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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29화 (29/164)

<29화>

지하미궁(地下迷宮)(6)

대략 일다경 전.

남량은 계획을 변경하여 찬야에게 각운 선사의 유서를 건네주었다.

“너희는 그걸 들고 먼저 이곳을 빠져나가라.”

운휘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형님은요? 같이 나가야죠!”

남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갈경을 데려와야지. 시간도 없는데 한 명만 가서 데려오면 충분해.”

“괜찮겠어?”

찬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남량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경공은 내가 가장 빠르니까.”

“남 사제…….”

찬야는 남량이 화산의 도사로서 제갈경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고 생각했다.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주저 없이 나서는 용기. 실로 아름답지 않은가.

“왜 그렇게 쳐다봐? 부담스럽게.”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존경해. 남 사제…….”

찬야의 말에 남량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단단히 오해하는군.’

남량이 누군데, 고작 젊은 여인네 한 명 구하려고 귀한 목숨을 걸 리가 없었다.

지하미궁이 무너진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남량은 위험을 느끼며 동시에 기회임을 직감했다.

잘하면 지하미궁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 여의주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회.

하필 여의주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한 찰나, 제갈경이 문을 연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이 또한 목숨을 거는 짓이나, 이왕 문을 열게 된 이상 남량은 모험을 걸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전의 문이 열린 순간 남량은 희미하게 여의주의 기운을 느꼈다.

벼락과도 같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전신에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공할 기운을.

여의주는 말하고 있었다.

‘나를 손에 넣고 싶은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오라!’라고 말이다.

그렇게 남량을 도발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럼 천마의 자존심에 등을 보일 수 있겠는가.

남량은 찬야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무튼, 얼른 도망쳐. 아, 그리고 갈 때 죽은 제갈세가 사람들의 시체를 챙겨 줘. 제갈경이랑 약속한 것이 있어.”

찬야는 복잡한 표정으로 남량을 응시했다.

“꼭 뒤따라와야 해.”

“그래.”

남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찬야와 운휘는 들어온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남량 또한, 바람처럼 무너지는 잔해를 피하며 빠른 속도로 제갈경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제갈경이 잔해에 깔리기 직전, 그녀를 구해 낼 수 있었다.

“괜찮아?”

“…….”

“조각에 머리를 부딪혔나? 왜 대답이 없어?”

“네?”

제갈경은 살짝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평소 누구와 대화해도 똑 부러지게 대답하던 그녀가, 바보처럼 묻는 말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은 왜 또 이렇게 미친놈처럼 뛰는지 모르겠다.

손등을 뺨에 대자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제갈경은 부끄러움에 얼른 옷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이게 미쳤나? 이럴 때가 아닌데.’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제갈경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 인마! 지금 성이 무너지고 있는 거 안 보여?”

남량의 일갈에 그제야 제갈경은 제정신을 차렸다.

‘맙소사. 정말 미친 건가? 이런 상황에.’

생에 처음 겪어 보는 감정에 살짝 돌아 버린 모양이다.

남량은 제갈경에게 등을 돌리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업혀. 곧 여기는 무너질 거야.”

“네? 설마 내가 기관을 해제해서 그런 건가요?”

“그래. 이 안에 든 보물을 지키려고 수작을 부린 모양이다.”

남량은 말하는 와중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한가한 줄 알아? 빨리 올라타!”

“네? 네넵!”

제갈경은 깜짝 놀라며 빠르게 업혔다.

남량은 미리 벗어 둔 도포로 제갈경의 허리와 자신의 허리를 꽉 조여 맸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문 너머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예요? 무너진다면서요! 그럼 돌아서 도망가야죠!”

제갈경의 외침에 남량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잊었어? 문을 연 건 너야. 그러니 나는 안에 든 여의주를 받아 가야겠다.”

“미쳤어! 이 와중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건가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럼 내가 여의주를 무사히 가져오기를 빌어!”

남량의 외침에 제갈경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 간질거리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제갈경은 망연자실해서 남량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와중에 남량의 목덜미에서 향긋한 매화 냄새가 났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여의주의 기운이 강해지는군.’

파파팟!

남량은 눈을 빛내며 속도를 더욱 높였다.

***

촤아악-.

마침내 신전 안으로 들어온 남량이 멈춰 섰다.

커다란 동굴의 가운데, 높은 석제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꼭대기에 마찬가지로 돌을 깎아서 만든, 화려하고 정교한 용 석상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용이 입에 물고 있는 보옥(寶玉)이, 바로 남량이 찾던 여의주였다.

‘저것이 바로!’

황금빛이 일렁이는 투명한 구슬. 세상의 그 어떤 영약과 영물도 저것에 비할 수 없으리라.

‘300년 전 용이 내려 준 여의보주를 복수에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돕는 것이겠군!’

남량은 월인비를 펼쳐 단번에 제단 위로 올라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별안간 제단 안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남량을 공격해 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서 피한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뭐였지?’

