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마을 자히알락에 들어서다 -- >
마을에 온 새로운 손님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밤이 깊기 전에 세진의 텐트 앞,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뭔가 하나씩 제가 먹을 것을 챙겨 온 이들은 그 사이에 울렉치의 가족들이 쌓아 둔 나무와 분탄(糞炭-가축의 배설물을 말린 땔감)을 이용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들은 세진과 그 가족들이 자신들이 말을 알아듣지만 말을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다가와서 자신들을 소개하고 마을에 사는 동안에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보자는 인사를 하고는 제각각 무리를 지어서 축제같은 시간을 즐겼다.
"어떤가? 보기 좋지 않은가?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것도 기회가 그리 많지 않거든. 핑계가 생겼을 때, 놀아 줘야 한단 말이지. 하하핫. 자, 한 잔 해."
울렉치가 가죽 주머니에 든 술을 가지고 와서 투박한 금속 그릇에 따라 준다. 세진은 마다치 않고 받아서 꿀꺽꿀꺽 넘기는데 맛이 텁텁하다.
"좋지? 하하핫. 좋을 거야. 내 아내가 마유주는 기가 막히게 만들거든."
사실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맛이지만 문화의 차이겠거니 하면서 세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이에 자넷과 어리는 한쪽에서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먹거리들을 가지고 음식을 하고 있다.
요리 도구가 마땅치 않지만 팬과 냄비, 솥을 어리가 텐트 안에서 가지고 나왔다.
텐트 안에 그것들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 당연히 테멜 안에 넣어 뒀던 것들을 꺼내거나 새로 만든 것들이다.
버려두고 온 구릉 위의 토굴에서도 간단하게 그릇 몇 개를 만들어서 쓰고 테멜 안에 넣어 뒀던 것이 있으니 그것도 꺼내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었다.
"음, 뭔지 모르지만 맛난 냄새가 나는군."
울렉치는 자넷이 만들고 있는 수제비와 전에 관심을 보였다.
세진은 접시에 고기전을 놀려서 울렉치에게 건넸다.
"아아, 이런 가장도 먹지 않은 것을 내가 먼저 먹을 수는 없지. 아하하. 자자, 어서 먹게. 그리고 나서 내게 줘."
하지만 울렉치는 세진이 먼저 먹어야 한다면서 접시를 세진에게 미뤘다.
세진은 이것 역시 문화적인 차이라 생각하고 접시 위의 전을 하나 젓가락을 이용해서 집어 먹고는 다른 젓가락과 함께 접시를 울렉치에 넘겼다.
이곳 사람들도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어쩐지 동양식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생긴 것은 여러 인종의 혼합이지만 문화적인 면들은 세진이 알고 있는 몽고의 유목민족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우하하하. 이거 맛있군. 맛있어."
울렉치는 자넷과 어리의 음식에 홀딱 반한 모습이었다. 이후에 팔팔 끓인 수제비도 입 천정이 홀딱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좋다면서 후루룩 마셨다.
그러는 사이에 자넷과 어리의 수제비 솥은 소형에서 대형으로 바뀌고, 그릇들은 마을 주민들의 것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넷과 어리 곁에는 여인네들이 붙어서 수제비를 만드는 것을 보고 배우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솥과 그릇을 그네들이 차지하고 무더기로 끓여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을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마을 아낙들은 자넷과 어가 만드는 새로운 음식에 금방 적응하고 흉내를 냈다.
세진이 울렉치를 비롯한 남자들과 마유주를 곁들여서 먹고 마시며 떠드는 동안에 여자들은 다른 쪽에서 먹고 마셨다.
딱 봐도 남녀서 서로 함께 어울리지는 않았는데, 오직 한 곳에서만은 남녀가 소통을 했다.
가장 큰 모닥불이 밝은 곳에서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음식을 건네 주는 모습이 보였다.
"아하하, 짝이 없는 이들에겐 이런 자리가 기회지. 아무렴. 하하하."
울렉치는 세진의 시선이 그 쪽에 향하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말하고 크게 웃었다.
세진은 눈썰미가 있게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여자들이 짝이 없는 여자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세진은 자신의 귀 양쪽으로 머리카락을 잡는 흉내를 내 보였다.
"아? 모르나? 그래 맞네. 머리를 둘로 묶은 이들은 짝이 없는 경우지. 그리고 하나로 묶은 이들은 결혼을 한 거고. 저렇게 머리카락을 푼 상태로 일부만 묶은 경우는 과부라는 뜻이지. 음, 알겠나?"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짝이 없는 쪽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그런 여자들만 있었으니 당연했다.
