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22화 (22/164)

<22화>

은영단(隱映團)(7)

땡땡땡!

어둠을 뚫고 종소리가 급박하게 울렸다.

조용한 산골짜기에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습격이다!”

“무림맹, 무림맹에서 쳐들어왔다!”

노련한 무림맹의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자객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반면, 은영단의 자객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을 버는 데 급급했다.

쇄애액! 촤악!

“커헉!”

단칼에 자객들을 베어 낸 양악이 말했다.

“이대로 중정(中庭)까지 밀어붙인다!”

“옙!”

콰앙!

정문을 부수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대원들은, 마당을 가득 채운 자객들과 마주했다.

“지나가게 놔둘 성싶더냐?”

자객의 말에, 양악이 싸늘히 대꾸했다.

“그럼 죽이고 길을 열 뿐이다.”

양악이 손짓을 하자 검사들이 좌우로 흩어지고 궁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열, 쏴라!”

슈슈슈슈슉!

쏟아지는 화살비에 자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궁수들은 양악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대열을 교체했다.

화살비를 피한 자객들이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2열, 쏴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자객들은 화살을 피하느라 어지러이 흩어졌고, 양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기하던 검사들이 살아남은 자객들을 처리했고, 마당을 가로막은 적들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서둘러 건물 안으로 진입하라!”

우르르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자객들이 복도를 막아서고 있었다.

챙! 채채챙! 카캉!

건물 안에서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다.

양악은 달려드는 적들을 베어 내며 전황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아군 쪽이 우세한 듯하지만…….

‘뭔가 이상하군. 아직도 반응이 없다니.’

정작 집단의 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보아하니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 몸을 내뺀 듯했다.

‘놓치지 않겠다.’

파파파팟!

양악은 검기를 뿜어내며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

한편, 은영단의 수장인 흑표(黑表)는 갑작스런 야습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무림맹? 놈들이 여길 어떻게 알고 쳐들어온단 말이냐!”

“그, 그것이…….”

은영단의 부단주 중 한 명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사실 어젯밤 허창의 한 조(組)가 궤멸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때 새어 나간 것이 아닐지…….”

“네놈은 그걸 이제야 보고했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퍼억!

다음 순간, 흑표가 벼락처럼 손을 뻗어 부단주의 가슴팍을 때렸다.

부단주는 피를 왈칵 내뱉으며 바닥에 엎어져 그대로 절명했다.

나머지 부단주들은 기겁하며 입을 닫고 시선을 피했다.

멍청하게 입을 놀렸다간 똑같은 꼴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스윽.

흑표는 손에 묻은 피를 옷깃으로 닦으며 말했다.

“상황을 보고하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미 놈들이 중정까지 진입했고, 이 건물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속히 대피를…….”

“끄응.”

흑표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건물에 남은 인원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무림맹을 막고, 호위대는 나를 따라 이곳을 벗어난다.”

“존명.”

“시간을 더 벌지 못할 것 같으면 건물째로 폭발시키고.”

“…….”

“조금이라도 대계(大計)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부단주들이 방을 나가고 호위대가 그곳에 모여들었다.

‘빌어먹을.’

흑표는 주먹으로 벽을 후려치며 이를 부득 갈았다.

‘일이 꼬여도 더럽게 꼬여 버렸어. 하필 무림맹이라니!’

은영단이 움직인 건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부지런하게 맹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했지만 한 달 동안 낼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빨리 발각될 줄은.’

흑표는 두려웠다.

은영단의 배후에 있는 ‘그분’. 그가 이번 일로 인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면…….

그 후환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아직 멀었다.’

그래. 살아만 있으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흑표는 고개를 젓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은영단의 건물 뒤에는 은밀히 연결된 비밀 통로가 있었다.

무림맹의 무사들도 그곳의 위치까지는 알지 못할 터였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난 다음, 후일을 도모하리라.

흑표는 호위대를 이끌고 서둘러 통로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이대로 준비해 둔 말을 타고 이곳을 완전히 벗어난다.’

동굴 밖으로 나온 흑표는 고개를 돌려 말을 찾았다.

그런데.

“뭐냐! 말이 왜 다 죽어 있는 것이야!”

수십 마리의 말이 하나같이 끔찍하게 도륙당한 채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백발을 흩날리는 젊은 검객 한 명이 피 묻은 검을 늘어뜨린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흑표는 눈에 핏발이 선 채 소리쳤다.

“네놈은 또 누구냐!”

“남량.”

남량은 흑표와 그의 뒤편에 선 호위대를 힐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빠져나갈 구멍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하여 근방을 살폈는데……. 말이 있는 걸로 대충 눈치챘지만 운이 좋았군.”

“이놈…….”

“네놈이 은영단의 단주냐?”

흑표는 남량의 주변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습격이라면 달랑 무사 하나 보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여긴 흑표가 물었다.

“네놈, 무림맹에서 보낸 놈이냐?”

“적어도 함께 온 것은 아니지.”

“그렇다면-.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파파파팟!

