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버렙 스페이스와 어리의 헌터룸 -- >
"그래도 우리 식구니까 이야기를 해 줄게요. 이번에 만든 의체들은 기본적으로 에테르 기관이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관에서 에테르를 끌어 들이고 또 저장을 해요.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이런 저런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물론 그 기술들도 그 의체들을 이용해서 하나씩 배울 수 있게 되요."
자넷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곤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이란 것이 실제로 우리 몸에 적용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배운다면 사용이 가능한 것도 있어요. 물론 각성자와 수련 능력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서 각성자 보다는 수련 능력자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긴 하죠. 하지만 일반인들은 사실 의체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어려울 거예요."
"그건 에테르 기관이란 것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러니까 에테르를 모으고 저장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용 방법을 안다고 해도 쓸 수가 없다는 그런 이야기냔 말입니다."
선도일이 자넷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헀는지 그렇게 물었다.
"맞아요. 바로 그거죠."
"그럼, 그 에테르 기관이란 것을 실제 몸에 만드는 것은 안 되는 겁니까?"
떡배가 이번에는 세진을 보며 물었다.
"신체 개조는 위험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은 절대 금지하고 있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필요하면 의체를 사용하면 될 일인데 쓸데없이 본신에다가 위험한 시술을 할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그래도 욕심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이에요.
분명히 에테르 기관을 몸에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을 거예요."
김혜인이 거의 단정하다시피 말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벗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공개하지 않을 거고, 벗이 아닌 이들이 의체나 의체에 사용된 기술 수순을 따라잡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할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그럼 그 의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얼마나 뽑을 생각입니까?"
선도일이 물었다.
"아, 뭐 그거야 이야기를 해 주겠지만 도일씨, 이 정보는 비공개입니다. 그러니까 외부에 알리는 것은 안 됩니다. 이후에 공개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사실 이 기술은 모든 이면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면 공간과 현실 사이의 벽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특정한 작업을 한 이면 공간에서만 의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이야긴지 아시겠습니까?"
"그럼 결국 의체를 이용한 몬스터 사냥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거네요?"
김형일이 약간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적어도 현실의 몬스터 영역에서 사냥은 가능하니까요. 이후에 의체들의 능력이 커지면 결국 현시의 몬스터 영역에 나타나는 4등급이나 5등급 몬스터까지 사냥이 가능해진다는 소리죠. 더 나가서 그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나더라 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자를 양성한다는 의미는 절대 작은 것이 아니에요."
자넷이 김형일의 말을 간단하게 반박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이제부턴 우리도 의체로 새로 능력을 키워야 하나요?"
정진이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 동안 고생해서 능력을 키웠는데 새로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것아, 죽을 걱정하지 않게 됐으면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어디서 인상을 쓰는 거냐?"
하지만 대뜸 김혜인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거야 선택의 문제겠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의체를 받아서 훈련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여러분 중에 한 사람은 프락칸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프락칸 능력자요? 그건 뭐예요?"
정진이가 새로운 개념이 궁금한 듯 급하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프락칸은 에테르를 정화해서 본래 지구가 지니고 있던 본연의 기운으로 돌려보내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넷이 설명을 했다.
"그럼 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능력은 없는 겁니까?"
떡배였다.
"그게 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프락칸의 능력은 꼭 필요합니다. 점점 에테르의 기운이 강해지면 결국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에테르의 영향을 받게 되고, 몬스터들은 강해지고 수도 많아집니다. 그 마지막엔 에테르 기반 생명체 이외의 모든 생명체의 멸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진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식구들에게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프락칸들을 많이 양성해서 그들에게 에테르의 정화를 맡기려는 거군요? 실제 전투 인원도 중요하지만 에테르를 정화하는 프락칸의 능력자들이 더 중요하겠네요."
김혜인은 세진의 말 뜻을 어렵지 않게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면 공간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이 강력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요. 만약 6등급, 7등급 그리고 그 이상의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그런데 무슨 이윤지 그렇게 굉장한 녀석들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분명히 그것들을 제약하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에테르의 기운이 점차 강해지면 그 제약이 풀리는 날이 올 거라는 것도 확실하죠. 그래서 어떻게든 에테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고, 그것을 위해서 전사와 프락칸을 양성하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세진은 털어 놓을 수 있는 내용은 모두 털어 놓았다.
"그래서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는데 얼마 정도의 숫자를 뽑을 겁니까?"
선도일이 다시 물었다.
"준비되어 있는 의체는 100개 파티, 총 1천입니다. 한 개 파티의 수는 열 명이고, 그 중에는 프락칸의 두 명이 끼어 있습니다. 결국 여덟명의 전사와 두 명의 프락칸으로 구성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후에 능력이 커지면 다섯 명까지 따로 파티를 구성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다섯 명, 그 중에 넷이 전사고 한 사람이 프락칸이면 정말 실력이 있지 않으면 위험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들 다섯이 사냥을 할 때에도 부담이 작지 않은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빠진 상태로 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래도 우린 여기 다섯이 한 파티로 움직이게 해 주실 거죠?"
