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46화 (46/175)

46화 김사범, 2020시즌(Rookie's Dinner)

[무서운 루키와 함께하는 디트로이트의 약진, 어디까지?

최근 디트로이트의 기세가 무섭다. 최근 7경기에서 5승 2패를 거두며 동일 기간 3승에 그친 클리블랜드를 한 게임 차로 따라붙었다.

지구 내에 별다른 경쟁 상대가 없는 두 팀은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클리블랜드의 경우 지난 스토브리그의 행보가 말해 주듯 2018년부터 연봉총액을 늘리며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디트로이트의 경우 고액 연봉자를 처리하면서 유망주의 빠른 콜업으로 자리를 메꾸고 있다.

……

디트로이트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선수인 김사범(20)과 제이슨 폴리(24), 이삭 페레데스(22), 케이시 마이즈(24)는 모두 젊고, 서비스 타임이 이제 시작된 선수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

디트로이트 또한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다. 유망주의 폭발은 분명 긍정적인 요소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분명 상대 팀의 세밀한 분석이 이뤄지면서 고비가 찾아올 것이다.

나이가 어린 선수의 경우 이 시점에서 슬럼프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으며, 그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한 베테랑 선수들의 적절한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은 어디로 가지?”

애리조나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 시카고와의 홈 4연전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팀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루키 4인방으로 불리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그날그날의 저녁메뉴였다.

“중식이나 먹을래? 저번에 다운타운에 갔을 때 먹어 봤는데 괜찮던데.”

폴리의 말에 이삭이 질색하며 말했다.

“중식? 아니, 그보다 다운타운? 난 오래 야구 할 거야. 내 차도 굉장히 맘에 들고. 그냥 스테이크나 먹으러 가자.”

“겁쟁이네. 저번에 가 보니까 괜찮던데? 사람들도 친절하고.”

그야 네 인상이 더러우니까 그렇지.

“괜히 시끄러운 일 만들지 말고 가던 데 가자. 루틴이 깨지는거 싫어.”

오오. 이 시답잖은 대화에 정상적인 야구선수가 할 법한 단어가 끼어들었다. 루틴이라니.

케이시의 정상적인 말을 듣고 폴리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예민한 투수치고 오래가는 투수 못 봤어. 야, 가자! 맛있다니까?”

“후, 그러니까 네가 무식하다는 소문이 도는 거야 폴리. 이건 자기최면…….”

어느새 대화 소리가 꽤 커진 것 같다. 슬슬 진압조인 내가 투입돼야 할 차례인 것 같은데…….

“루키들? 그만 싸우고 오늘 저녁은 나하고 먹지. 매일 싸우는 거 질리지도 않아?”

폴리의 어깨에 올린 두툼한 손에서 거부를 거부하는 느낌이 풍겨 나온다.

“좋죠, 좋아요 미기.”

내 칼 같은 대답에 나머지 셋은 그저 버블헤드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 * *

디트로이트, 고급 레스토랑.

“원래 경기 끝나고서는 이렇게 먹지 않는데, 나도 오랜만이군.”

“아, 체중조절은 아직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이제는 사소한 것 하나도 신경 쓸 나이니까. 일단 먹자고.”

시간 관계상 코스 요리는 아니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충분히 많은 음식이 쌓여 있었다.

다들 먹느라 조용하다. 심지어 체중조절을 한다던 미기조차도.

“그래, 다들 요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지?”

대뜸 말을 거는 미기.

“그렇죠. 팀 성적도 올라가고 있고. 야구도 잘 되고.”

이삭이 냅킨으로 자신의 입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음, 그래. 좋은 현상이야. 자신감은 루키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

“미기도 그랬어요?”

“당연하지. 나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는 모든 선수가 그런 시절이 있었을걸? 단지 티를 내냐, 못 내냐의 문제지.”

