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유라의 각성. 삼매진화(三昧眞火)(1)
화산으로 돌아온 남량은 즉시 장문인의 부름을 받고 상궁으로 올라갔다. 구양중은 상궁 앞에서 뒷짐을 진 채 기다리고 있다가 남량이 도착하자 잽싸게 달려왔다.
“남량! 이제 왔느냐?”
“예. 그런데 왜 밖에 나와 계시는…….”
“널 기다리고 있었지. 허허.”
구양중은 남량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직접 담근 매화주를 대접했다.
남량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사실 장문인이 직접 담근 매화주는 아무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장로들도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 번이나 받아먹는 정도이니 그만큼 그가 남량을 아낀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동안 무림맹에서 수련하느라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구양중은 술잔을 드는 남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폭혈검객 장태정과 일전을 벌이고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짐작했지만, 직접 확인해 보니 확실히 초절정에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남량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지금 네 나이가 몇 살이지?”
“올해 스물이요.”
“허허허. 으허허허허.”
구양중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약관의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나이에 초절정에 든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남량의 재능과 성장 속도가 역대 고수들의 그것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 대단한 인재가 화산에 속해 있다니!
이런 보물을 왜 처음부터 발견하지 못했는지. 구양중은 새삼 자신의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맹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구나. 그 짧은 시간에 너를 초절정의 경지로 만들다니 말이다.”
남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때는 초절정의 경지가 아니었습니다만.”
응? 구양중의 눈이 커졌다. 그가 당황하며 물었다.
“그, 그럼 설마 장태정과 일전을 벌일 때 벽을 뛰어넘은 것이냐?”
남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양중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전까지 절정의 경지로 장태정과 겨루었다고?”
“죽을 뻔했죠. 아니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었네. 검이 복부를 관통했으니.”
“인석아.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것이냐? 죽어라 도망갈 생각을 해야지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구양중이 꽥 소리를 지르자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문인. 그게 말이 됩니까? 초절정의 검객이 앞을 막아서고 있는데 멀쩡히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렇지…….”
머쓱해진 구양중은 얼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남량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위험했습니다. 초절정에 들었다고 해도 환골탈태를 안 했으면 출혈로 원시천존이랑 인사하고 있었을 수도…….”
“풉!”
구양중이 마시고 있던 술을 내뿜었다. 남량은 재빨리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구양중은 한 차례 기침을 하더니 눈을 접시마냥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바, 방금 무어라 했느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초절정에 들었다고 해도 환골탈태를 안 했으면 출혈로…….”
“그, 그래! 환골탈태! 분명 환골탈태라고 했으렷다?”
“네.”
남량은 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천운이 따라 주었는지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환골탈태와 더불어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승리했지요.”
“허! 허어. 허어어!”
구양중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눈으로 남량을 쳐다보았다.
환골탈태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뼈를 바꾸는[換骨] 전설상의 경지다.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쌓기 적합한, 가장 완벽한 신체로 다시 태어나는 현상.
수많은 고수들이 많은 내공과 경험을 얻어도 선천적인 한계가 있는 이상, 그 이상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그 한계를 뛰어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환골탈태였다.
당연히 무인이라면 누구나 환골탈태를 하기 원한다. 허나 누구에게나 그런 천운(天運)이 내려올 리 없을뿐더러, 만약 환골탈태의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구 할에 달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환골탈태를 했단 말이지? 으하하하하하!”
구양중은 체통이고 뭐고 전부 집어던진 채 폭소를 터뜨렸다.
“최악의 위기에서 전화위복으로 환골탈태를 했으니 이건 하늘이 널 비호한다는 징조가 아니겠느냐? 무인에게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운[運]도 필요한 법이다. 네놈은 그것마저 타고난 것이더냐? 이런 욕심 많은 놈 같으니! 으하하하!”
천부적인 재능에 최상위의 검술. 거기다 육체마저 갖추었으니 이제 남량의 무시무시한 성장을 막은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다. 구양중은 당장 달려가 뼈가 으스러지도록 남량을 끌어안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남량은 자신의 아랫배를 슬쩍 만지며 웃음을 흘렸다. 여의주에 관한 내용은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구양중은 한참을 웃다가 간신히 진정을 했다. 그는 찔끔 나온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며 말했다.
“허허, 미안하다. 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였구나. 장문인이 되어서 체통을 지켜야 하는 법이거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 이제 무림대회를 준비해야겠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네. 남은 기간 동안 매화오절과 같이 훈련을 하려 합니다.”
구양중은 상궁을 관리하는 도사를 불러 물었다.
“외부 수련을 나간 매화오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가?”
“네.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생각보다 다들 늦는군…….”
도사가 밖으로 나가자 남량이 물었다.
“외부 수련이요?”
“넷이 화산에 돌아온 이후, 각자 수련을 위해 화산을 나갔다. 물론 내가 허락했고. 너처럼 지금쯤 돌아와야 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는구나.”
“어디로 갔답니까?”
“내가 알기로 유라는 종남파. 찬야는 낭인회(浪人會). 운휘는 하북팽가(河北彭家). 그리고 위지혁은 사천의 당가로 갔을 게다.”
“흐음…….”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남량은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혼자 돌아다니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다.”
