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매화검투(梅花劍鬪)(10)
매화검투가 시작되기 전.
혁련위는 이건에게서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남량에게 도포를 베이게 되면, 남량을 붙잡아라.”
혁련위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사형. 그건 규칙에 어긋납니다.”
“신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전력을 다하란 말이다.”
“…….”
“그렇게 되면 분명 남량은 억울해서 따지고 들겠지. 그럼 거짓말이라고 우기면 된다. 만약 장문인이 녀석의 손을 들어 준다고 해도 이미 매화검투는 끝이 났으니 적어도 남량은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남량의 대련 상대가 저라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그거야 쉽게 조작할 수 있으니 걱정 말거라.”
“으음…….”
혁련위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매화검수가 되면, 화산의 계율을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만 했다.
매화검수는 화산의 기둥이며, 또 화산을 대표하는 상징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하게 시험을 치른 것이 탄로 나기라도 하면, 계율원(戒律院)에서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심각할 경우, 파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었다.
그때, 이건이 갑자기 혁련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도와 다오.”
“사형!”
혁련위는 다급히 이건을 일으켜 세웠다.
“이러지 마십시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네 도움이 절실하다. 위야.”
“……지혁이 때문입니까?”
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화의 그늘에 묻힌 악몽은, 내 대에서 끝낼 것이다.”
이건과 절친한 혁련위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화산제일검의 동문(同門)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갖은 수모를 겪었는가.
이건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 매화검투는 남량과 유우화에게도 그 의미가 크다.”
매화검투의 우승은, 중원 무림의 집합체인 무림맹에 화산의 촉망받는 인재로서 참석하는 영광스러운 기회였다.
유우화의 입장에서는 화산제일검의 검을 전승한 제자를 온 무림에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네놈들에게 넘겨줄 수 없지.’
세간의 주목도, 명성도. 오로지 위지혁에게만 향해야 한다.
차후 위지혁이 화산의 장문인에 오를 좋은 명분이 되도록.
방해되는 건 치워 없애 버려야 한다.
“혹여라도 남량이 지혁이에게 향하는 관심을 앗아 갈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막을 것이다.”
“…….”
“부탁하마.”
도문의 규율이냐 절친의 부탁이냐.
혁련위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결국, 그는 이건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
후두둑-.
남량은 머리에 떨어지는 돌에 정신을 차렸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시험에 통과해 동굴을 나가려 했는데…….
그래. 분명 가슴팍에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갔다.
그런데 왜?
남량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굴 입구 쪽에 서 있는 혁련위를 향해 말했다.
“이유가 뭔지 들어나 봅시다.”
“……벌써 정신을 차렸나.”
혁련위는 눈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신체에 손상을 입히면 분명 알아차릴 터.
일부러 검등으로 밀어치는 정도에서 끝을 냈다.
그렇다고 해도 내부에서 충격을 받아 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렇게 멀쩡하게 일어날 줄이야.’
남량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하라고 했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눈치챘을 텐데.”
혁련위는 동굴 입구를 막아서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는 여기를 나갈 수 없다. 다치기 싫으면 가만히 동굴 안에서 기다려. 해하지는 않겠다.”
“……하.”
남량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만하다.
어떤 새끼인지,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놈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화산의 수뇌부에.
매화검수를 이용해 나를 매화검투에서 떨어뜨릴 셈인가?
“재미있네.”
어쩐지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린다 싶었다.
남량은 자신이 안일했음을 인정했다.
정파라 해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마교만 못해도 구정물 하나 없을까.
“고맙다.”
느슨해진 정신을 다시 날카롭게 벼릴 수 있게 해 줬으니.
남량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보답으로 네놈을 쳐 죽이고 나간 다음, 나를 노리는 놈도 찾아서 지옥을 맛보여 주지.”
남량의 태도에 오히려 혁련위가 당황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다.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 놈은 아닌데…….
혁련위가 당황하는 건 지극히 정상에 가까웠다.
남량이 이런 모략과 암투를 수도 없이 겪고 살아남아 승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혁련위는 남량이 충격을 받아 정신이 나간 정도로 해석했다.
“경고한다. 허튼짓했다간 큰일 날 줄 알아라.”
“애새끼가 말만 주절주절…….”
남량이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걱정이나 해야 할 거다.”
우우웅!
남량은 내력을 끌어모아 검기를 형성했다.
“검기! 네가 어떻게…….”
