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50화 (50/175)

50화 김사범, 2020시즌(vs LA 에인절스)(4)

[트라웃 선수, 결국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합니다.]

[조심해야 해요. 트라웃 선수가 위력적인 이유는 좋은 타자이기도 하지만 좋은 주자이기 때문이거든요? 최근 도루 개수가 줄었지만 방심하면 안돼요.]

[말씀드리는 순간, 트라웃 선수 초구에 뜁니다!]

“세잎!”

[역시 트라웃 선수입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오늘 정말 본인의 모든 능력을 보여 주네요. 수비, 타격, 주루까지 대단합니다.]

[2루에 주자를 놓고 오타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한 방이 있는 선수입니다. 조심해야 해요.]

경기 중반인 6회, 1실점으로 잘 버티던 버로우즈는 끝내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오타니 선수의 투런포입니다. 아, 이렇게 되면 경기 몰라요. 에인절스는 사력을 다해 이 점수를 지켜야 합니다.]

[버로우즈 선수가 내려가고 블레인 선수가 올라옵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블레인이 연습투구를 하는 동안 땅을 고르며 에인절스의 덕아웃을 봤다. 환호하는 선수들. 즐겁게 웃고 있는 오타니와 트라웃.

음, 아무래도 난 성격이 나쁜 것 같다. 남의 덕아웃이 즐거운 분위기인 건 영 맘에 안 든다.

[블레인 선수의 호투로 6회 말로 넘어갑니다. 상위타순부터 시작하는 이닝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적어도 동점까지는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기회가 더 있을 수는 있지만, 경기 종반까지 가게 되면 선수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든요.]

이삭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카스테야노스는 아쉽게도 내야 팝 플라이. 주자는 1루, 원아웃.

[김사범 선수, 집중해야 합니다.]

[존에 들어오는 공에만 반응해야 해요. 물론 4회의 홈런이 빠져나가는 공을 밀어서 만든 거긴 하지만, 결국 좋은 타구는 스트라이크 존 안의 공을 공략할 때 나오는 겁니다.]

거르려나? 타석에 서서 땅을 다지는 내내 포수가 일어서지 않기만을 바랐다.

투수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일단 고의사구는 아니군.

나와 정정당당히 승부해 준 투수에게 감사를, 에인절스에게도 감사를.

빠악!

그리고 나를 위해 항상 소리 질러 주는 팬들에게도 감사를.

[홈런! 또 홈런입니다!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는 김사범 선수! 스코어는 이제 4:3! 오늘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에인절스 벤치의 실수입니다. 어제 타격감이 좋던 카브레라 선수를 의식해서 어렵게 승부를 가져가려 했던 거 같은데, 그럴 거면 차라리 고의사구를 지시했어야죠. 실제로 오늘 카브레라 선수는 무안타거든요? 물론 타구의 질은 좋았습니다만.]

[심지어 오늘 홈런까지 기록했던 김사범 선수인데 말이죠, 연속화면으로 보시죠.]

[1구에서 바깥쪽 볼, 2구는 슬라이더를 김사범 선수가 커트합니다. 3구째 하이 패스트볼에 배트가 나온 게 승부를 지시한 요인이…….]

빠악!

[어어? 카브레라 선수의 타구가! 담장을! 넘습니다!]

[하하, 재미있는 상황이네요. 저희가 해설을 하는 동안 카브레라 선수가 초구를 때려서 홈런을 만들어 낸 거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건 에인절스 벤치의 판단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잠시 후.

“스트라이크! 아웃!”

7회 블레인, 8회 폴리, 9회 그린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이 에인절스의 실낱같은 희망조차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에인절스를 상대로 스윕, 아주 기분 좋은 밤이다.

* * *

늦은 밤, 방송국의 스튜디오.

PD로 보이는 남자와 편집팀으로 보이는 남자의 대화가 스튜디오에 울려퍼진다.

“오늘 경기 장면들 편집 다 했어? 연장경기는 없잖아?”

“곧 다 됩니다. 일단 디트로이트 경기가 제일 먼저 완료돼요!”

“그럼 일단 디트로이트부터 시작하지. 나머지 경기들도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펜스 씨? 준비됐죠? 갑니다. 3, 2, 1, go.”

PD의 사인에 맞춰 일제히 돌아가는 카메라.

[안녕하세요. 투나잇, 빅리그의 펜스입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메이저리그엔 놀라운 플레이가 가득했습니다. 그 첫 번째 경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LA 에인절스의 경기를 먼저 보시죠.]

대형 화면에 트라웃과 김사범, 오타니 그리고 미기의 홈런 장면이 나왔다.

[와우, 홈런 쇼네요. 관중들이 즐거워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지는군요. 에인절스에서 트라웃과 오타니, 타이거즈에서 사붐과 카브레라가 홈런 쇼를 펼쳤지만, 홈런 개수에서 앞선 타이거즈가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킴과 트라웃, 자료 띄워! 프롬프터에 적극적으로 비교하라고 쓰고!”

[양 팀의 핵심 선수인 트라웃과 킴의 툴 대결도 흥미를 끄는 요소였죠. 두 선수 모두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 경기였는데, 결국 승자는 킴이 차지했습니다. 두 선수의 기록을 보시죠.]

마이크 트라웃 - 36경기 타율 0.343 출루율 0.442, 장타율 0.577 Fwar 4.2

사범 킴 - 35경기 타율 0.362 출루율 0.531 장타율 0.899 Fwar 6.3

[트라웃의 성적은 평범합니다. 네? 어떻게 저 성적이 평범하냐구요? 트라웃이니까요. 하지만 킴의 성적은…… 절대 평범하다고 말하지 못하겠네요.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35경기에서 21개의 홈런, 17개의 도루로 시즌의 1/4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20-20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늘 승리 인터뷰 준비해.”