“하긴, 유망주가 까부는 걸 싫어하는 구단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선수의 사생활에 약간의 터치를 하는 구단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양키스는 턱수염을 금지하고 있고.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 좋아. 루키는 루키다워야지. 다섯 살짜리 어린이처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고, 부딪히고, 싸우고. 그래야 루키답지. 하지만.”

미기의 어조가 무거워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먹던 음식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제 곧 벽이 다가올거야. 하루에도 몇 명씩 사라지는 이 정글에서 새로운 방문자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으니까. 지금은 당장 표본이 쌓이길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케이시가 이삭에 말에 덧붙였다.

“이미 분석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저희의 모든 걸.”

“그렇지. 물론 규격 외의 루키에겐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긴 한데…….”

말을 하며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미기.

“그렇지 않은 선수가 대부분이니까. 뭐, 잘할 거라고 믿어. 모두가 겪은 단계고, 우리 팀의 루키들도 훌륭하게 이겨 내겠지. 안 그래?”

모두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내가 입을 연다.

“그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훌륭하게 이겨 낼 수 있죠.”

“오, 붐. 정말이야?”

익살스런 말투로 대꾸하는 미기.

“그럼요. 전 알아요. 전 미래를 볼 수 있거든요.”

“하하, SF인가? 어쩐지 공을 너무 잘 친다 했어.”

“부딪혀 쓰러질 사람들이면 지금 여기 붙어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렇지?”

토미존 이후 올라오지 않는 구속에 절망하고, 결국 보직까지 바꿨던 폴리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넘어와 팀이 두 번 바뀔 때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마이너에서 자신을 다듬던 이삭도.

음…… 그냥 에고가 강한 케이시도.

계획적이진 않았지만, 모두 돌아오기 전에 훌륭하게 메이저리그에서,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던 선수였다.

물론 나도.

걱정과 근심, 후회는 고교야구 시절에 다 버려두고 왔다. 지금 내게 남은 건 성공에 대한 갈망과 누구보다 강한 내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은 욕망뿐이다.

* * *

서울, 대표팀 감독실.

한 남자가 감독실에 들어와 김서문 감독에게 종이를 건넸다.

“감독님, 구단들이 보낸 공문입니다. 대표팀 엔트리에 있는 선수들을 차출할 수 없다는 내용인 것 같은데…….”

“뭐?”

김서문 감독이 종이를 빼앗듯 받아서 읽었다.

[……시즌과 겹치는 올림픽 경기 기간 동안 선수 차출의 어려움이 있으며…….

차출 가능한 대체 선수 목록을 함께 보냅니다.]

함께 첨부된 대체 선수 목록을 보는 김서문 감독의 미간이 급격히 찌부려진다.

“후, 알겠네. 나가 보게.”

직원이 나가고 김서문 감독 혼자 남아 있는 감독실.

김서문 감독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이 감독님. 방금 공문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올림픽에 일본은 사활을 걸었어요, 이런 엔트리로는 우승 못합니다.”

[허허,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구단 프런트 쪽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요즘 감독은 프런트 눈치도 봐야 하는 거 알고 있잖나.]

“아무리 그래도, 후, 저번에 약속하셨잖습니까. 1루수에 대산이하고 우익수 광민이는 가능하다고 분명…….”

[이보게, 우리 팀 클린업 두 명이 시즌 중에 빠지는 건데, 다른 구단도 그에 걸맞은 선수들이 빠져야 하지 않나? 근데 명단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군, 시즌을 중단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구단도 설득하겠습니다. 이대로라면 우승은커녕 국제대회에서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도하 참사, 다시 볼 수도 있습니다.”

[잠깐, 말이 좀 이상한데? 크흠, 됐네. 대산이나 광민이 대신 올린 선수들도 훌륭한 선수들이야. 이제 경기 준비할 시간이군. 끊겠네.]

그렇게 전화하고, 거절의 뜻을 듣기를 몇 번.

