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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84화 (184/298)

< -- 오버렙 스페이스와 어리의 헌터룸 -- >

"이건 뭐야? 김두환이냐?"

떡배는 자신의 의체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 영화에서 건달의 대표로 자주 등장하는 딱 그 스타일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머리카락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떡배는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 보다가 곧바로 문 밖으로 나섰다. 역시 헌터룸으로 들어갈 때와 같은 구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와 좌우로 늘어선 문들.

떡배는 원래라면 어리 공방에서 들어왔을 문이 있는 위치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나 그곳은 어리 공방으로 연결되는 곳이 아니었다. 대신에 넓은 홀이 있 고, 거기에 한 명의 여자가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누구?"

여자가 물었다.

"나."

"나라고 하면 알아요? 누구에요?"

"떡배."

"에에엑! 그럴 수가!"

"넌 정진이? 반응 보니 알겠네. 혜인씨가 너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은 테니까."

"뭔가 묘하게 거슬리는 말인데요?"

"그나저나 다들 왜 아직 안 나오는 거지?"

"그거야 떡배 아저씨가 조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알 일이죠 뭐."

"하긴 그렇긴 하지."

떡배도 정진이의 말을 수긍했다.

그리고 떡배를 따라서 김형일, 선도일, 김혜인의 순서로 어리 공방의 식구들이 홀에 모두 모였다.

"다들 선남선녀가 되었네요. 호호."

모두 모였을 때, 김혜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의체들은 딱 봐도 눈이 즐거운 외모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 황인종이지? 설마 의체 전부가 다 황인종인 걸까? 거기다가 하필 광대뼈 위에 이런 이상한 문신은 왜 만들어 놓은 거야?"

정진이가 얼굴에 있는 문신을 두고 투덜거렸다.

"그래야 의체와 일반인을 구별하지. 그러려고 만들어 놓은 그러더라. 고구려가."

김혜인이 정진이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런 것까지 다 알아보고 나오느라 늦은 건가?"

"뭐라도 알아야 도움이 될 테니까요. 떡배씨."

"자, 일단 이 홀을 둘러 보죠. 역기가 에텔론을 이용한 거래소가 있다는 곳이니 그곳부터 찾아보죠."

선도일이 그렇게 제안을 했고, 모두들 그 의견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온전히 제 몸과 같은 의체에 대해서 점차 놀라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인다는 느낌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몸이 본래 자신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워낙 위화감이 없이 의체를 사용하다보니 한참이나 늦게 의체와 헌터룸 시스템의 엄청난 성능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름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네요."

어리 테멜의 심장부, 테멜 코어가 있는 곳에서 세진과 자넷이 어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리는 테멜 공간에서 사용하는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 모습을 하고 함께 앉아 있다.

"쳇, 이런 때엔 소외감을 느낀다니까."

어리와 세진은 테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언제든 알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리와 세진이 정신적으로 연결이 된 후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자넷은 그럴 수가 없으니 테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가 없다. 그런 탓에 나온 투덜거림이다.

"다섯 모두 중앙 광장에 모여서 방금 에텔론 상점으로 향했어."

세진이 자넷에게 상황 설명을 해 준다.

"여기 어떻게 화면 같은 거 띄울 수 없는 거야?"

자넷이 어리를 보며 물었다.

"그건 어려워요. 그때 그때 테멜 곳곳을 지켜보는 건데, 그걸 무슨 수로 화면으로 보여 줘요? 그러자면 테멜 전체에 눈들이 박혀 있어야 한다고요."

"아니,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보고 싶은 곳을 볼 때마다 거기다가 무선 카메라 같은 걸 함께 보내면 좋잖아."

"그럼 누가 그곳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그냥 들키잖아요. 그리고 테멜 안에서도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 있다고요. 더구나 하위 테멜들도 당연히 전파 따위는 통과가 되지 않는 거고요. 그건 데블 플레인에서도 마찬가지였잖아요. 데블 플레인에서도 테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헌터룸에서도 감시할 수 없었다고요."

"음, 그렇지. 그랬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데블 플레인과 달리 지구엔 몬스터가 테멜하고 비슷한 이면 공간 안에 있잖아. 정말 이러다가 이면 공간 안쪽은 의체로 공략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냐?"

자넷이 조금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일단 등급이 낮은 이면 공간들은 어떻게든 일반 능력자들이 해결을 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 오버렙 스페이스 중에서도 등급이 4등급 이상으로 겹쳐 있는 곳들을 추려서 안쪽에 헌터룸을 장착하는 방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응? 안쪽에? 그러니까 뭐야? 이면 공간 안에 헌터룸을 둔다고?"

자넷이 세진의 말에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 이면 공간 안에 어떻게 그걸 만들어?"

"어리가 들어가서 꺼내 놓으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

"엉?"

세진의 간단한 대답에 자넷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다.

"어리가 들어가서 이면 공간 안에다가 헌터룸을 꺼내 놓는다고. 뭐 이상해?"

"아, 아니. 그건 생각을 못했네. 나는 밖에서 이면 공간으로 뭔가 잔뜩 실어 나르는 것을 생각했는데 어리가 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구나?"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 의체들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그 의체들을 이용해서 이면 공간 공략을 해 보는 거지. 이번에 이면 공간이 겹친 곳들을 보니까 하위 이면 공간을 공략하면 상위 공간이 나왔거든?"

