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33화 (133/175)

133화 김사범, 2022시즌(수신(修身))(2)

[이름 : 4번 타자

칭호 : 힘이 999인

직업 : 전사

스탯

힘 : 999+(현재 적용 : 999)

민Ф : 10

지능 : 10

내구 : 13

스킬

Δ안(펼치기)

999999번의 스윙(펼치기)

기분 나쁜 선생님(펼치Γ)

스킬 묶음(펼치기)]

‘언제부터 저런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오늘? 어제? 아니면 그 전부터?’

“뭐해? 시작 안 해? 시미즈도 왔어.”

잠시 상태창을 열고 멍하니 있었나 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케이시와 시미즈가 내 앞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아냐, 시작하자. 일단 몸부터 풀고.”

기본적으로 내 운동은 크로스핏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근력을 키우는 목적이라면 다른 루틴이 더 낫겠지만……. 체력과 근력을 둘 다 골고루 성장시키기에는 아무래도 크로스핏만 한 게 없으니까.

“허억, 헉. 이게 준비운동이라고?”

로잉머신을 이용한 기본적인 카디오 -심폐지구력- 루틴으로 몸을 풀고 나니 케이시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초보자라 나름 배려한 건데…….’

마침 오늘 할 운동이 따로 알려 줄 필요 없는 스쿼트이기도 해서 바로 들어간 와드(W.O.D : Work of day).

케이시는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뻗었다.

“더 해! 아직 3분 남았어!”

“하아악, 학. 난 못해. 때려죽여도 못해!”

때려죽여도 못한다는데 뭐…….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시간도, 정신도 없다.

내 몸을 살펴보는데 집중해야 하니까.

그렇게 짧다면 짧은 8분간의 운동이 끝나고, 시미즈와 나는 주저앉아 잠시 쿨다운 시간을 가졌다.

“후우, 이제야 숨이 돌아오네. 이거, 나한텐 도움이 안 되겠는데?”

“그럴 리가. 옆에 시미즈를 봐. 아주 훌륭한 교본이잖아?”

애초에 효과가 없었다면 시미즈가 계속 나와 운동을 할 리가 없지.

“도움…… 돼요. 아주. 덕분에 체력이 많이 늘었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와 운동을 같이 한 시미즈.

자연스럽게 시선이 시미즈의 하체로 향했다.

‘저 정도 허벅지면…… 허벅지 힘으로 철근도 구부리겠는데?’

실제로 경기당 투구 이닝도 저번 시즌보다 꽤 늘었고, 경기 후반에도 볼 끝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니까.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셈이지.

“어후.”

케이시도 시미즈의 괴물 같은 하체를 봤는지,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트레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몸이 무거운 느낌이다.

‘그동안 저 상태창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999를 본 뒤로 신경 쓰고 있었나 보네. 후.’

갑자기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나 먼저 씻는다.”

샤워라도 하면서 가라앉혀야지.

* * *

“나 먼저 씻는다.”

스트레칭을 마친 케이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체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후.’

선발투수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꼽히는 체력. 그 때문에 케이시는 오프시즌 때도 장거리 달리기를 멈춘 적이 없었지만, 오늘 보니 그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시미즈, 힘들지 않아? 난 정말 죽을 거 같은데.”

“저도 처음엔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 뭐…… 괜찮아요…….”

케이시가 생각하기에, 정말 괴물은 이 일본인 투수였다.

‘붐이야 뭐, 신체 능력이 워낙 괴물 같으니 이해할 수 있는데, 시미즈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시미즈가 말을 이어 갔다.

“체력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요……. 루틴 자체가 상체보단 코어……하고 하체 위주로 하니까…….”

“그래?”

“상체는 건들지 않아요……. 야수하고 투수하고 많이 다르니까……. 그건 알아서 해야 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가방에서 튜빙밴드를 꺼내 기구에 거는 시미즈.

“내일모레가 선발 아냐? 무리하지 마.”

“익숙해요……. 이제는…….”

“그래? 흠, 같이 하자.”

