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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268화 (268/298)

< -- 남의 칼을 빌려서 적을 치는 수법 -- >

세진은 죽은 벤진 회장과 쓰러져 있는 폴리몬 셋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을 했다.

폴리몬 셋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하는 것이다.

"아직도 너희는 인간을 적대하지 않나?"

세진이 물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지."

"그리고 인간들에게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라고 했고? 그 외에는 없나? 내가 묻는 것은 처음 내려진 명령 이후에 새로 내려온 명령이 없느냔 거다."

"없다. 어머니께서 이번에 벤진을 비롯한 우호적인 인간들에게 너희들에 대해서 못마땅하다는 뜻을 전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우리는 따로 어머니를 뵙지 않는 이상은 어머니의 뜻을 전해들을 수가 없다."

"애초에 그런 통로가 없다는 거냐? 다른 몬스터들은 행성 코어나 다른 코어들과 수시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어리넷을 이용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을 것이다."

세진은 폴리몬의 그 말을 듣자 정말로 폴리몬에겐 동족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폴리몬들을 테멜로 격리한다면 그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럼 묻겠다. 살고 싶은가?"

세진은 폴리몬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물론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가 죽음을 거부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죽을 곳을 찾아가는 인간도 때론 존재한다. 그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거나 가치가 없는 일이거나 상관없이."

세진의 시선이 죽은 벤진 회장에게 닿았다.

"저렇게 의미 없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죽음 곳을 스스로 찾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너희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하니 살아갈 기회를 주겠다. 다만 당부하건데 쓸데없는 일을 꾸미지 않기를 바란다."

세진은 정신 연결을 통해서 어리에게 폴리몬 셋을 테멜로 들여보내서 따로 관리하라고 전했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세진의 눈앞에 있던 폴리몬 셋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미 충격을 받아 쓰러진 상태여서 테멜의 입구에 저항하거나 할 힘도 없는 상태였다.

"아, 죽었네."

그 때, 자넷이 깨진 창문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오다가 벤진 회장을 발견하곤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와 괴수들이 싸우는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야. 올라와보니 저 꼴이더군."

"그래? 아쉽네. 행성 코어에 대해서 물어볼 것들이 좀 있었는데, 안 그래?"

"맞아. 자넷. 그러니까 이번에 델리에 가서는 조심해서 카미에부터 잡아 놓고 보자고. 뭐 물어본다고 특별히 알고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 우두머린데."

세진과 자넷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돌려 창문 너머의 LA시내를 바라봤다.

아직도 벤진 회장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녹두병사들이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왜 저렇게 죽어라고 덤비는 걸까?"

세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싸울 용기나 능력이 있으면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나 때려잡지. 뭐 한다고 우리에게 칼을 겨누나?"

세진은 심기가 무척 상했다.

"그러게, 아무튼 저렇게 잡아서 어디다 쓸까 걱정이네. 그냥 확 여기저기 막 그냥 해 버려야 하는데 말이야."

자넷이 분위기를 바꿔본다고 서늘한 개그로 세진의 표정을 풀기 위해 가상한 노력을 한다.

세진도 자넷의 마음을 알고는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러면서 어리에게 대충 정리하고 델리로 가자는 뜻을 전했다.

얼마 후, 어리의 녹두병사와 괴수 군단이 모두 철수하고 난 이후에 LA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죽은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었지만 많은 시설들이 부서지고 특히 도시를 이끌던 주요 인물들의 모습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어리는 반항하는 능력자들 이외에도 미리 준비한 명단에 따라서 프랜드에 적대적이고 몬스터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모두 납치해서 테멜 안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세진은 닷새 동안 몬스터들에게 우호적인 도시들을 공격해서 중 심이 되는 인물들을 테멜로 납치했다.

"어쩌려고 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잡아와서?"

"별 것 없어. 우리가 알고 있는 필드가 라훌 행성이 그나마 살만 하지?"

"필드 행성도 아니게 되긴 했지만 거기 밖에 없잖아. 왜?"

"거기에다가 이번에 잡아 온 사람들을 모두 풀어 놓을까 하고. 그럼 알아서들 살겠지. 몬스터와 평화협정을 맺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면서 말이야."

"아,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일단 라훌 행성에서 몬스터들이 약한 지역에 풀어 놓을까 하는데, 그게 아니면 로페소에테도 괜찮긴 하겠다. 그런데 거길 갈 방법이 없네?"

"그건 라훌 행성도 마찬가지지. 우리가 타모얀 행성에서 이리로 온 거 잊었어. 라훌 행성까지 가려면 정말 오래 걸린다고."

"그럼 어쩌나? 어디가 적당할까? 타몬얀은 몬스터 세력이 좀 약하잖아."

"그냥 클리르 행성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흐음. 그건 또 걱정인데? 될 수 있으면 다른 행성들과는 소통이 없었으면 하거든. 지구인들 입에서 의지를 가진 행성 코어에 대한 정보가 퍼지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으니까 말이야."

"아, 자기하고 나하고 둘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질 수도 있겠네? 그건 좀 그렇다."

"생각을 달리 해 봐야 할 것 같다."