세진은 이내 남자들에게서 어떤 특징을 찾을 수 있을까 살폈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세진이 유심히 남자들의 모습을 살피는 것을 보고도 울렉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남자들은 유부남과 총각을 구별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자를 납치하는 약탈혼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마을에서 남녀가 짝을 맺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혈족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부족과 교환혼이 이루어지는데 그 형태가 일반적으로 약탈혼이다.
서로 약속을 하고 정해진 숫자만큼 납치를 해 가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도 처녀와 유부녀, 과부의 구별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세진은 그걸 알 턱이 없으니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그렇게 세진 일행이 자히알락 마을에 들어온 첫 날 밤이 깊었다. 세진의 집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텐트 안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벽돌 블럭을 쌓아서 벽을 세우는데 이틀이 걸렸고, 그 후에는 지붕을 만들었다.
기와 형태로 만들었지만 그것 역시 홈에 끼워 맞출 수 있도록 만든 것이어서 길게 끼운 다음에 하나씩 옆으로 이어가면서 지붕을 덮는 형태였다.
그렇게 집을 지으니 외형은 사흘이 지나기 전에 모두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외부를 만든 다음에는 문과 창문을 만들어 달고 내부의 바닥을 다듬었다.
천정을 제대로 만들려다가 그저 휭하게 비워 두는 쪽을 택했다.
위로 올려보면 삼각형으로 맞물린 지붕의 모습이 안쪽에서 보이도록 그대로 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가구를 만들었지만 유독 이곳에 없는 가구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의자였다. 의자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용도로 쓰이는 것으로 집에 하나씩만 있다고 했다.
중요한 행사에서 가장이 앉을 의자. 곧 권위의 상징으로서 존재하는 의자가 하나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을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도 의자는 하나만 있게 되고, 어떤 무리가 모였을 때에도 의자가 있다면 오직 하나만 놓게 된다고 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의자가 둘이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동등한 위치의 수장 둘이 한 자리에서 어떤 일을 의논할 때에만 생기는 경우라고 했다.
이를테면 부족의 장, 두 명이 한 자리에서 회의를 하는 경우 의자를 마주 놓고 앉는 경우인 것이다.
어쨌거나 세진과 자넷, 그리고 어리는 술법사로서 마을에 알려졌다.
그것도 뭐든 재료를 가지고 찾아가면 그것으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주는 그런 술 법사라고 알려져서 어리의 일이 잔뜩 늘었다.
하지만 세진은 일정한 한계를 정해서 그 이상은 만들지 않았다.
자히알락에도 대장장이가 있고, 가죽 수선공이 있고, 아낙들이 실을 잦아서 옷감을 짜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어리가 홀로 모두 해 버리면 마을 사람들이 할 일이 줄어든다.
그것은 좋지 않았다. 뭐든 적당한 수준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장장이의 일이거나 목수의 일이거나 혹은 가죽 수선공의 일이거나, 그들의 부담을 덜어줄 정도의 생산력을 보여야지 그들의 일거리를 빼앗는 정도의 능력을 보여서는 곤란했다.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세진 가족이 자히알락에 정착하고 40일 정도가 지나면서 세진과 자넷, 어리는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그 전부터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툴틱에 자료가 쌓였지만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말을 익히면 도리어 알면서 모르는 척 했다는 오해를 살 것 같아서 40일 정도 될 때까지 참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진 가족이 판겐어를 하게 되면서 자히알락의 주민들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의사 소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세진은 울렉치와 함께 말을 타고, 마을 주변을 돌아보는 일도 가끔 생겼고, 자넷과 어리는 집 안으로 여자들을 끌고 들어와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다시 20일 정도가 흘렀을 때, 세진과 자넷, 어리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방바닥에 둘러않아서 그 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했다.
"판겐, 여기 이 세상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에요."
"판겐에는 하늘과 땅을 대표하는 신이 있어. 무척 사이가 좋지 않은 신이지."
어리와 자넷이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하늘 어머니를 모시는 이들과 땅 어머니를 모시는 이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들이 하늘 어머니를 모시고, 마가스라고 부르는 몬스터들이 땅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에요."
"이곳은 일종의 변방이야. 하늘 어머니의 세력도 땅 어머니의 세력도 별로 없는 척박하고 황량한 곳이지."
"그런데 여기서도 땅 어머니를 위해서 전사들을 뽑아서 전장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에요. 열 명 중에서 세 명을 뽑아서 보내는 것이에요."
