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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34화 (34/164)

<34화>

명탐정 찬야(2)

찬야는 명월루에 오기 전, 남량이 입을 비단옷과 장신구를 손수 골라 주며 말했다.

“자, 명심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돈을 뿌리며 노는 거야.”

“……?”

잠깐 침묵하던 남량이 입을 열었다.

“너,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남량이 입을 옷 두 벌을 골라 든 찬야가 말했다.

“남 사제! 걱정도 팔자야. 설마 내가 생각 없이 즐기자고 하겠어? 내기에서 지면 속옷만 입고 무림맹 무사들 앞에서 춤을 춰야 하는데? 다 계획이 있으니까 나만 믿어.”

남량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옷을 받았다.

“흠. 장난이 아니라면 됐어.”

한껏 꾸민 남량과 찬야는 그야말로 옥모선자(玉貌仙姿:옥 같은 얼굴에 신선 같은 자태)라는 단어가 잘 들어맞았다.

남녀 할 것 없이 두 사람이 걷는 길을 따라 시선이 이어졌으며, 시선을 잠깐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고 탄성을 내뱉었다.

대체 누가 이 두 사람을 도사로 보겠는가?

찬야는 남들의 시선을 여유롭게 즐기며 명월루에서 가장 큰 누각(樓閣)으로 향했다.

마침 찬야를 발견한 중년의 미부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미부인은 우아한 동작으로 예를 갖추며 말했다.

“오랜만에 귀한 발걸음을 해 주셨군요. 찬야 공자님.”

찬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오랜만이야.”

“못 보던 새 더 잘생겨지셨군요. 찬야 공자님이 오시니 명월루가 한층 더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옆의 젊은 공자님은 누구시지요? 이분도 아주 잘생기셨군요.”

미부인이 남량을 가리키자, 찬야가 남량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 절친한 벗이야. 글공부만 하느라 여자 손은 제대로 잡아 보지도 못한 불쌍한 친구지. 그러니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했으면 좋겠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미부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명월루에 들어온 이상, 득도한 고승(高僧)도 멀쩡히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잘생긴 선비님께서는 오늘 극락을 보시겠군요. 환영합니다.”

“좋아! 하하. 기대할게.”

미부인이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나자, 남량이 찬야의 귀를 잡아당겼다.

“즐기는 거 아니라며?”

“아아! 아파! 당연히 ‘생각 없이’ 즐기는 건 아니지! 흑점에서 노리는 ‘고객’은 보통 고관대작이나 강호의 거상(巨商)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 딱히 어디가 있겠어? 그리고 은밀하게 초대를 권할 수 있는 장소는?”

남량이 손을 떼자 찬야가 얼얼한 귀를 문질렀다.

“우선 초대장을 얻기 위해 일단 돈을 흥청망청 쓸 거야. 돈이 넘쳐서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그쪽에서 먼저 접선해 오지 않겠어?”

“…….”

남량이 보니, 일견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그때 미부인이 자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방을 준비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미부인을 따라 들어간 방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중앙에는 커다란 잔칫상이 준비되어 있고, 술 시중을 들 기녀들과 악사들까지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음에 드신가요?”

미부인의 물음에, 찬야가 대답했다.

“부족해.”

미부인이 살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요. 저기 두 명도 저희 명월루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들인데요. 부족함은 없을 겁니다.”

찬야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걸 루주(樓主)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술과 음식도 가장 비싼 걸로 준비하라는 뜻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신경을 덜 쓴 모양이야. 이럼 섭섭해?”

찬야는 나직이 덧붙였다.

“아니면 설마……. 내가 이보다 더한 값을 낼 자신이 없는, 그런 소인배로 보였나?”

찬야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묻어났다.

눈치 빠른 미부인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얼른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오늘 밤은 화끈하게 불태워 보자고!”

찬야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남량의 귓가에 대고 빠르게 속삭였다.

“망부석처럼 굳은 표정 하지 말고 연기 좀 맞춰 줘.”

“네가 혼자서도 잘하는데 뭐. 난 구경이나 하련다.”

기루를 관리하는 시종들이 우르르 방으로 몰려와 빠르게 상을 치우고 다시 차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조금 전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상에 호화로운 음식들이 가득 채워졌고, 곁에 앉은 기녀들 또한 세 배는 더 늘어나 있었다.

미색도 조금 전과 비교해 더 나은 걸 보니, 미부인이 작정하고 선별해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부인이 찬야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찬야는 그제야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잔치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자, 다들 뭐 하고 있어? 어서 풍악을 울리라고! 너희들도 어서 술을 따라 봐.”

곁에 앉은 기녀들이 어깨와 가슴 윗부분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걸친 채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한 잔에 은자 몇 냥을 가뿐히 넘는 술이 올라오고, 순식간에 두 병을 비웠다.

취기가 오르자 찬야는 자연스럽게 술자리의 흥을 주도했다.

