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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5화 (15/164)

<15화>

매화검투(梅花劍鬪)(14)

“내 말에 따라.”

“사양하지.”

“분명 출발하기 전에 말했어. 내 말을 장문인의 명이라 생각하고 따르라고.”

“내가 그 말에 대답을 했었던가?”

남량과 유라의 싸늘한 대화가 오갔다.

대화만 들으면 뭔가 아주 중요한 사안을 두고 갈등이 생긴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

가운데 서 있던 운휘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는 살짝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루 묵을 곳 정하는 데 뭘 그렇게 죽일 듯 싸우고 있어요?”

“…….”

그렇다. 이 쓸데없이 긴장감 넘치는 설전의 주제는, 바로 ‘오늘 어디서 묵을지.’에 대해서였다.

남량은 찬야라는 든든한 물주를 가지고 있으니 고급 기루에서 묵자고 말했고.

유라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여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적당한 객잔에서 묵자고 답했다.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개인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그럼 너도 함께하지? 뭣하면 네 돈도 내가 내줄 수 있으니.”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화산의 도사로서 품위를 좀 가져라. 우린 무림맹에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쓸데없이 꽉 막힌 여자로군.”

“말 다 했어?”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찬야가 결국 중재에 나섰다.

“자자, 다들 진정하자고. 서안 무림맹 지부까지야 서두르면 사흘 만에 갈 거리잖아. 유라 말대로 하되, 좋은 객잔에 묵자고. 그럼 불만 없지?”

“흥. 네놈의 그 태도가 가장 불만인 거다!”

유라는 앙칼지게 소리치며 등을 돌렸다.

남량은 나직이 웃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재미있는 여자네.

남량은 저 여자 같은 부류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한 자긍심과 신의가 절대적인.

보아하니 화산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것 같은데…….

‘저런 부류는 주인을 잘 따르고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지.’

자세히 뜯어봐야 알겠지만 재능도 나름대로 쓸 만해 보인다.

적당히 조련을……. 아니, 교육을 시켜서 쓸 만한 칼로 다듬어 봐야겠다.

훗날 내가 화산을 지배하고 마교와 전쟁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너 같은 고지식한 부류를 다루는 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조만간 기대해.’

남량은 유라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웃음을 흘렸다.

찬야와 운휘는 그 표정을 보고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저 표정……. 어째 날 질근질근 밟던 때랑 비슷해 보인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야.”

“우리 남 사제 말이야, 자세히 보면 좀 변태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지 않냐?”

“넌 그걸 이제 알았냐…….”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미리 유라의 명복을 빌었다.

남량은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오늘은 객잔에서 묵는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남 사제.”

“찬야. 내 방은 가장 좋은 걸로 잡도록 해.”

“이제는 날 아주 당연하다는 듯 돈주머니로 여기는구나…….”

세 사람은 두런두런 떠들며 유라의 뒤를 따랐다.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지혁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역시, 천한 것들은 싸우는 이유도 어쩜 그리 천박한지 모르겠다니까. 이거야 원, 덤으로 나까지 천박해지는 기분이군.”

그러다 문득, 위지혁은 자신만 따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짜증을 내며 속도를 높였다.

해가 질 즈음, 일행은 그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풍운객잔(風雲客棧)이라 불리는 그곳은 서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많이 몰렸고, 장사가 잘되는 덕분에 가게의 크기가 넓고 깨끗했다.

“배고픈데 밥 먼저 시킬까요?”

“그래.”

객잔 내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량 일행으로 향했다.

어딜 가나 무림에 속한 사람들은 호기심을 부르는 법이다.

“어서 오십시오, 젊은 도사님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통통한 얼굴의 점소이가 영업용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일행은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우육면(牛肉麵:소고기면).”

“저는 해산물 초반(炒飯:볶음밥)으로.”

“규화계(呌花鷄:거지닭). 어릴 때 자주 먹었지.”

“청초하인(淸炒蝦仁:새우를 기름에 볶은 요리)으로 주시오.”

“동파육(東坡肉). 배고프니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일다경(15분)도 지나지 않아, 일행의 상에 요리가 차려졌다.

몇몇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남량 일행보다 더 일찍 주문을 한 사람들일 것이다.

눈치가 빠른 점소이들은 일부러 무림인을 우선으로 음식을 날랐다. 이는 혹여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똑같이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불만을 토로해도 무림인보다는 일반인이 상대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

그리고 차별의 상대가 무림인, 그것도 화산같이 유명한 무림 분파에 속한 자들이라면 불만을 품을지언정 대부분 가만히 닥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 시발. 기분 더럽네.”

구석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일행이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덩치에 팔뚝에 새겨진 상처가 위협적인 거한들이었다.

“이거 화산의 도사들이라고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어?”

놈들은 손에 든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며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그 탓에 객잔 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거한들에게로 돌아갔다.

거한은 씩씩거리며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점소이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점소이는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왜 이러십니까!”

“몰라서 물어? 우리가 먼저 주문을 했는데도 저 시퍼렇게 어린 애송이들에게 음식이 먼저 나갔잖아! 우리가 누군 줄 몰라?”

