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이트 에테르 코어의 진화 -- >
벤진 회장은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아메리카로 향하는 그의 선조들을 봤으며, 그 선조의 선조들을 봤다.
일찍이 권력이 황금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선조들은 하지만 황금이 많다는 것이 또한 권력자들의 욕심을 부추기는 것도 경험으로 알았다.
때문에 벤진 회장의 선조들은 황금을 모으고 쓸 때에 직접 나서지 않고 허수아비들을 내세워서 일을 진행하기를 좋아했다.
세월이 흘러 대를 거듭할수록 벤진 회장의 가문의 황금은 늘어났고, 그 황금으로 부리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선조들은 신대륙이 발견되었을 때, 큰 모험을 했다. 그 때까지도 귀족들의 권력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선조들은 그 권력이 어쩌면 자신들의 황금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귀족들의 눈을 피해서 신대륙에 그들의 황금을 옮기고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게 가진 것의 절반을 가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선조들 덕분에 지금의 벤진 회장이 있을 수 있었다.
신대륙으로 옮겨 온 벤진 회장의 가문은 여전히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허수아비를 세우고 그 뒤에서 황금을 쓰기를 좋아했다.
신대륙에서 돈을 벌 기회는 많았고, 그들은 그 모든 기회를 제대로 잡고 살렸다. 골드, 오일, 컴퍼니, 무기, 주식 등등. 그들은 점차 돈으로 미국을 사기 시작했고, 미국을 움직인다는 것은 곧 세계를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일군 왕국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벤진 회장은 무너지는 자신의 왕국을 펜타하우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상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LA는 이전과 같은 화려함이 없었다.
여전히 벤진 회장이 다스리는 땅이지만, 도시 밖으로는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모든 것을 도시 내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벤진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에테르 코어를 방출해서 도시에서 에테르 코어 부족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가문이 보유한 에테르 코어라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현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를 해결했다고 일이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도시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지금까지 그의 왕국은 다른 식민지역으로부터 그것들을 충당했었다. 그런데 그 길이 완전하게 막혀버린 상황에서 도시의 주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벤진 회장은 지금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지금까지 LA의 주민들이 얼마나 사치스런 생활을 해 왔으며 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숨기지 않고 공개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그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전체로 퍼지고 있는 중인데, 그 혼자서 아니라고 버텨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밝혔다. 다만 꼭꼭 숨겨 놓아야 할 비밀들 몇 가지만 밝히지 않았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았지만 밝히지도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마 벤진 회장에게 LA를 10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에테르 코어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 정도의 축재를 인정할 정도로 주민들이 마음이 넓은 것은 아닐 터다. 그 모든 것이 어쨌거나 개인의 재산이고 그것을 이룩하는데 좋지 못한 방법들이 많이 사용된 것도 사실이니 시시콜콜 그것까지 밝힐 이유는 없었다. 지금도 주민들은 벤진 회장이 그의 사재를 털어서 LA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벤진 회장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겪어야 했을 터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될까? 프랜드를 넘어설 방법은 없는 것일까?"
벤진 회장은 발 아래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모래성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힘들어?]그 때, 벤진 회장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엇? 누구냐?!"
벤진 회장은 자신의 침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의 왕국에서도 가장 철저한 보호를 받는 곳이 그의 침실 겸, 집무실이었다. 이곳은 그와 그의 비서실장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벤진 회장이 밖에 있는 회의살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처음 듣는 목소리라니.
[힘들어? 도와줄까?]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벤진 회장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했다.
"꿈인가? 그런데 너는 누구지?"
[맞아. 꿈이야. 하지만 너는 이게 꿈이란 것을 알잖아. 그럼 이건 꿈이 아니게 되는 거야.]
"누구냐?!"
벤진 회장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아, 그래. 보이지 않는 것은 두려움을 주지? 나를 보고 싶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목소리가 들리고 그 말 뜻을 벤진 회장이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벤진 회장의 앞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소파 위에 여유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여자가 벤진 회장을 쳐다보았다.
[이러면 좋아? 벤진?]
"다시 묻지, 누구냐?"
여자의 모습이어서 그랬을까? 벤진 회장은 경계심을 약간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나는 뱀? 릴리스? 헤라? 야누스? 시바? 사탄? 어떤 것이 좋을까? 아, 이건 너무 너희 인간들이 싫어하는 쪽인가? 그럼 나머지 반대쪽도 생각을 해 봐. 난 무엇이나 될 수 있으니까.]
"너는 누구냐?"
벤진 회장은 계속해서 같은 것을 묻고 있었다. 그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다지만 벤진 회장은 눈앞에 있는 존재를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까다롭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지금까지 알려줬잖아. 나는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는 존재라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인간들의 곁에 있었던 존재야. 너희가 생각하는 신화와 전설 속의 많은 것들이 내 모습이었지.]벤진 회장은 여자의 말에서 드디어 여자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들의 겉모습은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존재들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여자의 말이 진실이라면 여자는 그 모든 몬스터들의 본체라는 소리였다.
"몬스터?"
[너희가 그렇게 부르지. 하지만 모두가 내 자식들이야. 나로부터 비롯한 나의 자식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았지?"
벤진 회장은 이 이상한 꿈이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나는 너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물론 너 뿐만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 많은 이들이 나의 방문을 받고 있지. 그러니까 너도 선택을 잘 해야 할 거야.]
