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김사범, 2021시즌(강팀의 조건)(2)
내 이름은 시미즈 루이, 디트로이트의 투수다.
그리고, 저기 베이스를 유유히 도는, 빛나는 선수의 동료다.
“여기로도 던질 수 있어?”
펑
“우와!”
어렸을 때,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제구와 손재주는 자신 있었다.
그렇게 리틀야구를 거쳐 중학야구,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고교야구.
난,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있었다.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하지도 못할 정도로.
“안녕하세요. 페이스 달턴입니다. 일본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할 줄 압니다.”
마지막 끈을 잡으려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처음 페이스와 만났을 때, 나는 그저 멍하니 페이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얀색 피부의 덩치 큰 외국인이 교복을 입고 어설프지만 제법 또렷한 일본어를 쓰는 건, 그때 나로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부 활동을 위해 찾아간 야구부, 특기생이 아닌 일반 입부를 해야만 하는 내 모습이 비참해서 마지막 날에야 부실을 찾아갔다.
거기서 다시 보게 된 페이스.
우린 자연스럽게 배터리가 됐다.
“공을 던지기 전에 조금 더 주변을 살펴봐.”
“주자는 항상 잘 보고 있어…….”
“아니, 그거 말고. 타자에게 집중하라는 거야. 타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거나, 그 전 상황에 비해 손이 내려갔다거나. 배트는 어떻게 쥐고 있는지 같은 거.”
“그건 포수가…….”
“능동적으로 게임을 풀어 나가지 못하면 결국 반쪽자리 선수일 뿐이야.”
날 붙잡고 경기장 안팍에서 리드해 주는 페이스 덕분에 난 제법 훌륭한 성적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페이스와 나는 성격 때문에 선배들에게 미움받았지만.
“고시엔이다!”
“우와아아아악!”
우리가 2학년이 됐을 무렵, 현 대회 4강이 최고 성적이던 우리 고등학교는 고시엔에 진출했다.
“정말 흙이 검어.”
“앞으로 몇 번은 더 볼 장면이야.”
고시엔의 검은 흙을 처음 밟았을 때의 느낌이란.
한없이 기뻤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짓누르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데에서 온 부담감이었다.
그리고 프로.
운이 좋아 같은 구단에 입단한 나와 페이스는 고등학교 때처럼 배터리로 나와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메이저리그에 가자.”
“응……?”
“우린 거기서도 성공할 수 있어. 여긴…… 시간낭비일 뿐이야.”
처음엔 일본 생활, 특히 야구문화를 답답해했던 페이스의 농담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진담이었지만.
물론 나는, 언제나처럼 페이스가 리드해 준 대로 따랐다. 페이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 볼로 뭘 하겠다고 온 거야! 내려가!”
저번 등판, 난 처음으로 내가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페이스를 탓했다.
‘도대체 왜 날 여기에 데려온 거지?’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내 뒤에 있었으니까.
물론 내 앞에도 항상 있었지만.
언제나, 당연한 듯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다이아몬드를 도는 저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빛이 나고 싶다.’
* * *
내 이름은 이삭 페레데스, 디트로이트의 2루수다.
그리고 저기 베이스를 유유히 돌고 있는 곰 같은 놈의 친구다.
16살, 어린 나이로 프로 야구선수로서 미국으로 왔다.
원인? 단순했다. 지독한 가난, 그리고 사회.
큰형과 나를 포함한 5남매, 어릴 적 큰형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좀 더 크면 약을 팔아서 좋은 집, 맛있는 밥을 먹게 해 줄게. 꼭!”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큰형의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거리의 구석에는 언제나 눈이 풀려 겔겔대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글러브와 스파이크, 그리고 먹을 걸 준다는 소리에 시작한 야구. 난 재능이 있었고, 뛰어난 선수였다.
알고 보니 많은 돈이 필요한 스포츠였지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경기에 뛸 수 있었다.
“이삭, 할 수 있지?”
