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김사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다
[김사범, 메이저리그 데뷔 초읽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끝나가는 3월, 또 한 명의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탄생을 앞두고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 김사범(21)은 최근 디트로이트가 발표한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됐다. 시범경기 중 이미 15홈런-15도루(21홈런, 16도루)를 기록한 김사범은…….]
나는 핸드폰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짐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은 난리네요? 이 정도로 이슈 거리는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짐이 한 거예요?”
“저요? 아뇨, 사범의 계약을 신경 쓰기에도 충분히 바쁜 3월이었어요.”
“그렇긴 하죠. 결국 흐지부지 넘어가게 됐지만.”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아직 보여 준 게 없는 루키에게 거액을 투자하진 않네요.”
“그래도 찔러본 덕분에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했잖아요?”
빨라야 4월, 5월 콜업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젠 사범에게 달렸어요. 앞으로의 계약은.”
“그렇죠. 패배한 짐의 복수를 위해. 큭큭”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패배가 아니에요. 오히려 사범을 위해 내가 무리하게…….”
“알았어요 짐, 설명은 충분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짐이 구단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칼을 갈아야겠네요. 성공을 위해.”
“그리고 슈퍼 에이전트인 나를 위해.”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 내가 잡느냐 못 잡느냐에 달렸다.
물론 난 반드시 잡을 거다.
* * *
같은 시각, 서울의 KBN 스포츠 스튜디오.
“안녕하세요! 매주 한 번! 메이저리그를 만나는 시간! KBN 스포츠의 간판 프로! 메이저리그 프리뷰 투나잇 입니다. 저는 스포츠 아나운서 배진경.”
“해설위원 김성채입니다.”
같이 방송을 한 지 오래된 듯, 두 남자의 호흡이 잘 맞는다.
“오늘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죠? 바로 김사범 선수의 메이저리그 승격인데요, 오피셜 맞나요?”
“네, 오늘 새벽, 디트로이트가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발표했습니다. 그중에 김사범 선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른 승격이라고 하는데,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디트로이트의 팀 상황이 별로 안 좋은 게 첫 번째 이유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는 작년까지 지구 1등이 아닌 꼴찌를 하려 경쟁하는 모습이었는데, 오랜 기간 리빌딩과 탱킹을 하다 보니 팬들의 이탈이 심했거든요?”
디트로이트 구단의 평균 관중 수 통계가 큰 화면에 나왔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별 변동이 없었던 관중 수가 작년 개막을 기점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구단의 입장에서는 리빌딩을 서둘러 완료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죠.”
“아, 팬들의 감소를 막기 위해서 김사범 선수를 올렸다는 말씀이신가요?”
“하하, 시범경기에서 보여 준 김사범 선수의 성적은 팬들이 기대할 만한 성적이니까요.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죠. 하지만.”
“하지만?”
해설위원의 말을 능숙하게 받는 아나운서.
“디트로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유망주들이 올해 콜업을 앞두고 있어요. 슬슬 길었던 리빌딩의 끝을 내려고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어차피 올릴 거, 코어가 되는 유망주를 빠르게 콜업시켜 팀의 간판으로 삼겠다는 거죠. 간판타자인 미겔 카브레라가 노쇠화로 인해 지금의 자리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지금 바통을 이어받을 타자가 필요하니까요.”
“아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김사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하기 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겠네요. 김사범 선수 특유의 호쾌한 홈런 행진, 메이저리그에서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잠시 목을 가다듬고 대답하는 해설위원.
“마이너에서 보여 줬던 파괴력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데뷔 시즌에 30홈런 이상은 충분할 겁니다.”
“아,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시는군요?”
“홈런 생산성이 굉장한 타자이기 때문에 최대 2할 후반대의 타율과 40홈런도 바라볼 수 있다고 봅니다.”
……
“지금까지 김사범 선수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디트로이트의 개막전! 미네소타와의 홈경기는 4월 5일에 펼쳐집니다. KBN 중계로 함께 보실 수 있으니까요, 많은 시청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 * *
플로리다 공항.
