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외의 만남 -- >
솟구치는 종족. 그들의 언어로 브리즈가티 종족은 세진이 보기에는 꽤나 개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종족이었다.
그들은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양념으로 등장하는 오크라는 종족을 많이 닮은 종족이었다.
아랫니의 어금니가 위로 솟아 있는 것도 그렇고 코가 조금 크고 들창코인 것도 그랬다.
사실 브리즈가티 종족에게 송곳니가 위로 솟아 있거나 코가 하늘을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이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신성하게 여기는 종족의 특성 때문에 코와 어금니가 많이 솟아 있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미남의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얼굴의 외형도 그렇지만 몸 자체도 역삼각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상체 발달형 신체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하체가 조금 약한 면이 있지만 그보다 상체의 발달이 엄청난 장점이 되는 것이 브리즈가티 종족의 남성체였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브리즈가티의 여성체들은 귀엽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늘씬한 팔등신에 어금니도 살짝 돋아 있을 정도로만 보이고 코도 들창코가 아니라 오똑하니 예쁜 모양이다. 더구나 대머리에 가깝게 머리털이 부족한 남성체에 비해서 여러 색의 풍성한 머리카락도 브리즈가티 종족 여성들의 신체적 특징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브리즈가티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사실 브리즈가티의 남성들은 언제나 추녀들과 생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나면 그야말로 추종자들이 구름처럼 모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무르이까는 브리즈가티의 절세미인이었다.
고개를 약간만 들면 내리를 비를 콧구멍으로 받을 수 있는 코.
양쪽 볼을 들어 올리며 솟아나서 광대뼈까지 자란 한 쌍의 어금니. 남성의 상체보다 훨씬 더 두툼한 가슴.
그 가슴에서부터 일자로 이어져서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통짜 몸매.
그럼에도 몸을 움직이는데 전혀 무리가 없이 날렵하기까지 한 움직임을 보조하는 몸의 근육들.
그러니 무르이까가 브리즈가티의 절세미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녀의 곁에 그랜드 마스터가 둘에 마스터 최상급 둘이 호위로 따라 붙은 것도 당연하다.
물론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죽음도 불사할 정도로 맹목적인 추종자들임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그래서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의 고집 때문에 어딘지도 모를 테멜 안에서 굶어 죽을 상황이 되어서도 무르이까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깝딴.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여기 물이 조금 남았습니다. 드십시오."
"이것도 함께 드십시오. 그 동안 너무 먹은 것이 없습니다."
"어기 제 것도 드십시오."
두 마리의 몬스터를 겨우겨우 상대하고 여유가 생기자 추종자들은 무르이까를 위해서 자신들의 것을 서슴없이 내어 놓았다. 하지만 무르이까는 그것들을 취하지 않았다.
그녀가 비록 고집을 부려서 상황이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철모르는 여자는 아니었다.
"아니에요. 나중에 함께 나누기로 해요. 지금은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때예요."
무르이까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고집이 불러온 화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무리의 리더인 것이다.
"누가 온다!"
"몬스터가 아니다!"
"사람들이다!"
그 순간 그녀의 추종자들이 벌떡 일어나 무기를 뽑아 들고 경계를 하며 한 쪽을 노려봤다.
그리고 무르이까는 그 쪽에서 한 쌍의 남녀가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허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무르이까는 그들이 브리즈가티 종족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브리즈가티 종족이 아니라면 강약의 척도가 또 다른 것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브리즈가티 종족에서나 통하는 기준이었다.
앞장서서 양 손을 어깨 높이로 든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와서 얼굴이 확연히 보일 정도가 되자 걸음을 멈췄다.
"적이 아니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세진이라고 하고, 여기는 내 아내인 자넷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자넷이에요."
세진과 자넷이 무르이까 일행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브리즈가티의 대족장이신 솟구치는 바람 종족의 족장 노스니의 셋째 딸인 깝딴 무르이까예요. 솔직히 반갑다고 하긴 어려운 상황이네요."
무르이까도 일행을 대표해서 세진 일행에게 인사를 건넸다.
세진과 자넷, 무르이까는 연방의 공용어를 쓰고 있었는데 세진은 툴틱을 통해서 통역을 하고 있었고, 자넷과 무르이까는 통역 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대족장님의 따님이라고요?"
무르이까의 소개에 자넷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세진도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족장이라면 솟구치는 종족이 살고 있는 행성의 대표였고, 또 원로원의 우두머리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그 행성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신분인 것이다. 원로원과 전체 대회의 같은 제도가 없었다면 대족장이 지배자라고 할 수도 있는 곳이 그 행성이라고 자넷에게 들었던 세진이었다.