그 뒤로 같이 튜빙을 하면서 케이시와 시미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과 일본, 야구를 하는 건 같지만 조금씩 다른 운동 방법을 공유하면서.

“후, 이제 끝인가?”

“네…….”

“그럼, 마무리하자. 아…… 저건…….”

케이시가 바라본 곳엔 김사범이 남겨 놓은 바벨이 있었다.

“저것도 우리가 치워야겠지? 저게 얼마야?”

“한 700kg 정도…….”

김사범이 깜빡 잊고 정리를 하지 않고 간 탓에 렉에 얹혀 있는 바는 정말 부러지기 직전까지 휘어 있는 것 같았다.

“붐은 항상 저 무게로 운동을 하는 거야?”

“요즘 더 늘었어요…….”

“괴물이네. 헐크를 영화관에서 찾을 필요가 없겠어.”

“요즘 들어 더 힘이 세진 거 같아요……. 오늘 한 루틴, 시즌 초에도 했거든요……. 그땐 저 정도 무게가 아니었는데…….”

이내 정리를 시작한 둘은 운동보다 뒷정리가 더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베이스 온 볼스!”

[김사범 선수,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 나갑니다.]

[아예 방망이가 닿지 않는 곳으로 던지네요. 저럴 거면 고의사구를 하는 게 나을 텐데.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건가요? 저런 자존심이 남아 있으면 어제 지켰어야죠.]

경기 전, 배팅 연습 도중에도 이상하게 힘이 실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예 힘이 없던 시절과는 또 다른데…….’

그래서 오늘은 약간…… 볼넷이 반가웠다.

[감사범 선수! 뜁니다!]

“세잎!”

[투아웃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요. 아마 3루 도루는 없을 겁니다.]

몸은 다소 무거웠지만, 하도 도루를 하다 보니 도루에 재능이 없는 나도 감과 타이밍이라는 게 생겼다.

[오늘 도루는 정말 흠잡을 곳이 없네요. 타이밍, 스피드, 폼을 뺏는 노련함까지. 완벽한 2루 도루였습니다. 2루까지 걸린 시간이…… 7초 2. 여전히 빠르고 강합니다.]

[지난 시즌보다 더 빨라진 느낌이네요. 무서운 선수가 됐습니다.]

“볼!”

“볼!”

토론토의 투수의 멘탈이 흔들렸는지, 연거푸 볼을 던지고 있다.

‘1회 초부터 이러면 팬들은 아주 속이 터지겠네.’

“볼!”

아니나 다를까. 이미 한번 터진 멘탈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베이스 온 볼스!”

스튜어트는 배트를 한 번도 휘두르지 않고 1루로 향했다.

“타임!”

그제야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달려오는 토론토의 포수.

게레로 주니어가 그 틈을 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지막 날인데 좀 살살하지?”

충분히 살살하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그럼 좋은 공을 줘. 오늘은 한 개만 칠 테니까.”

“너도 어제 봤잖아? 감독이 경기 전에 너는 무조건 거르라고 30번은 말한 거 같은데.”

흠, 다행이…… 무슨 소리야? 약해지지 말자.

“대단하네. 어제 그 꼴을 당하고서?”

“하하하, 그래도 이제 만루에서는 거르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아마 오늘 또 거르면…… 아마 경기장이 불탈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오늘은 그럴 일 없으니까 적당히 하다 돌아가라고.”

“그건 네 생각이고.”

경기가 재개되고, 클리어의 타구는 아쉽게도 워닝트랙에서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6회 초.

내 앞에 보이는 모든 베이스에 주자가 채워졌다.

2:0, 우리가 앞서고 있는 상황.

토론토의 감독은 이번엔 날 거르지 않았고, 난  초구에 애매하게 빠지는 슬라이더를 그대로 힘껏 당겼다.

따아악!

‘모자라나?’

익숙하지 않은 고민.

배트를 땅에 던지듯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뛰었다.