[놀라운 건 킴은 메이저리그 10년 차가 아닌 루키란 거죠! 하지만 자신감은 루키답지 않은 것 같네요. 오늘 승리 후 인터뷰를 보시죠.]

“지금!”

대형 화면에 나오는 김사범의 인터뷰.

“요즘 들어 트라웃과 붐 선수를 비교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트라웃은 명백한 리그의 지배자입니다. 잘 달리고, 잘치고, 잘 잡죠. 저도 고등학교 시절 그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한 적이 많습니다. 프로의식도 마찬가지고요, 본받을 점이 많은 선수입니다. 하지만 저도 충분한 강점을 가진 선수입니다. 그리고 좀 더 발전해서 그보다 더 잘 치고, 잘 잡고, 잘 달리는 선수가 될 겁니다.”

“홈런 타구 준비해. 첫 번째 꺼.”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루키군요. 그의 말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전설적인 선수의 시작을 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판단은 후대에 맞기고 그의 타구가 만들어 낸 특별한 상황을 보면서 다음 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큐!”

대형 화면에 의자 사이에 낀 공이 잔뜩 클로즈업된 장면이 나온다. 서서히 줌아웃 되는 화면이 되감기되면서 김사범의 홈런 타구가 의자 사이에 박히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 줬다.

“좋아, 다음 경기 준비됐지?”

PD의 지시에 여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 * *

텍사스의 한 병원, 1인 병실에 한 여성이 누워 있다. 벽면에 붙어 있는 TV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거슬리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

“아빠, 다른 거 보면 안돼요?”

“잠깐만, 보고 싶은 게 나오면 말하렴.”

양팔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 때문에 조작이 어려운 그녀 대신 그녀의 아버지가 대신 리모컨을 조작했다.

“아빠, 이전 채널이요.”

한참을 채널을 넘기던 그녀는 마침내 보고 싶은 채널을 찾을 수 있었다.

화면 안에는 야구 유니폼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동양인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야구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플레이하고 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제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 더 성장할 거고, 이곳 디트로이트도 마찬가지로 성장할 겁니다. 앞으로 보여 주고, 증명하겠습니다.]

“……멋지네.”

그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옆에 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반응했다.

“하하, 아빠도 맘에 드는구나. 자신감 있는 남자는 언제나 멋있지.”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알잖아요.”

그녀가 보인 자연스럽지만 단호한 반응.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왜? 멋진 남잔데. 예전엔 야구 좋아했었잖아. 어디 보자. 유니폼을 보니까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선수인 거 같은데? 미튜브에 보면 하이라이트가 있을 거 같은데…….”

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기 시작한 그녀의 아버지. 곧 핸드폰 화면을 그녀에게 보여 줬다.

“마침 하이라이트가 있네, 한번 봐봐, 쓸 만한 선수인지 아니면 한 시즌 반짝할 선수인지. 예전엔 곧잘 구별해 냈잖니.”

그녀는 포기한 듯 화면을 쳐다본다. 이내 무섭게 집중하는 그녀.

그때 병실로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물었다.

“필?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아 네, 가능합니다. 잠시만요. 수리,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보고 있으렴.”

끄덕거리는 고개를 뒤로한 채 필은 병실을 나섰다.

병실 밖, 복도.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의 말에 필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인가요? 희귀한 케이스라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음, 사실 국내의 수술 가능한 병원은 모두 알아봤지만, 담당의의 수술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럼…….”

“마침 환자분이 태어나신 한국에 저명한 의사분이 있어 혹시나 해서 자료를 보내 봤는데…….”

“가능하다고 합니까?”

“대략적인 상태만 보낸 거긴 하지만, 일단 더 자세한 정보제공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려 온 겁니다.”

“네, 동의합니다. 물론이죠.”

오랜만에 본 희망인지, 격하게 흔들리는 필의 고개.

“그럼 일단 바로 자료를 보내겠습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돈은 충분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상태가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모든 걸 포기한 상태로는 수술은커녕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탈 수 없을 겁니다. 오랜 투병생활에 지친 건 당연하지만, 일단 그 부분부터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우리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게 죄송할 뿐이죠. 그럼.”

기쁜 얼굴로 병실에 들어가려던 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뭐라고 말하지?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병실의 문을 연 필의 눈에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아빠, 이 선수 경기장면 구해다 줄 수 있어요? 이번 시즌이 루키 시즌인데, 도저히 루키라고 볼 수 없어요. 이 선수, 이대로 가면 역대급 선수가 될거에요.”

언제나 침대에 축 쳐져 TV만 보던 그의 딸이 침대에 앉아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 그만큼 대단한 선수니?”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고, 인터뷰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선수예요. 할 수만 있다면 경기장에서…… 아…….”

야윈 몸을 움직이며 열성적으로 말하다 같이 흔들리는 링겔을 느끼고 급격히 가라앉은 그녀의 표정.

필은 딸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거 같은 아픔을 느꼈다.

“……아빠가 구해 볼게, 일단 진정하고 쉬고 있으렴.”

자리에 눕는 딸을 뒤로하고 병실을 나온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 나 필이야. 아니, 아직 별다른 건 없어. 자네 혹시 디트로이트 쪽에 아는 사람 있나? 아니, 타이거즈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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