"맞아요. 제 아버지가 브리즈가티 행성의 대족장이에요. 아직 임기가 제법 남았죠."
"아, 미안해요. 사실 우리 부부는 뜻밖의 일로 연방이나 연합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 벌써 십 몇 년이 되어서 그런 소식에는 깜깜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자넷님과 세진님도 테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가요?"
무르이까는 자넷과 세진에게서 희망적인 말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테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데블 플레인 소속의 행성으로 갈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무르이까님은 어떻게 여기에 계신 거죠? 이 테멜의 게이트는 어느 행성과 연결이 되어 있나요?"
자넷은 혹시 무르이까가 그녀의 행성인 브리즈가티에서 이 나비의 테멜로 온 것이 아닌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나비의 테멜 게이트를 이용하면 곧바로 무르이까의 브리즈가티 행성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넷의 표정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그건, 사실 우리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무르이까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곳 테멜에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테멜 게이트를 통과해서 도착한 테멜에서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게이트를 열었는데 원래 출발했던 테멜이 아니라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건가요?"
자넷은 무르이까의 설명을 듣고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아요. 자넷님도 황당하시겠지만 저희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테멜 게이트가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무르이까는 자넷의 표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테멜 게이트를 이용한다고 해도 출발한 테멜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군요. 다시 말하면 이 테멜의 게이트는 이제 그 도착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건가요?"
"그렇다. 무르이까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
"우리도 무르이까님과 같은 생각이다. 이 테멜의 게이트나 이전 테멜의 게이트는 뭔가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그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굉장한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게이트를 통과하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세진의 물음에 답한 것은 네 명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넷은 그런 추종자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들 추종자들이 무르이까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나와 세진은 부부 사이고, 우리는 한 번에 두 명의 배우자를 두지 않아요. 무르이까님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제 남편은 한눈을 팔지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세진은 자넷의 말을 듣고서야 네 명의 덩치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심미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야? 내가 설마하니 저 여자에게 마음을 줄 것 같아? 그것도 단지 외모만 보고?'
"이런, 오해를 하신 모양이군요. 아시겠지만 종족들마다 심미안이 다릅니다. 무르이까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여기 자넷이 최고의 미녀로 보이는 심미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르이까님께 흑심을 품을 일은 없습니다."
세진은 자넷을 살짝 당겨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비위가 좋지 않은 덩치 둘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보기에 자넷은 그야말로 극악한 추녀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인 세진도 추남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호호호. 우리들은 지금 서로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못생긴 것들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겠군요.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다른 행성의 사람들과 우리 브리즈가티 종족이 마주하면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고 하더군요. 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종족의 보통 여자들은 제법 다른 종족에게 인기가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요."
"저도 그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요. 초기 교류를 할 때에는 그래서 브리즈가티 여성들이 다른 행성 남자들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죠?"
"뭐, 그건 다른 행성의 여자들이 우리 행성으로 와서 정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죠. 다른 행성에서는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배척받는 여자들이 우리 행성에 와서 미녀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행성에서 추녀로 손가락질 받던 여자들이 다른 행성에서 미녀가 될 수 있었다죠."
"하지만 결국 그런 것도 초기에만 유행을 했고, 이후에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다른 행성의 여자들 때문에 결국 외부 결혼이 금지되었다고 들었어요. 확실히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컸다고 했죠."
"그랬죠. 미에 대한 기준이 전혀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다른 문화적인 차이들이 많이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어요. 어쨌거나 자넷님과 세진님이 그 쪽에서 미남 미녀라고 한다면, 우리 행성에서는 저와 여기 이들이 최고의 미남 미녀죠. 그걸 봐도 확실히 차이가 나긴 하네요. 그리고 덕분에 저를 따르는 이들이 안심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요."
"그런데 깝딴이면 상대를 현혹시키는 능력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세진의 반응을 보니 무르이까님은 그런 것을 쓰지 않으시는 모양이네요?"
"아, 그거요? 그건 다른 종족에게나 쓸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건데 듣고보니 그게 안 되는 모양이네요? 이성에게 최고의 호감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말이죠. 우리 브리즈가티 종족 사이에선 별로 쓸모가 없지만요."
세진은 무르이까의 말을 듣고 그와 유사한 능력이 생각났다.
'자넷, 그거 나비 녀석의 능력하고 비슷하지 않아?'
'어? 정말 그런데? 그러고 보니? 설마?'
'어쩌면 저들하고 나비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아, 미안해요.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우리끼리 의논을 좀 했어요. 그래서 무르이까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무르이까는 세진과 자넷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살짝 경계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저기, 혹시 황금색 고양이에 대해서 아시나요?"
"네? 뭐라고요?"
무르이까는 뜻밖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반문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