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53화 (253/298)

< -- 세계 정부 따위? 없는 게 나아! -- >

쾅!

"대인!"

갑자기 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진씨 가문의 제일 총관이 진대인을 부르며 달려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마음의 놀람을 표정과 말, 행동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가문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진대인은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몬스터들이 도시 내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폐허가 되고 있습니다."

제일 총관은 방금 들어온 보고를 그대로 진대인에게 전했다. 그는 그런 보고가 상하이의 유지들, 부유층들에게서 들어왔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일 총관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상하이에서 1%에 해당할 그 사람들뿐이었으니 그들이 공격을 받고 있으면 상하이 전체가 공격을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가 도시 안에?"

진대인은 잠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지만 곧바로 '벗(友)'의 존재를 기억해내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국 온 건가? 그것도 도시 전체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진대인의 집무실은 저택 내부에서도 여러 겹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곳에 있었다. 그래서 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대인이 책상 위의 버튼 몇 개를 조작하자 한쪽 벽면에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들이 나타나면서 상하이 시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도시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전송되고 있었다.

"흐음. 저걸 막을 수가 있겠나?"

진대인의 말에 총관이 허리를 접었다.

"6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입니다. 가능성이 없습니다. 7등급도 적지 않게 섞여 있습니다."

"상하이는 멸망이로군. 그래 아이들은?"

"지하도로 피신을 시키고 있습니다만, 도시 밖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한동안 지하에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버틸까?"

"들키지 않으면 수십 년은 버틸 수 있습니다. 아울러 훌륭한 교사들이 따라 붙었으니 진씨 가문의 후대를 적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호위대는?"

"충심 가득한 이들로 배치를 했습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아이들로만 추렸습니다."

"잘 했군."

진대인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아이들이란 것이 어려서부터 세뇌를 받아서 진씨 가문의 혈통에게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수련 능력자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몬스터가 등장하면서 수련 능력의 효율이 높아지고 또 실제로 능력의 효과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진씨 가문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 고대 무공을 수집하고 복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진씨 가문의 숨겨진 힘이었다.

그 중에서도 근골이 좋은 아이들만 골라서 어려서부터 따로 관리하고 세뇌시키면서 수련을 시킨 아이들을 진씨 가문의 후예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보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진대인은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까 고민하며 다가올 몬스터를 기다렸다.

그의 책상 위에는 상하이 곳곳에 묻어 둔 핵폭탄의 기폭 장치가 불길한 붉은 빛을 뿌리며 놓여 있었다. 세진과 자넷은 곧바로 진대인의 저택으로 날아갔다.

중간에 상하이의 많은 주민들이 그런 세진과 자넷의 모습을 봤지만 도시 곳곳에서 출몰한 몬스터들 때문에 세진과 자넷에게 신경을 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진대인의 저택은 현대식 건물과 전통 양식의 건물이 합쳐진 형태였다.

외곽은 현대식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 중국의 장원을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진은 현대식 건물들이 있는 부분은 그대로 파르티크를 이용한 비행 도구를 탄 상태로 지나졌다.

아래에서 간혹 세진과 자넷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런 자들은 세진을 향해서 에테르나 기를 끌어 올리기 무섭게 디버프에 걸려서 쓰러졌다.

특히 수련 능력자들의 경우에는 디버프에 더 큰 영향을 받았는데, 수련 능력자들의 기운이 에테르와 충돌을 일으키고 폭발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진이 굳이 디버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수련 능력자의 몸 안에서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활동을 시작하면 곧바로 몸 곳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서 몸이 비틀리며 쓰 러지는 것이다.

그렇게 진가장의 외곽을 통과한 세진은 현판까지 달려있는 진가장 앞에서 땅으로 나려왔다.

"여기서 부터는 걸어가야겠네?"

"어쩌려고?"

자넷이 물었다.

"어쩌긴 이렇게 하는 거지."

세진은 싱긋 웃으면서 진가장의 현판이 달려 있는 커다란 정분을 향해 손짓을 했다.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선 세진 앞에서 나무와 돌로 만든 벽이나 건물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순식간에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조각조각 갈라져서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르르.  그다지 큰 소음도 없이 상하이의 지배자이며 모든 화교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진씨 가문의 상징이 무너졌다.

