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14화 (114/175)

114화 김사범, 2021 포스트 시즌(열망)(1)

LA 다저스. 월드시리즈‘만’ 이기지 못하는 팀.

막장으로 불리던 구단주 밑에서 고통받던 200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리그 우승권에 발을 담그고 있는 팀이다.

물론, 30년이 넘게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팬들의 애를 태우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시즌에 돌입하면서 가을에 강한 조지 스프링어를 FA로 영입하며 우승을 위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오기도 했고.’

작 피더슨 - 조지 스프링어 - 코디 밸린저로 이루어진 외야진은 메이저리그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맥스 먼시 - 루이스 우리야스 - 코리 시거 - 저스틴 터너로 이어지는 내야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팀이다.

“이 자료, 확실한 건가?”

“아뇨, 확실한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이제 그걸 살펴봐야죠.”

“흠…….”

김태연이 보내 준 자료 중, 구단 자료에 나와 있지 않은 자료들만 뽑아서 론에게 건네줬다.

“류하고 친한가 보군. 자료를 보니 근처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자료들이야.”

“아쉽게도 타이밍이 안 맞아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제가 메이저에 올라왔을 땐 이미 한국프로야구로 돌아간 상태였거든요.”

고질적인 사타구니, 엉덩이 부상을 호소하던 류현 선배는 2020시즌을 앞두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예전엔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못하겠네.’

“흠. 일단 이 자료는 구단 측에 제공하겠네. 붐 자네도 전력분석팀에서 사용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일단은…… 알지?”

“물론이죠.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B사이드로 들어온 자료를 내가 아닌 다른 팀원에게 제공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과가 잘 풀리면 좋지만, 꼭 그렇다고 확언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좋아. 컨디션은?”

“아주 좋죠. 언제나.”

“다행이군. 게임을 시작하러 가 볼까?”

* * *

[길고 길었던 메이저리그 2021 시즌의 마지막이 단 7경기만 남았습니다. 오늘 경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라는 이름 아래 코메리카 파크에서 1차전을 벌이게 됩니다.]

[어떤 팀이 더 잘하냐? 라는 물음에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두 팀 다 훌륭한 팀입니다. 디트로이트 같은 경우는 김사범 선수를 주축으로 강력한 파괴력의 타선과 스마트한 선발투수, 그리고 비교적 평범한 불펜진으로 구성된 팀이죠, 그리고…….]

오늘 우리 팀의 선발은 크리스다.

경기 전, 몸을 푸는 모습을 살짝 봤는데…… 오늘은 긴장을 하고 수비에 임해야 할 거 같다.

‘조금 긴 휴식일이 독이 됐나?’

크리스, 케이시, 풀머, 시미즈의 4인 로테이션으로 매 시리즈를 스윕으로 끝내다 보니 등판 간격이 거의 일주일 정도로 늘어나게 됐다.

시즌 막바지에 오랜 휴식을 가지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때로는 그 휴식이 감을 잡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플레이 볼!”

긴장과 별개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페이스의 사인을 바라봤다.

[이번 시즌 다저스의 모토는 강하게, 더 강하게 입니다. 시즌 전 구상했던 선발진이 생각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해 주지 못하면서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곧 완전히 로테이션에 자리 잡은 훌리오 유리아스 선수가 많은 이닝을 소화해 줌과 동시에 타선이 폭발하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저스의 1번타자, 알렉스 버두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3할 3푼대의 타율과 4할대의 출루율, 11개의 홈런. 작 피더슨과 플래툰으로 경기에 나선다는 걸 감안하면 꽤 훌륭한 성적이다.

따악!

“파울!”

크리스의 초구에 버두고의 배트가 날카롭게 돌았다.

[1번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을 오래 지켜본다는 인상이 없네요. 이런 공격적인 면이 이번 시즌 다저스의 팀 컬러이기도 합니다.]

[작 피더슨 선수와 알렉스 버두고 선수가 보통 플래툰으로 경기에 나서는데, 아메리칸리그 룰로 진행되는 이번 경기에는 두 선수 모두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이 점도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패이스에게서 별다른 시프트 지시는 없다.

버두고는 구장 전 지역에 공을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니까.

“흡!”

크리스도 자신의 컨디션이 신경 쓰이는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진다는 게 느껴졌다.

따아악!

“아웃!”

-우와아아아! 이삭!

1루와 2루 사이를 뚫고 지나갈 것 같던 타구를 이삭이 몸을 던져 잡아냈다.

타구음과 심판의 콜이 거의 동시에 들릴 정도로 빠른 타구.

“Good job, hermano!”

“Me encantado mucho.”

경기 시작부터 해낸 슈퍼 플레이가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대답하는 녀석.

