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격에 나서다 -- >
지구의 인류는 세진의 몬스터 척결에 동의하는 이들과 몬스터와의 평화 협정에 찬성하는 이들로 크게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세진은 몬스터들이 그 생체 자체의 기반이 지구상의 어떤 것들과도 동일하지 않으며, 때문에 점차 그것들을 구성하는 에테르의 농도가 짙어지다가는 결국 지구상에 모든 생명체는 박테리아까지 멸종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행성들이 우주 곳곳에 널려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사람들은 처음에 그 주장에 대해서 무슨 UFO신봉자를 보듯이 미친 소리라고 여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진 쪽의 이야기가 허황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 외에 다른 행성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미지의 것에 대해선 부정하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진이 다른 행성에서 데리고 온 이들을 내보임으로서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 외계인이 실제론 세진이 억지로 만들어낸 의체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어쨌거나 몬스터의 위험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프락칸과 깝딴, 전투병단의 의체들이 봉사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응을 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몬스터와의 평화 협정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LA와 델리의 시민들이 그 주축이고, 벤진과 카미에가 그들을 대표하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협정을 맺은 이후로 몬스터들은 일정 영역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몬스터의 한 갈래인 폴리몬들은 인간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정도면 이전처럼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길 원했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몬스터를 박멸해야 한다는 숫자보다 훨씬 많기도 했다.
그런 중에 폴리몬들과 한자리에서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는 소식은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마치 지구 전체의 축제라도 되는 듯이 흥성흥성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축제에 대한 소식들이 어리넷을 타고 흘러 다닌다는 것이다.
어리넷이 실제로 세진의 손에 있는 것임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리넷을 통해서 모든 정보를 주고받고 또 이야기를 하고 음모를 꾸민다.
어리넷에서 비밀의 방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정보를 교환하면 그것이 정말로 비밀이 지켜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모든 내용은 어리넷의 주인인 어리나 세진, 그리고 어리넷의 관리 자들이 손쉽게 열어볼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는 것이다.
세진이 몬스터를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없는데, 어리넷에서 폴리몬들의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이야기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실제로 벤진 회장은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하기도 했다.
"인규의 축제에 그들이 설마 테러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하기야 하겠습니까?"
벤진 회장의 이 말은 세진에게 은근히 부담을 주는 말이 되었다.
이번 이벤트에서 폴리몬들을 공격하면 프랜드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고, 또 인류 전체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벤진 회장의 저런 발언을 어리넷에서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큰 고기를 낚기 위해서 저런 소소한 것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는대, 세진은 그것이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미안해, 세진. 이렇게 공개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면 도리어 폴리몬들을 처리하는 일이 더 쉬웠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자넷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넷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생각을 해 보니까, 우리가 사람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우린 우리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폴리몬들을 처리할 생각인 모양이네?"
자넷이 물었다.
"이번에 모이는 폴리몬들의 숫자가 20만에 가까워. 생각을 해 봐. 그것들이 전무 7등급 에테르 코어와 7등급 몬스터 사체에 해당하는 에테르를 품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에테르를 가지고 있는지 상상이 되지?"
"그야 그렇지. 그 정도면 지구 전체에 퍼져 있는 에테르를 생각해도 적지 않은 양일 거야."
자넷도 세진의 말에 동의 했다.
7등급 몬스터 즉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는 한 행성에서도 그 총 숫자가 백만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행성의 크기라거나 에테르 기반 몬스터의 번성 정도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온전히 한 개의 행성을 점령하고 있는 곳이라도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는 다 모아도 백만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겨우 3,4 등급의 몬스터가 보라색 등급, 그것도 코어를 지니고 있는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 수준의 에테르를 지니고 있는 상황이다.
잘 차려진 잔칫상이 있는데 그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세진은 욕을 먹거나 말거나 폴리몬 수거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큰 도시에는 어딜 가나 종합 경기장이나 거대 광장 같은 곳이 있었다.
LA 북쪽에는 유서 깊은 경기장이 있었다. 지금은 언제 부활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스포츠 게임이며,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경기를 구경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져 리그의 명문 팀의 하나인 다저스 스테디움이 바로 그곳이었다.
벤진 회장은 폴리몬과 인간의 화합의 장으로 바로 그곳을 선택했고, 오랜만에 다저스 스테디움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물론 실제로 그곳은 오래전부터 땅을 갈아엎어서 농사를 짓고 있었던 곳이다.
다만 그 오랜 시간동안 야구장이 살아 남은 것은 그것을 보며 언젠가는 다시 아이들과 함께 야구장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희망 때문이었다.
그것마저 무너뜨리고 거기에 농사를 짓는 것은 벤진 회장을 비롯한 LA 지도층도 망설이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주변 땅까지 모두 갈아 엎었지만 야구장은 매년 조금씩이라도 보수를 해 가면서 유지해 오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벤진 회장이 그 야구장에 대한 지분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
"커험. 이렇게 보니 인간과 폴리몬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군."
벤진 회장은 경기장의 VIP룸의 강화 유리 밖으로 인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별할 이유가 있나?"
그런 벤진 회장 곁에 건장한 흑인 하나가 마주 앉아 있다가 회장에게 되물었다.
"난, 사실 인간과 폴리몬을 구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아. 자네가 흑인이고 내가 백인인 것을 구별하고, 또 자네가 폴리몬이고 내가 인간인 것을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아니 같은 조건의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구별은 하기 마련이야. 나이로 나누거나 친분 관계로 나누거나 어떻게든 말이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는데?"
