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다 -- >
언덕 꼭대기를 점령당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싸움에서 지형은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위에서 아래로, 아니면 아래서 위로.
어느 쪽이 우세할까 하는 것은 굳이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하늘 어머니와 땅 어머니의 싸움에서 큰 변수가 생겼다.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이 땅 어머니의 마가스 무리를 뚫고 올라가서 언덕 꼭대기까지 장악을 했다.
이렇게 되니 그 후는 곧바로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도 막지 못해서 정상을 내어줬던 마가스들이 위에서 아래 로 공격하는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되니 점점 전장의 마가스 쪽 언덕 꼭대기를 인간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한 마디로 마가스의 패배가 계속 되는 것이다.
어떻게 막아 볼 엄두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간들은 북부 전장을 온전히 손에 넣기 위해서 좌우, 아래, 옆에서 마가스들을 몰아붙였다.
폴리몬들은 한동안 전장의 상황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세진식 수련법은 그들을 매혹시켰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북부 전장이 완전히 밀려버렸다.
하지만 폴리몬들은 여타의 다른 마가스들과는 달랐다.
폴리몬들은 곧바로 북부 전체의 마가스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보통 마가스와 인간들은 그들의 15% 정도를 전장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영역에 머문다.
초원 부족이 30%의 전사를 뽑은 것은 그들이 여자를 전장으로 보내지 않기 때문이지 열에 셋을 무조건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열에 하나 혹은 둘, 백에 열다섯 정도가 전장으로 가는 비율이었다.
그런데 폴리몬들은 북부 전장을 잃어버릴 상황이 되자 곧바로 북부 지역의 마가스 전체 동원령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바로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에게도 전해졌다.
그것은 이곳 이면 공간의 정해진 규칙과 같았다. 싸움은 전장에서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어느 한 쪽이 그 규칙을 어기고 정해진 비율 이상의 전력을 동원하는 경우, 다른 쪽에서도 즉각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늘 어머니의 말씀이 되어서 모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면 공간의 북부 지역에선 대대적인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전장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은 북부 전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리고 세진은 그 전장에서 전사들을 교육시키는 수련관의 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어떤 곳보다도 전장에서의 수련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총 동원령이 내려진 이면 공간 북부지역에선 어마어마한 군세가 모이기 시작했다.
마가스 쪽은 갖가지 모양을 지닌 동물에서부터 비대칭의 기괴한 모양의 마가스는 물론이고 인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마가스인 폴리몬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종류의 생명체들이 모였다. 그에 비해서 전장을 등지고 마가스를 향해 적의를 뿜는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은 오직 인간들뿐이고, 더 있다고 하면 말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수는 정말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세진은 그 수를 모두 헤아리는 것을 포기했다.
수도 없이 죽고 또 죽었어도 여전히 인간과 마가스는 밀려들었다.
사실상 싸움은 높은 등급의 마가스와 그를 상대하는 특별한 하늘 어머니의 전사들 사이에서 결정이 날 일이었다.
이제 겨우 마스터의 경지를 갓 지난 세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 인간 진영에는 많았다.
물론 세진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경지가 이곳 이면 공간에 들어오기 전에 세진보다 높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이 고위 등급의 마가스와의 싸움에서 힘겨워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 싸움이 가장 중요하지만 또 그렇기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은 싸움이 그들의 싸움이었다.
며칠, 혹은 십여 일을 싸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렇게 싸우고도 결말이 나지 않아서 지친 상태로 후방으로 휴식을 위해서 보내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 대대적인 싸움이 전선 전체에 걸쳐서 수 백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에 해당하는 능력자의 수가 그 정도로 많다는 말이 된다.
세진은 그 소식을 듣고는 자신이 지금 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물론 세진의 수련법 덕분에 일취월장하는 실력자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니 세진의 일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다.
실제로 지금 북부 전장에서 벌어진 사태는 모두가 세진식의 수련 방법 때문이었다.
일단 세진이 수련관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유독 그 부분에서만 실력이 뛰어난 전사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전장 안에서는 본래 실력의 25%정도나 겨우 사용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성취가 뛰어난 전사들이 늘어나게 되면 곧바로 싸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장에서는 등급이 높거나 경지가 높은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하면 실력자가 운 없이 죽을 수도 있는 곳이 전장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진의 수련을 겪은 이들이 조금씩 능력발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힘을 모아서 마가스를 몰아치더니 결국 반대쪽 언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거기서도 세진의 보이지 않은 역할이 있었다.
폴리몬들의 부재.
폴리몬들이 전장에서 눈을 돌리고 세진식의 수련법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탓이 컸 던 것이다.
마가스는 체계적인 지휘를 받지 못했고, 당연히 병력이 부족하고 전선이 밀리는 곳으로 충원을 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북부의 전장이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 손에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장 밖에서의 싸움은 고위 등급의 마가스가 경지가 처지는 인간들을 순식간에 몰살시키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다.
