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92화 (92/175)

92화 김사범, 2021시즌(더, 조금 더)(4)

[Boom! The Boom! 경기장을 폭발시키고 있는 그의 타구들!]

[일찌감치 결정되어 버린 AL 홈런왕.]

[Boom,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어린 60홈런 기록자.]

[불가사의한 그의 홈런 페이스의 원동력은?]

[붐, 두 경기 연속 4볼넷 게임. 견제가 시작됐다.]

[늘어난 볼넷과 느려지고 있는 홈런 페이스. 하지만 그의 뒤엔…….]

[붐을 마냥 거를 수 없는 디트로이트 타선.]

[시즌 65홈런 돌파, 2시즌 만에 ‘빅 맥’과 나란히 한 어깨.]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붐과 연장계약? ‘그의 에이전트와 논의 중이다.’]

[디트로이트, 100승 고지가 눈앞, 팀 최다승 기록(104승)을 넘어 ML 최다승(116승)까지?]

[탬파베이와 양키스, 한 게임차 초접전. 지구 우승은 누가?]

[또 다른 KIM, 양키스의 도박이 통하다.]

* * *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그렇게 치는 거야?”

“네가 왜 궁금해? 여긴 아메리칸리그야.”

“넌 그럼 슈퍼 히어로가 왜 강한지 궁금하지 않아? 이건 당연한 궁금증이라고.”

“제발, 폴리. 좀 쉬자. 우리 방금 식사를 끝냈어.”

오늘따라 폴리가 더 미친 소처럼 보인다.

‘아니, 왜 투수가 타격비결을 궁금해하는 건데?’

“여기 있는 이삭과 페이스를 대신하서 질문한 거야. 다들 궁금한데 속 시원하게 물어보질 않으니까.”

폴리가 무식하게 우기는 장면을 맘 편히 바라보고 있던 두 남자가 빠른 반응을 보였다.

“뭐?”

“우린 왜?”

“그럼 너흰 궁금하지 않아? 붐이 어떤 식으로 공을 후려 패서 담장을 넘기는지?”

오오. 오늘이 폴리의 그날인 거 같다. 두어 달에 한 번, 제법 사람 같은 말재주를 가지는 그날.

“궁금하긴 하지.”

“그래.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붐, 말해 봐. 저기 있는 이삭 어머니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온몸에 발라 버리기 전에.”

뭐지?

이 신박하면서 두려운 협박은?

몸을 기울이며 모두의 시선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음, 좋아. 말해 주지.”

절대 폴리의 협박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그런 거다.

“정말?”

“진짜 따로 비결이 있던 거야?”

“집중력인가? 아니면 너만 알고 있던 버릇?”

밥을 먹고 늘어져 있던 녀석들이 다들 귀를 세우며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타석에 들어서면 1루수를 보는 거야. 아주 자세히.”

“1루수?”

“그래, 1루수. 사실 타격은 좋지만 수비가 잘 안 되는 선수들이 주로 1루에 가잖아?”

“그렇지. 뭐, 하지만 요즘엔…….”

“잡담은 그만. 집중해. 그래서 그 1루수들은 쉽게 노출하고 있어.”

“1루수들이 사인을 자연스럽게 노출한다는 건가?”

음…… 너무 진지한데…….

지금이라도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그런 비결 같은 건 없다고?

살짝 마음이 약해지던 순간, 내 앞에서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폴리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딱 들어가서 1루수를 보고.”

“보고?”

“1루수가 뚱뚱하면 패스트볼, 아니면 브레이킹볼을 노려서 치면 돼.”

“……뭐?”

“가끔 작은 1루수가 나오는데,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너클볼을 노려야 해. 보통 내가 안타를 못 치는 경기가 이런 경기지.”

폴리의 눈이 흐리멍덩해지고, 이삭과 페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세웠던 상체를 소파 등받이를 향해 던졌다.

“제길…….”

“내가 저걸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니.”

허탈한 둘의 말이 끝나자마자 폴리가 옆에 있는 케이시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지금 붐을 죽여도 우리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해보든지. 이번엔 45도로 접어 줄 테니까.

폴리의 난동을 진압하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페이스에게 물었다.

“페이스, 시미즈는 어디 갔어? 너와 떨어져 있는 건 오랜만인 거 같은데?”

“내일 등판을 대비해서 일찍부터 자고 있다.”

“오, 이 시간에?”

“아무래도 일본에서 던졌던 시절보다 스케줄이 빡빡하니까. 요즘 등판 결과가 안 좋기도 했고.”

