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61화 (161/175)

161화 김사범, 2026시즌(vs K & P)(2)

코메리카 파크, 원정 팀 덕아웃.

“후. 일단 경기 전에 짜놨던 시나리오대로 되긴 했네.”

“앞으론 경기 전에 조금 더 몸을 푸는 편이 좋겠군. 라테에게 맞은 안타는 평소대로만 들어왔다면 땅볼이 됐을 거다.”

“아하하…….”

정곡을 찌르는 페이스의 말에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김병헌.

“자, 그럼 이제 김사범 대응 전략을 말해 줄 차례인가? 경기 시작하면 알려 준다며?”

“아. 그거. 나도 일단 조금 더 확인할 게 있으니 일단 한 타석 정도는 볼넷을 주는 것도 괜찮겠군.”

“어?”

“걱정 마라. 한 타석뿐이니까. 붐의 도루는…… 일단 내가 막아 보도록 하지.”

“그래도 그, 모양새라는 게. 알잖아? 우리나라 팬들이 얼마나 불같은지?”

“팬들이 너의 커리어를 만들어 주진 않지.”

“그건 그런데…….”

“약속하지. 넌 오늘 붐에게 단 하나의 안타도 맞지 않을 거다.”

“음…….”

잠시 고민하다 이내 머리를 끄덕이며 점퍼를 걸치는 김병헌.

페이스는 그런 김병헌을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볼넷은 안타가 아니지. 난 출루라고 말한 적 없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은 거다.’

* * *

지난 4년간 양키스의 변화는 꽤 다양한 각도에서 이뤄졌다.

기본적으로 ‘투수는 키워서, 타자는 사서.’라는 마인드로 팀을 구축해 나갔는데, 그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눈물이 앞을 가린다.

2023시즌, 몇몇 장타자들을 영입하여 라인업의 모든 타자들이 20+ 이상의 홈런 개수를 기록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난 우리를 상대로 시리즈 타율 0.118을 기록하며 침몰했고.

‘높은 공에 훙훙 소리 내면서 헛스윙을 해대는 게 볼만했지.’

2024시즌에는 지난 시즌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운답시고 여러 선수들을 돌리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디비전 시리즈에서 패배. -이 시점에서 애런 분 감독이 사퇴했다-

‘스탠튼만 포스트시즌에 나올 수 있었어도, 또다시 챔피언십에서 만날 수도 있었는데.’

2025시즌에는 그야말로 악의 제국으로 돌아가려는 듯 FA 선수들과 핫한 트레이드 매물을 모두 쓸어 담기도 했다.

결과? 그야 뭐……. 우리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나름 코어로 삼아 제대로 키우고 있던 포수인 앤서니 시글러를 백업 포수 자리로 밀어내면서까지 페이스를 영입했고, 완전체가 됐다.

‘물론, 동부지구 안에서만.’

내 말이 허언이 아닌 게, 실제로도 양키스의 타선은 케이시의 투구에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쓸려 나가는 중이다.

“아웃!”

[4번으로 출장한 애런 저지 선수를 투수 직선타로 돌려세우는 케이시 마이즈 선수!]

[그러고 보면, 메이저리그는 정말 유행에 민감한 리그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 양키스의 라인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애런 저지 선수가 4번을 치고 있죠? 이게 사실 4~5년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구식 라인업이었단 말이죠.]

[아 네, 그렇군요.]

[물론 지안카를로 스탠튼 선수가 없어서이긴 하지만……. 이건 김사범 선수를 붙박이 4번타자로 놓고 월등한 성적을 내고 있는 디트로이트의 라인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아, 듣고 보니 론 가든하이어 감독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붐을 위해선 2번, 3번에 놓는 게 좋지만, 팀을 위해선 4번에 두는 게 이상적이다.’ 맞죠?]

[맞습니다. 우산효과라는 게 있으니까요. 타격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면 그 선수들이 뛰어놀 환경을…….]

“스트라이크! 아웃!”

그러고 보면, 케이시와 김병헌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김병헌이 구위 100, 제구 90인 느낌이라면 케이시는 구위 90, 제구 100인 느낌이지.’

어쨌든 위력적인 투수들이고, 사이영 트로피 수집가인 건 비슷하지만, 방향성이 다르다고 할까?

“스트라이크!”

김병헌은 지금처럼 몸쪽 가장 낮은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포심을 꽂아 넣을 수 없으니까.

[에스테발 플로리얼, 몸쪽 공에 꼼짝없이 카운트를 헌납했습니다.]