"맞아. 그래서 여자들은 그 때, 자신의 아들이 어머니의 전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또 영광을 얻어 떠나는 이별을 슬퍼하기도 해."
"매년 한 번씩 같은 나이의 전사들 중에서 비율적으로 전장에 보낼 전사를 뽑는 것이에요. 어마어마한 행사인 것이에요."
"맞아. 그 때는 자그마치 의자가 쉰 개도 넘게 모인다는 소리가 있어. 이 근방에 있는 모든 부족이 한 곳에 모여서 전사를 뽑는 거지. 예전에는 각각 부족에서 전사를 뽑았는데 점차 몇몇 부족들이 모여서 전사를 뽑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모든 부족들이 모여서 전사를 뽑는 걸로 바뀐 거야."
세진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중에 자넷과 어리가 번갈아 가면서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있었다.
"크음. 생각을 해 봤는데 여기, 이 판겐이라는 곳은 행성 코어인 땅의 어머니와 또 다른 존재인 하늘의 어머니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아."
세진이 땅의 어머니를 행성 코어라는 결론을 지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는 끝도 없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어. 그것도 중앙에 있는 하늘 어머니의 세력을 사방에서 포위한 땅의 어머니의 세력이 공격을 하는 거지.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쳐들어오고 있는 거야. 물론 몬스터는 이곳에도 있지만 이곳에 있는 몬스터는 그야말로 그냥 찌꺼기들이지. 들어보니까 여긴 4등급 몬스터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야."
"당연한 것이에요. 여긴 하늘 어머니의 영역인 것이에요."
"맞아. 그래서 강력한 몬스터는 나타나기 어려운 걸 거야."
"사실, 나도 도대체 뭐가 행성 코어와 싸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어쨌거나 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이런 꼴이 된 것도 어쩌면 그 행성 코어와 또 다른 존재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각을 잘못한 것이 있는데, 내가 아마도 지역 코어 보다는 조금 더 높은 경지일 수도 있어. 그렇지? 물론 이곳에 들어오지 전의 실력을 말이야."
"응. 그럴 수도 있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고."
"그래 아무리 높게 쳐 준다고 해도 대륙 코어는 상대할 수 없는 경지일 거야. 그럼 그 위에 있는 행성 코어는?"
"으음."
세진의 말에 자넷이 신음성을 토했다.
감히 어떻게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을 새삼 느낀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있는 이곳 이면 공간으로 훌쩍 뛰어들었어. 우리가. 사실 행성 코어의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이냐 했겠지. 그래서 그냥 지워버리려고 했을지도 몰라."
"우웅. 그런데 행성 코어와 싸우고 있던 쪽도 만만치 않으니까 어떻게든 우릴 도우려고 했을 거고 그래서 결론이 지금 이 상태라는 것이에요?"
어리가 내용을 추려서 정리하면서 물었다.
"그래. 내 생각은 그래. 그냥 싹 지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뭔가 도움을 받아서 지금처럼 이 정도라도 되어 있는 상황인 거지.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지금 우리는 하늘 어머니나 땅 어머니 양쪽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우리를 찾지 못하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야. 서로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 우리를 놓고 한바탕 했다면 그런 결론이 나와야 하지."
"그렇다면 우린 그들의 눈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을 가능서이 높네? 전에 그 늑대, 마가스나 여기 자히알락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모습을 보이진 않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넷은 그렇게 짐작을 했다. 만약 자신들을 하늘 어머니가 주시하고 있다면 그의 자식들인 인간들을 통해서 어떤 식이 되었건 반응을 보였을 거라는 것이 자넷의 생각인 것이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이 정도까지는 정리를 할 수 있겠어. 어때?"
세진이 물었고, 자넷과 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세진 일행은 어느 정도 사실에 접근한 추측을 해 내고 있었다.
그들이 이면 공간을 열고 들어올 때에 행성 코어가 나서서 세진 일행을 제약하려 들었고, 그것을 지구의 의지가 막아섰다. 그런 상황에서 세진과 자넷, 어리의 능력이 오락가락 하면서 널뛰기를 했고, 결국 세진과 자넷, 어리가 이면 공간에 완전히 들어와서 행성 코어와 지구의 의지가 겨루는 전장에 내려서면서 그 다툼은 끝이 났다.
전장에는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 싸움의 규칙인 것이다.
오로지 하늘 어머니와 땅의 어머니로서 그 자식들에게 적을 멸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또 기운을 불어 넣어 줄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곳이 이면 공간의 전장 이었다.
이곳은 행성 코어와 지구의 의지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