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80화 (280/298)

< -- 베일을 벗겨 세상으로 끌어내다 -- >

세진은 천공기를 만들었다.

천공기의 원리는 간단한 것이었다.

마법진의 힘으로 에너지를 응축시켜서 그 힘으로 이면 공간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지 그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진의 배열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 천공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에너지의 응축이었다.

사실 세진은 천공기가 없어도 7등급 이면 공간에 구멍을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봐도 행성 코어가 있을 8등급 이면 공간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전에도 세진은 천공기를 이용해서 무작위로 이면 공간을 찾는 시도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면 공간의 위치를 알 수 없어서 천공기를 들고 다니면서 이면 공간이 있을 법한 곳에서 천공기를 사용해서 이면 공간을 찾는 무식한 방법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세진의 능력이 늘어나면서 이면 공간도 등급이 낮은 것은 가까이 가면 파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진도 7등급 이면 공간은 천공을 해 보지 않으면 찾지를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중첩 이면 공간을 공략할 때에도 매번 7등급 이면 공간을 뚫기 위한 시도를 한 번씩은 해 봤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구 전체를 영역으로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8등급, 혹은 그 이상의 이면 공간은 어떻게 할까.

세진은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그마치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자신하는 자신의 힘으로도 순수한 힘만 써서는 이면 공간에 구멍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궁극의 천공기였다.

"뭔가 이상한 것이에요. 궁극의 천공기. 이름이 닭살인 것이에요."

어리가 세진이 붙인 궁극의 천공기란 명칭을 듣더니 팔을 쓰다듬었다.

"호호호. 좀 그렇긴 하지."

자넷도 어리와 같은 생각인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단 설치를 해 보자."

세진이 어리에게 말했고, 어리는 테멜 안에서 완성된 천공기를 밖으로 꺼내 놓았다.7등급 에테르 코어. 즉 보라색 몬스터 코어를 열여섯 개나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천공기였다.

세진은 지금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천공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이상의 에너지를 견딜 수 있는 천공기는 세진도 설계를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어렵게 만든 물건인데 1회용으로 쓰일 물건이었다.

굉장한 투자가 필요한 실험인 셈이다.

세진은 지구상의 모든 의체를 어리 테멜로 복귀시켰다.

이제 정말로 이면 공간에 구멍을 내게 되면,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이면 공간으로 들어간 어리와 밖에 있는 헌터룸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 의체들이 말 그대로 시체가 되어 남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 테멜로 복귀를 시키고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한다."

세진은 디퀴피드 왕검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앞, 넓은 공터에서 천공기를 작동시켰다.

열여섯 개의 보라색 등급 에테르 코어가 한꺼번에 에테르를 내뿜었다. 그것은 마치 에테르 코어가 폭발을 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천공기를 작동시켰을 때, 열여섯 개의 코어는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다만 그 폭발로 일어나는 에테르들이 모두 천공기에 흡수가 되면서 하나로 모여서 천공기의 복잡한 마법진을 거치면서 가공되어 이면 공간에 구멍을 내는 형태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천공기에서 새하얀 빛이 솟구쳐 곧바로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빛은 지상에서 몇 백 미터 올라간 지점에서 뭔가에 부딪히더니 하늘 전체로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구는 새하얀 물방울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면 공간 전체가 천공기의 영향으로 잠깐동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 뚫렸다!"

자넷이 탄성을 질렀다. 천공기의 빛에 맞아서 하얀 물방울 같은 모양을 만들었던 하늘에 작게 보이는 구멍이 있었다.

"젠장, 언제 닫힐지 모르잖아. 어서 올라가야 해!"

세진이 자넷을 재촉하며 서둘러서 솟구쳐 올랐다.

세진과 자넷 그리고 어리는 순식간에 천공기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하늘을 뒤덮은 새하얀 빛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지금까지 지구를 지키고 있던 힘이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동안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그들의 호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 사람들을 모집하는 프락칸이나 깝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어리가 사람들을 모집해서 모랜 테멜에서 사냥을 시키고 에테르 코어를  취할 수 있게 해 줬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중에 북아메리카의 폴리몬들은 남아메리카까지 진출을 해서 세력을 넓혔다.

다만 폴리몬들은 더 이상 순간 이동으로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북아메리카를 점령하고 있던 폴리몬들이 세력 확장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폴리몬이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으니 그저 그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별달리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후 지구상에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행성 코어가 준비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폴리몬을 내보내고 시간을 끌면서 준비하고 있던 그 계획이 드디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행성 코어는 수많은 폴리몬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폴리몬에게 자신의 다섯 보좌 코어들 중에 하나를 흡수시켰다.

대륙 코어를 지닌 폴리몬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행성 코어의 배려로 태어나게 된 폴리몬의 수장은 특별하게 소량이지만 지구의 에너지를 에테르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 폴리몬이 드디어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폴리몬들 사이에 나타났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폴리몬의 수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남아메리카의 복속이었다.

그리고 폴리몬의 수장은 생각했다.

'내가 폴리몬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어머니처럼 몬스터들은 만들어 낼 수 있다.'

폴리몬의 수장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과거 행성 코어와 그 아래의 화이트 코어들이 그랬던 것처럼 몬스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구상에 새로이 몬스터들이 나타나게 된 이유였다.