[공을 돌려받자마자 투구판에 발을 올립니다. 자신감이 아주 넘쳐흐르네요.]

따악!

‘대신에…….’

[일로이 히메네즈! 앞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웃!”

[엄청난 슬라이딩 캐치! 이야, 이런 수비능력을 가진 선수였나요?]

[냉정히 말하자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는 정말 멋졌어요. 예전 시카고 화이트삭스 팜에서 코어 유망주로 분류됐던 이유가 있습니다.]

“죽이는데?”

“네가 하면 놀리는 것 같다니까, 붐.”

일로이에게서 공을 넘겨받고, 케이시에게 바로 뿌려 줬다.

‘맞으면 좀 뻗어 나가는 게 흠이지.’

퍼억!

공에 살짝 흠집이 있었는지, 끝에서 살짝 꺾인 송구에 케이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땐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

“네가 제대로 던지면 나도 제대로 던져 줄게.”

안다.

괜히 찔려서 이러는 거다. 흠.

* * *

[퍼펙트 페이스의 케이시 마이즈 선수와 1회 초의 안타, 그리고 2회 초의 볼넷을 제외하면 단 한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김병헌 선수의 대결입니다.]

[투수전, 그것도 공격적인 성향의 두 투수가 맞붙다 보니 경기 진행이 정말 빠르네요. 어어 하는 사이에 4회 말입니다.]

[이번 이닝엔 김사범 선수의 타순이 돌아오는데…… 김병헌 선수가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상대할지, 기대가 됩니다.]

이닝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순식간에 라테와 클리어가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 투심, 솔직히 좀 사기 아니야? 쟤 저러다가 팔꿈치 아작 날 거 같은데?”

“그럴 리가.”

“가운데로 하나 가자. 진짜로 주면 내가 케이시에게 부탁해서 보답할게. 진짜.”

“괜찮은 거래군.”

“콜?”

“콜.”

페이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투구자세를 잡는 김병헌.

페이스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니까. 약속대로 가운데로 주…긴 개뿔.

분명 어디 이상한 곳으로 던질 거다.

“흐으읍!”

평소보다 유독 크게 들리는 김병헌의 기합소리와 함께, 공이 다가왔다.

존이 아닌 내 몸쪽으로.

펑!!

“볼!”

[아, 몸쪽 패스트볼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붙인 김병헌 선수입니다.]

[살짝 위협구의 성격을 띠는 공이었습니다만, 머리 방향은 아니었어요. 홈플레이트에 가깝게 붙어 서는 타자에게 투수들이 주로 던지는 코스죠.]

가운데?

가운데는 개뿔. 피하지 않았다면 내 팔뚝 가운데에 맞을 공이었다.

“이러기야?”

“언제 던질 거라곤 이야기 안 했는데?”

태연하게 공을 꺼내 김병헌에게 되돌려 주는 페이스가 오늘따라 굉장히 얄밉다.

“후우. 두고 보자.”

“아, 일본에 있을 때 많이 봤던 상황이군. 보통 그 말을 하는 쪽이 악역이지?”

말을 말자.

어차피 지는 거, 말을 해 무엇하리.

‘4이닝 47, 아니 방금까지 48개. 그중 투심이 20개였다. 피칭 템포도 좋고, 공 컨디션도 좋으니 뽕을 뽑겠다는 의미겠지.’

신무기, 좋은 컨디션. 그럼 다음에 나올 말은 당연히 ‘자만’이다.

그럼 난?

‘존버’지.

따악!

“파울!”

딱!

“파울!”

퍼엉!

“볼!”

“볼!”

[이번 타석, 끈질긴 승부를 이어 가고 있는 김사범 선수입니다.]

[바깥쪽 기준으로 공 한두 개까진 모두 커트해 내고 있는데, 저런 커트 플레이가 김사범 선수가 2019시즌부터 매 시즌 50개 이상의 홈런을 뽑아내고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400-400까지 홈런 25개만 남은 김사범 선수, 전반기 안에 400-400,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다른 선수면 몰라도, 김사범 선수라면 가능합니다. 올 시즌도 32경기에서 19홈런을 때려내고 있는데요.]

보인다, 보여.

김병헌의 속마음이 아주 잘 보인다.

페이스는 점점 빠져 앉는데 반해 김병헌의 공은 점점 안으로 향하고 있는 게, 몇 구 안에 아주 먹음직스런 공이 올 것 같다.