“잘 가라, 빨리 올라오고.”
“그래.”
케이시가 떠났다. 시범경기 마지막까지 등판하며 공을 던졌지만 아쉽게도 트리플A로 내려가게 됐다. 아마 4월 이후나 메이저에서 볼 수 있겠지.
같이 케이시를 배웅하던 이삭이 짐을 챙기며 입을 연다.
“후, 이제 끝났나?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는 됐어? 루키?”
“오랜만에 들어보네, 루키 소리도.”
“Welcome to MLB.”
“눈 감고 홈런 친 다음에나 그 문장을 입에 올려라.”
종목이 달라도, 존중을 해야지 사람이.
아, 같은 종목 선수기도 한가?
“그나저나 폴리가 25인 로스터에 남아 있을 줄 몰랐네. 4월에 올릴 줄 알았는데.”
폴리는 어제부터 핸드폰을 귀에 붙여 놓고 산다. 아무도 예상 못 하던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됐으니.
“이번에 구속이 많이 오른 게 구단 입장에서 인상적이었나 보지. 100마일을 던지는 불펜이 흔한 건 아니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삭.
“뭐, 폴리는 계속 전화나 하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할 걸 하자고. 디트로이트는 처음이지? 이 형만 믿고 따라오렴, 루키.”
“거기는 누군가를 따라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그러던데.”
“누가?”
“내 에이전트.”
“훌륭한 에이전트네. 나라면 그와 종신 계약을 하겠어.”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야.
* * *
며칠 뒤.
디트로이트, 코메리카 파크.
“넌 빨리 운전면허 따고, 넌 차를 사.”
면허가 없는 나와 차가 없는 폴리를 태우고 온 이삭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면허? 귀찮게 왜. 네가 있는데.”
“필요 없던데? 필요했으면 고등학교 때 샀겠지.”
나와 동시에 말을 한 폴리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같이 주먹을 내미는 폴리.
툭.
마이너에서 만든 승리의 세레머니다.
“내려.”
패배자 이삭이 분노했다.
“미안, 그냥 해본 소리야. 곧 딸 거야.”
“나도 아마 곧…….”
“……다 왔어. 여기가 코메리카 파크야.”
음, 아직 참을성이 부족하군. 더 노력해야 해.
그렇게 같이 들어간 스타디움, 우리는 이삭의 도움을 받아 라커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라커룸. 깔끔하게 정리된 라커 사이에서 내 이름을 찾는다.
[NO. 99, SB Kim]
내가 보낸 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
“우리는 라커룸 정리를 하는 클러비에게 팁을 개인적으로 주지 않고 모아서 줘, 매일 이 통에 넣으면 돼.”
이삭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개인적인 부탁을 할 때는 당연히 알아서 주면 되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천천히. 빠르게 뛰던 심장박동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감았던 눈을 뜨고 이삭에게 묻는다.
“전력분석실은 어디야?”
이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볼 차례다.
* * *
[안녕하십니까, 2020년에도 여러분과 함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응원하게 된 티리코입니다.]
[미첼입니다.]
[2020시즌, 우리의 타이거즈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인업 대부분이 유망주거나, 유망주로 자라난 선수들이죠.]
[아주 젊은 라인업이에요. 실험적입니다.]
[미네소타의 1선발인 호세 베리오스를 상대할 라인업의 평균 나이가 27세를 넘지 않는군요. 아주 젊은 에너지를 내뿜는 팀이 됐습니다.]
[이 팀이 실험으로 남지 않으려면 오늘 같은 홈경기에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해요. 티리코, 라인업을 소개해 주시죠.]
[타자부터 소개하겠습니다.
1번 3루수 키브라이언 헤이스
2번 2루수 이삭 파데레스
3번 우익수 닉 카스테야노스
4번 지명타자 미구엘 카브레라
5번 유격수 조디 머서
6번 좌익수 크리스틴 스튜어트
7번 중견수 대즈 카메론
8번 포수 제임스 맥캔
9번 1루수 스테판 맥싱
오늘의 선발 투수는 마이클 풀머입니다.]