“대충 계산해 보니까 가장 가까운 종남, 낭인회, 당가, 팽가 순으로 들렀다가 바로 낙양으로 가면 얼추 무림대회 시작일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네 말대로구나. 그럼 그렇게 하거라.”
“네, 장문인. 시간이 촉박하니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남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춘 뒤 대전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가던 걸음을 돌린 남량이 구양중에게 다가와 말했다.
“장문인.”
“그래.”
“매화오절이 이번에 무림맹에 가서 활약을 하지 않았습니까?”
구양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너희들은 맹주를 몰아내려는 놈들의 암계(暗計)를 목숨 걸고 막아 냈어. 그건 대단히 큰 업적이다.”
남량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럼 마땅히 상을 내려야 함이 맞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연담회에서 그 안건으로 논의 중이다.”
매화오절에게 무슨 상을 내려야 할 것인가. 화산의 도사들은 이 안건으로 이틀을 넘게 논의했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작은 걸 주자니 세운 업적이 너무도 대단하고, 그렇다고 너무 큰 걸 주자니 살짝 걸리고…….
고민 중인 찰나에 남량이 먼저 말을 꺼내니 구양중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래. 혹 원하는 상이라도 있느냐?”
“영약이요.”
남량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구양중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오자 살짝 당황했다.
“여, 영약?”
“왜, 환단 같은 거 있잖습니까. 매화단이나 자소단 같은 거. 그런 것 좀 내려 주시죠.”
“남량아. 다른 건 몰라도 영약은 제아무리 장문인이라 해도 마음대로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또한 연담회에서 충분히 논의를 마치고…….”
남량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했다.
“다 알고 있습니다. 화산에서 보관하는 것들 말고 장문인께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계신 영약들이 있다고요.”
깜짝 놀란 구양중이 남량을 노려보았다.
“네, 네가 그걸 대체 어찌 알고 있느냐?”
“스승님이 알려 주시던데요?”
그 순간, 구양중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유우화 이 썩어 빠질 놈의 자식이…….”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니다…….”
남량은 순진한 얼굴로 슬쩍 두 손을 내밀었다.
“장문인. 저는 꼭! 꼬옥 영약을 받고 싶습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게다가 곧 무림대회가 있지 않습니까? 화산의 인재들을 위해 큰 결심 한번 해 주시지요.”
“차라리 돈을 주마. 낙양까지 몸 편히 갈 수 있도록.”
“돈? 돈은 많습니다. 든든한 물주가 옆에 있어서.”
남량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아까우신가요? 맹주를 구하고 무림맹의 와해를 막아 내는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그럴 리가 있겠느냐?”
구양중은 속으로 움찔했다. 저런 눈치 빠른 자식 같으니.
‘내가 그걸 얼마나 아꼈는데, 영약만큼은 절대 안 돼!’
남량은 두 손을 꼭 모으며 감동받은 얼굴로 말했다.
“역시! 장문인께서는 자신의 것이 아까워 화산을 위해, 강호를 위해 한 몸 바친 제자들을 외면할 ‘소인배’가 아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구양중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엽기 짝이 없던 눈앞의 제자를 한 대만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지. 내 바로 가져오려고 했다.”
“네. 장문인께서 주인 영약을 복용하고 반드시 무림대회에서 우승해 금의환향하도록 하겠습니다.”
남량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구양중이 영혼 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허허허. 당연히 그리해야지……. 암.”
“그럼 제자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오시지요.”
“…….”
구양중은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영단을 숨겨 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그늘진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량은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천마에게 그따위 변명이 통할 것 같으냐?’
돌아온 구양중의 손에는 매화단 네 알이 유지(油紙:기름종이)에 쌓인 채 작은 목함 안에 들어 있었다.
“자, 여기 있다.”
목함을 건네는 구양중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남량은 빼앗듯 목함을 받아 들고 품에 넣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남량은 후련한 발걸음으로 상궁을 나와 걸음을 옮겼다.
‘다들 힘들게 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 내가 영단을 가지고 나타나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겠지. 후후.’
자, 이제 첫 번째로 가장 가까운 곳인 종남산으로 가야겠다.
‘거긴 유라가 가 있다고 했지?’
파파팟!
남량은 한층 가벼워진 몸을 띄워 빠르게 화산을 내려갔다.
***
한편, 유우화는 남량이 화산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껏 들떠 있었다.
‘상궁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니 이제 곧 돌아오겠군. 녀석, 올 때 무슨 선물을 사 들고 왔을까. 너무 비싼 건 부담되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도통 올 생각을 하지 않자, 유우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대체 사형은 애를 언제까지 붙잡아 두고 있을 생각이신 거야?’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도관의 문이 열렸다. 깜짝 놀란 유우화가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구양중이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자, 장문인. 갑자기 왜 여기…….”
스릉. 구양중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남량을 기다리고 있느냐?”
“네. 그런데 검은 왜 뽑으시는 거…….”
“그 녀석은 떠났다. 동료들을 데리러.”
“네? 이 제자 놈이 스승에게 인사도 없이 또 어디를!”
유우화가 버럭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구양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 피 같은 영단을 가지고 떠났단 말이다……. 바로 너 때문에!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구양중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유우화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으악!”
“닥쳐! 제자의 죄는 곧 스승의 죄! 내 오늘 사생결단을 낼 것이다!”
정작 이 사달을 만든 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종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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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