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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40화 (40/164)

<40화>

얼자(孽子). 위지혁(2)

남량은 위지혁과 함께 유씨 가문에 도착했다.

챙챙! 챙!

이미 안에서는 창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각이 불타며 화광(火光)이 저택을 밝히고 혈향(血香)이 바람에 실려 왔다.

‘이미 시작되었군.’

남량은 저택의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원에 도착하자 이미 전장이 펼쳐져 있었다.

검은 무복을 입고 복면을 쓴 괴한들이 유씨 가문의 사람들과 호위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고 있었다. 집 안은 순식간에 시체 밭이 되었다.

“여자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죽여 버려. 그리고 안을 샅샅이 뒤져서 토지 문서와 보이는 재물들을 전부 쓸어 담아!”

“네!”

몇몇 복면인들이 정방으로 우르르 밀려갔다.

“꺄악!”

“으아악!”

안에서 비명 소리가 몇 차례 울리더니, 유계성과 그의 부인, 그리고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복면인들의 손에 질질 끌려 나왔다.

유계성은 옷이 찢어지고 얼굴이 퉁퉁 부은 것이 저항하다가 몇 대 맞은 모양이었다.

유 부인 또한 그 화려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엉망으로 풀어진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너, 손에 그거 뭐야?”

한 복면인은 유계성의 품에 들린 종이 뭉치를 발견하고 억지로 빼앗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씨 가문에서 관리하는 객잔 문서에 땅문서, 전장에서 발행한 전표까지…… 두둑히도 챙겨 모으셨구만.”

복면인은 종이 뭉치를 품 안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눈이 뒤집힌 유계성이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다.

“이놈! 당장 내놓지 못하겠느냐!”

퍼억! 유계성은 복면인이 내지른 발길질에 가슴팍을 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악!”

복면인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가 조용히 내놓으라고 할 때 내놓았으면 이런 불상사도 안 생겼을 거 아니냐.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우릴 원망하지 말거라.”

“으으윽…….”

복면인은 쓰러진 유계성을 향해 다가갔다.

처억. 검을 높이 치켜든 복면인이 말했다.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단칼에 목을 쳐 주마.”

유 부인에게 안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자 유안(劉安)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아버지-!”

칼날이 시퍼런 빛을 내뿜으며 유계성의 목을 가르는 순간이었다.

채앵!

내원으로 몸을 날린 위지혁이 검을 휘둘러 복면인의 검을 막아 냈다.

깜짝 놀란 복면인은 두어 걸음 물러나며 자세를 잡았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던 유계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 네가 어찌…….”

위지혁은 유계성에게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입 닥치시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우니까.”

유 부인과 아들 유안 또한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담장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량이 피식 웃었다.

‘미련, 그런 거 아니라더니…….’

복면인은 살짝 긴장한 채 위지혁을 찬찬히 응시했다.

“네놈……. 도복에 그려진 매화 문양을 보니 화산파의 제자로군. 그런데, 혼자서 이 많은 숫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위지혁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조잘거리지 마라 흑도 놈아. 내 기분이 썩 좋지 않으니, 네놈들 목숨으로 분풀이나 해야겠다.”

위지혁은 바람처럼 복면인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슈슉! 파파팟!

날카로운 검격이 순식간에 급소를 노려 오자 복면인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놈! 제법 검격이 날카롭…….”

휘리릭. 퍼퍽!

위지혁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몸을 빙글 돌리며 복면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커억!”

뒤로 밀려난 복면인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발을 내린 위지혁은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난 대화산파의 일대제자, 풍수검 위지혁이다. 감히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냐?”

복면인이 나직이 혀를 찼다.

“과연……. 이번에는 맹에서 상당히 성가신 놈을 보냈구나. 허나 자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복면인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우르르-!

그러자 열 명이 넘는 복면 무리가 위지혁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하나같이 기세가 심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지켜보던 남량이 눈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이놈들, 단순한 흑도 무리가 아닌가…….’

복면인은 히죽거리며 위지혁을 향해 말했다.

“어디, 잘나신 대화산파의 제자분께서 이번에도 건방을 떨 수 있나 봅시다.”

파파팟!

복면 무리들이 검을 들며 일제히 위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채챙! 채챙!

복면 무리는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위지혁을 밀어붙였다.

위지혁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격을 막아 내느라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거기다, 유계성의 가족마저 지켜 내며 싸워야 했기에 더욱 전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위지혁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크윽…….’

촤아악!

그 순간, 복면인이 내지른 검이 위지혁의 팔뚝을 베고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뒤이어 다른 복면인에게 허벅지를 베였다.

“허억, 허억…….”

순식간에 위지혁의 무복이 피로 물들었다.

위지혁은 비틀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위태로운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복면인이 말했다.

“이만 끝을 내라.”

복면인들이 위지혁을 향해 검을 내지르는 그때, 위지혁의 눈이 번득이며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슈아아앙!

검격이 공중에 잔상을 남기며 섬뜩한 빛을 흩뿌렸다.

그러자 달려들던 복면인들이 동시에 가슴팍을 베이며 뒤로 물러났다.

“이럴 수가! 아직도 저런 저력이 남았다고?”

지켜보던 복면인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위지혁은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매화영롱검 13초……. 영형상수(影形相隨).”

복면인의 눈매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바로 그때, 내원의 문턱을 넘어 누군가 안뜰로 들어왔다.

“아직도 처리하지 못한 것이냐?”

“어, 어르신!”

