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62화 (162/175)

162화 김사범, 2026시즌(이삭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하여)(1)

“안드레스 페레데스, 매섭게 달려 나갑니다!”

누가 코메리카 파크 홈팀 라커룸에 멕시칸 해설자를 풀어놓은 거지?

“좋아! 좋아! 슬라이딩! 슬라이딩!”

[세잎!]

“크하! 그거지! 그거야! 잘했어 안드레!”

마치 자신이 3루타를 친 양, 팔을 번쩍 들며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이삭. 그런 이삭의 모습을 본 폴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나갔다.

“좋냐?”

“좋지. 너도 방금 봤지? 거의 반쯤 홈런이었어. 심지어 상대 투수는 작년에 트리플A에서 뛰었던 녀석이라고!”

참 좋겠다. 동생이 잘나가서.

“지금 이리에 있다고 했나?”

“그렇지. 슬슬 올라올 때가 됐어. 요새 부쩍 배팅 파워가 늘면서…….”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듯, 선천적으로 야구 유전자를 타고난 이삭의 동생은 요새 디트로이트 팜에서도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저번에 발표된 BA 유망주 리스트에서도 팀 내 4위에 랭크된 거 봤잖아? 곧 올라올 수 있을 거야. 마마도 그 순간만 기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삭의 동생, 그러니까 안드레스 페레데스의 포지션은…… 유격수다.

“알지. 이번 스프링캠프 때도 봤는데. 근데…… 포지션에 대한 말은 없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텐션이 확 떨어진 이삭.

“……말해 봤는데, 자기는 숏스탑이 좋대.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않아…….”

9살이라는 터울 때문인지, 이삭은 동생을 마치 조카나 아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안드레가 이삭보다 20cm는 더 큰데도.

“그래, 뭐. 알아서 하겠지. 안드레는 이제 네가 보살피던 꼬맹이가 아니잖아?”

내가 해 줄 말은…… 딱히 없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기 성적이나 어떻게 좀 하면 좋겠는데.

* * *

그렇게 평범한 나날-홈에서 이기고, 원정에서 이기고, 홈런 치고, 도루하고-을 지내던 와중, 일로이가 내게 찾아왔다.

“붐, 요새 어때?”

“좋지. 400-400까지 홈런 다섯 개를 남겨 놓는 바람에 기자들이 파파라치처럼 붙어 다니는 거 말곤.”

“흐하, 음,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어, 흠.

이건 보통 신인급 선수들이 내게 뭔가 조언을 구할 때 하는 레파토리인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진 강타자의 자격증과도 같은 3-4-5의 슬래시 라인을 가진 타자가 내게 조언을 구하진 않을 거다.

“그래, 좋지. 가자.”

조금 이른 낮, 우리가 연습할 장비들을 준비하고 있는 몇몇 클러비들을 제외하곤 한산한 그라운드.

그런 그라운드의 외야에서, 일로이가 내게 말했다.

“음……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불안하다. 이렇게 시작하는 대화치고 좋은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없으니까.

“그, 요새 이삭…… 좀 이상하지 않아?”

“이삭이? 내가 아는 이삭 페레데스?”

흠.

그러고 보면 요새 통 대화가 없었다.

홈경기 때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쌩하니 사라져 버릴 때가 많았고.

“그래. 음…… 원래라면 보스에게 바로 말하는 게 맞는 일이지만, 이게 또 너무 큰일이라 조금…….”

“뭔데?”

조금씩 입안이 말라 가기 시작했다.

“요즘 이삭이 핸드폰으로 뭔가를 자주 들여다보길래 슬쩍 봤는데…… PED(Performance Enhancing Drug, 경기력 향상 약물) 관련 논문이더라고. 그래서 음, 좀 주의 깊게 살펴봤지.”

PED?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을 말하는 건가?

“그랬더니, 그동안 들고 다니지 않던 이상한 케이스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더라고. 물론, 확실한 건 아냐. 하지만…… 알지? 이런 건 조금 엄격하게 대해야 하는 거.”

일로이가 무슨 생각으로 내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것 같다.

“그래, 음. 그건 내가 최대한 빨리 알아볼게. 물론, 친하다고 해서 넘어가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오케이.”

일로이의 말에 따르면, ‘그걸’ 목격한 게 일주일 전쯤, 그리고 이삭이 긴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일주일 전쯤이다.

‘정황상 스테로이드 계열은 아닐 거야, 아마 경기 전에 집중력을 높여 주는 약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 그게 이름이…… 아드라닐? 맞나?’

