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67화 (67/175)

67화 김사범, party?

[Catch me at the X with OG at a Yankee game. Shit, I made the Yankee hat more famous then a Yankee can]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

나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붐! 재미없어요? 뭐해요?”

악마의 피를 제 몸에 가득 채운 짐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SEE-YA! 저지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겼습니다!]

“와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스크린을 향해 팝콘이며, 과자를 던졌다.

혼돈, 파괴, 망각. 이곳은 지상에 펼쳐진 지옥이다.

일주일 전. 코메리카 파크.

“붐! 붐은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니까요?”

“아, 이게 습관이라, 곧 들어갈게요.”

프로야구에서 10년을 넘게 뛰면서 마무리 훈련을 당연하게 하다 보니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체력 트레이너가 준 종이뭉치를 들고 휑하니 사라지는 선수들, 결국 지금까지 디트로이트에 남은 건 나와 몇몇 녀석들뿐이다.

마이너에서는 그 쿨함에 당황했지만 이제 미국 생활 2년 차인 나는 익숙하게 나만의 마무리 훈련을 하기로 했다. 물론 그 끝은 지금처럼 누군가 와서 말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아하하, 확실히 그런 면은 좀 다르네요.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부상 방지를 1순위로 생각해요. 시즌 내내 혹사시켰던 몸에 푹 쉬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죠.]

“그래도 좀…… 아직은 익숙하지 않네요.”

[그런데, 구장에서 운동하려고 귀국 날짜를 그렇게 미룬 거예요? 붐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훈련해도 되잖아요?]

이 말만 기다렸다.

처음 짐이 내게 귀국일을 물어봤을 때, 나는 한국에서처럼 메이저리그에도 시상식이 열린다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귀국일을 알려준건데, 내 말을 듣고 짐이 다시 되물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얼마 후, 불현듯 메이저리그엔 따로 시상식이 없다는 게 생각났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뭐, 여기도 나름 정들어서요. 짐의 의견이 그렇다면 다음 주에 귀국할까요?”

[네? 뭐, 사범이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되죠. 항공편, 다시 잡아 놓을까요?]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여기 있으니까 트레이너들이 못살게 굴어서 운동이 안 되네요.”

[푸하하, 알겠어요. 자세한 건 예약하고 나서 알려 줄게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짐과의 통화가 끝난 후, 난 짐을 챙겨 구장을 나섰다.

“여, ROYMVP 아냐?”

“뭐야? 그 끔찍하면서 기분 좋은 단어는?”

어차피 구단을 나서도 딱히 갈 곳은 없다. 아이쇼핑이라도 할까 하다 결국 시즌 중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이삭의 집에 찾아갔다.

“왔어?”

“아직도 귀국 안 한 거야?”

마침 이삭의 집엔 폴리와 케이시도 와 있었다.

“도대체 너희는 왜 집으로 안 가는 거야?”

나야 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치고, 이 녀석들은 왜 집에 안 가는지 모르겠다.

내 질문에 소파에 누워 있던 케이시가 대답했다.

“월드시리즈 보고 가려고.”

“그건 집에서 봐도 되잖아.”

“어차피 내년부터 월드시리즈가 끝나야 집에 갈 텐데, 적응훈련이지.”

뭔가 이상한데 설득력 있는 의견이다. 합격.

“집에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겠지. 월드시리즈 끝나고 올 테니까 어쩌고 하면서.”

어우야. 폴리, 케이시 아프겠다.

“정답.”

결국 창피해서 못 간다는 거네.

그렇게 쓸데없는 잡담을 하며 이삭이 갖다 바친 공물들을 해치우고 있다 보니, 정신 나간 폴리가 당연하게 정신 나간 소리를 뱉었다.

“양키스가 올라가는 게 거의 확실하지?”

“오늘 보니까 그렇네.”

“그럼 월드시리즈 최종전에 파티 열자.”

“그게 뭔 소 같은 소리야?”

파티? 갑자기 그걸 왜 열어?

“결국 양키스가 우리를 떨군 거잖아. 마지막 두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으면 적어도 타이브레이커는 갔을 테니까.”

왜 우리가 진 걸 양키스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양키스가 떨어지길 기원하는 파티를 열자고. 노래 크게 틀고, 큰 화면으로 보면서 모두 다 양키스를 저주하는 거지.”

아, 괜히 들었네. 역시 그냥 소 같은 소리였어.