정진이가 다른 사람들과 파티가 되는 것이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티 구성의 제한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프락칸이 있어야 하고, 프락칸이 정화한 코어만큼만 에텔론을 교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즉 두 개의 동급 코어를 획득해서 그 중에 하나를 정화해야지만 나머지 하나를 에텔론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소립니다. 그리고 이 에텔론이 있어야 에테르 기관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고, 새로운 기술들을 익힐 수 있습니다. 물론 에텔론을 현실의 화폐로 환전하는 것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아직은 이민자들, 즉 우리 벗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있지만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니까 말입니다. 단 의체를 상실하는 경우는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까 의체가 죽으면 끝이란 겁니까? 거참 살벌하네."
"뭐 개인적으로 에텔론을 많이 모아뒀다면 그것으로 의체를 구하는 것도 가능합니 다. 아니면 현실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에텔론을 구해서 그것으로 다시 의체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여하간 처음 한 번만 공짜로 의체를 제공한다는 소립니다. 물론 헌터룸 이용료도 시간이 지나면 현실화해서 받을 생각이고 말입니다."
"그건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의체를 망실한 경우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시 기회를 얻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거예요."
"어쨌거나 획기적인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네요.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김혜인은 당장이라도 확인을 하고 싶다는 표정이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어서 오십시오. 헌터룸 관리 프로그램 고구려입니다.
떡배는 의체를 사용하기 위해서 배정된 방으로 들어섰다.
우이동에 있는 어리 공방에서 따로 어디로 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공방에 본채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그 안에는 긴 복도와 좌우로 늘어선 문들이 떡배를 당황하게 만들었었다.
그래도 미리 주의를 받은 대로 정해진 방의 호실을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또 이상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단순하게 장식이 없는 치과 병원용 의자 같이 생긴 것 밖에 없다. 떡배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탐색을 해 봤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진 못했다.
- 과도한 에테르의 사용은 사용자과 헌터룸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구려라는 관리 프로그램에게 이런 주의를 들었을 뿐이다.
"이곳에 누우면 되는 건가?"
프로그램 따위에서 존대를 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을 세우며 떡배가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곳에 누워서 눈을 감으시고 10초 후에 눈을 뜨시면 의체로 정신이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안내 같은 건 없나?"
- 이미 듣고 오셨을 거라 들었습니다만, 필요하시면 안내를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프락칸 이라고 있던데 혹시 그 의체를 누가 쓰게 되는지 알 수 있나? 우리 다섯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는데 말이지."
- 이 파티의 프락칸 의체는 김혜인이라는 분께서 육성하시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의논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놀랍군. 고구려라고 했나?"
- 그렇습니다. 헌터룸 관리 프로그램인 고구려입니다.
"다는 헌터룸은 또 다른 관리 프로그램이 있나?
-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룸은 저 고구려가 관리합니다.
"1천 개나 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가?"
- 가능합니다.
"혹시 그 이상도 가능한 건가? 몇 천이나 혹은 그 이상도?"
떡배는 알 필요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저 정말 인간처럼 응대하는 고구려란 프로그램의 한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 저는 1천 개의 헌터룸을 관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이 가능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문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떡배는 고구려의 대답을
'능력은 되지만 최적화로는 1천 개가 적당하다.'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의체의 외모는 어떤 거지? 지금 내 모습과 같은 건가?"
- 아닙니다. 덕배님의 본체는 무척 신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균형이 맞지 않은 상태고, 근육에 비해서 지방이 많고, 순환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몸과 같은 의체는 만들지 않습니다.
"별로 기분은 안 좋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몸을 준다니 또 나쁘지는 않군. 그럼 일단 의체로 연결을 해 줘."
- 알겠습니다. 그리고 확인 겸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의체의 사용은 연속으로 열다섯 시간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접속을 끊은 후에는 아홉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접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의체 관리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언제쯤 제한이 없어지는 거지?"
- 의체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시면 이후에 맡은 임무나 계획에 따라서 의체의 연속 사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의체에 접속한 이후에 강제로 연결을 끊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려 합니다만 약속된 시간을 너무 오래 넘기는 경우에는 강제로 접속을 끊을 수도 있고, 그런 경우 버려진 의체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합니다. 높은 확률로 버려진 의체는 상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쓸데 없이 까불지 말고 시간 되면 의체를 제자리에 놓고 접속을 끊으란 소리지?"
- 맞습니다.
"알았어. 어서 보내 줘."
떡배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무 변화가 없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 봤다. 하지만 역시 변화가 없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건가?"
떡배가 눈을 뜨며 고구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어? 이건?"
하지만 떡배는 곧바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뚱뚱한 몸매의 떡배는 그곳에 없었다.
손에 닿는 모든 부위가 잘 빠진 젊은 남자 모델의 몸을 떠올리게 했다. 심지어 적당하게 근육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몸이었다.
떡배는 몸을 일으켰다. 헌터룸에서 앉았던 것과 같은 의자에 자신이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떡배는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거울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