라커룸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아드라피닐’이라는 이름의 금지약물이 있었다.

[기면증 환자에게 자주 처방되는 약물, 주요 효과는 집중력 증가와 각성이며…….

……세계 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로 지정되었다.]

‘졸다가 잠깐 들은 내용이 하필…….’

스프링캠프 때마다 거의 필수로 들어야 했던 금지약물에 대한 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저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 어차피 한 번은 가벼운 징계-80경기 출장 정지-로 끝나니까?

아니면 일단 정신 못 차리게 20바퀴쯤 공중에서 돌린 다음에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쳐?

그도 아니면…… 론에게?

혼란하다, 혼란해.

* * *

“그, 이삭?”

“응? 왜? 나 바빠. 오늘 약속 있어.”

“……별일 없지?”

너무 뜬금없이 말했나?

바쁘게 짐을 챙기던 이삭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별일 없어. 아니 있는 건가? 나중에 말해 줄게.”

난 지금 듣고 싶은데?

하지만 나는 멀어지는 이삭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아직은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에.

그날 저녁.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음…… 그게 문제야. 당연히 이삭을 자수시키고 징계를 수용하도록 유도해야지. 그런데…… 그 후에도 내가 이삭을 마주 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생활한 기간 거의 대부분을 이삭과 같이 보냈다.

둘 다 특별히 큰 부상을 당한 적도 없는 데다 키스톤이다 보니 다른 녀석들보다 대화를 하는 빈도도, 그 양도 꽤 많았고.

“내 생각엔 일단 물어보는 게 나을 거 같아. 담백하게.”

“그러다가 정말 PED를 복용하는 게 맞다면? 그리고 이삭이 그걸 알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래, 그렇지. 그것도 있지. 그럼, 일단 어느 정도 증거를 잡는게 좋겠네.”

“증거?”

“PED를 복용? 아니, 주사? 어쨌든, 그런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어딘가에 둔 그 약물을 찾으면 되지. 자기는 이삭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한번 살펴봐. 나는 내일 오랜만에 멕시코 음식을 먹으러 가 볼 테니까.”

그래. 수리 말대로 일단 증거를 찾아보자.

일단 증거만 찾으면…… 최악의 경우엔 론이나 사무국에 말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 하니까 우리 무슨 부부첩보원 된 거 같지 않아? 그, 영화도 있잖아. 브래드 피트하고 안젤리나 졸리 나온…….”

또 옛날 영화 이야기네.

근데 저 영화는 나도 봤다.

아마…… 부부가 이혼하고 민폐 끼치는 이야기였지?

* * *

경기 후, 라커룸.

지옥 같은 원정 10연전, 그리고, 더불어서 찾아온 타격 슬럼프.

이삭이 생각하기에, 이번 슬럼프는 메이저리거로서 살던 지난 몇 년 중에 가장 지독하고, 끈질겼다.

‘기간도 기간이지만, 하아. 그게 아니었다면 아직도 슬럼프에 빠져 있었을 거야.’

갑작스레 찾아온 통증과, 그에 수반되는 불편함. 살아오며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겪어 본 적 없는 이삭은 굉장히 당황스러웠었다.

“이삭, 괜찮아?”

“괜찮지. 괜찮고말고.”

그런 이삭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붐은 요즘 부쩍 자신의 안부를 묻는 빈도가 잦아졌다.

‘눈치챈 건가? 아냐, 아닐 거야. 티가 나는 게 아니니까. 만약 들켜도…… 붐은 이해해 줄 거야. 우리가 같이 호흡을 맞춘 지가 몇 년인데.’

“씻어야지?”

“어, 그래. 씻자고. 씻어야지.”

먼저 씻자고 해 놓고 조금 늦게 들어오는 붐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삭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도착한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쇼파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이삭은 긴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마마, 저 왔어요.”

“왔니? 그래. 몸은 괜찮고?”

“물론이죠. 아, 저녁은…….”

“준비해놨단다. 오늘 수리가 와서 치차론을 좀 했는데, 같이 주련?”

“아니에요 마마. 아시잖아요. 지금 그걸 먹었다간…….”

“아아, 그래. 또 깜빡했지 뭐니! 아, 그리고 오늘 수리가 네 방에 잠깐 들어갔단다. 예전에 붐과 내기를 해서 중요한 공을 하나 가져갔다며? 그건 네가 너무했어.”

“아, 그거. 네, 알겠어요.”

이삭은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둘이 만난 지 1,500일이 된 날에 친 홈런공이랬나? 아무튼, 잘 어울리는 부부야.’