흑표의 외침을 신호로 호위대가 일제히 남량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이 꺼낸 암기가 서슬 퍼런 빛을 내뿜으며 남량의 전신 급소를 노려 왔다.

호위대의 거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남량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쇄애애액!

공중에 떠오른 검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한 합에 호위대원 두 명의 목이 잘려 바닥에 꼬꾸라졌다.

‘빠르다!’

지켜보던 흑표가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은 눈으로 보고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검속이었다.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어린 청년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흑표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짧은 간격을 두고 몰아붙여라.”

파파파팟!

호위대는 기다렸다는 듯 진형을 바꾸어 천천히 남량의 주변을 압박해 왔다.

챙, 채채채챙!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검격. 병장기가 부딪치며 생긴 불똥이 주변을 에워쌌다.

남량은 일절 표정의 변화도 없이, 기계처럼 공격을 정확하게 흘리고, 막으며, 신중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미꾸라지처럼 포위망을 빠져나와 적의 숫자를 줄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적을 죽이는 데만 집중하는 정신력. 분명 수없이 전장을 구른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그걸 저 어린 애송이가 어떻게?’

흑표는 더더욱 남량의 정체를 알기 어려워졌다.

그때였다.

후웅!

허리를 젖혀 호위대원이 내지른 사슬낫을 피한 남량이 허공에 대고 검을 길게 휘둘렀다. 가로로 베는 횡베기였다.

직후, 뭔가를 알아챈 흑표가 소리쳤다.

“피해-!”

그러나 이미 한발 늦었다.

슈웅-.

번쩍, 하고 섬광이 일며 뻗어 나간 검기가 주변에 있던 적들의 허리를 일검(一劍)에 양단했다.

순식간에 당한 수하들을 보며 흑표가 이를 악물었다.

“크윽. 무림맹이 아주 제대로 된 놈을 보냈구나.”

“독단으로 움직였다고 말했을 텐데. 뭐, 상관없나.”

남량이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작하지.”

“건방진 애송이 놈이…….”

철컥!

흑표가 손목에 낀 철갑(鐵甲)을 매만지자 구조(鉤爪)처럼 생긴 칼날이 튀어나왔다.

‘짐승의 손톱 같군. 그래서 흑표인가.’

흑표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남량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놈 살가죽을 보기 좋게 벗겨 주마.”

“혓바닥을 놀릴 여유가 있느냐?”

으득! 흑표가 욕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개자식! 그 입부터 찢어 버리겠다!”

쩌어엉!

흑표의 갈퀴손과 남량의 검날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동시에 검기가 폭발하며 전방위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휘릭, 카카칵!

흑표가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갈퀴를 휘둘렀다.

칼날에 맺힌 검기가 남량을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했다.

그 기세는 남량이라 해도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남량은 칼날을 밀어 흘려보낸 뒤, 그대로 흑표의 목을 노렸다.

쇄애액!

흑표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검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남량의 턱을 노리고 갈퀴손을 추켜올렸다.

남량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머리를 젖혀 공격을 피해 냈다.

휘릭-.

둘은 동시에 몸을 빙글 돌리며 칼을 휘둘렀다.

카가가칵-!

순식간에 십여 합이 오가며 바닥에 흙먼지가 치솟았다.

후웅.

흑표는 갈퀴손을 옆구리에 끼운 채 내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짧은 기합과 함께 손을 내질렀다.

“맹호광란(猛虎狂亂)-!”

콰과과곽!

남량은 눈을 부릅뜨며 매화천수검의 초식을 펼쳤다.

매농낙화(賣弄落花).

검기가 꽃잎처럼 휘날리며 남량의 주변에 검막(劍幕)을 생성했다.

그러나, 흑표의 절기는 남량의 검막을 뚫고 기세를 몰아 충격을 가했다.

“크윽!”

남량은 신음을 흘리며 오 장을 튕겨 나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욱신거리는 늑골을 부여잡는데, 흑표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절정에 달한 것은 인정한다만,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이다. 초절정의 경지와 절정의 경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격차가 있느니…….”

“…….”

“애초에 나를 이기려는 것 자체가 헛된 짓이다.”

“풋. 흐흐.”

남량이 끌끌 웃음을 흘리자, 흑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웃지?”

“네까짓 것이, 내 앞에서 하늘을 논해?”

우우웅-!

순간, 남량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 하늘의 정점에 섰던 내게, 감히!”

남량의 노호성이 터져 나오며 주변에 돌풍이 일었다.

흑표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투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말도 안 돼. 절정 따위가 어떻게?”

“똑똑히 봐라.”

남량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붉은 아지랑이가 불꽃의 형상을 그렸다.

흰자위가 붉게 물들고, 안광은 시뻘건 귀화(鬼火)를 토해 내고 있었다.

폭혈기공.

단시간에 내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유우화의 비술 중 하나가 발현된 것이다.

“내가 바로, 천마 위광이다!”

콰앙!

남량은 불꽃을 온몸에 휘감은 채 바닥을 박차고 쇄도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