"그래. 그랬지."

"그럼 말이야. 1등급 이면 공간을 공략하지 않은 상태로 2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걸 공략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응?"

이번에도 자넷은 세진의 질문에 금방 답을 못했다. 역시 새로운 발상을 이해하는데 잠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 1등급 이면 공간이 남아 있으니까 여전히 외부에는 영향이 없는 상태로 1등급 이면 공간 안에 3등급이 있는 형태가 되는 건가? 그래도 1등급 이면 공간이 버틸 수는 있을까?"

자넷이 대충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역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야 모르지. 그것도 실험은 해 봐야 하는 일이고. 참, 어리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선발 작업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어요. 공지를 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았죠. 젊은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의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좀 망설이는 것 같고요."

"그래도 지원자가 많았던 모양이네? 지금 테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 거야?"

"지금까지 3만 정도로 늘었어요. 여전히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예전처럼 그렇게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테멜 안에 정착한 사람들이 꾸준히 지인들을 초청하고 있어요. 그래서 점점 늘어나고 있죠."

"가끔씩 테멜 전체를 이동시키고 그러는데도 아무 말썽이 없어?"

자넷이 어리에게 물었다.  이전에 어리가 데블 플레인으로 갈 때, 이민자들은 모두 묶어서 순둥이 테멜에 옮겨 놓았던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느끼기엔 며칠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아 감금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는데도 별 일이 없었냐는 물음이다.

"뭐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훈련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이 프랜드의 안전 공간으로 온 이유가 뭐였어요? 몬스터들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거였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위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당연히 비상 대피 훈련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그게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란 것을 아니까요."

어리는 당연한 일이란 표정이다.

"뭐 앞으로는 그럴 일도 없어요. 어리는 강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세진님."

"엉? 왜? 너 그런 목소리로 부르는 거 겁난다. 또 뭘 어쩌라고?"

세진이 짐짓 엄살을 부린다.

"이번에 오버렙 스페이스 중에서 5등급 이면 공간 확인 했잖아요. 네에?"

어리가 단정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그때에 셋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5등급 이면 공간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었다. 사실 에테르가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이 몰려 있는 곳을 찾아서 그 에테르의 농도를 가지고 어느 정도 중첩되어 있는 이면 공간의 등급을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세진과 어리, 자넷이 직접 확인한 곳에서 분명 5등급 이면 공간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음 그래서 너 지금 거기 공략해서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얻어 달라는 거냐?"

세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어리를 보며 물었다.

"저, 남색 등급 테멜 코어까지 흡수를 했잖아요. 하지만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4등급까지 밖에는 흡수를 못했다고요. 그러니까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어리에게 주시는 것이에요. 그럼 어리는 더 대단한 존재가 될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말과 행동을 이해했다. 어차피 이전부터 5등급 이면 공간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찾지를 못해서 미뤄두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면 공간들이 겹치면서 이전보다는 쉽게 등급이 높은 이면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얻어서 어리를 더 성장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주면 확실히 흡수는 할 수 있는 거지?"

세진이 어리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어리는 남색 등급의 테멜 코어까지 흡수를 했다고요. 남색 등급이면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와 같은 거라고요."

어리가 당연하단 듯이 큰소리를 쳤다.

"잠깐만, 그거 정말이야?"

자넷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뭐가?"

"아니, 그거 이면 공간의 등급과 데블 플레인의 색깔별 등급이 정말 같은 거냐고. 그러니까 1등급이 빨간색, 2등급이 주황색, 이렇게 대응시키는 것이 정말 정확한 거냐 는 말이야."

"왜? 몬스터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대충 지구 몬스터가 좀 약하긴 하지만 적절한 분류였던 것 같은데?"

세진이 당연하단 표정을 물었다.

"하지만 이면 공간하고 테멜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잖아. 이면 공간의 등급을 몬스터 등급과 같은 걸로 생각한 것은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들의 등급이 그에 어울렸기 때문이었지?"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1등급 이면 공간에서 3등급 몬스터가 나와, 2등급에선 4등급 몬스터까지 나오고. 만약에 처음부터 그랬어도 이면 공간에 1등급이나 2등급이란 분류를 붙였겠어?"

"어?"

짝!

"어머나? 정말 그러네요? 만약에 1등급 이면 공간에서 3등급까지 몬스터가 나왔으면 1등급 이면 공간이라고 이름을 붙이진 않았겠죠. 맞아요. 언니 말이."

어리가 새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손뼉까지 치면서 흥분했다.

세진도 뭔가 뒷머리를 맞은 듯 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우리가 붙인 이름 때문에 우리가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거네? 그것 참."

세진은 고개를 설설 흔들었다.

이면 공간과 테멜이 닮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테멜과 완전히 같다는 것은 의심해 봐야 했다. 테멜이 나누어진 기준과 이면 공간의 기준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었다.

테멜이 일곱 단계로 되어 있지만 이면 공간은 여섯 단계, 혹은 다섯 단계로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그 둘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면 공간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의 등급과 데블 플레인에서의 몬스터 등급이 유사하다는 것에서 기인한 착각이었다.

"우웅. 어쩌면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제가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는 것이 힘겨웠던 이유는 어쩌면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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