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34화 (134/175)

134화 김사범, 2022시즌(수신(修身))(3)

디트로이트, 코메리카 파크.

“스윙에 큰 문제점은 없어요. 퍼져 나오는 것도 없고, 오히려 더 심플해진 느낌이네요. 너무 심플해져서 문제지만.”

“음…….”

“최근 문제점은…… 테이크백이 거의 없이 배트가 나오면서 스윙 궤적이 다시 레벨 스윙이 된 거죠.”

“그렇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발사각이 안 나오는 문제는……?”

“이 폼이 의도된 폼이 아니어서겠죠? 나빠지기 전, 최근 타격 폼을 보면…… 여기 있네. 한번 봐 볼래요?”

영상 속의 나는 낮게 떨어지는 공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퍼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도.”

다음 영상도 마찬가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슬라이더를 살짝 몸을 기울이면서까지 따라가 치는 내 모습.

“어때요?”

“음…… 크네요. 확실히 폼이 커요.”

“그것도 그렇고. 최근 붐의 홈런 페이스는 일단 공을 띄우는 비율을 늘리면서 시작된 거예요. 우리가 만든 어퍼-컷(Upper-Cut)이 아닌 진짜 어퍼(Upper) 스윙에서.”

“그런가요?”

“일반적인 타자라면 그저 뜬공 비율이 올라가는 효과밖에 못 보겠지만……. 배럴 타구가 아닌 뜬공 중 절반을 홈런으로 만드는 붐의 힘과 합쳐져서 시너지를 낸 거죠.”

음…… 그건 알겠는데. 그게 지금 내 타격 슬…… 아니, 음. 아무튼 그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자, 이런 이유로 지금의 폼에서 장타가 안 나오는 겁니다.”

응?

“제시, 무슨 말이에요?”

“머리는 강하게 공을 퍼올리려고 하고, 스윙은 일직선으로 곧게 나가니 공의 정중앙, 하다못해 밑부분을 때리지도 못하는 거죠.”

“음…… 아직 잘…….”

“좋아요. 일어나 봐요.”

제시는 내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시범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봐요. 이건 예전 사범의 타격 폼. 그리고 히팅 포인트는 여기에요. 당연한 말이죠? 궤적상 배트 헤드가 가장 낮은 부분에서 살짝 올라온 이 부분에서 타격이 이루어져야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을 테니까.”

음. 이건 이해 간다.

어렸을 때부터 공을 앞에 두고 때려야 멀리 나간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듣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이건 예전 사범의 타격 폼. 이상적인, 사범이 유지했던 히팅 포인트는 여기예요.”

방금 전 포인트보다 공 한 개 정도 뒤로 향한 히팅 포인트. 공을 오래 보고 강하게 치기 위한 폼이라 끝까지 공을 ‘끌어당겨’ 쳤었다.

“그리고 이건 지금 사범의 폼. ‘제대로 맞췄을 때’의 히팅 포인트는 여기.”

두 번째 타격 자세보다 공 반 개는 더 뒤로 물러난 히팅 포인트.

‘아!’

순간 머리가 환해졌다.

“마지막으로, 지금 폼에서 처음 어퍼 스윙의 히팅 포인트까지 배트를 내보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회전하며 공의 윗부분을 때리겠군요. 그만큼 작은 폼이니까.”

“정답. 낮은 발사각의 주원인이에요.”

내 타구가 아무리 강해도 공 윗부분을 때려서는 절대 홈런이 나올 수 없다.

“시간 안에 교정이 가능할까요?”

내 물음에 제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일단 해봐야죠.”

* * *

“아웃!”

[김사범 선수, 유격수 직선타로 물러납니다.]

[김병헌 선수의 커터가 아주 날카롭게 스트라이크 존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저런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드물죠. 물론 김사범 선수가 종종 홈런을 뽑아내는 코스입니다만.]

[어제도 2안타를 때려내긴 했지만, 장타가 없었죠?]

[마지막 타석에서는 안타를 치고도 1루에서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까웠다.”

잠시 타석에서 멍하니 서 있다 보니, 어느새 케이시가 내 글러브와 모자를 건네줬다.

“아, 고마워. 후우.”

경기 전에 급하게 교정을 하긴 했는데…….

‘몇 시간의 교정으로 효과가 나길 바란다면, 욕심이겠지.’

아직은 조금 오락가락하는 상태다.

공이 잘 보이고, 배트를 갖다 대는 덴 문제가 없는데……. 그 결과가 안 좋다.

그래, 한 20타석 연속으로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한 느낌이다.

‘저 자식 웃는 거도 보기 싫고.’

날 잡아내고 씨익 웃는 김병헌.

‘내가 상태창만 정상이었어도…… 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상태창이 문제가 아니라 스윙이 망가진 게 문젠데.

시간이 흘러…….

[6회, 주자 1, 2루 상황에서 김사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김병헌 선수,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 경기의 승부처예요.]

따악-

[김사범 선수, 쳤습니다! 이 타구는!]

* * *

4타수 1안타 1타점.

오늘 내 성적이다.

그리고 팀은 3:1 패배.