9승 8패, 방어율 3.61.

시미즈의 시즌 성적이다.

‘5선발치고 나쁜 성적은 아닌데?’

물론 팀 내 선발 투수 중 혼자만 10승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건 시미즈의 탓이라기보단 다른 투수들이 잘한 거니까.

“나쁜 성적은 아닌데. 아직 시즌은 한 달이나 더 남았으니까. 그리고 이번이 메이저 첫 시즌이잖아?”

“시미즈는 너의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하다. 뭐,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흠. 내일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뛰어야겠군. 시미즈도 10승을 하게 되면 좀 안정될 테니.

“그나저나, 여기 있는 모두 슬슬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지 않나? 한 달이란 시간은 길기도 하지만 꽤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있던 이삭이 늘어지는 어투로 대답했다.

“어…… 안 그래도 론이 내게 말하더라고. 시즌 마지막쯤엔 조금 쉴 시간을 줄 거라던데?”

음, 설레발은 필패지만 우리 팀은 적어도 디비전 시리즈는 나갈 수 있는 성적이니까. 사실 휴식을 줘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말야.

“투수들이야 확장 로스터로 마이너에서 투수들을 계속해서 콜업 중이니 조금씩 여유를 두고 운영할 거고. 나도 아마 휴식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 아닐 수도 있겠군.”

“왜?”

“붐의 기록에 달려 있겠지. 곧 70개를 바라볼 텐데……. 그렇게 되면 주축 타자들이 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 그렇지. 73개.

마이너에서 한번 겪어 보니 별다른 감흥이 있진 않다. 뭐, 일단 그 근처에 가 봐야 알겠지만.

“걱정 마, 곧 편히 쉬게 해 줄 테니까.”

“음?”

“아까 내가 말했잖아. 1루수만 잘 보면…….”

“조용.”

네.

* * *

30경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경기수다.

어젯밤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프로 선수, 그것도 메이저리그라는 최상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매일 이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젊은 팀일수록 그런 분위기가 퍼져 나가는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붐! 악당들이 어제도 모였다며?”

“아, 닉. 악당이 뭐예요?”

“맨날 같이 저녁 먹는 너네 무리들. 악당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거 같아.”

“아, 그건 그렇죠. 저 빼고 다들 나쁜 녀석들이니까요.”

어쩌다 이런 사람들하고 친해졌는지, 원.

“그 반대 아냐?”

“네?”

“하하, 됐어. 아무튼 오늘도 잘 하자고. 저기 저놈들은 너무 시끄러워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혹은 일로이와 여덞 꼬마들.’

오늘 우리가 뭉갤 녀석들이다.

* * *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모두 이 마법의 단어를 알고 있을 것 같다.

‘FA로이드.’

FA를 앞둔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 이상을 내보이는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

세이버매트릭스의 발달과 유망주에 대한 다년계약이 유행처럼 번진 현재 야구에서는 크게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크게 쓰이지 않는 단어를 온몸으로 맞은 투수가 지금 우리 앞에서 왼팔을 휘두르고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카를로스 로돈 선수, 엄청난 투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4와 1/3이닝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1루를 밟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퍼펙트 페이스를 이어 갑니다.]

[주 무기인 싱킹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 이어 세 번째 구종인 체인지업이 정말 예술적으로 떨어지네요. 이렇게 되면 디트로이트의 아처 선수를 제치고 먼저 20승 고지에 설 수도 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커리어 첫 20승임과 동시에 양대 리그를 통틀어서 첫 번째로 20승 고지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 컨디션으로 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군요.]

빠직!

스튜어트가 자신의 배트를 두 동강 내며 덕아웃으로 향해 왔다.

“헤이, 스튜어트. 왜 그렇게 열을 내요?”

“똑같은 공에 두 번이나 삼진을 당하다니. 이 배트는 쓰레기야.”

휘두른 건 자긴데?

“아, 그렇죠. 배트가 잘못했네요, 하하.”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거는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도자기와 같다.

아직도 자신의 배트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덕아웃 뒤의 게토레이를 향해 가는 스튜어트.

‘아이 엠 그루트.’

어쩌겠어. 같은 팀원인데. 서로가 이해하면서 사는 거지.

[오늘 카를로스 로돈은 완벽한 투수입니다. 5회 말,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로돈!]

[디트로이트의 시미즈 선수도 지금까지 5이닝 1실점, 아주 잘 던져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 투수가 저런 페이스로 공을 던지면…… 답이 없죠.]

