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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7화 (17/164)

<17화>

은영단(隱映團)(2)

‘이럴 수가! 내가 당하다니!’

흑의인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방심한 상대에게 기습을 가하고도 오히려 역공을 당했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사내에게!

놈에게 당한 가슴팍이 욱신거렸다.

그때, 남량이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벗어. 얼굴이나 한번 보자.”

“…….”

흑의인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렸다.

벗으라고 순순히 벗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흑의인은 이를 악물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죽여라.』

파파팟!

그 순간, 복도가 일렁거리며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남량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이 막힌, 완벽한 기습이다. 막기에는 늦었다!’

흑의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사방이 막힌, 완벽한 기습이다. 막기에는 늦었다.”

남량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지?”

“……!”

“내가 강호에서 먹은 짬이 얼만데, 네까짓 놈들 속마음쯤이야 눈 감고도 뻔하다.”

남량이 기합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다.

콰아앙!

직후, 남량의 전신에서 터져 나온 기파(氣波)가 주변을 휩쓸었다.

***

후두둑-.

별채 건물이 무너지며 주변에 진동이 일었다.

남량은 주변을 쭉 돌아보며 어깨를 풀었다.

그때 잠에서 깬 일행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급하게 나오느라 침의 차림이었다.

“자다가 깔려서 죽을 뻔했네.”

“남 사제. 무슨 일이야?”

찬야는 그 와중에도 남량의 검을 챙겨 왔다.

찬야에게서 검을 넘겨받은 남량이 말했다.

“암습(暗襲)이다. 강호를 돌다 보면 흔하게 겪는 일이지.”

“말투가 꼭 강호 수십 년 겪은 백전노장 같네. 하하.”

당연하지. 내가 그 백전노장이니까.

마침 유라와 위지혁도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야! 이거 네놈 짓이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시끄럽고, 정신 차려라. 지금부터 한바탕 싸워야 하니까.”

“뭐?”

그제야 유라와 위지혁도 주변을 에워싼 자객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뭐긴 뭐야, 자객이지.”

남량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뒤지기 싫으면.”

한편, 소란이 일자 무림맹 보초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남량에게 당한 흑의인은 이를 부득 갈며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작전 변경이다. 내가 ‘목표’를 찾아 없앨 터이니 너희들은 이놈들을 다 죽여 버려라!』

『존명!』

수십 명의 흑의인들은 그대로 남량 일행을 향해 매섭게 짓쳐 들었다.

그리고 두목으로 보이는 자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옳아. 그쪽에 암살 목표가 있는 거로군.’

남량은 놈을 따라 몸을 날리며 일행에게 말했다.

“병신처럼 당해서 화산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전부 쓸어버려.”

“물론입니다, 형님! 자, 전부 덤벼라!”

운휘의 외침을 시작으로, 남량 일행 또한 자객들을 향해 쇄도했다.

***

가면의 자객들은 상당히 노련했다.

일 합으로 네 명의 화산 제자들의 전력 차를 파악하고, 가장 약한 자부터 노려 왔다.

바로 운휘였다.

네 명의 제자들 중 가장 검로가 불완전하고 동작이 어설펐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파악한 것이 있었다.

카캉!

운휘와 검을 부딪치자 단번에 자객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이럴 수가! 일 합에 검을 부숴 버리다니!’

일검에 무게와 힘을 집중한 칠절매화검. 그리고 건원청심법이라는 탄탄한 내공심법.

선천적인 무골에 지옥 같은 훈련이 더해져,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뤄 냈다.

운휘는 당황하는 자객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지금 나 얕보고 달려든 거지?”

“그, 그게…….”

“지옥에 가서 뼈저리게 후회해라. 얼간아.”

운휘는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횡으로 휘둘렀다.

스걱-!

검에서 뻗어 나간 내기가 반월을 그리며 그대로 자객의 허리를 양분했다.

‘스승님, 보고 계시지요? 스승님의 제자 운휘가 이렇게 강해졌습니다.’

운휘는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동작’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적을 찢어발기니-.

“칠절매화검 1초식. 암하지전(巖下之電).”

그것이 바로 칠절매화검의 정수였다.

푹, 푸슉!

운휘의 검기에 적중당한 자객들이 허공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꼬꾸라졌다.

한껏 어깨가 솟은 운휘는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이걸로 끝이냐? 근성이 없구만. 하하!”

“진정해. 멍청아.”

팟-서걱!

한편, 찬야는 소리 없이 자객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은 여유 가득한 웃는 표정이니, 자객들의 성질을 부추겼다.

쇄애액!

약이 바짝 오른 자객이 달려들어 검을 내질렀다.

“어이쿠.”

찬야는 바닥을 박차고 몸을 띄워 검을 피해 냈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빙글 돌리며 자객의 목을 베었다.

“그렇게 흥분하면 못 쓰지.”

찬야는 남량이 인정한 화산파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검사였다.