은근히 과격한, 과연 붐의 아내다운 방식이었다.

‘안드레의 일도 그렇고, 어쩌면 그 부부처럼 과격하게 나가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군.’

이삭이 약을 먹게 된 계기이자 이유, 안드레의 상황을 떠올리자 그를 괴롭히고 있는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후. 괜찮아. 괜찮아질 거다.’

그렇게, 이삭의 밤이 깊어 갔다.

* * *

밤이 깊었다.

수리와 내가 ‘물건’을 꺼내놓기에 아주 충분할 정도로.

“자기, 성공했어?”

“성공했지. 여기.”

수리가 아침에 챙겨 준 지퍼백에 수줍게 담긴 알약 하나.

시중에 판매하는 알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의심이 갔다.

“어? 뭐야?”

내가 가져온 알약을 본 수리가 빠른 손동작으로 무언가를 꺼내 비교하기 시작했다.

‘응? 뭐지? 뭐가 잘못됐나?’

한참 두 알약을 비교하던 수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기, 이거…… 두 개가 달라. 다른 약이야.”

“뭐?”

“봐봐, 자기가 가져온 약은 타원형으로 길쭉한데, 내 건 동그랗지? 자세히 보니까 내가 가져온 게 좀 더 꺼끌꺼끌한 재질이기도 하고.”

수리의 말대로 두 알약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건가?”

“글쎄, 자기 건 확실한 거지?”

“이삭이 케이스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걸 내 눈으로 봤어. 아마 맞을 거야.”

“그럼 이건 뭐지? 이것도 책 안에서 찾은 거거든. 보통 약통을 책을 파면서까지 넣어 놓진 않잖아?”

“그렇지. 근데…… 책 안? 그런 데까지 뒤져 본 거야?”

“응. 당연하지.”

내 아내지만, 무서운 여자다.

“사실…… 아무것도 못 찾고 나가려다가 우연히 찾은 거야. 두꺼운 책이 그거밖에 없었거든.”

음…….

운이 좋군.

“아무튼, 그럼 둘 중 하나는 가짜란 건데……. 역시 내가 가져온 게 가짜겠지? 자기가 가져온 건 실제로 먹는 걸 봤으니까.”

확신할 순 없다.

“둘 다 가짜일 수도, 진짜일 수도 있지. 일단 분석을 부탁해 보자.”

“누구한테?”

“있어. 춤추는 거 좋아하는 대머리 아저씨.”

* * *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흐르고, 이삭은 내가 보는 앞에서 항상 그 약통을 가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내 통산 홈런 개수도 399개에서 멈춰 있었고.

[아, 오늘도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는 김사범 선수입니다. 벌써 4경기째 무홈런이에요.]

[다른 선수라면 오히려 네 경기밖에 안 된 거라고 말했을 텐데……. 우리가 너무 김사범 선수에게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마침내.

연락이 왔다.

띠리리리리-

“짐, 나왔어요?”

[보통 인사부터 하지 않아요?]

“짐! 제발…… 아, 후. 좋아요. 짐 잘 지냈어요? 전 잘 못 지냈어요.”

[아하핫, 농담이었어요. 미안해요. 음, 결과. 결과는 나왔어요. 좀 이상하지만.]

“이상하다고요? 설마, 둘 다 진짜 PED인 거예요? 한 번에 두 종류나?”

[놉. 하나만. 하지만 그것도 ‘진짜’ PED는 아니고.]

“네?”

[메일로 보냈어요. 설명하고 같이. 그리고…… 내 생각엔 이건 사범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까, 가급적 빨리 론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짐과의 통화가 끝나고, 재빨리 메일을 확인했다.

[1. 비사코딜

- 주로…… 에 쓰이며, ……근육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장 내 숙변이 많은 환자에게 처방하는 성분으로서,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둘코락스’가 있다.]

어…… 그러니까…… 변비약?

‘경기 전에 이삭이 항상 먹는 약이, 변비약이었다고?’

설명을 읽자마자 온몸의 힘이 다 풀렸다.

분명 화가 나고, 짜증 날 만한 상황임에도 그저, 그냥 멍하기만 할 뿐.

하지만.

[2. 합성 대마초

- 속칭 ‘스파이스’, 대마의 성분인 THC 대신 비슷한 효과를 내는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해…….

- 부작용으로는 이지 상실, 급성 심장마비, 시력 상실 등 다양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힘.]

바로 뒷내용을 읽자마자 내 몸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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