그리고 곧이어 장원 안쪽에서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나왔다.

"오?! 제법인데?"

"응, 그러게 그랜드 마스터는 없는데 마스터급 실력자의 수가 꽤나 많아. 이 정도면 녹두 병사 한 두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데?"

"그거 농담이지?"

세진이 자넷의 말에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7등급 몬스터, 혹은 보라색 몬스터는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면 상대할 방법이 없는 존재였다.

그것은 마스터의 상징인 강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7등급 몬스터의 방어를 뚫기 어렵기 때문이야. 물론 마스터급 실력자들이 오랜 시간동안 지구전을 펼쳐서 보라색 등급 몬스터의 생체 에테르를 전부 소비시킨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걸 기다려줄  몬스터는 없다.

그러니 자넷이 말한 녹두병사 사냥 운운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농담 아닌데? 저기 안 보여?"

자넷이 손가락질로 뭔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세진은 그걸 확인하고 살짝 인상을 썼다.

"저게 그건가 합성 인간?"

"응, 그런 것 같아. 어리가 보여 준 적이 있는데 저거 몸 안의 기운을 에테르와 충돌시켜서 그 폭발력을 사용하는 무기라고 했어. 알지? 지구 본연의 에너지는 에테르와 충돌하는 거 말이야. 그런데 그 두 가지가 충돌할 때에 나오는 에너지가 1+1이 아니란 거지. 그걸 이용한 것이 거 기계야. 저거면 보라색 등급 몬스터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을 걸?"

"그런가? 그나저나 성질 급한 놈들이네. 뭘 저렇게 쏘고 난리야?"

자넷이 설명을 하는 동안에 진가장 안쪽에서 나온 능력자들이 팔에 합성한 기계를  이용해서 엄청난 공격을 두 사람에게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세진이 만들어 놓은 방어막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그것도 굉음조차 나지 않았다. 충돌이 아니라 그냥 흐지부지 흩어진 것이다.

그것이 몇 번 이어지자 진가장의 호위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알고는 공격을 멈췄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고 세진과 자넷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진가장의 넓은 마당에는 쓰러져 구르는 능력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은 여유롭게 진가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졌다. 어리의 테멜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왔는가?"

진대인은 한 손에 핵폭탄의 기폭 장치를 들고 세진고 자넷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그곳까지 오면서 처리한 진가장의 수련 능력자들의 수는 물경 천이 넘었고, 그 중에는 마스터 상급에 이를 정도의 능력자도 있었다.

"진광모 맞나?"

"허허허. 광모. 광모라, 그 이름을 들어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군. 내가 진가장의 장주가 된 후로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새끼들이 꼭 외모를 보고 반말을 해요. 이래서 내가 대외용으로 늙은 외모를 하나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한다니까?"

"호호호. 그런 거에 신경 쓸 때는 지나지 않았어?"

세진의 투덜거림에 자넷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상하이를 폐허로 만들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군. 너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속에서 살아야 할지는 생각지 않는가?"

"지랄을 하세요. 그래서 니들은 니들 배를 불리자고 다른 사람들 허리를 졸랐냐? 아 니 목도 졸랐지. 꽤나 죽었을 걸?"

세진은 진광모라는 늙은이의 말을 곧바로 욕으로 받아쳤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거잖아. 세상이 그래. 세진."

자넷이 곁에서 추임새를 넣엇다.

"근데 늙은이 지금 들고 있는 그거 말이야. 그거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세진이 진대인에게 물었다. 그와 진대인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툴틱의 힘이었다. 이미 지구상의 거의 모든 언어지 정리되어 들어 있는 툴틱은 세진과 진대인 사이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서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나는 어차피 죽게 될 터. 그러나 혼자 죽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오호라. 그래서 상해 주민들 전부를 함께 데리고 가시려고?"

"하하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너희를 함께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랫것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핵폭발이 일어나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

"뭐 그거야 그렇겠지. 전혀 타격이 없다곤 못해도, 그 정도로 죽을 우리는 아니지."

