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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3화 (13/164)

<13화>

매화검투(梅花劍鬪)(12)

파파팟!

남량은 거동이 불편한 유우화를 업은 채 빠르게 화산을 내려갔다.

하다하다 이놈의 말 역할까지 할 줄이야…….

남량은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흘렸다.

“경공(輕功)이 제법 늘었구나.”

“스승님의 월인비(月人飛) 덕분입니다.”

월인비란, 유우화가 독창적으로 창안해 낸 경공술이었다.

원류(原流)는 화산의 대표적인 경공술인 암향표(暗香飄).

화산의 경공에 유우화의 무학이 더해지니, 매화천수검과 마찬가지로 신공절학의 무예가 탄생했다.

유우화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다! 월인비는 가히 최고의 경공이라 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망할 천마 놈도 경공에서만큼은 나보다 한 수 아래였지.”

“…….”

확 떨어뜨릴까?

잠깐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도 모른 채, 유우화는 뿌듯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열심히 수련하거라. 그럼 축지(縮地)나 도강(渡江), 초상비(草上飛)는 물론이고 전설상의 어기충천(御氣衝天)이나 능공허도(凌空虛道)도 가능하게 될 것이니…….”

이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남량은 알고 있었다.

전생에 온갖 무학들을 깨우친 위광이 유일하게 깨우치지 못한 두 가지의 무공.

우주검(宇宙劍). 그리고 비행(飛行).

각자 검(劍)과 경(輕)의 극의에 달한 무공이다.

우주검은 고금을 통틀어 익힌 이가 아무도 없는 신화 속 무공에 불과하나, 비행은 달랐다.

전설의 무공을 현실에서 실행시킨 유일한 사내가 바로 유우화. 그리고 그의 무공인 월인비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염라에게 고마운 점이다.

최상의 경공인 월인비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월인비의 습득은 매화천수검보다 더한 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딱!

갑자기 유우화가 손에 든 지팡이로 남량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어허, 그런데 이놈이 칭찬해 주니까 바로 실수를 하는구나. 안정감이 부족하다. 집중해.”

“……예.”

남량은 말없이 이를 부득 갈았다.

아니다. 염라에게 고맙다는 말, 취소다.

왜 하필이면 이 새끼냐. 대체 왜!

***

화산파가 위치한 화음현(華陰縣)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양현(宜陽縣)이라는 고을이 있었다.

물론 멀지 않다는 말은 남량의 기준에서 말한 것이지, 일반 남성이라면 걸어서 가는 데만 며칠은 걸릴 거리였다.

“정말 여기입니까?”

“그래.”

두 사람은 의양현에 위치한 야장간(冶匠間:대장간)에 도착했다.

“그럼 전번에 화산을 나가셨을 때도…….”

“그래. 이곳을 다녀왔다.”

“……다리 괜찮으십니까?”

“고생 좀 했지.”

유우화는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치며 걸음을 옮겼다.

“자, 들어가자.”

땅! 땅!

대장간답게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건장한 체구의 한 사내가 망치로 불에 달군 철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유우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열심히군. 구풍(具風).”

“아, 오셨습니까?”

구풍이라 불린 사내는 망치질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크다. 키가 엄청 크다.

허리를 숙였을 때는 몰랐는데, 저 정도면 9척(220cm)에 다다를 듯했다.

거기다 망치질로 단련된 근육 덕분에 외적으로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벽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은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네…….

구풍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오는 길은 편안하셨습니까?”

“좋은 ‘말’을 구해서 아주 편하게 왔다네.”

남량의 입술 끝이 살짝 씰룩거렸다.

……나를 진짜 말로 생각하고 있었냐?

구풍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주 뵈어서 좋습니다.”

“나도 그렇다네.”

“참, 주문하신 칼은 제작이 끝났습니다.”

주문하신 칼?

남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에게 시선을 돌린 구풍이 말했다.

“이 친구가 말씀하신 제자로군요.”

“그래. 요새 이놈 보는 맛에 산다네.”

유우화가 말했다.

“량아. 인사하거라. 이쪽은 구풍이라는 대장장이다. 강북에서는 제일가는 실력자라 자부할 수 있지. 내 검을 만들어 준 것도 이 사람이란다.”

“연화(煙花)를?”

“내 인생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지.”

구풍이 껄껄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망할 천마 새끼만 아니었어도…….”

“…….”

“그놈은 우리 가문의 원수야, 원수.”

연화를 부러뜨린 장본인은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구풍은 두꺼운 손으로 남량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무튼 반갑네. 구풍일세. 자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남량입니다.”

“자네에게는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네.”

구풍은 남량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동정호 결투 이후로 화산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유 대인을 직접 걸음하게 해 줘서. 덕분에 나도 오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네.”

“네…….”

무안해진 남량이 나직이 대답했다.

남량의 손바닥을 펼쳐 살피던 구풍이 중얼거렸다.

“굳은살이 수십 번은 벗겨졌겠군.”

구풍이 고개를 돌려 유우화에게 말했다.

“야무진 손이군요. 좋은 검사가 되겠습니다.”

“아무렴.”

