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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243화 (243/298)

< -- 귀환 -- >

세진과 자넷은 무기도 없이 빈 몸으로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다가온 덱터의 사람들과 만났다.

그들은 세진에게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하게 해 주는 대신에 그 동안 세진과 자넷이 덱터 관할의 행성들을 여행하며 얻은 정보들을 데블 플레인에 제공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만약에 그 약속을 해 준다면 곧바로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겠다는 것이었다.

"입으로 한 약속이 의미가 있나? 그게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나?"

세진이 그렇게 물었을 때, 협상 차 왔던 덱터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세진은 이들이 적당한 명분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덱터는 이곳의 테멜을 박살내는 것을 꺼려하고 있고, 또 세진과 자넷에 의해서 덱터 쪽의 정보가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넘어가는 것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두 마리 괴수를 앞세운 세진과 자넷의 공격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핑계를 대서라도 세진과 자넷을 게이트 너머로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세진은 자넷을 바라보다가 덱터의 협상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될 수 있으면 이쪽에서 얻은 정보를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 이야기 하지 않는 걸로 하지. 물론 일상적인 행성들에 대한 정보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아. 다만 덱터나 테멜 게이트에 대한 것들은 입을 다물어 주지. 그럼 되나?"

세진은 그렇게 양보하기로 했다.

굳이 싸워서 죽고 죽이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중요한 것은 자넷을 우주 연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문제였다.

그렇게 세진이 약속을 하고 나자 곧바로 덱터의 사람들이 세진과 자넷을 게이트로 안내했다.

그리고 세진 일행은 게이트를 꼼꼼하게 살핀 후에 게이트를 열고 들어갔다.

덱터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 게이트를 넘어가면 데블 플레인 연합에 속한 행성으로 이동을 하게 되고, 그 쪽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쪽에서도 테멜에 상주하면서 일정 기간마다 서로 형식적인 접촉을 이어왔다고 했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이 게이트를 넘었을 때, 반대쪽 테멜에 있던 이들은 게이트를 통해서 나타난 괴수 두 마리 때문에 때아닌 비상이 걸려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건 뭐, 달군 철판 위에 올린 메뚜기 떼 같은데?"

"왜? 그냥 개미굴 쑤신 것 같다고 하지?"

"그것도 그런가?"

- 우와, 사람들이 난리가 난 것이에요. 테멜 안에 자그마치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모두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이제 그걸 모두 알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럼, 나비랑 쫑이랑은 테멜에 다시 넣고, 우린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

세진이 어리에게 그렇게 말했고, 어리는 쫑과 나비를 테멜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냥 도망을 갈까?"

세진이 살짝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넷에게 물었다.

"응?"

"그냥 어리의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출구로 간 다음에 훌쩍 나가 버리는 거지. 그래도 우릴 잡을 수는 없을 걸?"

"하지만 그랬다간 우린 행성 전체에서 수배령을 받게 될지도 몰라."

"그런가?"

"당연하지 괴수 두 마리와 함께 나타난 침입자들이 행성으로 탈출했다고 난리가 날 걸?"

"하하하. 그것도 그렇겠다. 그런데 여긴 어딜까? 아까 보니까 타모얀 종족이 보이는 것 같던데?"

"그렇지? 나도 봤어. 그럼 여기가 그 행성일 수도 있겠어. 데블 플레인 연합의 중심 행성. 타모얀. 이전에 제3 데블 플레인이라고 불렸던 그곳."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럼 전에 봤던 그 프락칸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흥, 그 여자는 왜? 보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아는 타모얀 종족이라야 그 여자 밖에는 없잖아. 거기다가 그 여자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고 말이야."

"뭐 그야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대응이 느려?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거 아냐?"

- 사람들이 모두 한쪽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반대쪽에서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모이는 쪽은 출구, 들어오는 쪽은 입구일 것이에요.

어리가 자넷의 말에 테멜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오랜만에 넓은 탐지 범위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마음껏 사용하는 어리였다.

덱터와의 소통을 위한 테멜 게이트를 관리하는 하늘 고원 출신의 타모얀 타이드리는 갑작스런 재앙 앞에서 잠깐 허둥거렸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테멜 안에 있는 모든 견학생들을 출구 쪽으로 모았다.

그리고 밖으로 사람을 보내서 증원군을 요청했다.

원래 이 테멜에는 상시 근무로 20명 정도가 머물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카데미에서 견학생들이 나오는 바람에 테멜 안에 사람들의 수가 많았다. 타이드리는 어쩌면 이 학생들을 노린 테러일질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침입자들은 그 별다른 행동이 없었고, 그 사이에 모든 학생들을 출구 쪽으로 모을 수가 있었다.

타이드리는 신속하게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밖에서 들어온 증원군들과 함께 침입자를 퇴치하기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엄청난 몬스터를 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니 일단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해야 할 문제였다.

그렇게 타이드리가 긴장된 표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가 본 것은 한 쌍의 남녀가 멀뚱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설마 몬스터가 변신 몬스터였나? 분명 고양이와 개를 닮은 몬스터라고 했는데?'

타이드리는 혼란을 느꼈다.

괴수는 보이지 않고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남자의 어깨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장식처럼 어깨에 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누구냐? 누군데 게이트를 통해서 침입을 했느냐?"