마운드의 크리스 표정을 보니…… 거의 이삭에게 넘어갔다.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2번타자, 코디 밸린저가 나옵니다. 올 시즌 45홈런을 치며 팀 내 홈런 1등을 기록했습니다.]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보통 3번을 쳤습니다만…… 오늘은 2번으로 출전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주루가 되는 선수기 때문에 클래식한 의미의 테이블 세터로도, 강한 2번으로도 나설 수 있는 선수죠.]

곧바로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비 위치를 지정하는 페이스.

극단적인 풀 히터인 밸린저를 상대로 3루수인 헤이스는 내 위치로, 나는 2루 베이스에 가까운 2루 수비 위치로 향했다.

이삭은?

거의 외야 중간까지 뒤로 물러나 제 4의 외야수가 됐다.

[코디 밸린저 선수에게 강한 시프트를 거는 디트로이트입니다.]

[전체 타구의 80퍼센트 이상이 우익수 방향, 타자 기준으로 우측으로 형성되는 선수기 때문입니다.]

[야구를 잘 모르시는 분이 보면 ‘3루 쪽으로 번트를 대면 되잖아!’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강타자를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이득입니다. 장타가 아닌 한 베이스를 위해 자신의 타격 리듬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보통 리그 최상위권의 강타자에게 시프트는 마치 훈장 같은 겁니다.]

[김사범 선수는 어떤가요?]

[하하하, 방금 한 말과 잘 안 맞지만…… 김사범 선수에겐 특별한 시프트가 없습니다. 내야수와 외야수 모두 극단적으로 뒤로 물러나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를 특별하다고 말하지는 않죠.]

따악!

[말씀드리는 순간, 밸린저 선수의 타구가 가운데 담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충분히 힘이 실린 타구지만, 낮다.

원래라면 시프트로 인해 외야에 가까이 있는 이삭이 중계를 위해 달려가는 게 맞지만…….

“이삭! 내가!”

충분히 빠르게 자리 잡을 자신이 있다면 상관없겠지.

이삭이 베이스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펴보고 허벅지에 힘을 꾹 주며 달리기 시작했다.

“대즈!”

펜스 근처에서 강하게 튄 공을 대즈가 잘 잡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를 향해 공을 던지는 녀석.

“세컨!”

공을 잡기 직전, 시프트로 인해 오른쪽으로 많이 내려와 있던 파커가 내게 목적지를 말해 줬다.

“크아아악!”

주력이 괜찮은 선수니 잡을 수도, 잡지 못할 수도 있다. 펜스 플레이에 중계까지 거친 공이니까. 하지만…….

“아웃!”

내가 상상했던 라인 그대로를 따라간 공은 밸린저가 도착하기 직전에 이삭의 글러브에 들어갔고.

이삭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집중을 잃지 않고 녀석의 왼손을 먼저 터치하는 데 성공했다.

[와…… 방금 송구 속도가 현지 중계화면에 나왔는데…….]

[하, 아무리 도움닫기를 해서 던졌다지만…….]

[말이 안 나오는군요. 110마일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로는…… 177km/h군요. 하하하, 이게 말이 되는 걸까요? 아마 메이저리그 기록일 거 같긴 한데요.]

[다저스 팬들의 한숨소리가 중계석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 이삭 페레데스 선수가 왼손에 글러브를 벗어 자신의 손바닥을 확인하는데요. 혹시…….]

[표정이 웃고 있는 걸 보니 부상이 아닌 장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트도 아닌 글러브로 저런 송구를 받았으니 아플 만도 하죠.]

“아파.”

“손바닥으로 공을 받지 않는 건 기본 아냐? 키만 작은 줄 알았는데 실력도…….”

“닥쳐.”

“그래.”

“잘 잡았어. 그냥 농담이야.”

“알겠다고.”

“하나도 안 아파.”

“……많이 아프냐?”

“아니.”

짜식.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되는 거 가지고. 어째 가면 갈수록 애가 된다니까.

‘키도 작아지고 있는 거 아냐?’

잠시 뒤.

우리의 호수비에 거의 고백을 할 거 같은 표정을 짓던 크리스는 터너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 * *

이틀 전, 서울.

일반인으로 보기 힘든 덩치의 세 남자가 소고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형님,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게 커브 말씀하신 거죠?”

우걱우걱, 쩝쩝.

“응, 내가 있을 땐 하도 후져서 주변에서 막 던지지 말라고 했었거든. 근데 요새 보니까 또 던지던데?”

“아, 2년 전에? 그때랑 비교하면 어때요?”

“똑같이 후지지 뭐. 슬로우 커브가 애매하게 오는데 누가 못 치겠냐. 여기 육회 괜찮다. 시즌 중에는 날고기를 안 먹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맛있네.”

“하하, 많이 드세요……. 더 시켜 드릴까요?”

“좋지.”

띵동!

“네! 부르셨나요?”

“여기 육회 하…… 아니 두 개 더 가져져다 주세요.”

“하나는 육사시미로.”

“육회 하나, 사시미 하나 맞으시죠?”

“네…….”