“잠시, 타임입니다.”

페이스가 올라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볼 배합과 야구관이 있는 녀석이지만, 저 마운드 위에서 씩씩대는 녀석도 만만치 않은 상대거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흐른 뒤.

“그만하지! 너무 지체됐어.”

구심의 말과 동시에 미트로 김병헌의 허벅지 부근을 툭 치고 내려오는 페이스.

‘딱 걸렸네. 의견 일치 안 될 때 나오는 버릇이잖아?’

페이스. 네가 나를 들여다볼 때, 나도 너를 들여다보고 있단다.

‘몸쪽 패스트볼을 예상하고 스윙할 나를 예상한 페이스는 예상과 다른 볼 배합으로 체인지업을 던질 거다. 아니라면, 적어도 예상 못 한 슬라이더라도.’

뭐가 됐건, 떨어지는 공이 올 거 같다는 이야기다.

김병헌이 공을 던지고.

나는 배트의 헤드를 높이 들었다.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상상했고.

그 공을 최대한 높이 띄우기 위한 어퍼 스윙을 시작했다.

떠어어억!

홈플레이트 바로 앞, 거의 땅에 닿을락 말락 하는 그 공을 무릎을 굽히면서 퍼 올렸다.

‘아악! 내 손!’

배트 헤드, 거의 끝부분에 맞은 공이 내 손을 울리게 했지만.

- 어흐으응!

- 우와아아아아!!

- Let's! get! it! Booooooooooom!

내 아픔을 대가로, 코메리카 파크엔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경기 후.

디트로이트 신시가지의 작은 펍.

“패배자, 오늘도 삐져서 숙소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나왔다?”

“어, 패배자. 이런 걸 보고 전투에선 졌지만 전술적으론 승리했다고 하는 거란다.”

“네 머리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고, 페이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위로하디?”

“아닌데.”

“맞네, 뭐.”

“아니라고.”

퍽이나. 딱 보이는구만.

‘애초에 이겼으면 이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는데.’

우린, 아니, 디트로이트는 졌다.

내가 홈런 하나, 2루타 하나로 만들어 낸 2점을 잘 지켜 가면서 이기나 싶었는데, 올 시즌부터 셋업맨으로 보직을 바꾼 버로우즈가 아주 공격적인 투구로 공격적인 홈런을 맞는 바람에.

“아까웠어요…….”

“시미즈, 아직도 타이거즈인 거야?”

“아, 아뇨…….”

“그만, 일단 뭘 좀 먹지. 배고프군.”

아. 나도 부하들을 끌고 나왔어야 했다.

혼자 있으니 영 ‘멋짐’이 안 사네.

“그나저나, 왜 나만 나오라고 한 거야? 나머지 애들은?”

“아, 그거. 시미즈 부탁.”

“양키스는 빠져, 난 전 타이거즈에게 물어본 거야.”

“너…….”

옆에 있는 김병헌이 삐져서 아무 말 대단치를 벌이는 동안, 시미즈는 신중하게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뭐,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알고 보니 시미즈가 폴리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노출되어 있었고, 결국 굳은 결심을 한 시미즈는 양키스에 이적함과 동시에 사무국에 그런 상황을 알려…….

“그, 내일모레…… 내가 등판하잖아.”

“어?”

“그때는 어차피 적으로 만나게 될 텐데…… 오늘 만나서 하하호호 하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조금…… 그래서…….”

뭔 소리야?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같은데…….

“그럼 나는?”

내 물음에 시미즈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붐은 어차피 상대 안 할 거여서 괜찮아. 그날은 맘 놓고 배트나 보호장구 놓고 타석에 나와도 돼!”

이렇게 해맑게 개똥 같은 소리를 늘어놔도 되는 거야? 아니, 그 전에. 왜 이런 말을 할 땐 말을 안 더듬는데?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뉴욕 양키스에게 아쉽게 패배. 스코어 3-2]

[8이닝 2실점의 ‘Dr. K’와 8이닝 무실점의 ‘도살자’ 끝나지 않은 사이영 대결.]

[론 가든하이어 ‘뷰 버로우즈는 아주 단단한 선수, 괜찮을 것.’, ‘불펜의 실점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보다 더 아쉬운 건 9회 말에 붐의 타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지난 5년과는 다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약점이 된 불펜진, 보강이 필요하다.]

[케이시 마이즈, ‘불펜 방화? 괜찮다. 우린 이런 상황을 ’마일리지‘를 쌓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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