오늘따라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매섭게 공을 뿌려 대는 시미즈.

분명 잘하고 있긴 하지만…….

“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점점 흐트러지는 제구에 결국 페이스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루이,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네 템포로 던져. 지금 아주 잘 던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누가 봐도 아주 잘 던지고 있어. 어깨에 힘 빼고 하던 대로 맞춰줘. 우리가 다 잡아 줄 테니까.”

내야진들이 모여 긴장을 풀어 주려 노력했지만, 심판의 제지로 흩어질 때까지 시미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따아악!

[아, 좌측 담장을 향해 공이 쭉쭉 뻗어 갑니다! 일로이 히메네즈 선수! 투런 홈런!]

[밋밋하게 존 가운데로 들어온 슈트를 제대로 받아친 공이었네요. 일로이 선수가 아주 제대로 노리고 큰 스윙을 했습니다.]

[이제 점수는 0-3! 다소 약세라 점쳐지던 예상을 깨고 화이트삭스가 앞서 나갑니다!]

공이 내야로 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 줄 수 있지만, 이렇게 담장을 넘기는 공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빠른 시간 내에 제정신을 찾길 바라는 수밖에.

[디트로이트 불펜에 몸을 푸는 투수들이 보입니다. 아직 희망을 놓지 않은 것 같죠?]

[무엇보다 아직 김사범 선수의 타석이 두 번이나 남아 있으니까요. 첫 번째 타석에서는 바깥쪽 체인지업에 그대로 삼진을 당했지만, 두 번째 타석에선 공을 맞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던지지. 아직 시즌은 꽤 남았어.”

“더 던질 수 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시미즈.

하지만 대뜸 투수 코치가 내민 공을 잡는 녀석의 손은 가벼운 움직임에도 툭툭 떨어져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꾸역꾸역 6회 초를 막아 낸 시미즈의 투구 수는 이미 100개를 넘어 있었다.

‘아쉽겠지. 정말 아쉬울 거야.’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혼자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던 미기에게 다가가 물었다.

“미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해요?”

아. 목소리가 조금 컸나?

아주 잠시, 내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다 보니 미기의 대답이 들려왔다.

“흠…… 2010시즌이었나? 탬파에게 노히트 노런을 당한 적이 있었지.”

“그래요?”

“2013년에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경기에 뛰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어.”

잠시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 가는 미기.

“분명히 공은 맞아 나가는데, 1루를 향해 달리다 보면 공이 나보다 먼저 와 있는 거지. 이를 꽉 깨물고 세게 치니 호수비가 나오고. 정말 뭐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어.”

“상대가 누구였는데요?”

“멧 가르자.”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경기가 끝난 뒤 내가 느낀 감정이 중요한 거야.”

“호승심, 분함. 뭐 이런 거요?”

“아니, 한심했어. 2회, 5회, 8회. 세 번 타석에 들어설 동안 난 계속 큰 타구만 노렸거든. 저기 마운드에서 여유롭게 날 내려다보는 저 녀석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때까지만 해도 4번은 팀의 상징이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지.

“그런데, 다음 날 경기를 다시 보다 보니 힘을 빼고 쳤으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겠다 싶더라고. 내 타석만 되면 내, 외야 할 것 없이 모두 물러서기에 바빴으니까.”

말을 마친 미기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나보다 더 훌륭한 타자가 될 거니까 알 수 있겠지. 내가 한 말의 의미는, 단타를 노리라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잘 보고 냉정하게 생각하라는 거야. 그게 팀을 짊어진 타자의 숙명이니까. 너에게 달렸어, 붐.”

[카를로스 로돈 선수가 키브라이언 헤이스 선수를 3루수 앞 땅볼로 잡아냈습니다.]

[6이닝 동안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는데요. 앞으로 다가올 타석이 이 경기의 마지막 타석일 수도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타자들은  조금 더 집중해서 타석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경기 후반 퍼펙트가 깨지고 집중력을 잃어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생각보다 꽤 많은 경우죠. 어떤 큰 목표를 가지고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상대하다가 한순간에 목표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디트로이트 입장에서는 퍼펙트 투구를 깨는 한 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군요. 저흰 7회 초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미기와의 대화가 끝나고, 수비를 위해 덕아웃을 나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이렇게 되면 로돈은 절대 날 피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잖아?’

얼른 수비를 마쳐야겠다.

내 팀을 괴롭히는 악당을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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