다만 폴리몬의 수장은 자신들의 지배하에 있는 땅이 아니라 다른 대륙으로 몬스터들을 보냈다.

때문에 폴리몬의 지배를 받는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만 사람들은 몬스터의 습격을 받으며 위험한 생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혹 폴리몬이 다스리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디퀴피드들은 왕검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서 몬스터에 대항했고, 거기에 사람들이 가세했다. 폴리몬은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폴리몬이 만들어낸 몬스터들은 인류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다시 사람들은 뭉쳐야 했고, 그 구심점은 디퀴피드가 되었다.

디퀴피드들은 자신들의 범위 안에서 방어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폴리몬의 수장이 만드는 몬스터들의 난잡한 공격 따위는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디퀴피드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폴리몬의 수장도 디퀴피드들이 더 이상 에테르 정화를 하지 않으니 무리하게 공격을 하지도 않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건축물 정도로 여기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한 굳이 인간들을 죽여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면 에테르가 늘어날 것이고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멸종을 할 거란 사실을 폴리몬의 수장은 알고 있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인 것이다. 간혹 디퀴피드와 몬스터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몬스터들이 디퀴피드의 영역으로 들어간 탓일 뿐, 디퀴피드가 스스로 나서서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그저 두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폴리몬의 수장도 왕검에 대해서는 꺼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왕검이 운용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폴리몬의 수장도 조심스럽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탓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세진과 자넷, 그리고 어리는 당황스런 상황에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이상한 것이에요."

어리가 계속해서 손과 발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어리의 모습은 테멜 안에서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진과 자넷은 어리의 테멜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장하겠네."

세진이 중얼거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자넷도 세진의 곁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세진과 자넷 어리는 넓은 초원의 작은 구릉 위에 앉아 있었다.

"여기가 분명 이면 공간인 것은 분명한데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들의 힘이 모두 사라진 걸까?"

세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리는 더 큰일 난 것이에요. 어리는 소형 테멜 하나만 쓸 수 있는 것이에요. 빨간색 등급 테멜인 것이에요. 거기다가 그 테멜은 텅 비어 있는 것이에요. 다른 테멜들은 관리를 할 수 있지만 현실과는 연결을 되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지닌 힘을 모두 잃었다는 거잖아. 뭐 그래도 의체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자넷이 그나마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더 문제야. 여기서 죽게 되면 테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거야."

세진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의체를 사용하는 중이라서 어리의 테멜 안에서 본체로 깨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어리의 테멜에서 외부로 어떤 적용도 불가능했다. 아무것도 꺼낼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성장시켰던 의체의 능력이 모두 사라지고 처음 의체를 만들었을 때와 같은 일반적인 몸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영구 회복 캡슐의 효과는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이다.

"하아, 이건 좀 아닌 것이에요. 어리의 능력이 이렇게 줄어버린 것이에요."

어리가 두 손을 모아서 그 사이에서 뭔가를 만들어 냈다.

어리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은 손바닥 크기의 금속 조각이었다.

"이건?"

"파르티크 금속인 것이에요. 하지만 이 정도가 고작인 것이에요. 테멜 안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합성을 할 수는 있는데, 그게 겨우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도 어리의 고유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다행이네."

"언니도 그랜드 마스터에서 일반인이 되었으니 알겠지만, 지금 어리도 그런 기분인 것이에요. 어마무지했던 어리는 이제 꼬마 계집아이가 되어버린 것이에요."

어리는 잔뜩 풀이 죽어서 어깨가 쳐졌다.

"어쨌거나 여기 상황을 살펴보자."

세진은 어쨌거나 이면 공간 안쪽에 들어왔으니 행성 코어가 세진 일행의 등장을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일행들을 공격하는 것이 없으니 행성 코어가 세진 일행을 찾지 못하고 있거나 침입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그런 거라면 다행이긴 하지만.'

세진은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자넷이 세진을 보며 말했다.

"뭐가?"

"여기 에테르 농도 말이야. 보통 이면 공간은 에테르 농도가 좀 높은 편이잖아. 그런데 여기는 어째서 이렇게 에테르 농도가 높지 않은 걸까?"

"음, 글쎄?"

"땅도 괜찮은 것이에요. 에테르에 침식되지 않은 것이에요."

어리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면서 말했다.

땅 위에는 여러 종류의 풀들이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세진은 이전보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폈다.

"음. 동물들의 발자국도 있고, 저기 배설물도 있네. 말인 것 같은데? 발자국을 보면 소는 아닌 것 같고. 저쪽 방향으로 떼를 지어서 달려갔네?"

"정말 그러네? 말이 여기서 살고 있다고?"

"뭔가 상황이 묘하네."

세진은 다시 한 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혼란을 느꼈다.

"여기가 정말 이면공간이긴 한 건지 모르겠군."

"천공기로 뚫고 들어왔으니 이면 공간이 맞겠지. 아니면 다른 차원일까?"

"차원? 설마 그 정도로 큰 에너지는 아니었어."

세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기 뭔가 오는 것이에요."

그 때, 어리가 한쪽 지평선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했다.

능력을 거의 잃어버린 상황이라 세진이나 자넷, 어리의 수준은 거기서 거기였다.

"엎드려."

세진은 급히 자넷과 어리를 땅에 엎드리게 하고 멀리 먼지와 함께 다가오는 뭔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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