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의 변화 -- >
"새로운 각성자가 나왔다고?"
"그렇습니다. 보스."
세이트 레이거의 물음에 회의장을 채우고 있던 이들 중에 제일 앞쪽에 앉은 이가 대답을 한다.
"그게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모아야 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일인가?"
"오늘 해야할 이야기 중에서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아시는 것처럼 각성자가 되는 기본 조건이 몬스터 영역을 경험하는 것임은 보스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몬스터 영역이 문제인지 이면 공간이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곳을 경험해야만 각성의 가능성이 생기지.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관찰 결과가 나왔는데 그것이 아주 획기적입니다."
"자신만만하니 전체 회의까지 소집을 했겠지. 핵심을 이야기 해 봐."
세이트는 변죽만 울리는 보고가 지겹다는 듯이 부하의 말을 독촉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각성자들 중에서 G스페이스에서 각성의 씨앗을 얻은 경우에는 훨씬 강력한 각성자가 된다는 관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이번 보고의 핵심입니다."
"음? 자세히."
"내용은 별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관찰 대상으로 잡혀 있는 각성자 1만여 명 중에서 G스페이스 경험자가 각성 후에 월등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건 아주 좋은 결과로군. 그럼 앞으로 대상자들은 모두 G스페이스를 경험하게 해야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금 불만스러운 관찰 결과도 있습니다."
"응? 그게 뭐지? 이 새로운 각성자들은 사실상 출발선이 앞서 있을 뿐이란 것입니 다."
"출발선이 앞서 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얼마간 앞선 곳에서 출발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각성자들이 몇 달, 혹은 몇 년을 노력해야 닿을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건 좋은 거 아닌가? 그게 왜 불만스럽다는 거지?"
세이트는 이번에는 부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듣기에는 무척 좋은 현상인데 그것이 불만이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경주 트랙이 끝나는 곳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언젠가는 뒤에서 출발한 사람도 결국 그 결승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앞서서 출발을 했다고 결승선에 먼저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지요."
"그런가? 그럼 결국 우리가 얻는 이익이란 초기 훈련 기간을 단축한다는 의미만 있는 건가?"
"그래서 불만스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뭐, 그래도 일단 G스페이스와 각성자의 관계를 확실히 밝힌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군. 좋아. 앞으로 그 쪽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그럼 이 정보는 어떤 수준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세이트에게 정보의 관리 수준을 묻는 부하직원이었다.
"뭘 고민해? 그냥 공개해! 까짓 그게 얼마나 비밀이 지켜질 것 같아? 다른 곳에서도 그런 정도의 관찰을 이미 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꽁꽁 숨겨 두고 있는 놈들도 있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공개해서 점수나 좀 따. 그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좋아."
세이트는 부하에게 곧바로 정보 공개를 명령했다.
"잘 들어. 이 정도 연구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나라들이라면 거의 모두 진행을 하고 있을 거고, 결론도 비슷하게 났을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걸 발표하면 이익은 뒤에서 쳐져 있는 떨거지들이 보게 되겠지.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미국을 생각할 때
'역시 미국이야.'
하면서 호의를 가진단 말이야.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보다 더 활용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역시 보스는 생각이 남다르십니다."
"아부하지 말고 배울 걸 배우란 말이야.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거야. 알겠나?"
"넵. 알겠습니다."
"네. 보스."
세이트의 말에 회의장의 모든 인원이 입을 모아서 대답을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회의장의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새로운 의제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 보지. 그 의체 전사? 그건 어떻게 되었어?"
"저희가 붙인 공식 명칭은 FK입니다. 프랜드 나이트를 줄인 말입니다."
"그래 그거."
세이트는 명칭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것 때문에 사실상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 뭐? 무슨 문제가 있어?"
"몇 곳에서 그 FK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확보?"
"그러니까 납치를 하거나 혹은 그 몸이나 신체 일부라도 구해서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우린?"
"네?"
"우린 어떻게 하고 있냐고? 우리도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느냔 말이지."
"우리 몬스터 대책 본부에서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만, 다른 선에서는 작전 계획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계획은 언제나 세워지고 폐기되는 것이니 실행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미친 거지?"
"네?"