그리고 우리 팀을 패배로 이끈 원흉 두 명은 지금 디트로이트의 한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야, 오늘 마지막 공, 기억 나냐?”

이 새끼가.

“기억 안 나. 그리고 오늘 경기 이야기 또 했다가는 네 등하고 허벅지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걸?”

“요가? 나 짱 좋아하는데!”

“이 쓰……. 아니다. 뭐, 그 공이 어쨌다고.”

굳이 자리에 앉아 상체로 투구 폼을 재연해 가며 말하는 김병헌.

“그거, 몸쪽 투심이잖냐. 내가 너 루킹 삼진으로 잡았던 그거.”

몸쪽 투심으로 삼진을 당한 적이 없는데 얜 뭔 소리를……. 아, 그거?

“그 사기 게임에서 던진 그거?”

“그래 인마, 어땠냐? 막 소름 돋지 않디? 캬~ 내가 봐도 진짜 잘 들어간 공이었는데.”

6회 말, 득점 찬스에서 내게 안타를 내준 녀석은 기어코 9회에도 등판해 날 삼진으로 잡아냈다.

몸쪽 투심으로.

91마일짜리 똥볼로.

……치진 못했지만.

“됐다. 구속이 10마일 넘게 차이나는 데 무슨 소름은…….”

“그런 거치고는 너, 타석에서 벗어나질 못하던데?”

그야 뭐…….

“네가 하도 도망쳐 대니까. 이번 타석에서도 도망칠 줄 알았던 거지.”

“크크큭, 구라 치긴. 다 봤다 인마. 아무튼 오랜만에 맛있는 김치찌개도 먹고, 김사범도 나한테 삼진 먹고. 아, 좋네. 최고야. 디트로이트는 참 좋은 도시 같아.”

도저히 안 되겠다.

김병헌, 넌 선을 넘었어.

“일어나자.”

“벌써? 아직 후식 안 나왔잖아? 여기 수정과 맛있다며?”

“그건 좀 있다 먹어.”

“뭐?”

“어차피 지금 먹어 봤자 다 토해. 내가 여러 번 해봐서 알아.”

앉아 있는 김병헌을 그대로 들어서 굳은 몸을 풀어 줬다.

선발투수가 경기 끝나고 스트레칭을 잘해야 롱런하지.

마사지 후, 양키스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로 김병헌을 바래다줬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뭔가 생각난 듯 내게 몇 마디를 던지고 호텔로 들어가는 녀석.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야, 너 요즘 슬럼프에 빠진 거 같대, 우리 전력분석 자료에 나와 있더라. 힛존도 쪼그라들었고. 뭐가 문젠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와라. 약한 놈 상대로 패는 건 재미없으니까.”

“아, 내일 말고, 모레부터. 오랜만에 디트 상대로 연승 좀 해보게.”

하하.

약한 놈이라.

녀석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난 내 문제를 직시할 수 있었다.

난,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지금까지 내가 그라운드에서 보여 줬던 모습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 * *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다 보니, 수리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오늘 진 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내일 잘하면 되잖아.”

“아냐, 음…… 그냥 좀 고민이 있어서.”

“무슨 고민?”

내가 사실 장타력이라고는 중학교 야구부 선수보다도 없는 녀석인데, 우연히 게임을 하다가 돌아왔어. 내가 그놈의 힘이 없어서 은퇴할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슬퍼서, 서글퍼서 그래서 힘만 쭉 찍었을 뿐인데.

“말 못 하는 거야?”

다시 돌아오니 그 힘이 다 내 꺼더라. 그리고 난 힘만 있으면 정말 엄청난 선수더라고. 덕분에 여기 좋은 팀에서 좋은 친구들, 동료들을 만나고, 수리 너를 만났지. 근데 지금 그 모든 걸 내게 준 상태창이란 녀석이 뭔가 이상해. 그래서 신경 쓰여. 이 힘이 사라질까 봐. 인정하기 싫었는데 그렇더라고.

“힘들면 안 해도 돼. 일단 들어가서 자자. 편하게. 푹.”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속으로라도 털어놓은 건데. 실수했다.

나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욕구가,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리.”

“응?”

수리를 부르자마자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

전부 다를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 음,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내게 엄청난 힘이 있어, 그래, 삼손처럼.”

삼손? 내가 말해 놓고도 그 올드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도…… 비슷하긴 한데?’

상태창이 없는 나와,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비슷한 면이 있으니까.

“삼손? 아, 그 머리카락. 응, 말해 봐.”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카락이 잘린 거지. 그냥 자고 일어났는데.”

“아하, 그래서 힘을 잃었고?”

“그렇지.”

이 뜬금없고, 이상한 비유에도 수리는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고민하고 있다.

“아냐, 수리. 자자. 그냥 요즘 내 성적이…….”

“삼손은 모르겠는데…… 혹시 스파이더맨 봤어?”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들어봤다. 은퇴를 하고 나서 남아도는 시간에 마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으니까.

“그거 말고. 토비 맥과이어가 찍은 스파이더맨.”

음…… 잘 모르겠는데.