[나 결혼한다. 시즌 끝나고.]

바로 그때, 갑자기 엄청나게 얄미운 사람이 생각났다. 빌어먹을 핀 스트라이프.

“콜. 난 좋아.”

그렇게, 우리는 정신 나간 양키스 타도 파티를 열기로 했다.

* * *

[으하하하, 그러니까 디트로이트의 루키 4명이 모여서 ‘엿먹어라 양키스’ 파티를 연다는 거죠?]

“네. 재미있겠죠?”

[7차전까지 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럼 뭐, 그냥 우리끼리 놀면 되죠.”

[재미있겠네요. 나도 껴도 되요?]

짐이 깜빡이도 안켜고 훅 들어왔다.

“어…… 될걸요? 초대 조건이 양키스 팬만 아니면 됨. 이거든요.”

[그날 하루 메츠의 팬으로 살죠 뭐. 어차피 사범에게 이야기할 것도 있고, 재미있겠네요.]

이 아저씨, 그냥 어린애들 노는데 끼고 싶어서 그러는거 같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아저씨 마음은 아저씨가 이해해 줘야지.

“좋아요. 그날 봐요.”

비행기 표 예약도 끝났다. ‘엿먹어라 양키스’ 파티가 끝나고 다음 날 오후로.

그리고 거짓말처럼 양키스와 다저스는 치고받으며 6차전까지 혈투를 벌였다.

* * *

파티 당일, 아침.

“사범, 여기 티켓.”

“요즘은 다들 인터넷으로 코드만 보내 주지 않아요?”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만의 맛이 있는 법이죠. 퍼스트 클래스니까 가는 데 불편한 건 없을거에요.”

처음 미국으로 건너올 때, 그리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비지니스 좌석이었는데, 역시 야구선수는 야구를 잘해야 한다.

“내 덕분에 돈 좀 벌었나 봐요?”

“구단에게서 좀 삥 뜯었죠. 잘했죠?”

가끔 짐의 진짜 국적이 어딘지 궁금할 때가 있다. 삥 뜯었다니.

“아무튼, 이거 때문에 직접 온 거 같진 않고, 무슨 일이에요?”

“아, 그거요? 계약 때문이죠 뭐.”

계약?

“무슨 계약이요?”

“디트로이트가 계약을 제의했어요. 8년 200…… 아니 2억 달러.”

어…… 일 년에 2백 50억?

“아직 협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 기간이나 금액은 더 올라갈 거예요. 뭐, 그냥 찔러보기식 제안이죠. 이런 헐값으로…….”

내가 올린 성적에 비해선 헐값이지만,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1년을 뛴 선수에게 주는 연봉으로는 충분히 많다.

짐이 계속 내게 말했다.

“팀 페이롤이 그렇게 크진 않지만, 내년엔 연봉보조도 끝나니 좀 여유가 생길 거예요. 거기다 상징성이나 사범이 연말에 트로피를 좀 수집하면, 구단을 한계까지 쥐어짜는 것도 어려운 건 아니죠. 군대 문제가 좀 걸리긴 하는데. 그거야 뭐, 내가 협상하기 나름이니까.”

잠깐, 이거 잘못하면 미래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 그 두 녀석은 꼭 여기로 와야 한다. 돌아오기 전에도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둘 다 뽑혔던 녀셕들인데.

“음. 일단 좀 미룰 수 있죠?”

“계약 자체를요? 왜요?”

“짐의 말대로 아직 군대도 남았고, 좀 더 내 가치를 높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어차피 이번 시즌의 활약으로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계약하고 홀가분하게 시즌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뭐, 그냥 제 생각은 그래요. 당장 내년에도 나는 이것보다 더한 활약을 할 예정인데. 그때 가서 아쉬워하고 싶진 않아요.”

일단 올해는 절대 안 된다. 구단이 적어도 숨은 쉴 수 있게 만들어야 그 녀석들에게 투자할 돈과 명분이 생길 테니까.

그리고, 꼭 지금 계약을 하지 않아도 구단이 저 조건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들고 오게 만들 자신이 있다.

‘포수 쪽도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포스팅 대상이었지? 포스팅 피가 둘이 합쳐 1500만은 안 넘었던 것 같은데…….’

“뭐, 사범의 의견이 중요하니까요. 알겠어요. 구단에게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죠.”

“아 근데…….”

“네?”

“크흠, 60만 달러 이상은 받고 싶은데, 구단이 그 정돈 주겠죠?”