[김사범 선수의 타구가…… 펜스 윗부분을 맞고! 넘어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모두가 기대하듯 만루 상황에서 홈런을 때려내는 김사범 선수입니다!]

[오늘도 또 하나의 홈런을 쳐 내네요.]

[시즌이 끝날 때쯤,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 * *

“모두 수고했네. 이틀 뒤에 보지.”

그렇게 원정경기의 마지막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디트로이트로 돌아왔다.

하루 휴식일이 주어지고 다시 홈경기가 시작되는 일정 덕분에 오늘 내일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휴식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가자. 복잡한 건 일단 제쳐 두고 가서 쉬자. 수리가 있는 집에서.

“자기, 왔어? 오늘 경기 봤어!”

원정 10연전 때문에 오랜만에 본 수리는 내 옆에 누워 조잘조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놨고, 나는 야구와 전혀 관계없는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떠들던 수리가 서서히 잠이 들 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보고, 분석하는 걸 참 좋아하는 여자인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도 되나?’

같이 산 이후로 수리는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집에서만큼은 야구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나도 그런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냥 오늘은 왠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수리, 요즘 내 타격 어때?”

천천히 감겨 가던 수리의 눈이 갑자기 번쩍 떠졌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음…… 물이 올랐지. 타격 준비부터 스윙 궤적까지 아주 완벽하게…….”

가볍게 던져 본 이야기에 메이저리그 코치 같은 답변을 하는 수리.

“근데…….”

“근데?”

수리는 한참을 내 눈을 보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컨디션 안 좋았어? 스윙이 좀. 음. 뭐랄까…… 자기 첫 시즌을 보는 느낌이었어.”

“어?”

“테이크백도 확실히 작아졌고, 그냥 맞추기에 바쁜 스윙?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흐음…….

“아냐, 음. 뭐 그럴 수도 있고. 내일 한번 봐야겠네.”

다음 날.

나는 코메리카 파크의 실내 연습장으로 향했다. 구단이 소유하고 있는 초고속 카메라와 함께.

‘정말로, 전체적으로 조금 작아졌네?’

수리의 말대로 확연하게 작아진 내 폼.

스윙 궤적도 약간 비틀려 있었다.

바로 그때, 때마침 울리는 전화기.

[붐, 무슨 일이에요? 스윙이 이상해졌던데?]

“제시, 혹시 시간 있어요?”

[네?]

“당신이 필요해요. 지금 당장.”

[음…… 좋아요. 스케줄 확인 후에 바로 연락 줄게요.]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고칠 수 있다.

아마도.

* * *

이틀 뒤, 낮.

코메리카 파크의 감독실.

“그래, 일단 로테이션은 이렇게 가면 되겠군. 중간에 하루 휴식일이 있어서 다행이야.”

“로테이션 조정으로 따로 휴식일을 주기 힘들었던 케이시에겐 다행이군요.”

“그래. 그리고…… 붐, 붐은 어떤가?”

론의 말에 타격 코치가 분주하게 데이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음…… 일단 내일 제시 모리슨이란 타격 인스트럭터가 오기로 했습니다.”

“스윙이 많이 망가졌나? 오늘 경기에서 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는데.”

“세베리노가 붐에게 약한 면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오늘 경기에선 장타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잡아당기다

“흠. 그건 그렇군. 몸은?”

조금 더 진지해진 분위기에 데이터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대답하는 타격코치.

“괜찮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최근 타구를 살펴봤습니다만, 타구 속도에서도 큰 감소가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발사각이 급격하게 낮아진 게 문제인 것 같은데…….”

“흠…….”

“그 외에도 타이밍이 흐트러지면서 잘 맞은 타구가 파울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제 경기에서는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스윙을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던 론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흐음. 붐의 상황이 일시적이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로군.”

론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동안 작은 문제점들은 스스로 고쳐 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일단 구단에 요청해서 담당 상담사의 스케줄을 비워 놓게. 내 예감이 틀렸으면 좋겠지만, 항상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까. 추가로 프레디의 몸 상태도 확실하게 파악해 놓고. 곧 DL에서 나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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