혁련위는 눈을 부릅뜨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연하다. 고작 일대제자 따위가 어떻게 검기를 만들어 낸단 말인가!
“설마 네놈, 벌써 절정에 든 것은…….”
물어볼 새도 없이, 남량이 바닥을 박차고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슈와앙-!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여러 갈래로 나뉜 검기가 사방에서 짓쳐 들었다.
카가가강!
혁련위는 다급히 검기를 생성해 공격을 쳐 냈다.
그는 남량의 검을 쳐 냄과 동시에 팔을 노려 갔다.
‘검등으로 팔을 쳐서 검을 쥐지 못하게 만들…….’
그러나 그때, 남량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집을 뽑아 혁련위의 팔목을 가격했다.
“크윽! 검집을…….”
욱신거리는 통증에 혁련위가 이를 악물었다.
휘릭-.
남량은 제자리에서 몸을 띄움과 동시에 혁련위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검을 휘둘러 발을 쳐 내려던 혁련위는-.
‘안 돼. 검을 휘두를 수 없어. 벽에 붙어서!’
설마 이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일까?
혁련위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뻐억!
발차기에 적중당한 혁련위가 짧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 나갔다.
“이런 건방진 놈이…….”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봐주고 있다고는 하나, 한낱 일대제자 따위에게 얼굴을 걷어차였다.
매화검수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혁련위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봐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혁련위가 검에 내력을 끌어모았다.
남량의 검기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유형화된 검기였다.
화악-!
혁련위가 검을 내지르자 찌를 듯 날카로운 기운이 전신을 두들겼다.
“쳇!”
정면에서 받아쳤다가는 죽는다.
남량은 혀를 차며 검을 휘둘러 공격을 흘려 내거나 비껴 쳤다.
그것만으로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엄청났다.
“크읏…….”
남량은 이를 악물고 몸을 지탱했다.
그때, 혁련위가 남량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만 끝내자.”
뒷목을 쳐서 기절시킬 셈인가.
몸을 돌려 막을 수 없다. 한발 늦는다.
그렇다면…….
카칵-팟!
남량은 발로 바닥의 흙을 차서 혁련위의 눈에 날렸다.
검을 휘두르려던 혁련위는 깜짝 놀라서 팔로 얼굴을 가렸다.
혁련위의 표정이 당황과 분노로 물들었다.
“이노옴-! 이건 어디서 배워 먹은 더러운 짓이냐!”
“지랄.”
남량이 몸을 돌려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이게 강호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후웅!
남량의 검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혁련위는 흙먼지를 털어 내며 황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궤적이 훤히 보인다. 이깟 것쯤…….’
그때, 남량이 혁련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것마냥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다를걸?”
그 순간, 날아오던 검격의 궤적이 곡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바뀌었다.
『매화천수검 2초식. 옥녀유영(玉女遊泳)은 변화하는 검로(劍路). 예측할 수 없는 검격은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고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건 또 무슨-!”
경악한 혁련위가 몸을 비틀며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푸화학-!
남량의 검기에 적중당한 혁련위가 피를 뿜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남량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앞으로는 방심하지 말고 잘 새겨 둬.”
***
한편, 하기정에 도착한 참가자는 총 네 명이었다.
1등으로 들어온 찬야. 그리고 2등으로 들어온 위지혁.
3등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큰 키의 여제자였으며, 4등은 운휘였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 한 명뿐이었다.
“뭐야. 왜 안 와! 왜 안 오시냐고!”
운휘는 연신 난간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질러 댔다.
그는 지금 극도로 초조한 상태였다.
당연히 1등으로 들어와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했던 남량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운휘는 이 상황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초조하기는 찬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진정해. 아직 한 명 남았잖아.”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젠장!”
“…….”
찬야도 답답했는지 이를 악물었다.
유일하게 정황을 알고 있는 위지혁은 복잡한 표정으로 산 아래를 응시했다.
‘혁련 사숙께서 잘해 주고 계시나 보군.’
하긴, 매화검수가 나섰으니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가.
찝찝한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당당히 올라서고 싶었는데.
자신이 비겁한 도망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미리 하기정에 와서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공월 진인이 말했다.
“일다경 뒤에, 대회를 종료하겠다.”
“자, 잠깐만요!”
운휘가 다급히 공월 진인을 부르는 그때.
참가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돌아갔다.
짙은 운무 사이로 한 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그들은 일제히 인영에 시선을 집중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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