[베리오스와 풀머, 비슷한 구속의 직구를 가지고 있는 차세대 에이스들 간의 경쟁입니다.]
[베리오스의 커브볼을 어떻게 공략하는지가 게임의 향방을 좌우하겠군요. 곧 시작합니다.]
“헤이, 붐. 아쉽겠어?”
경기를 준비하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서 묻는다.
“아뇨, 괜찮아요. 미기. 데뷔전이 선발 출장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날 붐이라 부르는 사람은 이 덕아웃에 미기밖에 없다. 킴이라고 부르면 너무 흔한 느낌이라고 캠프 때부터 쭉 부르고 있다.
“정말로?”
“아뇨, 아쉬워요. 하지만 여기선 경쟁이 생활이니까요. 이러다가 제가 오늘 경기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하면, 내일은 머서가 아쉬워하지 않겠어요?”
“하하, 좋아. 루키답게 용감해. 좋은 자세야.”
미네소타의 선발투수인 베리오스의 연습투구가 끝나고, 타석에 헤이스가 들어선다.
‘하나, 둘, 셋’
“플레이볼.”
“플레이볼!”
그렇게, 내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던지는 양 팀 투수는 비슷한 구위를 지니고 있다. 93~96마일을 넘나드는, 볼 끝이 지저분한 포심과 서드피치인 체인지업으로 재미를 보는 유형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른 점은 베리오스의 경우 커브로 카운트를 잡고 직구나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던지고.
“아웃!”
우리 팀의 풀머는 결정구로 슬라이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각자 1회를 순식간에 지워 버리는 양 팀 선발투수. 하지만 2회에 희비가 갈렸다.
따악!
“저건 넘어갔네.”
“그렇겠네요.”
2회 초, 미네소타의 5번 제이크 케이브의 타구가 코메리카 파크의 담장을 넘겼다. 다행히도 바로 평정을 되찾고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풀머.
하지만 6회가 끝날 때까지 카스테야노스와 미기를 제외한 타자들은 베리오스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풀머, 더 던질 수 있나?”
“아직 1이닝 정도는 던질 수 있습니다.”
론의 말에 가능하다고 대답하는 풀머, 하지만 이미 투구 수가 90개를 넘어 곧 한계가 찾아올 거다.
“좋아, 7회 초까지만 막지. 다음 공격은 카스테야노스로 시작하니 분명 점수를 낼 수 있을 거야.”
이닝을 시작하는 타순이 좋아 점수를 낼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야구 감독은 스트레스 없는 꿈의 직장이 될 거다.
하지만 론의 뻔한 응원이 힘이 됐는지, 7회 초를 틀어막고 내려온 풀머. 이젠 론의 말대로 우리가 화답할 때다.
“볼! 베이스 온 볼스!”
마침 카스테야노스가 볼넷을 얻어 1루로 향했다.
대기타석에서 타석으로 걸어가는 미기. 팀원부터 관중들까지, 모두의 기대를 업고 있는 그의 등이 왠지 무거워 보인다.
“타임.”
미기의 타석, 미네소타의 투수 코치와 포수가 마운드를 방문한다. 투수가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보니 약간의 의견대립이 있는 것 같다. 5번을 치는 머서가 우투수 상대로 기록이 좋지 않으니 미기를 거르자는 이야기겠지.
“킴!”
그때, 나를 부르는 론의 목소리. 느낌이 왔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준비하게. 다음 타석에 대타로 나갈 거야.”
5회가 끝날 때부터 이미 몸은 풀고 있었다. 남은 건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것과 머릿속의 데이터를 되뇌는 것뿐.
잠시 후, 2루에 있는 미기와 전광판에 보이는 1:1이라는 스코어를 바라보며 마침내 나는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내 두 발을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