‘참자, 이 자리를 위해 내가 얼마나……. 이 인간도 사촌 형님이나 소개시켜 달라니까 갑자기 이렇게 거물을 데리고 나오면…….’

육회를 국수처럼 먹던 남자는 한 접시를 다 먹고서야 고개를 들어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를 바라봤다.

“근데 그건 왜? 태연이 너도 메이저에 관심 있냐? 아직 많이 남았잖아?”

“그건 그런데……. 그냥 궁금해서요. 이번에 월드시리즈도 그렇고.”

“흠……. 아, 그 김사범인가 하는 애랑 같은 고등학교랬지? 보자…….”

김태연은 생각했다.

드디어 이 소고기 괴물의 입이 열렸다고.

하지만.

드르륵

“육회 하나, 육사시미 하나 나왔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침이 한 바퀴쯤 지나고 나서야(꽃등심, 안심, 육회 등등이 여러 번 들어오고 나서야) 코리안 몬스터, 류현의 입이 열렸다.

“걘 그거만 조심하면 돼. 견제. 나머지는 뭐…… 초반에 잡아야지. 왜 그런진 몰라도 경기 후반에 세게 던지는 걸 로망으로 삼는 녀석이거든.”

“아…… 초반…….”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도 아니니까 평소처럼 던지겠지 뭐. 특별할거 없이 그거만 조심하면 될걸?”

“그거 말고 뭐, 습관이나 그런 거 없어요?”

“음…… 그런 건 없는데…….”

류현이 고민하는 짧은 순간, 김태연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 정도론 안 돼. 더 비밀스런 정보가……. 꽃등심을 더?’

“아, 지금도 그럴진 모르겠는데 도루 내주는 걸 죽기보다 싫어해. 그래서 견제가 좋나? 아무튼. 도루 한 번 내주면 패턴이 단순해져.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지금 다저스 포수가 루키랬나? 신인치고는 잘한다고 하더만…….”

“예, 맞아요. 신인.”

“응, 그럼 못 막아. 무조건 자기 성질대로 던질걸?”

김태연은 류현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머리에 새기듯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직 하나, 사랑을 위해.

‘도루, 도루. 이런 심리적인 포인트, 아주 좋아.’

“그리고 또……?”

“더? 더 있나? 아, 이건 아닐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걔 슬라이더 던지기 전에 오른쪽 눈 살짝 찡그려. 불펜 피칭하면서 내가 발견했는데 지금까지 별 말 없는 거 보면 고치지 않았을까?”

* * *

“아웃!”

이삭이 2루수 정면으로 가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아웃됐다.

“제길!”

“왜 그렇게 짜증 내?”

내 질문에 옆에 있는 폴리가 대신 대답했다.

“저 투수, 멕시코인이잖아.”

“그게 뭐?”

“몰라, 예전부터 멕시코 사람한테 지면 짜증 내던데? 그쪽 동네에 뭐가 있나?”

뭐야? 동족 혐오 뭐 그런 거야? 불쾌한 골짜기 그런 거?

“아무튼, 정상적인 놈이 없네.”

“붐, 너도야.”

아쉽다.

폴리를 응징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갔다 와서 보자. 이 미친 소야.”

“삼진 먹고 들어와서 날 괴롭히면 언론이 참 좋아하겠다. 그치?”

……폴리는 가끔 폴리답지 않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

“스트라이크!”

[오늘 훌리오 유리아스 선수의 공이 좋습니다. 1회 말에 벌써 94마일까지 구속이 나오는군요.]

[제구도 괜찮고, 구위도 좋아요. 변화구도 슬라이더 - 체인지업을 던집니다.]

따악!

[우측 방면의 큰 타구!]

[아, 이거 잘하면 넘어가겠는데요?]

[이 타구가! 아쉽게도 워닝 트랙 앞에서 잡힙니다.]

[발사각이 1도 정도만 낮았어도 넘어갔을 텐데요. 페이스 달턴 선수는 아쉽겠어요.]

‘도루를 내주면 흥분하고. 슬라이더 던질 때 눈을 깜빡이고, 초반에 잡아야 하는 투수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 일단 보면 알겠지.

‘일단 패스트볼. 바깥쪽이면 결대로 밀고 몸쪽이면 힘껏 당겨 봐야겠네.’

슬라이더가 오면 버릇을 확인해 봐서 좋고. 체인지업은…… 뭐, 그것도 보면 좋은 거니까.

그리고 마침내 월드시리즈의 초구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쌔-애-애-애-액

공이 느리게 다가온다.

실밥 하나하나가 보이는 느낌.

살짝 느껴지는 답답함에 몸을 움직여 보고 싶지만, 그 순간 이 느낌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바깥쪽. 패스트볼. 조금 멀게.’

공이 보이고, 존에서 아주 멀지 않다.

그럼…… 뭐…….

따아아악!

답은 하나지.

-Let's get it Boooooooooooom!

눈 찡긋? 도루?

음……. 만약 이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면…….

별로 필요 없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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