“그럼요, 당연하죠.”
다행히도 피곤한 상태에서도 내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고, 때마침 미국 외의 다른 지역으로 눈을 넓혀 가고 있던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터 눈에 들어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때 그 기분이란.
“이삭, 내일부턴 디트로이트에서 뛰게 될 거야. 짐을 꾸리도록.”
2017년, 팀이 날 트레이드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내 실력은 성장했고, 키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19년, 마침내 메이저리그가 손에 잡힐 거 같던 그 해의 캠프에서 난 덩치가 큰 동양인을 만났다.
“네가 소문의 아시안 루키야? 반갑다. 난 이삭 페레데스, 너와 같은 유격수다.”
“……반갑다, 김사범이다. 포지션은 유격수.”
처음이라 어리버리하면서도 더듬더듬 말을 섞어 가며 적응하려 하는 모습이 어릴 적 나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째.
중간에 내 포지션을 양보하기도 했고, 숨길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나기도 했지만, 이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덩치 큰 친구의 모습에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덩치만큼 키가 커서 같이 걸어도 나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키 작은 나는 뭐, 더 빨리 걸으면 되니까.’
맛있는 엄마의 밥과, 큰형의 가게를 위해서.
* * *
내 이름은 케이시 마이즈, 디트로이트의 투수다.
그리고 저기 저 곳에서 오연하게 경기를 지배하는 녀석의 사이드킥이다.
난 항상 1등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어릴 적 차고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대학교 3학년 시절, 부상으로 인해 등판하지 못했을 때도 그 사실은 변함없었다.
“디트로이트는 오번 대학(Auburn University) 소속 케이시 마이즈를 지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전체 1순위, 750만 불의 계약금.
사실 돈은 크게 의미 없었다.
아니, 의미는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1등, 날 짜릿하게 만드는 마성과 같은 그것이었으니까.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더 높은 곳으로.’
디트로이트는, 그저 발판이었다.
팀은 곧 리빌딩에 들어갔고, 난 그 순간부터 일개 마이너리거가 아닌 팀에서 손꼽히는 유망주가 됐다.
붐이 나타나기 전까진.
더블A, 시즌이 시작하고 한 달 남짓 지난 뒤 합류한 붐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난 그 순간 내가 2등으로 밀려날 것임을 예감했다.
익숙하지 않은 괴로운 순간들, 그리고 마지막에 날 잠식했던 감정은 그와 내가 야수와 투수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게 목표다. 월드시리즈는 과정일 뿐이야.”
붐과 처음 대화했을 때, 나는 내 안의 괴로움과 안도감 사이에서 발악과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붐이 보인 눈빛.
그 눈빛을 보고 나는 약소팀의 에이스라는 목표에서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나는, 이 팀에서 시즌의 가장 끝, 그 순간에 제일 빛나는 사람이 될 거다.
* * *
큼, 내 이름은 호세 미구엘 토마스 카브레라. 디트로이트의 지명타자다.
그리고 저기 홈을 밟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녀석의 롤 모델이다.
나는 늙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야구선수로서 노쇠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느껴지는 내 몸의 무게.
그리고 그 사실이 느껴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가족을 향해 휘둘러진 주먹.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시 다잡았을 땐 이미 팀의 천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해볼 거야. 딕, 도와줘.”
“얼마만이지? 네가 루키였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군.”
“그만큼 난 절실해.”
“……그래, 해보지.”
지난 몇 년간의 내 행동에 대한 마지막 속죄를 위해 재활이 끝난 뒤 생전 하지 않던 추가 훈련까지 하고 난 뒤 합류한 캠프.
그 곳엔 웬 덩치 큰 루키가 있었다.
“……와우.”
이상한 폼으로 정말 이상하게 뻥뻥 날려 대는 홈런.