타이드리는 일단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남녀는 그리 호전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몬스터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아, 미안해요. 놀라게 한 것 같네요. 난 자넷이에요. 자넷 니카드 테니. 그게 제 이름이죠. 그리고 알지는 모르지만 테니 그룹의 회장이에요. 아, 한동안 실종이 되어서 지금도 회장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그래요. 그러니까 확인을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확인이 되는 동안 저와 제 남편이 편히 쉴 곳도 좀 부탁하고요."

타이드리의 말을 받은 것은 세진이 아니라 자넷이었다.

사실 이제부터는 자넷이 세진보다는 일처리를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야 했다.

"테니 그룹이라는 말입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지의 일족 넷째 딸이신 허서르 프락칸께서 테니 그룹의 회장님과 거래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역시 그 여자 이야기가 나오네요. 알았어요. 허서르 프락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빠르긴 하겠네요. 어쨌거나 신분 확인이 될 동안에 우리가 쉴 곳을 좀 부탁해요. 그리고 우릴 자극하진 말아요. 우린 지금 신경이 날카로우니까."

자넥은 그렇게 말하고는 턱으로 움직이란 재촉을 한다.

세진은 그 모습이 상당히 낯설다.

"우와, 너 많이 낯설다."

"개그를 할 때가 아니거든? 아무튼 도착을 해도 꼭 이런 곳에 와선, 또 허서르 그 여자와 부딪히게 되잖아."

자넷의 턱짓에 앞장서서 안내를 시작하는 타이드리를 따라서 걸으며 세진과 자넷은 목소리를 낮춰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게 왜?"

"뭐가 되었건 난 그 여자가 싫어. 그리고 그 여자에게 빚지는 것도 싫고."

"빚은 무슨 빛, 설마 신분확인 해 주는 정도가 빚이 되겠어?"

"그게 아니지. 이제 우린 괴수 사냥도 해야 하고, 깝딴 의체도 육성을 해야 하고, 다른 의체들의 성장도 도모해야 하잖아.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하고 말이야. 괴수만 해도 여기 이 타모얀 행성에 있는 것들을 씨를 말릴 수는 없으니까 적당한 행성들을 오가 가야 할 텐데, 그러자면 또 그 여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잖아."

"야, 그건 아니지. 너 테니 그룹의 회장이잖아. 뭐 이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너 도 힘이 있잖아. 그렇게 빚지는 것이 싫으면 필드로 가서 사냥을 해도 상관 없는 거 아냐?"

"그게 어려우니까 그렇지. 헌터룸 관리자들이 우리가 헌터룸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난리가 날 거야."

"그럼 지금 우리 의체도 본체로 바꿔야 하는 거 아냐?"

"물론 그렇게 해야지. 허서르 그 여자가 오면 우리가 의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냥 들키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그럼 오랜만에 본체로 움직여야 하나? 그것도 신선하겠네."

가끔씩 교차하는 통로들을 몇 개 지난 후에 세진과 자넷은 단출한 가구들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신분 확인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테멜의 관리자인 타이드리입니다."

"아, 미안해요. 제대로 통성명을 안 했네요. 내 소개는 했으니까 지나가고 여긴 내 남편인 세진이에요. 허서르 프락칸도 본 적이 있으니까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째 서 우리가 테멜 게이트를 통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지금 타이드리 당신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긴 힘들어요. 나도 일단은 내가 처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 신분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게 해 주세요. 허서르 프락칸 이외에는 내 귀환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이건 정치적인 문제니까 잘 고려를 해 줘야 해요."

자넷이 타이드리에게 자신과 세진의 신분을 숨겨줄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 정치적인 이유라고 했으니 타이드리 정도의 직위로는 감히 엉뚱한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신분 확인이 될 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려 주셔야 합니다."

타이드리는 자넷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세진과 자넷에게도 자중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타모얀 행성이나 데블 플레인 연합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자넷은 밝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타이드리는 쉬고 있으란 말을 남기고 물러 났다.

하지만 물러나는 타이드리의 속은 편치 않았다.

행성이나 연합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자넷의 말이 목의 가시처럼 걸린 것이다.

그 말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타모얀 행성 전체와도 한 바탕 겨룰 능력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실상이야 어떻든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타이드리였다.

"이 행성에서 가장 다수 종족이 타모얀 종족이고 힘이 제일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다른 종족이 없는 것은 아니야. 이 행성은 다른 행성에 비해서 종족이 굉장하 다양한 편이라서 말이야."

자넷은 세진과 함께 본체로 돌아온 상태에서 둘이 함께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체로 지내는 것이지만 어색한 것은 없었다.

본체와 의체 사이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랜드마스터의 정점을 찍은 본체와 의체는 어느 쪽을 움직이고 있어도 위화감이 없었다.

"그래?"

"응, 그리고 여기 이 행성이 데블 플레인 연합의 출발점이었어. 원래 본성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연방의 모성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곳으로 헌터들을 보내서 몬스터 코어를 얻기 위한 사냥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했지?"

"그게 에테르 기반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발견한 후에 코어의 유용성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다며? 에테르에 저항력이 있는 사람들과 에테르를 이용한 특이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데블 플레인이라는 행성에 보내서 코어 수집을 시켰다는 이야기."

"맞아. 바로 그 때, 여기가 제3 데블 플레인이었는데, 여기서 영웅이 난 거지."

자넷이 이전에 들려주지 않았던 데블 플레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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