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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46화 (46/164)

<46화>

천음선녀(天陰仙女)(5)

남량은 한참을 달려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암자 앞에 도착했다.

콰콰콱-!

검을 휘둘러 문을 조각낸 남량이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암자 내부에 발을 딛는 순간,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엄청난 음기(陰氣)가 느껴진다.’

본래 음과 양의 조화는 균형을 이루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었다.

허나 이 방의 기운은 지나칠 정도로 음기가 가득해, 몸이 덜덜 떨려 왔다.

만약 내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금방 동사(凍死)했을 것이다.

‘이 안에서는 움직임에 커다란 제약을 받겠어.’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남량은 그를 경계하며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구냐.”

남량의 물음에, 나직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의 집에 왔으면 먼저 인사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

남량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납치범 따위에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도 있나?”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김이 흘러나왔다.

남량은 여인을 찬찬히 응시했다.

여인은 피부가 새하얗고 입술이 붉어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외모에 비단옷과 장신구로 치장했다.

남량의 시선이 여인의 뒤편에 놓여 있는 수정구로 향했다.

수정구에 동굴 안으로 진입하는 흑영대원들과 월아쌍노를 제압하는 찬야와 유라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남량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술(邪術)을 써서 지금까지 우릴 지켜보고 있었군. 한데, 왜 도망치지 않았지?”

여인은 입꼬리를 요염하게 올리며 말했다.

“곧 죽을 놈이 그걸 알아서 뭐 하겠느냐?”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차가운 음기가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벽과 천장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렸다.

남량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음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건가? 설마…….’

“제 발로 범의 아가리에 뛰어들었으니, 잡아먹힐 각오도 되어 있겠지? 먼저 너를 천천히 음미한 다음, 네 동료들도 똑같이 저세상으로 보내 주마.”

여인은 음산한 미소와 함께 남량을 향해 두 손을 거칠게 내뻗었다.

그러자 음기가 한데 뭉쳐 둥그런 구체 모양을 만들어 남량을 향해 날아들었다.

남량은 칼날에 검기를 끌어모은 다음,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콰아앙!

여인이 날린 음기는 남량의 검에 튕겨 나갔다. 남량은 그대로 여인을 향해 짓쳐 들었다.

“흥!”

여인이 코웃음을 치며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날카로운 손끝에 희뿌연 기운이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파파팟!

여인이 남량을 향해 매서운 동작으로 손을 내질렀다.

남량은 재빨리 몸을 피했으나 방 안에 가득한 음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여인은 남량을 거칠게 몰아붙이다, 이내 남량의 어깨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여인이 깔깔 웃으며 외쳤다.

“이대로 기를 전부 흡수하고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어 주지! 죽어라!”

그러나 그 순간, 남량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뭐야! 그럼 이건 실제가 아니라 잔상이었단 말인가?”

여인이 당황하는 그때, 여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량이 순식간에 여인의 팔목과 어깨, 다리 등을 베었다.

“꺄악!”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남량은 냉소를 지으며 쓰러진 여인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며 말했다.

“대단히 살벌한 기운이지만, 정작 다루는 사람이 무공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몸이면 아무런 쓸모도 없지.”

남량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졌다.

“음기를 조종하고, 상대방의 기를 빨아먹는 요사스러운 술법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다.”

남량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외쳤다.

“말해! 네년이 어떻게 소수마공(素手魔功)을 익힌 것인지! 마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소수마공은 마교의 무공 중 하나로, 여인만이 익힐 수 있었으며 음기를 조종해 타인의 생기를 빼앗고 얼어붙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마공(魔功)이었다.

남량은 이 여인이 마교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

여인은 이를 악물고 남량을 응시했다.

그때, 남량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이건……!’

남량은 여인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고 들어 올렸다. 직후, 남량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놀랍게도 여인의 손목에는 효초아의 상징인 편익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남량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문신을 바라보다 이를 부득 갈며 여인에게 소리쳤다.

“네년, 흑룡회의 사람이었군!”

그 순간, 여인이 남량을 향해 거센 입김을 불었다. 차가운 음기가 시야를 가득 채우며 얼굴을 덮쳐 왔다.

남량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젖히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사이 여인은 문 쪽으로 몸을 날리며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르르-!

그러자 천장이 일제히 무너지며 남량을 덮쳐 왔다.

남량은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떨어지는 천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콰쾅!

남량의 검기에 천장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러나 이미 여인은 어디론가 도망을 치고 없었다.

‘이대로 놓치면 안 된다. 이대로 놓칠 수 없어! 저 여자에게서 반드시 흑룡회의 정보를 알아내야만 해!’

남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음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

남량이 음기를 추격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동굴 입구였다.

안으로 들어간 남량은 동굴 벽면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을 발견했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졌고, 안쪽에는 커다란 공동이 있었는데 중앙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량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공동의 천장에는 백 명이 넘는 숫자의 여인들이 줄에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여인들은 대부분 미라처럼 말라 있었는데, 보기에 심히 기괴했다.

그리고 여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새하얀 기운이 제단 위에 앉은 천음선녀의 몸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천음선녀는 눈을 감은 채 기운을 받고 있었다. 남량의 검에 베인 상처들도 이미 치유된 채였다.