“모르나 보네? 3편까지 나온 시리즈인데……. 두 번째 영화에서 그런 상황이 나와. 스파이디가 자기 힘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

“음…….”

“자기가 말한 삼손하고는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지금 자기의 상황도 삼손 이야기는 아니잖아? 난, 힘은 근육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그랬다면…… 난 여기 없었을 테니까.”

리모컨을 들어 무언가를 검색하고, 재생버튼을 누른 뒤 날 안아 주며 내게 말하는 수리.

“힘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깨닫는 거야. 내가 자기의 말을 듣고 내 안의 힘, 의지를 깨달았듯이. 먼저 잘 테니까 보고 들어와. 잘 자, 내 사랑.”

수리가 떠나고, 커다란 TV 화면엔 어지러운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길 잠시, 이내 보이는 영화의 제목.

스파이더맨 2(2004)

‘2004년? 내가 모를 만도 하네.’

* * *

다음 날, 수리의 배웅을 받고 파크를 향해 출발했다.

어느 때와 같은 출근길. 어느 때와 같은 루틴.

“붐, 컨디션 안 좋다며? 오늘 하루는 쉬지.”

“그래요……. 저희는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아냐, 괜찮아졌어. 시작하자.”

언제나처럼 짧고 굵은 루틴을 소화하고, 사용한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바닥에 누워서 숨을 헐떡이는 케이시가 내게 말했다.

“후욱, 훅. 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운동을 견디는 거야? 후우…… 시미즈 말로는 시즌 초보다 체력이 더 늘었다며?”

이제야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타구 속도는 늘었어. 단순하게 페이스가 떨어진 것뿐이야. 걱정 마.’

고민하던 내게 태블릿을 보여 주며 말했던 타격 코치.

‘나쁘지 않아요. 스윙 궤적의 문제지 배트 스피드는 유지되고 있으니까. 중심이동이나 힙턴도 자연스럽고.’

어제 연습이 끝난 뒤, 제시가 내게 해 준 말.

그래. 난 강해졌다.

내가 강해진 게 상태창의 영향임은 분명하지만, 그 창에 내가 알 수 없는 뭔가가 끼어들었다고 해도 내가 약해진 건 아니다.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내가 한 노력은 분명 날 하루하루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사람이란 게 참 단순하다. 여느 영화의 대사 한 마디가 때로는 인생에 있어 꽤 커다란 영향을 줄 정도로.

“그래?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걸 상상하면서.”

내 대답에 뭔가 허탈한 웃음을 짓는 케이시를 뒤로하고, 날 기다리던 제시를 데리고 그라운드에 설치된 케이지로 향했다.

“갑자기 프리 배팅을 하겠다고요? 붐, 이건 그렇게 간단히 교정될 문제가 아니…….”

“제시, 날 믿어 봐요. 난 준비됐으니까.”

고개를 젓는 제시를 뒤로한 채 케이지로 들어갔다.

“에릭, 난 준비됐어요. 시작해도 돼요.”

“OK.”

이른 시간에 불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에릭.

하지만 그의 몸은 그렇지 않았는지, 공은 존에서 꽤 벗어난 곳으로 향했다.

‘어제라면 그저 배트를 갖다 대기도 힘들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빠아악!

바깥쪽 낮은 공. 난 그 공을 완벽하게 퍼올리는 데 성공했다.

“오, 와우.”

케이지 뒤편에서 제시의 뜻 모를 탄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프리배팅이 끝나고 날 위해 고생한 에릭과 함께 그라운드 정리까지 마무리하고 난 뒤, 제시는 내게 말했다.

“좋아요. 전 오늘 경기까지만 보고 뉴욕으로 돌아가죠.”

“괜찮았죠?”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요. 괜찮았어요.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만큼.”

“제시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있었겠죠. 고마워요. 바빴을 텐데.”

“내 스쿨의 홍보 모델이자 최고 성공사례를 돕는 건데요. 언제든지 불러만 줘요.”

악수와 함께 뒤돌아서는 제시.

그리고. 그날 저녁.

[1회 말, 주자 1, 3루에서 4번타자 김사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3번 타순에 거의 고정되어 있던 김사범 선수인데요, 오랜만의 타순 변경이죠?]

[경기 전 인터뷰에서 론 가든하이어 감독이 컨디션 조절을 위해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는 3번타자보다 4번타자가 조금 더 익숙하긴 하죠.]

[하하하, 맞습니다. 자, 김사범 선수가 타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케이시와 시미즈, 둘과 함께 운동하면서,

제시를 뒤에 두고 홈런 타구를 뽑아내면서,

경기 시작 전,

그리고, 바로 지금.

어제 영화에서 본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Strong focus on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분명하다.

상태창? 그게 이상해지며 내 몸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른다.

이젠 알 필요도 없고.

그저 지금 나는, 내게 주어진 타석에서, 내 스윙으로, 저 투수가 던진 공을 이 그라운드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길 갈망하고 있다.

빠아아악!

[김사범 선수, 이 타구가! 돌아왔네요! 짧은 휴식 후에 다시 레이스를 시작한 김사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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