김서문 감독은 허탈한 표정으로 감독실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일본은 다르빗슈며, 오타니도 데려가려고 전방위적으로 메이저 구단에 요청하는데, 허, 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텅 빈 눈빛으로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김서문 감독이 갑자기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부를 보며 고민하던 김 감독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짐입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능숙한 한국어.

“……저번 제안, 아직 유효합니까?”

[물론이죠. 아직 유효한 제안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스폰서? 필요 없습니다. 대신…….”

[흙탕물로 만들어드리죠. 아주 힘센 미꾸라지처럼.]

외국인인데도 능숙하게 한국 속담을 응용해서 대답하는 짐.

“자신 있습니까?”

[누구나 자신의 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걸 싫어하기 마련이죠. 피하는 입장은 어렵겠지만, 저야 그저 여기저기 튀기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니까요.]

“일이 잘 진행된다면, 저도 서포트하죠. 제가 감독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김사범 선수의 아시안게임 선발을 최대한 돕겠습니다.”

[하하, 반가운 이야기네요. 좋습니다. 음…… 마침 며칠 후에 방송이 계획되어 있네요. 그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짐과의 전화를 끊은 김서문 감독의 얼굴은 아직 굳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MBN의 ‘나의 3일’에서 김사범 편이 방송됐다.

[김사범, 팀 내 융화 걱정 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 김사범(20)이 최근 방영된 관찰 프로그램에서 팀 동료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다. 김사범은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메이저리그에서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는 김사범.

최근 방영된 MBN의 나의 3일에 나온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단장 알 아빌라와의 인터뷰 장면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다.

인터뷰에서 알 아빌라 단장은 김사범을 디트로이트의 10년을 이끌어 갈 인재라고 말하며…….]

[미구엘 카브레라, “김사범은 환상적인 선수다.”]

[메이저리그 홈런 1위 김사범, 올림픽엔 없다?]

[올림픽 예비 엔트리 발표 전, 네티즌은 라인업 예상으로 시끌시끌.]

[일본 야구 대표팀 올림픽 엔트리 발표, 오타니, 다르빗슈 포함. 이치로가 타격 및 전력분석 코치.]

* * *

서울의 한 음식점.

맛깔스러운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이 단장님, 한 잔 받으시죠. 격무에 바쁘실 텐데 이 산삼주 한 잔이면 피로가 싹 가실 겁니다.”

“하하, 최 단장님이 주시는데 뺄 순 없죠. 여기 저도 한 잔 드리겠습니다.”

두 남자가 술을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누고 있다.

그러기를 잠깐, 최 단장이라 불린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흠, 그나저나. 요즘 대표팀 때문에 여론이 시끄러운 거 같더군요.”

“아, 저도 봤습니다. 김사범이라는 선수를 선발하느니 마니, 말이 많더군요.”

“이제 2군 생활 마치고 메이저에서 한 달 남짓 뛴 선수인데…… 언론에서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거 같아요.”

“그렇긴 합니다. 야구 대표팀이라는 게 1+1=2처럼 간단하게 전력이 상승되는 게 아닌데요.”

“뭐, 잘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긴 하죠. 어쨌든 제 생각에는 좀 더 검증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선수인 것 같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야구 팬들의 걱정을 덜어 주려고 대산이와 광민이를 엔트리에 포함시키려고 합니다. 허허”

“허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저도 민후를 엔트리에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내리고 오는 길인데, 이거 이 단장님하고는 역시 맘이 맞습니다. 허허허”

“대승적인 판단이십니다. 다른 구단들도 부디 대승적인 차원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텐데…….”

“이를 말입니까, 아마 다들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요즘 필드에서 잘나가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한번 같이 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최 단장님과 같이 그린을 돈 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요. 빠른 시일 안에 같이 나가시죠.”

* * *

[올림픽 대표팀, 예비 엔트리 제출 완료. 각 구단별 주전급 선수들 총 집합.]

[올림픽 야구 예비 엔트리, 김사범 미포함. 관계자 ‘프리미어 12에 출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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