"하하하. 아니야. 폴리몬도 구별을 해. 폴리몬들은 자신들을 묶어서 하나의 종족으로 생각하고 또 동족으로 여기지. 거기에 인간을 같은 종족이나 동족으로 여기진 않지 않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군. 우리도 인간과 우리 동족은 확실히 구별을 하긴 하는군. 내가 말을 실수했 다."
흑인 사내는 벤진에게 사과를 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괜찮아. 사실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이지 않겠나? 인간도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 폴리몬들도 완벽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스스로 완벽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랬다면 우리가 인간들에게 뭔가를 배워야 할 일은 없었겠지."
"그런가? 그래도 그렇게 쉽게 인정을 하니 도리어 대단하게 느껴지는군. 스스로 모자란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야."
벤진 회장은 그렇게 말을 하며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거기에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관중석뿐만이 아니라 경기장의 그라운드까지 사람들에게 개방을 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라운드에는 폴리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관중석에는 인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벤진 회장은 일부러 그렇게 자리를 배치했다.
모두를 섞어 놓는 것은 이제 화합의 장이 시작되면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의 통로를 개방해서 서로 오고가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유도할 사람들도 이미 깔아 둔 상태였다.
"많구만. 예상보다 더 많아."
"뭐가 말이지? 우리 동족들 이야긴가?"
"그래. 그라운드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자리고 모자란 것 같지 않은가?"
"5만이라고 했으니까 당연하지 않을까?"
"5만?"
"오늘 모이기로 한 동족의 수가 그 정도 되지. 이곳 LA에 머물고 있는 동족들은 거의 빠짐없이 모이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확실히 그라운드 전체에 들어오긴 어려울 것 같군."
"괜찮아. 이미 경기장 밖에서 따로 모이고 있는 동족들도 있어. 우리는 벤진 회장의 이번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지. 경기장 밖에서도 이곳과 비슷한 행사들이 벌어지게 될 거야."
"오호? 그건 자네가 준비를 한 건가?"
"내가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준비했지. 마음에 드나?"
"하하하. 물론이지. 마음에 드네. 아주 마음에 들어. 역시 존슨 자네는 대단해. 암 대단하구말구."
벤진 회장은 언제부턴가 자신과 폴리몬 사이의 중계자 역할을 하고 있는 존슨을 보며 감탄했다.
말을 떠듬떠듬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던 수백의 폴리몬 중에서 유독 빠르고 또 독특하게 성장을 한 것이 저 존슨이었다.
벤진 회장은 그의 성장이 기꺼워서 최대한 편의를 봐 주면 그가 원하는 것을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지금 존슨은 벤진 회장의 곁에서 그와 대등한 관계로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요즘 깨닫게 된 것이지만 LA는 벤진 회장의 손에서 조금씩 떠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도시에 갇혀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는 새로운 개척 시대를 열고 있었다.
좀 더 풍족한 땅을 찾아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때에 오늘과 같은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서 자신을 과시하고 포장하는 일은 중요했다.
물론 이 도시의 거의 모든 생산 시설을 벤진 자신이 소유하고 있으니 무엇이 되었건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벤진 회장에게 엎드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폴리몬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준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테멜의 입구는 에테르의 소용돌이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는 무척 예민해서 그보다 강한 에테르로 충격을 주게 되면 깨지게 된다.
물론 테멜로 들어가는 것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어서 테멜의 입구가 생기는 순간 거기에 접촉하는 대상은 미리 끌어 올린 에테르가 없었다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테멜로 끌려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보통 몬스터들도 등급이 낮은 경우에는 어렵지 않게 테멜 안으로 납치할 수 있다.
테멜로 끌려 들어온 후에 반항을 해 봐야 별로 의미가 없다.
지역 코어 등급의 왕선녀도 어리가 관리하는 테멜 안에 갇혀서 탈출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등급의 몬스터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혈기 왕성하던 쫑도 결국에는 포기하고 어리에게 낱낱이 해부되어서 쫑 군단의 모태가 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폴리몬들은 납치하기 딱 좋은 대상들이다.
그들은 평소에 에테르를 깊이 갈무리하고 다니기 때문에 테멜 입구에 저항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자, 그럼 시작을 해 볼까?"
"준비가 된 것이에요. 이제 사냥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폴리몬들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는 어리넷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에요. 작전이 끝날 때까지 어리넷에선 여전히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한 뉴스만 올라가는 것이에요."
"저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납치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거야? 난 불안한데?"
자넷이 걱정을 한다.
"저렇게 큰 테멜 입구는 어리도 쉽지 않은 것이에요. 하지만 작은 것을 여럿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이에요. 물론 한꺼번에 몇 만 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일단 연속으로 파파바박,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3초가 지나기 전에 저기 그라운드에 있는 폴리몬들은 모두 테멜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기대해도 좋은 것이에요."
어리는 자넷의 걱정을 일축했다.
이미 몇 번의 실험까지 해 본 일이었다.
저 정도 숫자의 폴리몬이라도 무리없이 모두 납치를 할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럼 시작하자."
"그러는 것이에요. 자, 폴리몬 여러분 어리가 초대를 하는 것이에요. 모두 제게 오시는 것이에요."
세진과 자넷, 어리는 어리 테멜의 홀 안에서 폴리몬 납치의 시작을 선언했다.
그 순간 벤진 회장이 바라보던 다저스 스테디움의 그라운드에서 폴리몬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몇 번 눈을 껌뻑이는 사이에 모든 폴리몬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봐 존슨? 존슨?"
회장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존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