복면인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이라 불린 사내는 검은 무복에 대나무를 묶어 만든 죽립(竹笠)을 썼으며, 마찬가지로 복면을 쓰고 있었다.

복면 위로 길게 찢어진 눈은 마치 독사를 연상케 했고, 흘러나오는 분위기 역시 음산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절대 가벼운 기세는 아니었다.

‘절정을 넘어선 경지……. 저 사내는 초절정의 경지에 든 자가 분명하다.’

위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안 그래도 부상을 입은 찰나, 멀쩡한 상태로도 감당하기 힘든 적을 만났다.

‘상황이 절망적이구나.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복면인은 빼앗은 문서와 전표를 얼른 사내에게 넘겼다.

“유가 놈들의 모든 재산입니다.”

사내는 종이 뭉치를 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헌데, 방해꾼이 있었군.”

사내는 턱을 쓸며 위지혁을 가만히 응시했다.

“화산파라…….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군. 구파를 건드리면 일이 꽤나 복잡해지는데 말이야……. 허나 우리의 일을 방해했으니 어쩔 수 없이 죽여야겠지.”

사내가 위지혁을 향해 손을 튕겼다. 직후, 뭔가가 번쩍이며 위지혁의 어깨가 흔들렸다.

‘암기!’

위지혁은 자신의 어깨에 박힌 비수를 응시하며 눈을 찌푸렸다.

‘언제 던진 것인지,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다……!’

위지혁의 무릎이 덜컥, 꺾였다. 사내는 천천히 위지혁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급소를 노리려 했는데, 그 짧은 찰나의 틈에 몸을 틀었는가. 제법 괜찮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구나. 젊은 나이에…….”

사내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며 위지혁의 목을 겨냥했다.

“재능을 피우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안타깝구나.”

죽음을 직감한 위지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냐!”

휘릭, 퍼퍼퍽!

허공을 날아 안뜰로 내려온 남량이 장풍을 날려 복면인들을 단번에 제압하고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채챙!

한 차례 검을 부딪친 뒤 사내가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쥐새끼가 한 놈 더 숨어 있었군!”

남량은 고개를 돌리며 위지혁을 향해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문제없다. 이깟 상처…… 크윽!”

위지혁이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눈살을 찡그린 남량은 비수가 박힌 부분의 옷을 찢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비수가 박힌 근처의 피부가 변색되기 시작했어……. 비수에 독이 발라져 있었구나.’

남량은 급한 대로 주위의 혈을 짚어 독이 번지지 않도록 조치한 뒤, 위지혁에게 말했다.

“독이 퍼지면 안 되니까 가만히 있어라.”

남량은 일부러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위지혁의 집안일이니 그가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가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결국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위지혁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비켜! 저놈은 내가 처리할…….”

빠악!

위지혁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친 남량이 말했다.

“오기를 부릴 때가 있고 부리지 말아야 할 때가 있지, 상황 분간이 안 돼? 멍청하게 굴다가 독이 퍼져 뒤지기 싫으면 잠자코 네놈 가족이나 지키고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위지혁이 얼얼한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이를 갈았다.

“이 빌어먹을 놈은 사형에 대한 예의가 없어!”

“나한테 사형 대접 받으려면 최소 사십 년은 더 살아야 할 거다.”

남량은 몸을 돌려 사내와 대치했다.

“이왕 지키기로 한 거, 제대로 지켜.”

“…….”

위지혁은 말없이 검을 들고 복면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남량은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사내를 향해 말했다.

“무림맹 지부에서 파견된 협사(俠士)들이 고작 흑도 무리 따위에게 번번이 당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뒷배가 있었군. 네놈 배후가 누구냐?”

사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걸 내가 가르쳐 줄 성싶더냐?”

남량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남량과 사내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팟, 채채챙!

사내의 단검과 남량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쇄애애액!

남량은 옷깃을 펄럭이며 검을 길게 휘둘러 사내를 향해 검기를 쏘아 보냈다.

사내는 공중으로 몸을 띄워 검기를 피해 냄과 동시에 품에서 암기 다발을 꺼내 공중에 뿌렸다.

암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갈라 남량의 급소를 빠짐없이 노려 왔다.

‘암기술이 제법이군!’

카카캉!

남량은 손에 든 검과 검집을 휘둘러 날아드는 암기를 모조리 쳐 냈다.

퍼엉!

그 순간, 허공에 보랏빛 연기가 터지며 순식간에 남량을 덮쳐 왔다.

‘암기 속에 독무(毒霧:독안개)가 든 암기가 있었군.’

후우웅!

남량은 즉시 검풍(劍風)을 일으켜 독안개를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파파팟!

그때, 사내가 벼락처럼 남량을 향해 암기를 내쏘았다.

쇄애액!

남량은 검을 역수(逆手)로 잡으며 그대로 추켜올렸다. 그런데 날아들던 암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며 남량의 다리를 노려 왔다.

‘이 암기술은 설마…….’

타앗!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암기가 방향을 바꾸어 남량을 향해 짓쳐 들었다.

‘낙영용섬.’

스걱-!

남량은 정신을 집중해 섬전 같은 일검으로 날아드는 암기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나비 모양을 한 암기는 그제야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했다.

“후우-.”

내력을 다스리며 숨을 고른 남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독을 쓰는 독공(毒功)에 암기술에 대한 조예가 깊고, 단검을 무기로 쓰며, 방금 전의 추혼비접(追魂飛蝶) 술법까지. 이 모든 기술을 쓰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지.”

사내의 표정이 순간 움찔거렸다.

“네놈, 당가(唐家) 사람이군.”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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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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