“너, 설마……. 납치한 여인들의 음기를 뽑아 마공의 재료로 쓴 것이냐? 네 힘을 늘리기 위해?”

소수마공은 내력이 아닌 음기를 사용하는 마공인 만큼, 평범한 방법으로 수련을 할 수 없었다.

그 방법은, 바로 여인들의 몸에서 음기를 흡수한 다음, 자신의 몸에 축적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음기를 빨린 여인은 죽게 되며, 소수마공을 익힌 자는 음양의 조화가 깨져 광인(狂人)이 되거나 폭사(爆死)하게 된다.

그 위험성 때문에 남량은 교인들이 소수마공을 익히는 것을 금지했던 바 있었다.

살짝 눈을 뜬 천음선녀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세상에 하등 도움 될 일 없는 계집들이다. 나, 천음선녀의 손에 의해 그나마 쓸모없는 인생에 한 가지 공을 세우게 해 주었으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 아니냐?”

“하하하! 하하…….”

남량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천음선녀가 눈살을 찡그렸다.

“왜 웃는 거지?”

남량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웃어 댔다.

‘효초아, 탄영, 지월. 너희들이 만들고자 했던 마교가 이런 것이었더냐? 인의(人義)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음기를 뽑는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괴물들로 가득한 마굴이, 정녕 너희들이 이루고자 했던 교의 모습이었더냐?’

눈을 감은 채 웃는 남량의 목소리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염라여……. 그대에게 했던 내 말이 사실인 것 같소. 내가 사랑했던 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나는 절대로 마교의 이름을 더럽히는 저들을 두고 볼 수 없소이다. 나를 배신한 이들에 대한 단죄와 더불어, 반드시 내 손으로 더럽혀진 마교를 멸할 것이오.’

남량은 입을 꾹 다물고 슬픔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꺄아아아아-!

공동 내부가 거세게 흔들리며 소름 끼치는 곡성(哭聲)이 울려 퍼졌다. 남량의 귀에는 음기를 빼앗긴 여인들의 한 서린 울음소리로 들렸다. 음기가 주변을 가득 채우며 벽과 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오오오! 이거야! 이 거대한 힘! 이거면 세상에 이기지 못할 것은 없어!”

백 명이 넘는 여인들의 음기를 모조리 흡수한 천음선녀는 새하얀 불꽃으로 뒤덮인 채 광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음기에 이성을 지배당한 마물(魔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량은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그때, 남량의 기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음기를 쫓아온 흑영대원들과 나머지 매화오절이 속속히 공동 안으로 집결했다.

“형님! 찾았다. 그런데 여기 안은 왜 이렇게 추워……?”

“남 사제!”

암영은 천음선녀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몇 명은 맹에 지원을 요청하라. 피를 흘리지 아니할 수 없을 것 같다.”

“네.”

일부 대원들이 신속하게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때, 천장에 매달린 시체들을 본 운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저, 저게 다 뭐야?”

암영은 여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저 얼굴들은 확실하지 않지만 실종된 나머지 여인들의 용모와 비슷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남량이 천음선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자가 바로 이번 실종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며, 저희가 추적하는 정체불명의 비밀 집단, 흑룡회의 일원임과 동시에 마공을 익힌 마인입니다. 여인들을 납치한 이유는 바로 음기를 빼앗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의 마공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요. 여인들은 이미 희생되었고, 천음선녀는 광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량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운휘는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며 고함을 쳤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

찬야 또한 믿을 수 없는 참상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녕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이 금수만도 못한-!”

유라는 말없이 차가운 분노를 쏟아 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위지혁은 입술을 꽉 깨물며 천음선녀를 죽일 기세로 응시했다.

“이대로 저 괴물이 강호에 나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필시 커다란 혼란을 불러올 것입니다. 저희가 막아야 합니다.”

“물론이네! 반드시 그리할 것이야! 목숨을 걸어서라도!”

암영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깔깔깔!”

폭소를 터뜨리는 천음선녀의 눈에는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단 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내 부하들을 상대하느라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헛된 발악임을 모르겠느냐?”

운휘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외쳤다.

“닥쳐! 이 빌어먹을 자식, 물어뜯어서라도 지옥으로 보낼 테다!”

화르르!

천음선녀는 전신에 새하얀 불꽃을 일으키며 외쳤다.

“내가 왜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아느냐! 음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나, 차후 그분의 대업에 방해가 될 네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함이야! 자, 오너라!”

동굴의 흔들림이 더욱 거세졌다. 내부에 몰아치는 냉기가 당장이라도 피부를 가르고 뼈를 얼어붙게 만들 것 같았다.

남량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선봉은 저희가. 흑영대는 지원을 맡기겠습니다.”

“아아, 걱정하지 말게!”

암영이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형님. 이거 받아요.”

남량은 고개를 돌렸다. 운휘의 손에는 화양검이 들려 있었다.

“고맙다.”

남량은 화양검을 받아 뽑아 든 다음, 칼날에 그려진 매화를 응시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매화오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자!”

“으아아!”

동굴이 떠나갈 정도의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채채챙!

동시에 검을 뽑아 든 매화오절이 남은 내력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그리고 동시에 천음선녀를 향해 바닥을 박차고 쇄도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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