구풍은 남량의 어깨를 툭툭 치며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십시오. 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대장간 옆에는 완성된 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수백 개의 목함 중, 검은 옻칠을 한 목함 하나를 꺼내 든 구풍이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비단에 싸인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새하얀 바탕에 붉은 매화 무늬가 들어간 칼집과 칼자루, 유려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칼날.

칼날 옆면에는 칼집과 마찬가지로 붉은 매화 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아름답다.

검사로서, 명검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떨리는 순간이 있을까?

“선물이다.”

유우화가 말했다.

“매화천수검에 가장 적합한 두께와 길이, 무게로 만들어진 검이다. 손에 익히는 건 차차 하거라.”

“스승님…….”

그럼 매화검투가 있기 전에 산을 내려온 건, 내가 떠날 시기에 맞춰 검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나?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이 울렸다.

“내 스승님도 이 자리에서 똑같이 내게 검을 선물하셨단다. 구풍의 가문은 대대로 화산제일검의 검을 만들었거든.”

유우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검이 네 반려검(伴侶劍)이 되기를 바라마.”

“감사합니다.”

“한번 잡아 보게. 오랜만에 나도 좋은 검을 만들어서 기대되는구만.”

구풍이 들뜬 표정으로 남량을 재촉했다.

남량은 조심스레 칼날과 자루를 잡고 들어 올렸다.

마치 처음 여인의 손을 잡는 것처럼 떨림이 느껴졌다.

검은 매우 가볍고, 기분 좋은 울림이 전해졌다.

구풍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검도, 주인도.”

“처음 잡았을 때 검명(劍鳴)이 들리면 말할 필요도 없지.”

남량은 한동안 말없이 검을 응시하다 칼집에 넣었다.

“좋은 검입니다.”

빈말이 아니다.

마교에 있을 시절에도 수많은 명검을 봐 왔지만, 이 검은 절대 그것들에 꿀리지 않았다.

유우화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런 탄성을 냈다.

“역시. 구풍 자네의 실력도 여전하군.”

“유 대인의 검을 처음 만들었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하하.”

“칼날이 얇은 것에 비해 강도가 탄탄해 보입니다. 흔한 철은 아니로군요.”

“감이 좋군. 자네 말대로일세.”

남량이 한눈에 알아보자 구풍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래 좋은 현철(玄鐵)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네. 그 검은 현철로 만들어졌으니 어지간한 충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게야.”

현철은 강철보다 단단한 강도를 지닌 철이었다.

구풍은 팔짱을 끼며 남량에게 말했다.

“사실 이름을 지어 둘까 했네만, 그건 주인에게 예의가 아니라도 생각했네. 자네가 그 검의 이름을 지어 주겠는가?”

“…….”

이름이라…….

잠시 고민하던 남량은 칼날에 새겨진 매화 꽃잎을 가만히 응시했다.

“화양(花陽)이라고 하겠습니다.”

“화양이라……. 하하하!”

구풍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글자는 다르지만 연화검과 음을 합치면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되는구나. 연화와 화양은 자매검과 다름없으니 참 어울리는 이름이야!”

유우화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한 어조로 말했다.

“그뿐이 아닐세. 구풍. 화양연화의 뜻대로 량이에게는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야. 그렇지?”

그건 아닌데?

단순히 연화검과 똑같이 생긴 검이라 그런 이름이 떠올랐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때, 구풍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흠흠. 그럼 검도 받았겠다, 늘 하던 ‘의식’을 할 차례로군.”

“의식?”

“왜 있잖습니까. 유 대인도 했던…….”

“아, 그거 말인가?”

유우화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남량이 물었다.

“무슨 의식 말씀이신지?”

“내가 일대제자였을 시절, 너의 사조(師組:스승의 스승)께서 내게 새 검을 얻은 대가로 마당에서 매화천수검을 펼치게 하셨단다.”

“덕분에 다시없을 좋은 구경을 했지. 이번에도 한번 보고 싶은데…….”

구풍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한번 부탁해도 되겠나?”

어려운 부탁도 아니다. 거기다 남량은 새로 얻은 검을 휘둘러 보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던 차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네.”

검을 들고 마당으로 나온 남량은 유우화와 구풍이 보는 앞에서 매화천수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가을에 다다른 계절이지만, 그곳만은 마치 봄날처럼 매화가 흩날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말없이 검식을 감상하던 유우화에게, 구풍이 물었다.

“기쁜데, 씁쓸하군. 후련한 느낌도 들고.”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저 아이의 검을 만드는 것이 도검 장인으로서 제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그런가…….”

“허나 유 대인께서 남량에게 미래를 맡기셨듯, 저도 제 아이에게 미래를 맡길 생각입니다.”

마침 대장간으로 들어온 구풍의 아내와 아이들도 남량의 검식을 목격했다.

“우와! 대단하다!”

“예뻐,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아.”

아이들이 시끄럽게 탄성을 내지르며 구경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구풍이 말했다.

“사람은 변해도, 뜻은 변하지 않고 시절을 지나 계속해서 이어지겠지요.”

“뜻이라…….”

“이제는 마음 놓고 편히 쉬십시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유우화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가.

비록 몸은 망가져 스러진다 하나, 마음만큼은 후대와 함께 싸우고, 전진한다.

“덕분에 마음이 좀 놓여. 고맙네.”

“별말씀을요.”

“오늘은 날씨가 좋군.”

유우화는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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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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