“그, 그게…….”

바로 그때였다.

탕-!

거칠게 젓가락을 내려놓은 남량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누군데?”

“뭐?”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길래 내 식사를 방해하는지, 들어나 보자.”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다 눈을 부라려?”

거한은 점소이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우린 섬서의 묵륜파다. 화산의 도사라면 우리들의 악명 정도는 들어 봤겠지?”

전혀 모르겠는데.

남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찬야에게 물었다.

“들어 봤냐?”

“아뇨. 제 기억에도 없는 걸 보니 최근에 커진 신생 사파인 것 같은데요?”

“결국 떨거지라는 소리군.”

대충 짐작은 했다. 척 봐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남량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 한 번만 특별히 봐줄 테니 바람처럼 사라져라.”

이건 남량의 입장에서 매우 과분한 호의였다.

천마였던 시절이었다면 놈들은 그 자리에서 핏물로 변했을 터.

그러나 묵륜파 거한들은 자신이 그런 은혜를 입었다는 것도 모른 채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저 개놈의 새끼가 감히 우리를 모욕해?”

“화산이라고 해서 네놈 목이 무사할 것 같으냐?”

“건방진 놈.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 주지!”

찬야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화산이 나서면 반나절도 안 돼서 사라질 것들이. 하하.”

위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래서 사파들은 상종할 것들이 못 된다니까. 품위가 없어. 품위가. 쯧쯧.”

유라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당히 타이르고 돌려보내는 선에서 그쳐라.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말…….”

“네놈들 전부 죽여 버리겠다!”

두목으로 보이는 거한이 벽에 걸어 둔 집채만 한 대도(大刀)를 들고 그대로 내던졌다.

일행은 발을 살짝 움직이는 것으로 대도를 피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음식들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

일순, 정적이 흘렀다.

남량은 말없이 주먹을 풀며 말했다.

“운휘는 객잔 문 닫고, 찬야는 손님 내보내.”

“네. 형님.”

“알았어, 남 사제.”

운휘와 찬야는 바람처럼 손님을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갔다.

남량은 곧장 거한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디 해보자는 거냐- 컥!”

코웃음을 치며 남량을 쳐다보던 거한의 턱이 그대로 돌아갔다.

쿠웅!

거한의 거대한 몸뚱이가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남량은 푸른 귀화(鬼火)가 타오르는 눈으로 말했다.

“대충 이십 명 정도인가. 하나하나 철저하게 밟아 죽일 테니 질서 있게 덤벼라.”

“당했다! 한꺼번에 덤벼라!”

“질서 있게 덤비라고 했지?”

쿠당탕!

드디어 분노가 폭발한 남량이 괴수처럼 거한들을 개처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짐승들에게는 매가 답이지.”

퍽! 퍼억! 퍼버벅!

“끄아악!”

점소이는 구석에 숨은 채 덜덜 떨며 탁자를 들고 휘두르는 남량을 응시했다.

뒤늦게 합류한 운휘와 찬야도 마찬가지로 거한들을 철저하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하. 나도 이제 모르겠다.”

바닥에 떨어져 더럽혀진 자신의 볶음 요리를 멍하니 응시하던 유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망할 계집! 너도 한패렷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거한의 손목을 잡아 부러뜨린 유라가 거한을 집어 던지며 몸을 날렸다.

뻐억! 빠각!

그녀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거한들의 뼈와 근육을 부수기 시작했다.

한편, 흙먼지가 튀지 않는 곳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위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박해. 너무 천박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빌어먹을!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까?”

점소이는 이제 모든 걸 해탈했다는 듯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래. 시발 다 때려 부숴라. 망할 도사 놈들아…….”

결국 풍운객잔의 소동은 관군들이 나선 뒤에야 진정되었다.

유라는 파손된 건물의 복구 비용을 지불하라는 관리의 지시에 하는 수 없이 가진 여비를 전부 내주었다.

하룻밤 만에 거지가 된 유라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이틀은 꼼짝없이 풍찬노숙이겠군.”

“아닌데?”

남량은 찬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제부터 고급 기루에 묵으면 되지.”

남량은 유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보니까 성질이 장난 아니던데. 마음에 들어. 함께 갈까?”

“웃기지 마! 자존심이 있지, 네놈 돈 빌려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차라리 풍찬노숙을 하고 말겠어!”

“그럼 그러든가. 가자.”

남량은 자신을 노려보는 유라를 귀엽다는 듯 응시했다.

어디 잘난 자존심이 어디까지 가나 볼까?

그때, 가만히 있던 위지혁이 벌컥 성질을 냈다.

“왜 나한테는 권유하지 않는 거냐!”

“넌 뭐. 네 돈으로 알아서 해결해.”

“뭐, 뭐라고? 이런 건방진 놈…….”

위지혁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결국 남량과 찬야, 운휘는 무림맹 지부로 가는 이틀 동안 고급 기루에서 호화로운 여정을 보냈고, 유라와 위지혁은 마구간이나 폐허에서 잠을 자고 주린 배를 참았다.

그리고 일행은 마침내 서안의 무림맹 지부에 당도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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