그래서 그렇게 등급이 높은 마가스는 무척 귀한 전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전력들이 알게 모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중에 전장에 참여한 폴리몬들로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어째서 싸움이 벌어지면 동등한 실력으로 겨루는데 꼭 패배하는 것은 마가스 쪽일 까?
매번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도무지 그 이유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폴리몬들이 머리카락을 쥐더 뜯으면서 원인 분석에 힘을 쏟고 있을 때, 마가스와의 싸움에 약간의 여유라도 생기면 마가스의 사체를 정화하기 위해서 프락칸의 능력을 익힌 여인들이 나선다.
그런데 그렇게 나서는 이들 말고도 많은 여인들이 싸움터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무척 지친 표정으로 최대한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리 후방이라고 하지만 너무 나태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들의 모습을 두고 허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녀들이 없으면 고위 등급의 마가스를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녀들이 그런 고위 등급의 마가스를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대외비라고 하고, 땅의 어머니 자식들에게만 비밀이 전해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은 별달리 정보 보안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누굴 속일까.
설마 마가스가 첩자를 심기라도 할까?
하늘 어머니의 자식들은 그런 일을 상상속에서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깝딴의 능력을 지닌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알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깝딴의 능력을 지닌 여인들은 고위 등급의 마가스와 인간 쪽의 실력자가 싸울 때에 꼭 필요한 어시스트였다.
지금까지는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높은 등급의 마가스와의 싸움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말 그대로 고기 방패의 역할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 등급 차이, 경지의 차이였다.
그런데 깝딴의 능력은 달랐다.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어떻게든 마가스의 체내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깝딴이 많이 모이면 작은 힘이 모여서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개미들이 아무리 모여도 적의 갑옷에 흠집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깝딴 개미드은 갑옷 안쪽으로 들어가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특히 마가스들이 다른 행성의 몬스터들과는 달리 20%정도는 지구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컸다.
그 때문에 깝딴의 능력이 조금 더 쉽게 마가스에게 투사되고 있는 것이었다.
"깝딴의 능력을 지닌? 그게 무슨 소리지?"
폴리몬 하나가 고래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요. 여자들만 익힐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래, 있었지. 그 능력으로 감히 우리 어머니의 기운을 하늘 어머니의 것으로 바꾸는 짓을 했지."
"그런데요. 그 능력 중에서 정화 능력이 떨어지는 깝딴의 능력이요. 그게 위대한 마가스들에게 영향을 줘요. 싸울 때에 방해가 되고, 몸에 이상이 생기게 해요."
"흐음. 그러니까 프락칸의 능력과는 용도가 다른 것이었단 말이군. 젠장, 그래봐야 우리가 쓸 수 있는 힘이 아니잖아. 어쩐다?"
폴리몬은 앞에 서 있는 아이를 잊은 듯이 홀로 생각에 잠겼다.
아이는 폴리몬이 눈을 뜰 때까지 말없이 눈치를 보며 기다렸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이는 사내아이였는데 폴리몬을 보는 눈빛에는 존경의 염이 가득했다.
아이는 그 폴리몬이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이후로 지금까지 정성들여 키워준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이 어려서부터 강제로 주입된 세뇌의 결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런 폴리몬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아이였다.
"크음. 방법이 없군. 방법이. 이렇게 되면 한동안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마가스들이 필요하겠어. 좋지 않은데? 응?"
폴리몬은 눈을 뜨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아이를 발견했다.
"아직 가지 않은 것이냐?"
"뭔가 더 할 일이 없을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헤헤."
"그래.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없구나. 나중에 시킬 일이 있으면 부를 테니까 가서 친구들과 함께 있거라."
"네에. 그럼..."
아이는 살짝 기운이 빠진 얼굴로 폴리몬의 방을 나섰다.
폴리몬들은 다른 마가스와 달리 제대로 된 주거지를 만들어서 살고 있었다.
그런 폴리몬 중에서도 특히 이곳에서 아이들을 관리하는 폴리몬들은 커다란 동굴 안에 또 개별적인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다.
조금이라도 인간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편히 지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폴리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내보낸 폴리몬 역시 그 통나무집의 한쪽 방을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수로 밀어 붙여야 하는 건가? 인간들을 태어나서 자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한동안은 그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패배가 된다. 우리 마가몬의 탄생도 어머니의 기운이 소비되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태어나자마자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점이 있지. 결국 당분간 그렇게 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나?"
폴리몬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북부 지역에서의 전쟁을 계획했다.
얼마 후에 있를 폴리몬들의 단체 회의에서 의견을 내기 위한 준비였다.
"그래도 새로운 수련법 덕분에 우리 폴리몬들의 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 이젠 머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힘도 함께 있는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 이지. 다른 마가스들은 안 그렇지만 우리 폴리몬들은 아무래도 욕심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또 그게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폴리몬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짬을 내어 세진식 수련법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을 해야 같은 폴리몬 사이에서도 높은 곳에 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