비록 평상시에는 여색을 밝히는 호색한에 진중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내이지만.

“이십사수매화검법. 11초식.”

적을 상대할 때만큼은 웃는 얼굴로 자비조차 없이 베어 버리니, 그 모습이 마치 사신(死神)과 같았다.

“설부화용(雪膚花容).”

휘리릭-퍼퍼퍽!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검기가 자객들의 목을 관통했다.

손을 들어 뺨에 묻은 피를 닦아 낸 찬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검기가 향상되었군. 남 사제 덕분이야.”

다음은 유라.

그녀의 검술은 한마디로 ‘화려하다’라고 할 수 있었다.

강하고, 또 화려하다.

유려한 찬야의 검술과 패도적인 운휘의 검술을 반반 섞어 놓은 모습이 바로 유라의 검술이었다.

“하압!”

유라가 바닥을 박차며 검을 휘두르자 자객의 몸이 사선으로 양단되어 공중에 피를 흩뿌렸다.

유라는 온몸에 피가 튀었음에도 상관없이 더욱 광기에 차서 자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객들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피에 젖은 채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에 오싹한 공포심을 느꼈다.

“죽어라.”

파파팟!

유라가 미친 듯 칼질을 하면, 자객들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도륙되어 한 줌 핏물이 되었다.

그녀가 쓰는 검술은 매화홍주검(梅花紅蛛劍).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의 피가 거미줄처럼 허공을 수놓으니, 매우 잘 어울리는 작명이었다.

“여장부네, 여장부야. 하하.”

“마음에 든다. 저 여자.”

지켜보던 찬야와 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위지혁.

위지혁 또한, 차기 장문인으로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천박한 살수 놈들.”

휘릭, 스걱!

위지혁은 자객들의 칼을 여유롭게 피하며 깔끔하게 적들을 베어 버렸다.

그가 사용하는 검술은 매화영롱검(梅花玲瓏劍).

하나같이 적의 눈을 교란시키며 빠르게 급소를 찌르고 베어 내는, 지극히 효율적인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이 바로 작금의 매화오절.

화산의 장문인 구양중이 ‘이번 매화오절은 기대가 크다.’라고 했던 말은, 그저 겉치레가 아니었던 것이다.

뛰어난 젊은 검사들의 활약에 의해, 별채에서 벌어진 전투는 무림맹 무사들이 달려오기도 전에 정리가 되었다.

***

한편, 자객들의 두목은 삼 층 건물에 도착해 지붕을 박차고 올라갔다.

창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서자, 잠자리에 들었던 한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는 바로 서안 무림맹 지부의 지부장인 권혁(權赫)이었다.

권혁은 깜짝 놀라며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네놈은 누구냐!”

“죽어라.”

한시가 다급했던 흑의인은 그대로 권혁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바로 그때!

채앵!

날듯이 달려온 남량이 흑의인의 검을 막고 나섰다.

흑의인은 남량의 차가운 표정을 응시하며 이를 갈았다.

‘또 네놈인가!’

약관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새파란 애송이가, 계속 앞을 가로막는다.

흑의인은 이번에야말로 저 건방진 애송이를 쳐 죽이고자 전력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그런데.

“멍청한 새끼. 검에 감정을 넣고 말이야. 자객이라는 작자가.”

남량은 가볍게 그의 검을 피하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렸다.

서걱-!

검을 든 팔이 잘려 나가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잠깐 멍해졌던 흑의인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으윽!”

“넌 자객 실격이다.”

“닥쳐라!”

흑의인은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발차기를 날렸다.

남량은 여유롭게 발차기를 피하며 이번에는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빠각!

흑의인의 가면이 깨지고 피와 부서진 이빨이 떨어졌다.

남량은 검을 들어 놈의 어깨를 찔러, 벽에 고정시켰다.

얼굴을 드러낸 흑의인은 입에서 울컥 피를 토하며 신음을 뱉었다.

“참으로 무자비한……. 무서운 도사로군…….”

“누구의 사주를 받았지? 배후가 누구냐!”

지부장 권혁이 다가와 물었다.

흑의인은 클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멍청한 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권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맞습니다.”

“응?”

난데없는 남량의 말에 권혁과 흑의인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자는 아무것도 몰라요. 눈을 보면 압니다.”

천마였던 시절, 감히 내 눈앞에서 거짓을 말하는 놈들을 수도 없이 만나 봤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진실을 말하는 놈과 거짓을 말하는 놈의 눈빛은 다르다.’

이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한편, 남량의 말에 당황한 흑의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지?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지랄하고 있네.”

“어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은 살려 둘 필요가 없지. 죽어라.”

“자, 잠깐만……!”

푸욱-.

남량은 흑의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목젖에 주먹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런 미친……. 새끼…….”

흑의인은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

지부장 권혁은 침을 꿀꺽 흘리며 남량을 응시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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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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