"계획이고 뭐고 몽땅 폐기하고 대신에 필요하면 머리카락이나 손톱이나 그것도 아니면 전투중에 흘린 피라도 긁어모으라고 해! 대신에 절대로 직접적인 작전 따위는 하지 말라고 전해! 만약에 그들 때문에 벗과 문제가 생기면 지들이 나라를 구할 거래? 아무튼 생각이 없어. 생각이. 지금 어딜 건드린다는 거야? 벗의 전사들 중에서 전에 프랑스에서 4등급 우두머리 상대하던 그 괴상한 녀석들 몇 만 등장해서 워싱턴을 헤집고 다니면 그걸 어떻게 할 거야? 설마 워싱턴에 핵을 떨어뜨려서 해결할 거야? 아니 그렇게 하면 해결을 할 수는 있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미친 총잡이 놈들은?"
세이트가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그 녀석들이 갑이야 갑. 우리 미국이 아니라 그 놈들이 갑이라고 응? 알겠어?"
세이트는 속이 쓰렸지만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끓어오르는 속을 쓸어 내리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역시 미국보다 벗이란 단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부하들을 관리하는 것의 그가 맡은 가장 중요한 책임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몇몇 기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FK는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고, 그들 중에서 간혹 희생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둘 정도를 납치하거나 혹은 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무적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너도 그 일을 하고 싶어?"
"아,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벌이려고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 번 크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우리 미국이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둬. 아무래도 벗에서 나서서 한 번 저어 줘야 정신들을 차리고 납작 엎드릴 거야. 그게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 다음은?"
"넵. 다음은 좀 심각한 문제입니다."
"뭔데?"
"수련 능력자들 사이에서 각성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수가 무척 적기는 하지만 듀얼리스트는 굉장히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Dualist? 두 가지 능력을 쓴다고 붙인 이름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강력한 전력이 생기는 것은 환영할 일일 텐데?"
"문제는 우리쪽에는 수련 능력자의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수련능력자들은 우리 미국에만 비율이 낮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 때문입니다."
"역사?"
세이트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부하직원을 바라봤다.
"역사가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오랜 과거부터 이어오던 수련 방법 같은 것이 거의 없는 것이 미국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 남미의 빈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서도 수련 능력자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거지? 이 땅에도 오랜 역사를 지닌 이들이..."
세이트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인디언 학살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미국은 온전히 새로 건설된 나라였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이 땅의 주인들은 대부분 학살당했고, 이후에는 보호구역에 수용되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전통을 잃어갔고, 그것은 과거 미국이 의도적으로 시행한 정책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살한 북미 대륙의 역사가 지금 와서 미국의 수련자가 확연히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흐음. 그러니까 우린 수련 능력자가 별로 없고, 그러니 수련 능력자가 각성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요즈음 고대의 수련법을 익히는 수련관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나?"
"대부분 동양에서 들어온 수련법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본토와는 사실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련관을 수료한 이들의 수준도 차이가 납니다. 더구나 제대로 수련을 하자만 그들의 정신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미국적인 정신과는 좀 다른 형태가 되는 것이라..."
"어렵군. 어려워.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정도인가?"
세이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듀얼리스트는 일반 각성자과 수련능력자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수련을 통해서 에테르를 축적할 수 있고, 그것을 각성 능력에 필요한 정신 에너지로 가속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쉽게!"
"그러니까 스스로의 수련을 몇 배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축적한 에테르를 정신 능력을 사용하는 정신 에너지의 보조로 쓸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신력을 허비하며 무리가 온 몸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축적된 에테르를 정신 에너지에도 보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빠르게 강해지고 또 두 가지 능력으로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동양 3국에서는 이미 그런 능력자를 비밀리에 양성해서 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라면 4등급 우두머리도 사냥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더 발전하면 그 이상의 몬스터들도..."
"초인이로군. 슈퍼맨이야."
세이트는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세이트는 결국 물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좀 더 투자를 해야 합니다."
"충분히 하고 있을 텐데?"
"돈이 아니라 사람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으음."
세이트는 낮은 신음 소리를 삼켰다.
사람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은 곧 인체 실험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니 이미 진행되고 있는 실험에 더 많은 실험 대상자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인 것이다.
"지원자로 어려운가?"
"많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쌓여 있습니다."
"그럼 대안은?"
"범죄자들을 감형시키는 조건으로 지원 받거나 군인들 중에서 다시 한 번 혜택을 확대해서 지원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몇 가지 방법을 시행할 준비를 해 뒀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지금 발표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런 공식적인 모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세이트 레이거에게 달려 있었다. 그가 몬스터 대책 본부의 보스인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행해! 그리고 흔적은 남기지 말고."
세이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바른 길을 걷자고 해도,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그는 스스로의 마음에 변명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