그 녀석이 내게 다가와 같은 케이지를 써도 되냐고 물었을 때의 소년 같은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렇게 캠프가 끝나고, 새 시즌을 맞이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미기, 이제 이 팀은 가능성이 없어요. 적어도 우리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시즌 도중, 짐머맨과 한 대화에서 나의, 구단의 현실을 마주했다.
‘늦었나? 내 찬란했던 시절의 끝이 이렇게 끝난다고?’
그리고 다음 시즌, 놀랍게도 난 해답을 찾았다. 이제 마이너에서 1년을 구르고 올라온 루키에게서.
“폼을 바꾼 거야? 정말?”
“예전 폼은 너무…… 그렇잖아요?”
마이너에서 그의 기록을 경신하고 올라온 녀석은 그 이상한 폼을 버린 상태였다.
‘마이너에서라지만…… 70홈런을 친 폼을 바꿨다고? 타격 코치가 알았다면 경악했겠군.’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고, 우리는 정말 경악했다.
50-50이라니.
그 녀석은 누구도 밟지 못한 곳을 루키의 몸으로 혼자 고고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걸 봤다.
“미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저 투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아,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좀 털어놔요! 그렇게 웃으면서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내 타석에서의 노하우들을 하나둘씩 알려주며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이 녀석과 발 맞춰 같이 걸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리그는 우리에게 폭격당했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이제 슬슬 끝나간다.
내 몸 안, 야구선수로서의 심지가 거의 다 타들어 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젠 나도 슬슬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나도 모르게 쏟아낸 말에 내가 더 씁쓸함을 느꼈다.
‘이 재미있는 야구를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난 안다. 끝을 아름답게 맺을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꺼지기 전 마지막 불꽃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 될 거다.
‘그렇게 불태우고, 나중에 이 녀석이 내 위치가 됐을 때, 자식들, 혹은 손주들에게 말해 줘야지.’
TV에서 여전히 베이스를 돌고 있는 저 녀석이 나한테 루키라고 놀림 받았던 녀석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내 손엔 반지가 빛나고 있을 거고.
* * *
[우익수, 타구를…… 잡았습니다! 경기가 마무리 됩니다! 디트로이트의 스윕!]
[이야, 오늘은 김사범 선수도 선수지만, 시미즈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네요. 9이닝 동안 112개, 삼진 5개를 곁들여서 완봉승을 따냈습니다.]
[8회 초,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팀원들의 호수비로 이겨 냈었죠?]
[이삭 선수의 본능적인 토스를 맨손으로 잡아서 병살까지 연결시킨 김사범 선수의 기가 막힌 수비였죠.]
[이상으로 중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오늘도 난 폭탄을 만든다.
디트로이트에 온 이상, 누구도 날 벗어날 순 없으니까.
“폴리, 분명 시미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양동작전으로 네가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뿌릴 거 같이 폼을 잡으라고.”
“오케이.”
“그때 내가 뒤에서…… 쾅!”
“그렇게 가득 채워? 들 수 있어?”
“물론이지.”
그렇게 폴리와 나의 양동작전이 시작됐다.
“오늘 시즌 첫 승이자 메이저리그 데뷔승을 완봉승으로 거두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주 좋습니다. 이 모든 감사를 포수인 페이스, 그리고 붐에게 바치겠습니다.”
“페이스 선수는 아마추어 선수부터 배터리를 맞추셨으니 이해가 가는데, 붐은 왜……?”
“항상 훌륭한 수비와 타석에서 팀을 고양시키는 플레이를 하니까요. 항상 빛나는 그 모습을 보ㄱ저아푸레와악!”
받아라! 디트로이트의 명물, 워터 붐이다!
물론, 내가 방금 만든 이름이다.
‘입에 잘 달라붙는데? 폴리한테 말해 주면 내일이면 다 퍼지겠지?’
“언제나 수고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시미즈에게 많은 성원 보내 주세요.”
한 방울의 물도 허락하지 않은, 여유마저 느껴지는 리포터의 인사를 받으며 덕아웃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바람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