들이 조종하게 한다는 거야? 이야 그거 재미있겠는데?"
정진이도 이해를 했다는 표정으로 흥미를 보였다.
"호호홋, 뭐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진화된 형태가 되겠죠."
자넷은 한껏 신이 났다.
이번에 와성된 시스템은 대단위 헌터 룸이었다.
사실 재료 부족으로 계획이 미뤄지던 것을 러시아에서 한껏 퍼오는 바람에 대부분의 재료가 확보가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대규모 헌터룸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 어리의 테멜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헌터룸 사용을 권장할 생각을 하면서 자넷은 잔뜩 흥분되어 있었다. 지구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헌터룸을 운영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업이 될 것이다.
당연히 에테르 코어를 화폐 가치로 하는 에텔론을 부활시키고 거기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나 좋은 사업인가.
물론 그러면서 지구라는 행성의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세력도 약화시킬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이번에 만들어진 시스템에는 반드시 파티 사냥을 해야 하고, 그 파티에는 꼭 한 명의 프락칸 유저가 있어야 했다.
프락칸 유저가 에테르 코어를 정화시키는 양만큼만 에테론 환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프락칸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파티에 프락칸을 끼워 넣지 않고 개인적으로 프락칸에게 부탁을 해서 코어를 정화하면 그 정화한 만큼의 에테르 코어를 환전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 생각이지만, 일정 숫자 이상의 프락칸이 확보될 때까지는 파티 내에 프락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둘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프락칸을 육성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지만 그거야 뭐 사람들은 필요하면 다들 어떻게든 해 내게 되어 있다는 세진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한 자넷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알 수 있습니까?"
떡배가 물었다.
"커엄.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의체를 이용해서 능력자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의체 즉 가짜 몸을 만들었고, 그 몸을 자신의 몸처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세진의 말에 응접실은 한동안 꽁꽁 얼어 붙었다.
"그, 그말이 정말인가요?"
그리고 그 정적은 김혜인 박사에 의해서 깨어졌다.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그 의체들은 성장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하면 능력을 향상시켜서 여러분들과 같은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아울러 거의 실제 몸과 다름없는 몸입니다. 후손을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인체와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 그런 것이 가능한 건가요? 그런 몸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몸을 움직이죠?"
"정신을 일부 전이하는 방법을 쓴다고 했습니다만 저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실험은 이미 끝났고, 안정이 확보된 시스템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세진은 자세한 설명을 삼갔다.
어차피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거 가상현실 같은 겁니까? 무슨 게임하듯이?"
김형일이 물었다.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 의체들은 이면 공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용도로만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벗에서 지정한 사냥터에서만 가능합니다. 물론 그 사냥터가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 그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이면 공간 안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
아니 각 이면 공간마다 헌터룸을 설치하지 않으면 의체의 활동이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현실에서 이면 공간으로 이어지는 정보 교환이 이루어져야 의체를 이용한 이면 공간 공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사실 이번 헌터룸은 전적으로 어리 테멜이 관리하는 모랜 테멜 안에서 의체들이 활약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곳이 현실에 있는 이면 공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실제는 어리 테멜 안의 모랜 테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양성된 전사들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가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모두 실패를 한다고 해도 프락칸 유저는 남기 때문이다.
그 프락칸 유저들을 이용해서 지구의 에테르를 정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면 공간이 아닌 현실 공간이라면 충분히 의체를 사용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의체라는 거 특별한 겁니까? 뭐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선도일이 물었다.
"그 의체는 에테르 기관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기관을 이용해서 에테르를 사용한 여러 기술들을 쓸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그럼?"
"맞아요. 어쩌면 여러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거 의체를 쓰던 사람들이 자기 몸으로 익힐 수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상현실처럼 의체를 움직이다가 본체로 돌아와서도 그 능력을 쓸 수 있냐는 말입니다."
김형일이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흐응, 그건... 비밀인데..."
자넷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끌어 올리며 말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