연봉 조정 전에는 구단이 정해 주는 금액을 받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운 타자가 최저연봉을 받는 건 좀 그렇잖아.

“하하하, 글쎄요. 계약이 아니면 뭐, 구단에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긴 한데, 슈퍼 에이전트 짐을 믿어 봐요.”

어우, 자기가 자기를 이름으로 불렀어.

그 뒤로 귀국 후 스케줄에 대해 논의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밤이 됐다.

“반가워요. 제이슨 폴리입니다.”

“아하, 사범에게 많이 들었어요. 경기에서도 봤고. 반가워요. 사범의 에이전트 짐 맥킨입니다. 그냥 편하게 짐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저야 좋죠. 저도 폴리라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다들 그렇게 부르거든요.”

집이 제법 파티 분위기가 난다. 물론 난 미국의 파티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본 미드에서 많이 봤었다.

“훌륭한데요? 아직 사람들은 안 왔나 봐요?”

짐의 말에 폴리가 대꾸했다.

“곧 오겠죠.”

한 시간 후, 폴리의 말대로 이삭의 집은 꽤 북적거렸다. 남자로만. 남자들로만.

“이삭.”

“왜?”

“보통 파티에는 남자하고 여자하고 골고루 초대하지 않아?”

“저기 있잖아. 여자.”

“아니, 네 이모님 말고.”

내가 본 드라마에선 막, 막 그러던데.

“우리가 춤추면서 놀 것도 아니고 뭔 문제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말도 잘 통할걸?”

“어…….”

“무엇보다, 다들 양키스를 싫어해. 아, 그리고. 혹시라도 보스턴을 욕하지는 마. 몸에 바람구명 뚫리고 싶진 않지?”

생각해 보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같이 다닌 우리들은 이상할 정도로 여자와 얽히는 일이 없었다.

하하, 하하…….

“커쇼! 저 새끼들 대갈통에 바람구멍을 내 버려!”

우! 우! 우! 우!

뉴욕을 대표하는 힙합 아티스트인 JAY Z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3명의 디트로이트 선수와, 1명의 에이전트, 그리고 13명 정도의 보스턴 팬이 함께 월드시리즈 최종전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아,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예비 MVP다.

[11회 초, 다저스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1사 3루, 타석엔 저스틴 터너입니다.]

[양키스의 투수는 병헌 킴입니다. 포스트시즌에서 6경기에 출전해서 8과 1/3이닝, 4개의 볼넷, 그리고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 동양인 애송이를 부숴 버려!”

“그래! 차라리 부숴 버려!”

동양인 애송이가 동양인 애송이에게.

[빠른 승부를 가져갑니다. 4구 만에 터너를 돌려 세우는 킴.]

[체인지업이 정말 좋네요. 예전 다저스에서 뛰었던 류의 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우우!!

나중에 양키스하고 보스턴하고 붙는 펀웨이 파크에 꼭 가 볼 거다. 물론 호신용 샷건을 가지고. 양키스가 이기고 있다면 거긴 현세의 지옥이 되겠지.

[투아웃, 3루에서 코디 벨린져가 초구를 타격합니다. 공은 멀리 뻗지 못하고 내야에서! 아웃입니다.]

한 이닝이 지날 때마다 테이블에 쌓여 있던 술이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쯤.

[마침내 2020시즌 월드시리즈의 승자가 결정됐습니다! 승자는 뉴욕 양키스!]

“으아아아아악!”

“저 빌어먹을 다저스 새끼들! 저걸 못 이겨! 크아악!!”

“아저씨!! 그거 부수면 안 돼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실내, 아마도 이삭은 파티 멤버를 이렇게 초대한 걸 후회하고 있을 거다.

물론 난 이럴 줄 알고 이닝이 시작하기 전에 집 밖에 나와 있었다.

공장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런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별이 오늘따라 반짝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처럼, 난 다음 시즌에도 계속해서 빛날 거다.

2020 시즌 성적

타/출/장 - .375(1위), .520(1위), .849(1위)

OPS - 1.369(1위)

OPS+ - 265(1위)

홈런 - 50(리그 1위, 전체 2위)

도루 - 62(2위)

타점 - 154(1위)

OWAR(공격 WAR) - 11.2(1위, 역대 11위)

DWAR(수비 WAR) - 5(1위, 역대 4위)

WAR - 16.1(1위, 역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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