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78화 (278/298)

< -- 베일을 벗겨 세상으로 끌어내다 -- >

행성 코어는 급하게 서둘지 않기로 했다.

지구의 의지와 싸우는 것은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구의 기운은 얼마가 되었건 계속해서 에테르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의지는 지구의 의지는 빼앗기기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는 언제나 행성 코어의 승리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행성 코어가 모든 기운을 에테르로 바꾸고, 지구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지구의 의지가 지닌 에테르의 정화 능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그러니 미래에 행성 코어의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확실한 승리가 언제부턴가 불확실한 혼돈이 되어 버렸다.

폴리몬들의 생성과 성장에 신경을 쓰면서 이전에 만들어졌던 모든 자식들을 포기했다.

남은 것은 행성 코어를 보좌하는 다섯 코어들이 전부였다.

그 코어들은 원래 지구 곳곳에 퍼져서 행성 코어의 자식들을 관리하고 에테르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성 코어가 폴리몬 이외의 모든 자식들과 이면 공간을 포기하면서 그것들은 행성 코어의 곁으로 모였다.

아무리 폴리몬이 귀하다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행성 코어를 돕고 있는 다섯 코어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른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 있었지만 그 다섯의 코어는 결국 행성 코어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것들은 행성 코어로부터 이미 진화의 코드를 이어 받아서 폴리몬들 보다도 훨씬  뛰어난 지성을 지닌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만 행성 코어가 그 다섯 코어보다 폴리몬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섯 코어는 온전히 행성 코어에 속해 있는 존재들이라면 폴리몬들은 자유 의지에 따른 독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순종적이고 거스름이 없는 다섯 코어 보다는 제멋대로 굴며 가끔 사고를 치는 폴리몬들에게 훨씬 관심을 쏟게 되는 행성 코어였다.

그래서 지구에서의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오로지 폴리몬의 생성과 성장에만 관심을 두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면 공간 밖에서 전혀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에테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행성 코어는 그것을 금방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이면 공간 안과 지구의 의미에만 관심을 쏟다보니 외부에 신경을 덜 쓴 탓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구의 에테르 농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 다.

지구의 에테를 농도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이면 공간 안에서 폴리몬들을 기르며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인간들이 에테르를 없앨 수 있게 되었다.]행성 코어는 생각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에테르를 지구 본래의 기운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인간들이 많았다.

그들이 특이한 에테르를 모아서 그것을 지구의 기운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을 행성 코어는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지구의 의지에게 힘이 더해질 것이다. 결국 나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행성 코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건축물들을 공격해서 파괴해야 한다.]행성 코어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당장 공격을 할 수 있는 전력이 없었다.

다섯 코어를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다.

아직은 지구의 의지와 맞서는데 다섯 코어의 도움이 필요한 때였다.

행성 코어는 어쩔 수 없이 폴리몬들 중에서 전사들을 뽑기로 결정을 내렸다.

전사를 뽑아서 능력을 높여주고 폴리몬들을 이끌고 인간들을 공격하게 해야 했다.

[아이들아 적들의 세가 강력하구나. 너희가 나를 도와야겠다.]행성 코어는 그렇게 말했고, 폴리몬들 중에서 호전적인 이들이 나서서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행성 코어는 폴리몬 군단을 조직해서 행성 코어가 있는 이면 공간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그 날 지구에서 북아메리카라고 부르는 곳은 폴리몬들에게 점령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폴리몬들은 북아메리카의 도시와 마을들에 순간이동을 하듯이 나타나서 도시의 점령을 선포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프락칸과 깝딴, 전투 병단의 의체들이 희생이 되었다.

아직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디퀴피드가 건설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진은 한반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디퀴피드의 건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폴리몬들이 나타난 것이다.

폴리몬들은 저항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살해했다. 다만 저항하지 않는 인간들은 그대로 생업에 종사하며 살 수 있도록 놓아 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 북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침입이 있다면 인간들을 모두 죽이겠다.

그것은 세진에 대한 경고였다.

그것도 수억의 인간들을 볼모로 삼은 협박.

세진은 물론이고 자넷, 어리,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폴리몬의 그러한 행태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인간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는 몬스터라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폴리몬들은 수시로 디퀴피드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순간 이동인 것이에요? 어떻게 폴리몬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에요."

폴리몬들은 대략 20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서 나타났다.

그것도 디퀴피드가 있는 바로 그곳에 나타나서 디퀴피드를 파괴했다.

물론 디퀴피드도 씨앗이 발아해서 생명을 얻은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자기 보호를 할 수 있었다.

폴리몬의 공격을 방어하는 실드를 두르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폴리몬들과는 직접 전투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어리의 녹두병사들과 괴수 군단이 출동해서 폴리몬들을 처리한다.

하지만 그 동안에 디퀴피드는 적잖은 피해를 입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폴리몬들은 디퀴피드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건물 자체의 파괴에 열을 올리기 때문에 한 번 공격을 받으면 꽤나 심각한 타격이 있다.

어리는 유능하다. 하지만 어리가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커버할 수는 없다.