"귀찮은데 그래도. 그런 거 터지면 힘써서 막아야 한다고."

자넷은 진대인이 들으란 듯이 투정을 부렸다.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너희 때문에 상하이 전체가 죽는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하하."

진대인은 그 말과 동시에 핵폭발의 기폭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어? 정말 눌렀네? 상하이에 있는 사람의 수가 천만이 넘을 텐데? 그 모두를 죽이겠다고?"

"노력해 보아라. 얼마나 구할 수 있을지. 앞으로 20분의 시간을 주마."

진대인은 자신의 전용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상하이에선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상하이의 한쪽 구석에서부터 신기루가 사라지듯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어리가 몬스터를 이용해서 안테르를 박살낸 이후에 곧바로 상하이를 테멜 안으로 수납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건물은 물론이고 도로나 도시 기간 시설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어리의 테멜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어리는 도시의 유지들과 부자들이 살고 있는 쪽으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저, 저건?"

진대인은 분할된 여러 화면들에서 도시가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기겁을 했다.

그리고 진씨 가문을 상징하는 거대 빌딩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반쯤 일어났던 몸을 다시 의자에 내던졌다.

"무섭군. 무서워."

진대인은 벗이란 단체의 능력을 잘못 가늠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커다랗게 떠졌다.

"어? 아니 저게 어떻게 된 거냐? 아니 왜 저 아이들이 저기 있는 것이야? 안 돼! 안 돼! 막아야 해! 막아야!"

진대인은 깜짝 놀라서 책상의 여러 장치들을 조작하려 했지만 그 순간 진가장은 물론이고 상하이의 모든 전자제품들이 작동을 멈추며 작은 스파크와 함께 끝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진대인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화면들이 사라진 후에도 책상의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서 튀어 오르는 스파크 따위는 무시하고 정신이 나간 듯이 뭔가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전자 제품들은 먹통이 된 상태였다.

어리가 안테르 장치를 박살낸 여파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안테르가 박살나고 상하이 시내로 에테르가 밀려들면서 전자제품들이 모두 고철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재미있네. 다음 도시에선 그냥 안테르부터 박살을 내야겠어. 그렇게 하면 일이 훨씬 쉬울 것 같아."

"정말 그렇겠다. 순식간에 먹통이 되네. 도시 전체가."

간혹 일어나는 스파크 이외에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세진과 자넷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사, 살려주게. 아이들, 아이들만이라도 살려 줘!"

진대인이 의자에서 일어나 달려나오며 세진의 발치에 엎드렸다.

"시간이 있으니 알아서 구해 봐. 그건 당신이 해야 할 일이지. 내 일이 아니야."

세진은 상하이 중앙에 진가장의 후손들을 옮겨 놓은 것이다.

그들은 지상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안전할 수 있는 지하 대피소에 있었지만 세진이나 어리의 탐지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진대인은 커다란 빌딩이 사라진 황량한 벌판에 갑자기 진가장의 미래라고 믿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나타난 것을 보며 절망에 빠진 것이다. 거기엔 함께 보낸 교사와 호위를 위한 능력자들도 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다. 금방 화면이 꺼지긴 했지만 진대인은 그 모든 것을 확실히 봤던 것이다.

"제발, 제발!"

진대인이 엎드려 통곡을 했지만 세진과 자넷은 냉정하게 등을 돌라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대인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엎드려 울다가 권총을 꺼내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후손들과 함께 죽기 보다는 스스로를 징벌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진대인은 안테르가 파괴되면서 핵폭탄의 기폭 장치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진씨의 일족들이 황량한 상하이 시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진가장을 찾았을 때, 그들을 반긴 것은 죽은 진대인과 무너진 진가장의 건물들 뿐이었다. 그들이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에테르 코어는 물론이고 진가장의 미래를 계획할 기반이 될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진가상의 후예들 곁에 있던 이들이 어리에 의해서 하나씩 사라지면서 진가장의 후예들은 버려진 상하이 시에서도 극빈이 되어 사는 운명이 되고 말았지만 그것은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