“술맛 좋구나! 자고로 술은 미녀가 따라 주는 술이 가장 맛있는 법이지. 자, 누가 내 입에 과일 한 점 넣어 주겠느냐?”

찬야는 기녀가 입에 넣어 준 과일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내 미모는 후한 말 미주랑(美周郞:주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던데, 어떠하냐? 너희가 봐도 그러한가?”

한 기녀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공자님! 공자님은 웃을 때가 가장 멋있으세요!”

“그러냐? 그럼 오늘 너에게 웃음을 잔뜩 보여 주마. 또? 또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말해 보거라.”

“으음……. 피부? 늙고 주름진 늙은이들을 상대하다가 공자님처럼 잘생긴 미남을 보면 저희도 즐겁거든요.”

“그래? 하하! 고생이 많았구나. 마음껏 만져도 좋다.”

찬야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남량은 그 모습을 보고 ‘저놈은 도사가 아니었으면 방탕아로 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겼을 게 분명해.’라고 생각했다.

한 기녀가 찬야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우리 놀이 할까요? 아니면 춤을 출까요?”

“춤? 좋지! 내가 너희들에게 춤을 가르쳐 주마.”

찬야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상의를 풀어 헤친 채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일어나 악사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기녀들은 깔깔 웃으며 찬야의 옆에서 방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반면, 남량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술만 들이켰다.

과거에도 남량은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딱히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강자존 시절의 마교는 하루에만 수십 번 생사를 넘나드는 모략과 함정이 판치는 전장이었고, 한눈을 팔면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복마전(伏魔殿)이었다.

그중에서도 미녀의 손에 들린 칼은 무엇보다 위험했다.

가장 경계가 느슨한 침상에서 날아드는 칼은 설사 절대고수라도 해도 막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공자님. 저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어찌 아름다운 여인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술만 마신단 말입니까?”

술을 따라 주던 기녀가 호기심에 물었다.

남량은 방금 비운 잔을 응시하며 말했다.

“술맛이 좋아서. 오랜만에 마시는 명주라.”

“…….”

“한 잔 더 따라 주면 고맙겠는데.”

여인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술잔을 채웠다.

남량은 남량대로 값비싼 명주를 비우며 흥청망청 돈을 쓰자는 찬야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남량은 자신의 옆자리로 슬쩍 다가온 기녀의 얼굴을 유심히 응시했다.

‘무림인이군.’

자신의 내력을 숨긴 실력은 대단했지만, 눈빛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여인은 남량의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공자. 공자께서는 새로운 즐거움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남량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찬야의 계획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계획을 짠 본인은 기녀들과 놀아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량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이 계획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즐거움?”

남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흥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네. 예를 들자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귀한 보물들을 모으는 취미라든가…….”

“수집품이라면 나도 꽤 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해 당대의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모으고는 하지. 그런데 진귀한 보물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건가?”

여인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무림인들이 손에 넣은 보물들이라면, 그 진가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남량은 가볍게 턱을 쓸며 말했다.

“관심이 드는군. 계속 말해 봐.”

“며칠 뒤, 은밀히 그런 물건들을 경매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강호의 각종 큰손들이 자리하는 큰 행사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공자님을 초대할까 합니다. 물론 자격도 충분하시구요.”

됐다. 남량이 웃었다.

“재미있겠군. 장소와 시간은?”

여인은 말없이 남량의 옷소매로 쪽지 하나와 초대장을 전달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방을 나갔다.

남량은 초대장을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찬야. 초대장을 받았으니 이만…….”

“어떠냐? 춤선이 예술이지? 으하하.”

찬야는 몹쓸 동작으로 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식탁 위에 있던 냉수를 집어 들고 찬야의 얼굴에 냅다 끼얹었다.

“가자고!”

***

쪽지에 적힌 경매 날짜는 이틀 뒤였다.

남량과 찬야는 시간에 맞춰 어두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매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짜증 나는 문제가 생겼다.

흑점의 조사에 관해 맹에 보고를 올리자, 그쪽에서 청성파와의 정보 공유를 명령한 것이다.

‘내기가 걸렸으니 안 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는 수 없이 정보를 공유했다.

심지어 청성파 놈들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정보를 받아 갔다.

“후우-.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찬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허탈하네. 거금까지 써서 알아낸 건데.”

남량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경매는 호숫가 근처의 커다란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남량과 찬야는 당당히 초대장을 들고 건물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흑점의 사람으로 보이는 검은 무복의 사내들이 초대장을 검사하고 간단히 몸수색을 했다.

경매장 내부는 병장기를 착용하고 들어갈 수는 없어 남량은 검을 풀었다.

손님을 위해 마련된 다과를 집어 든 남량이 달달한 경단 하나를 씹었다.

경매의 시작을 기다리던 중, 찬야가 말했다.

“청성파 놈들도 분명 올 텐데, 어떻게 들어올까?”

“초대장이 없으니 몰래 숨어들겠지.”

남량이 슬쩍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왔네.”

찬야도 뒤늦게 숨어든 백상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때마침 문이 닫히며 흑점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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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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