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김사범, 2021 포스트 시즌(Dirty Bomb)(1)
[휴스턴이 시리즈를 2-2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휴스턴의 홈,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챔피언십 진출자가 가려지게 됩니다!]
음······ 뭔가가 바뀌었다.
“왜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야? 휴스턴이 더 강팀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냐, 별일 아냐.”
“휴스턴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야. 타선도 그렇고 투수진도 괜찮거든. 그나마 괜찮은 건 우리가 3차전까지만 하고 푹 쉰데 비해서 저기는 5차전까지 해야 한다는 거?”
“아, 그래요 언니?”
원래 탬파베이는 지금 이렇게 여기서 떨어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원래라면 양키스가 지구 우승을 하고 탬파베이가 와일드카드 2위를 해서 결국 디비전 시리즈에 나가고, 휴스턴을 부수고 올라가 양키스에게 챔피언십에서 졌던 거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건 2022시즌이였나?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봤어야 하는데.’
아무튼, 뭔가가 바뀌고 있는 게 분명하다.
* * *
코메리카 파크, 회의실.
론이 휴스턴과 탬파베이의 4차전이 끝난 뒤 코칭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5차전에선 아마 벌렌더가 나오겠지?”
“이번 시리즈에서 괜찮았으니까요. 아마 나올 겁니다. 계약 마지막 시즌이라 그런지 떨어지고 있는 구위도 많이 끌어올렸더군요.”
“그래도 그의 장점들은 많이 죽었어. 내 감은 휴스턴이 올라온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탬파베이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두 팀 모두 살펴봐야겠군요.”
후우우, 회의실에 한숨소리가 퍼졌다.
“정말 빌어먹을 직업이야,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직업이라니.”
하하하하
“그래도 할건 해야지. 시작하지.”
그로부터 24시간 뒤.
[오! 저스틴! 또 한 번의 이닝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섭니다!]
[그의 터프함을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저스틴 벌렌더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주머니에서 캔디를 꺼내는 일보다 쉬운 일이죠.]
[40세가 넘은 베테랑 투수가 팀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해 준 겁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이 결정으로 애스트로스는 지친 불펜에 이틀짜리 휴가를 줄 수 있어요.]
[챔피언십에서 상대할 타이거즈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군요.]
[그가 초구를 던집니다. 와우! 96마일이 찍혔어요! 올 시즌 최고 구속입니다.]
“······안 좋군. 아주 안 좋아.”
“조금 더 피터지게 싸우고 올라왔어야 했는데······.”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니까. 오. 탬파베이의 루키가 볼넷을 얻어냈군.”
“그리고 곧 병살을 잡아내겠죠. 저기 서 있는 건 늙은 저스틴이 아니에요.”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루를 주자마자 피치를 올리는 저스틴 벌렌더입니다.]
[이건 혼자 아웃으로 끝난 게 다행입니다. 저걸 건드렸다면 더블플레이였을 테니까요.]
“그렇겠군. 자, 이제.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휴스턴이라······.”
* * *
[야, 뭐하냐? - 김태연]
[뭐하겠냐? 전력분석 중이다.]
[그래? 그 뭐냐. 구단에서 가족들도 초청해 줬다며? - 김태연]
[ㅇㅇ 그래서 지금 집에서 쉬는 중.]
[그려. 나도 가서 보고 싶은데 우리도 마무리 훈련 중이라 - 김태연]
[?? 니가 여길 왜 와?]
[아니 뭐, 그냥 나도 메이저리그 구경도 해볼 겸. 아무튼 알겠다. - 김태연]
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1차전에선 아마 게릿 콜이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4차전에서 그를 내보내지 않았으니까.”
“5차전을 제외하고 모두 3점차 이내 경기였으니 체력적, 정신적 소모가 크겠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불펜은 쌩쌩할 거다. 마지막 경기에서 저스틴 ‘ㅍ···머신’ 벌렌더가 완투를 했으니 말이야.”
분명 퍽킹이라고 하려고 했을 거다.
론의 생각을 읽은 순 없지만, 내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사실 누가 올라오든지 상관은 없지. 어차피 이 야구란 경기는 열심히 경기를 하다가 타이거즈가 이기는 스포츠니까.”
- 휘이이익!
“오, 내가 방금 뭔가 멋진 멘트를 했나? 당연한 걸 말했을 뿐인데.”
론의 말을 끝으로, ‘공식적인’ 팀 미팅 및 전력분석 회의는 끝이 났다.