어리는 한번에 지구의 25%를 담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거리가 멀리 떨어진 두 곳을 공격하게 되면 한 곳은 어리가 방어를 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한 쪽을 처리한 다음에 다른 한 쪽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양쪽으로 공격이 시작되면 세진과 자넷이 한 쪽을 맡고, 다른 쪽은 어리의 녹두병사와 괴수 군단이 맡는다.

하지만 몇 번 공격을 해 보던 폴리몬들은 곧바로 세진과 어리의 약점을 찾았다.

소수로 여러 곳을 공격하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세진은 전투 병단들을 모두 가용해서 폴리몬들을 막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그 동안 가진 힘을 쓸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인간들도 가담을 하기 시작했다.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들이 폴리몬과 세진의 공방을 지켜보다가 드디어 나선 것이다.

그들은 폴리몬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몬스터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세진이 지속적으로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과 지구 본연의 생명체의 차이를 홍보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폴리몬의 점령 하에 있는 북아메리카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폴리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폴리몬을 몬스터가 아닌 새로운 종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화합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라고 무조건 인간과 대립하며 종의 멸망을 걸고 싸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이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희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번 공격에는 인간들도 포함이 된 것이에요. 폴리몬과 인간이 함께 힘을 모아서 공격을 해 온 것이에요."

자넷과 어리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의체와 인간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잡히는 폴리몬의 숫자도 많았다.

하지만 폴리몬을 얼마나 잡았다는 것은 세진 입장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폴리몬은 행성 코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진은 폴리몬의 성장에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단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행성 코어가 찍어 내듯이 만들어 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필요한 것은 에테르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폴리몬의 죽음은 전혀 의미가 없고, 오로지 이쪽의 손실만 크게 보였다.

"대대적으로 헌터룸을 확장하고 지구 인류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자넷이 헌터룸을 늘려서 지구 인류에게 의체를 사용하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넉넉한 사냥터가 없어. 의체가 있다고 끝이 아니지. 훈련을 통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의체도 일반인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세진은 그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당장 헌터룸을 지구 인류 모두가 사용할 정도로 늘리는 것도 무리고, 그 많은 의체를 성장시키는 것도 무리였다.

"지금 폴리몬들이 난리를 치는 것이 확실히 디퀴피드 때문이겠지?"

자넷이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디퀴피드를 이용해서 에테르를 정화하기 시작하니까 급해진 거지."

"그런데도 여전히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일 거고?"

"그렇겠지. 하지만 폴리몬들의 이번 공격은 확실히 영악한 데가 있어."

"응? 무슨 소리야?"

"놈들에겐 근거지가 따로 필요 없어. 그냥 숨어서 지금처럼 순간이동으로 공격을 하면 그만이거든. 아니면 한꺼번에 몰아쳐서 디퀴피드를 파괴하는 방법을 써도 되었을 거야. 그런데 북아메리카를 점령해서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지금도 찔끔찔끔 디퀴피드를 공격하고 있어. 영악한 놈들이야."

"그게 왜?"

"전면전을 하지 않는 거지. 그러면서 시간을 끄는 거야. 전력을 아끼고 있는 건데, 그러면서 디퀴피드를 통한 정화는 확실히 막고 있거든?"

"아, 그러고 보니까 에테르 흡수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네?"

"흡수를 하는 곳을 우선으로 공격을 하고 있어.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 우리가 알고 미리 대비를 할 것 같으니까 무작위로 공격을 하는 것 같이 하는데, 실제론 에테르  흡수를 하는 디퀴피드가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거야."

"그럼 뭐지?"

자넷은 폴리몬들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리하면 이런 거야. 놈들은 전면전을 피하고 있어. 전면전으로 입을 피해를 꺼려하고 있는 거지. 즉, 놈들에게도 뭔가 걸림돌이 있는 거야. 그러면서도 디퀴피드의 파괴에 열을 올리는 것은 디퀴피드를 통한 정화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뜻해. 또 놈들이 전력을 아끼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은..."

"뭔가 준비를 하고 있고, 그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네?"

자넷이 이제는 세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는 듯이 말끝을 잡아챘다.

"그래. 그거지."

"어쩔 거야? 방법이 없어?"

"놈들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게 만들어야지."

"응?"

"전면전을 해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야 해."

세진은 결심을 굳힌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어. 어쩌려고?"

"놈들이 썼던 방법을 그대로 쓸 거야. 북아메리카 대륙의 도시와 마을에 녹두병사와 괴수들을 한꺼번에 투입을 할 거야. 그래서 전면전을 벌이는 거지."

"그랬다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자넷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사람들의 죽음 그 자체는 자넷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받은 세진의 충격이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니라고 해도, 세진이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연관이 되면 마음의 큰 상처가 남을 것이다.

"어리도 반대하는 것이에요. 세진님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도 세진과의 정신 연결로 세진이 북아메리카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세진이 겉으로 말하는 것과 진심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어때?"

자넷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방법?"

세진은 무슨 수가 있나 싶어서 자넷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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