"거래?][너에게 힘을 주겠어. 네 도시를 포위한 것들을 치울 수 있는 힘을 주지. 너는 큰 힘을 가지고 되는 거야.]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만 우리가 너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거야. 내 자식들이 너희와 함께 어울릴 거야. 그 아이들을 네가 보호해주면 좋겠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지금 내게 몬스터들을 보호하란 거냐? 그게 무슨?!"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아. 외모는 너희 인간과 같지. 하지만 그 아이들은 미숙하기 짝이 없지. 내 지식을 그대로 물려 받고 나와 같은 지적 능력을 가지게 하면 좋겠지만 그래선 내 인형일 뿐이지. 진정한 자식이 아니야. 그래서 너를 비롯한 인간들에게 부탁을 하는 거야. 내 자식들의 양육을.]
"인간들 사이에서 네 자식들을 키우라고? 그것들이 자라서 인간을 헤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너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너에게 준다는 힘이면 그것만으로도 네 도시는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이야.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그게 어려울 것 같아? 나는 지금 네 도시를 포위한 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겠다고 네게 말했어. 대신에 내 아이들을 너의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 달라고 했고.]
"그럼 그 아이들이란 것들이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건가?"
[내 아이들은 이제 인간을 해치지 않을 거야. 적어도 인간의 형상을 한 아이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지. 나는 이번 거래를 끝으로 당분간 세상에 관여하지 않을 거니까.]
"진정 원하는 것이 뭐지?"
[거래. 너는 힘을 얻고, 나는 내 아이들의 살 길을 찾는 거지. 네가 나와의 약속을 지 키는 동안에는 내가 너에게 준 힘은 오직 너와 네가 지정한 이의 명령을 충실하게 실행할 것이다. 그 힘이라면 도시의 포위도 뚫을 수 있겠지.]벤진 회장은 여자의 말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어? 변신을 하는 것이에요?
어리가 줄어드는 왕벚꽃나무 몬스터를 보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변신'이라고.
[잠깐 멈춰요. 이야기를 해요.]세진과 자넷은 물론이고 깝딴들과 괴수군단에게까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공격이 중지되었다.
- 아아, 제 아이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에요. 아주 잠깐이지만 현혹을 당하는 것이 에요. 어리가 깜짝 놀라서 괴수 군단의 통제를 강화하며 말했다.
그리고 의체 깝딴들도 잠시 정신을 빼앗겼던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적은 왕벚꽃나무가 아니라 벚꽃을 닮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변신을 마친 후, 왕벚꽃나무는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을 해 있었던 것이다. 세진은 그 여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벗꽃이 떠오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만해요. 항복하겠어요. 잠시 이야기를 해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에요. 그 후에 이 아이에 대한 처분은 당신들에게 맡기겠어요.]여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진은 잠시 대기 명령을 내려야 했다.
지금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공격하던 대상이 아니라 그보다 상위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왕벚꽃나무 몬스터를 아이라고 부르는 존재라니, 세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요. 말이 통해서 다행이에요. 끝까지 공격을 했으면 곤란했을 거예요.]세진은 그 곤란이 어느 쪽의 곤란이었을지 짐작해 보지만 아무래도 자신들 쪽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무게가 더 실렸다.
"행성 코어인가?"
세진이 물었다.
[그렇게 부르나요? 아, 이 행성의 모든 코어들의 어머니, 그게 저예요.]
"그걸 행성 코어라고 하지.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원천."
[아, 에테르 기반 생명체. 맞아요. 몬스터라고 부르지 말고 그렇게 불러 주면 좋을 텐데요. 몬스터는 너무 심했어요.]
"농담인가?"
[재미 없었나요?]
"재미 보다는 두렵군. 너와 같은 존재가 그처럼 유연한 사고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 수 있을지 말이야. 그래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는 뭐지?"
[음, 굉장히 직설적이네요. 좋아요. 그건 상관없어요. 나는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당신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거든요.]
"그 동안은 나를 보지 못했다는 소리군."
[눈치도 빠르군요. 그래요. 맞아요. 그런데 직접 보니까 확실히 놀랍군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해요. 거기다가 저들의 능력도 무섭군요.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리의 천적이라고 해야 하나요?]우우웅.
여자가 깝딴 의체들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으읏! 차아압!"
세진이 그 기세에 다행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여자와 세진 사이에 어마어 마한 기운의 충돌이 생겼다. 파파파파파팟. 쿠구구구국.
이면 공간의 대지가 흔들렸다.
[아, 역시 이 아이의 힘으로는 부족하네요. 거기다가 이미 당한 것이 있어서 제 힘을 다 쓰지도 못하겠고 말이죠. 아무튼 대단해요.]여자는 폭주했던 기운을 다시 갈무리 했다.
세진은 방금 전에 있었던 충돌이 여자의 본래 힘이 아니라 왕벚꽃나무 몬스터의 힘을 여자가 끌어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진이 전력을 다해서야 겨우 맞수를 이룰 정도였다.
"할 말은 다 끝났나?"
[원래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당신과는 거래를 할 것도 아니었고. 다만 여기 이 아이는 당신에게 맡기죠. 잘 거두어 주면 좋겠군요.]
"무슨 말이지?"
[승자의 권리를 누리란 소리예요. 이 아이는 당신에게 졌으니까 이 아이의 처분을 맡긴다는 거죠. 아, 그리고 앞으로 참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럼 때가 되면 다시 볼 수 있기를...]
"이봐! 행성 코어! 젠장!"
세진은 제 할 말을 마치고 마치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벚꽃 여자의 모습에 허탈함을 느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