“붐, 잠깐 시간 되나?”
“그럼요. 물론이죠.”
론을 따라 도착한 감독실.
론이 타온 커피를 앞에 두고 우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아마 1번이 아닌 다른 타순으로 경기에 나서게 될 거야.”
“8번이 아니면 상관없습니다.”
아픈 추억이 있는 타순이거든.
“그럴 리가. 1차전 선발인 게릿 콜은 꽤 와일드한 폼을 가졌으니까. 아마 이삭이 잘해 줄 수 있을 거야. 3번으로 들어가게 될 거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1차전에서 파커가 잘해 준다면 2차전에선 4번도 염두에 두고 있어. 그건 뭐, 나중에 가서 생각할 일이고. 부모님은 잘 지내고 있나?”
“물론이죠. 구단의 배려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럼 내일 경기도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여우 같은 감독’이시잖아요?”
“뭐? 하하하, 알겠네.”
여우 같은 감독. 양키스 전을 스윕하고 난 뒤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1차전 쓰리번트도 그렇고. 3차전까지 경기를 주도하면서 낸 작전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면서 양키스 덕아웃의 애런 분의 고개를 쉴 새 없이 흔들리게 만든 대가 같은 거지.
‘나이 많은 감독에게 붙이기에는 좀 격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뭐, 본인이 만족하는 것 같으니까.
* * *
1-0, 1-2, 2-2, 2-4, 5-4
“피를 말리네.”
“그러게. 이렇게 타격전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홈을 밟고, 이삭과 내가 덕아웃으로 들어오며 나눈 이야기다.
-Let's get it Boom! Boom! Boom!
-79개의 폭탄!
“좋아! 이렇게만 가자고!”
“저 멍청이들은 왜 붐과 상대를 한 거지? 어차피 이렇게 될 걸 몰랐나?”
“머리가 있으면 써라. 뒤에 있는 미기가 포스트시즌 타율이 7할이 넘는데 상대하고 싶겠어?”
“아······.”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날아오는 손바닥들을 담담히 헬멧으로 방어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불펜으로 향하면서 말 한마디 던졌다가 케이시에게 괜히 바보소리를 들은 폴리의 말처럼, 휴스턴은 나를 피하지 않았다.
1회 1타점 2루타. 3회 볼넷. 그리고 지금 5회의 투런.
케이시의 말마따나 뒤에 있는 미기의 타격감이 뜨거워서 나와 상대하는 것 같은데······.
‘아, 누군가의 우산 밑이 이렇게 따뜻했다니······.’
메이저에 콜업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팀의 요주의 대상이 된 나로서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웃!”
정말 오랜만에 땅볼을 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온 미기에게 글러브를 챙기며 말했다.
“미기.”
“왜?”
“한 2년 정도 더 뛰는 거 어때요? 저 지금 굉장히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뭐?”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 미기를 뒤로하고 수비에 나섰다.
그동안 덕을 쌓아 보답받았으니, 이제 다시 수비로 덕을 쌓아야지.
겸사겸사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아처도 살려 주고.
[호세 알투베,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1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디비전 시리즈에서의 감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는 타자죠.]
[호세 알투베 선수의 안타, 카를로스 코레아 선수나 알렉스 브리그먼 선수의 타점이라는 단순하고 위력적인 공식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휴스턴입니다.]
[스프링어 선수가 FA로 LA 다저스로 향한 뒤 우려했던 공격력 하락이 시즌 내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건, 이런 중심타선의 단단함 때문일 겁니다.]
[휴스턴으로서는 두 코어 타자들의 계약이 만료되는 2024년까지 최대한 많은 우승을 노리고 있겠죠. 크리스 아처 선수, 투구동작에 들어섭니다.]
“스트라이크!”
아처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헛스윙 스트라이크를 유도해 냈다.
입맛을 쩍 다시며 다시 타격자세를 잡는 호세 알투베.
페이스의 오른손이 바쁘게 온몸을 누빈다.
따악!
3루수인 헤이스와 내 사이로 빠져나갈 거 같은 타구.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와서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헤이스가 몸을 날려 공을 잡았다.
거의 내야를 빠져나가던 공을 걷어올린 탓에 외야로 향하고 있는 헤이스의 몸.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제법 빠른 주력을 가진 알투베를 잡기에는 송구까지 연결동작이 매끄럽지 않을 것 같다.