몸을 빙글 돌려 바닥에 착지한 남량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공격한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커다란 미원(獼猿:원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살아 있는 생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미원의 형태를 했을 뿐, 목제 인형에 불과했다.

“저건……. 옛 고서에서 본 적이 있어요. 동물의 형태를 본떠 생전의 습관을 그대로 재현하게 만든 전투용 인형…….”

제갈경의 말에 남량이 대답했다.

“여의주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건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단순한 함정 따위가 아니라 움직이는 인형이라, 제갈경에게 해체를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부숴 버릴 뿐이다-.

남량은 즉시 바닥을 박차고 미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형의 반응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으나, 남량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휘릭. 콰곽-!

남량은 미원의 주먹을 가볍게 흘려 냄과 동시에 칼날을 들어 그대로 미원의 목을 베어 버렸다.

훙! 후웅!

그러나 미원은 목이 잘려 나간 뒤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주먹을 휘둘러 댔다.

남량이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목을 잘라도 안 죽는 건가?”

“당연하죠! 저건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니까! 저걸 멈추려면 기관의 동력 부분을 찾아서 베어야 해요!”

제갈경이 다급히 대답했다.

“찾을 수 있겠어?”

남량이 덤덤히 물었다.

“아마도요.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찾아내. 내가 벨 테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지금까지의 함정도 쉽지는 않았어.”

제갈경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바로 그때, 제단 안쪽에서 미원과 똑같이 생긴 인형들이 무수히 튀어나왔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대략 수백. 절대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제갈경은 절망감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쾅! 콰앙!

미원 인형들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남량을 포위했다.

남량은 달려드는 미원들의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초식을 펼쳤다.

순식간에 조각난 인형 조각들이 허공에 치솟고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매화천수검 7초식-.”

남량이 검을 길게 휘두르자, 수십 개의 참격이 어지러이 흩날리며 전방위로 터져 나왔다.

“단천열화(斷天熱火)!”

콰과과과쾅!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치며 잘려 나간 미원 인형들의 잔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꺄아악!”

격한 움직임으로 충격을 받은 제갈경이 비명을 질렀다.

“내려 줘요!”

남량이 차갑게 대꾸했다.

“참아!”

남량은 인형들이 주춤하는 틈을 타 여의주가 있는 제단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기관장치는 남량을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쿠쿵!

이번에는 크기가 겉보기에도 한 장(3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지주(蜘蛛:거미) 인형이 막아섰다.

‘이건……. 어디를 베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슬슬 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량은 하는 수 없이 내력을 일시에 집중시켜 토막을 내려 했다.

바로 그때, 제갈경이 남량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머리 바로 아래. 턱 부분을 노려요.”

파파팟!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비호와 같은 속도로 몸을 날렸다.

콰콰쾅!

남량이 있던 자리에 지주 인형의 거대한 다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공중에 뛰어오른 남량은 지주 인형의 다리 부분을 디딤 삼아 쏜살같이 쇄도했다.

콰득-!

남량이 휘두른 검기가 정확하게 지주 인형의 턱 부분을 베고 지나갔다.

지주 인형은 즉시 동작을 멈추고 바닥에 엎어졌다. 남량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잘했어.”

“당신 등에 더 있다간 죽을 것 같으니 머리가 빨리 돌아가네요! 참 고마워요!”

제갈경이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충격 요법 같은 건가?”

남량이 순진하게 대꾸하자 제갈경이 또 성질을 터뜨렸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다 당신 때문이야! 죽어서도 원망할 거라고, 알겠어? 이 꼬맹이야!”

남량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뺨 정도는 내어 줄 수 있어.”

그사이 새로 나타난 지주 인형 세 개와, 뒤를 바짝 추격해 온 미원 인형이 남량에게 달려들었다.

제갈경은 미원의 움직임을 집중해 살피고 빠르게 분석을 끝마쳤다.

“미원 인형은 오른쪽 겨드랑이를 베거나 찔러요.”

“지주 인형은 조금 전처럼 턱 아래를 노리고?”

남량은 이전보다 한결 여유롭게 인형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칼끝이 흔들거렸다.

거기다 미궁이 붕괴되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잔해에 깔려 죽거나 체력이 다해 인형들에게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겠군.’

어떻게든 여의주를 손에 넣고 도망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때, 남량의 검격에 의해 넘어진 지주 인형이 용의 석상에 부딪히며, 석상의 머리 부분이 똑 하고 떨어졌다.

제갈경이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남 소협! 여의주가 날아가고 있어요!”

남량은 떨어지는 여의주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바람처럼 날아갔다.

‘잡을 수 있어.’

남량은 눈앞에 보이는 여의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르륵. 파팟!

어디선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온 장사(長蛇:큰 뱀) 인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여의주를 삼켜 버린 것이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장사 인형에게 여의주를 빼앗기자 남량과 제갈경은 동시에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야 이 뱀 새끼야!”

남량은 즉시 몸을 돌려 장사 인형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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