"차라리 모랜에서 살게 해. 모랜이 꼭 필드 행성 분위기잖아. 거기다가 굳이 통제를 하지 않고 그냥 두면 거기 몬스터가 다른 행성들의 몬스터와 행동 패턴이 꼭 같으니까 그래도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하자. 모랜에다가 적당하게 도시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을 정착시키고 알아서 살라고 하는 거지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물물 교환으로 에테르 코어를 받고 거래를 해 주는 방향으로 하면 되겠네."

"응. 그렇게 해. 그리고 나중에 봐서 적당한 행성에 방생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구 문제가 해결된 후에 풀어 주면 될 테니까."

자넷은 세진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괜히 게이트를 넘어서 다시 연합이나 연방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당분간은 그 쪽으론 가고 싶지 않은 자넷이었다.

왠지 세바스에게 잡히면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나저나 카미에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어. 무슨 시바신이야 시바신은."

세진이 혀를 찼다. 브라만 카미에는 행성 코어를 인도의 대표 신들 중에 하나인 시바신의 현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은 아니고, 그저 제 스스로를 시바신의 충실한 신도로서 신을 올곧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광신도였다.

물론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행성 코어가 그렇게 유도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았다.

나타날 때부터 시바신의 모습을 차용해서 나타났다고 하니, 행성 코어도 제법 머리 를 썼다고 해야할 일이다.

"그러게. 근데 정말로 그 사람들은 지원을 안 해 줄 생각이야?"

자넷이 물었다.

이번에 납치해 온 친몬스터 경향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몬스터 랜드, 즉 모랜 테멜에 수용이 되었고, 최소한의 주거지와 생필품 이외에는 아무것도 제공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몬스터를 사냥해서 에테르 코어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알아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 중에는 각성 능력자나 수련 능력자들이 제법 있지만 일반인들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 사이에서 또 다시 편가르기와 계층 구분이 생겨나고 있지만 세진은 그들에겐 더 이상 베풀어줄 호의가 없었다.

"기회가 생기면 어디 필드 행성에 던져 놓을 거야. 그 때까지 살아남으면."

세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세진이 생각하기에 그들은 우매한 군중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이들, 즉 사회 지도층이었다. 그런 이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진은 이번에 도시들을 공격하면서 친몬스터계파의 주동자들을 쓸어 담다시피 해서 끌고 온 것이다.

"다시 폴리몬들 납치를 시작했다면서?"

자넷이 화제를 돌렸다.

"응.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 폴리몬들이 다른 동족이나 상위 코어와 원거리 정보 전달을 하지 못한다는 거 말이야. 적어도 지금 상태에선 그런 것 같아."

"음,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지금 상태란 건 뭐야?"

"내가 생각하기에 폴로몬들, 그냥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것 같아. 알지? 그것들 안에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에테르. 그게 마음에 걸리거든."

"하긴, 나도 그렇긴 하더라. 도대체 그 많은 에테르는 무슨 이유로 폴리몬의 몸 안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내 생각에는 그 에테르를 어딘가 쓸 곳이 있을 거란 거야. 그리고 어쩌면 그게 폴리몬들의 변화, 혹은 진화에 쓰일 것이 아닌가 싶어. 순전히 추측이긴 하지만."

"그럴까?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나중에 위험해지는 거 아냐?"

자넷이 걱정을 했다.

"괜찮아. 일단 지금도 점점 분산 수용했던 것을 하나로 모으고 있잖아. 그렇게 다 모으면 테멜 한 곳으로 몰아 넣을 거야. 그것들 따로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의식주를 신경 쓸 필요도 없잖아. 에테르만 있으면 되니까. 아, 그래도 입는 것은 좀 신경을 써 줘야 하나? 아무튼. 그러니까 소형 테멜 안에 수용을 해도 문제는 없을 거야."

"그래서 그게 뭐?"

"그러니까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소형 테멜 통째로 격리를 시켜버리는 거지. 우주  공간으로 던져 버리거나."

"응?"

"쉽게 생각해. 테멜 안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어리가 그걸 모를 수는 없잖아. 그리고 문제를 어리가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 곧바로 그 소형 테멜을 우주 공간으로 던지는 거야. 아, 태양 방향으로 보내 버리면 되겠네. 가는 중에 폴리몬들이 탈출을 해서 지구로 올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대책은 그렇게 세워 두고 있는 거야."

"흐응, 뭐 테멜을 통째로 버린다는 생각은 신선하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알잖아. 테멜이란 거. 그건 공간과 차원의 문제야.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이면 공간으로 드나드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거든. 테멜이 이면 공간보다 훨씬 독립성이 강해. 공간의 격리성이 더 높다는 거지. 어지간해선 빠져 나갈 방법이 없는 거야."

"하긴 그것도 그러네. 테멜 코어만 지킬 수 있다면 테멜이 붕괴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넷도 세진의 설명에 어느 정도 안심을 하는 눈치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폴리몬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관찰하는 것으로 하자. 나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것들이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또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변하나 봐. 그냥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 꺼려지기도 하고."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볼 것 없이 지워야지. 외모가 인간과 닮았다고 그것들이 몬스터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응. 그래."

"짜자잔. 어리가 온 것이에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났다 싶은 순간 어리가 등장했다.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헌터룸을 관리하느라 어리는 무척 바빴다.

"고생했네. 그런데 폴리모들은 어때?"

자넷이 어리를 반기며 물었다.

"폴리몬은 숨은 것이에요. 찾기 어려운 것이에요."

어리가 의자에 앉아 탁자에 엎어지며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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