“내게 줘!”
이미 달려가고 있었지만, 더욱 더 속도를 높이며 헤이스에게 외쳤다.
슬라이딩을 한 채로 보지도 않고 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공을 토스하는 헤이스.
그런 헤이스를 뛰어 넘으면서 몸을 최대한 틀어 1루로 송구했다.
‘잡을 수 있나?’
거의 3루 바로 뒤 파울라인정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긴 송구거리. 아슬아슬하다.
“아웃!”
하지만 난, 잡아냈다.
[키브라이언 헤이스! 안타성 타구를 건져 냈습니다! 아! 바로 김사범 선수에게 토스! 그리고 김사범 선수의 송구가······ 잡아냈습니다!]
[휴스턴은 무조건 챌린지를 시도해 볼 겁니다. 중계 카메라 기준으로 봐도 거의 동시에 들어왔거든요. 이건 챌린지 가야죠.]
[휴스턴 벤치에서 바로 챌린지를 신청했습니다. 노아웃 주자 1루라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건 뭐, 보너스 게임 같은 거다. 호세 알투베의 타구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외야로 흘러나갈 타구였고, 그걸 건져내서 아웃이 되느냐 마느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게 포스트시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기전에서 이런 플레이 하나는 꽤 큰 결과를 만들어 내니까. 당장 무사 1루의 찝찝한 상황에서 구원받은 아처가 엄청난 투구로 서너 이닝을 더 막아낼 수도 있고.
‘기세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는 것도 좋은데. 판정이 잘 나왔으면 좋겠네.’
정말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는지, 판정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고 팔을 좌우로 펼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주심.
-우와아아아아!
팬들도 참고 있었던 함성을 내질렀다.
누가 봐도 환상적인 수비였으니까.
[아, 원심이 유지됩니다. 계속해서 중계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보여 줬는데······ 사실 거의 비슷한 타이밍이었어요. 잘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센터에서도 판단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현장에 있는 심판의 원심을 인정해 주는 게 관례 아닌 관례기 때문에 아웃이 선언됐을 수도 있습니다.]
[자, 휴스턴의 챌린지 실패로 6회 초, 원아웃 상황에서 경기가 계속되겠습니다.]
* * *
“큐!”
방송국의 스튜디오, PD의 큐 사인에 맞춰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군요. 뭐가 오랜만이냐구요? 챔피언십에 올라온 타이거즈가 오랜만이죠! 반갑습니다. 투나잇, 빅리그의 펜스입니다.]
“2013년 포스트시즌 모습 띄워. 끝나면 저스틴의 유니폼 비교샷 띄우고.”
[2013년 이후 첫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한 디트로이트가 첫 경기,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웠습니다. 투타에서 맹활약한 ‘이 선수’ 때문인데요, 누구냐고요? 뻔하죠! 바로 디트로이트산 폭탄, 붐입니다.]
“5회 홈런, 6회 호수비, 9회 도루장면 순서대로.”
[이 선수는 놀랍게도 역전 홈런을 치고, 어려운 타구를 잘 잡고, 그리고 베이스 위에서는 마치 볼트처럼 뛰어다녔습니다.]
“9회 관중석, 준비됐어? 킴이 도루하고 나서 관중들이 모자를 들고 세레머니 하는 장면. 그래, 그거.”
[그리고 팬들은 그를 위해 특별한 세레머니를 준비했죠. 보시죠.]
관중석에 있는 팬들이 일제히 모자를 벗으며 마운드의 투수에게 인사했다. 그러고 나서 머리 위로 모자를 흔들며 환호하는 관중들.
[투수에게 감사하단 뜻일까요? 그를 베이스에 ‘공짜’로 내보내 줘서? 아무튼, 이런 붐의 활약을 보고 애스트로스의 A.J 힌치 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를 막을 방법은 있지만, 어렵다. 하지만 내일 경기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게임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의 몸에 공을 던지는 방법밖엔 없을 거 같은데요.]
“디트로이트 관중들 욕설. 효과음 넣은 걸로. 큐.”
- 이런 삐-같은 삐-같으니라고! 널 프레스에 끼워 삐-해버릴테다!
[웁, 제 실수입니다. 만약 내일 경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저를 공장으로 납치하지 말아 주세요! 내일 경기는 타이거즈의 케이시 마이즈와 에스트로스의 포레스트 휘틀리가 선발로 나섭니다. 이어서 내셔널리그 리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