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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82화 (82/164)

<82화>

위지혁의 각성. 만독불침(萬毒不侵)(3)

웅성웅성.

당가의 연무장에는 찬야와 유라의 비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그럴 수밖에. 무려 화산 제일의 기재(奇才)인 매화오절의 일원이자 강호에 악명이 자자한 월아쌍노를 쓰러뜨린 제자들. 그리고 남북 십성인 독왕의 후계자이자 당가의 후기지수인 당룡, 당호 형제의 대결이 아닌가.

이 대결은 단순한 비무를 떠나 화산과 당가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당연히 당가 도련님들이 이기겠지? 남북 십성의 후계자 아닌가.”

“자네, 그 소문 못 들었나?”

“무슨 소문 말인가?”

“저기 화산의 불사검협이 종남 도군의 후계자를 이겼다는 말이 있네. 옆의 잘생긴 도장은 낭인회의 신성이라 불리는 소성을 이겼다고 하고.”

“저, 정말인가?”

“확실하지는 않네만……. 진짜라면 이 승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네.”

“허어…….”

관중들의 표정에 놀라움과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때 당룡, 당호 형제가 먼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당룡은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 특별히 두 도장에게 상대를 정할 권한을 주도록 하지!”

당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잇따라 소리쳤다.

“누가 와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니까!”

관중들은 대화를 멈추고 비무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곧 시작하겠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연무장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푼 찬야가 유라에게 물었다.

“사매.”

“그래.”

“사매는 둘 중 어느 쪽으로 할래?”

“으음…….”

유라의 시선이 먼저 당룡 쪽을 향했다.

‘형 쪽은 손가락이 가늘고 팔목과 허벅지에 혁대(革帶)를 차고 있는 걸로 봐서 암기술을 수련했고.’

유라의 시선이 이번에는 당호 쪽을 향했다.

‘동생 쪽은 체격이 우락부락하고 손에 장갑을 낀 걸로 봐서 수공(手功)을 수련한 듯하군.’

형제 모두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

그렇다면, 조금 더 이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한다.

유라는 찬야에게 말했다.

“찬야. 네가 형 쪽을 맡아라.”

“왜?”

“저자는 암기를 쓸 거다. 그러니 나보다 빠른 검을 가진 네가 더 상대하기 유리할 거야. 내가 동생 쪽을 맡도록 하지.”

“그렇군.”

찬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가 볼까.”

마침, 남량이 연무장으로 도착했다.

남량은 일행에게 다가와 투덜거렸다.

“갑자기 무슨 비무야? 시간도 없는데.”

위지혁이 남량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다 너 때문이다.”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저 당가 형제가 너랑 비무를 하고 싶다길래 찬야와 유라가 대신 상대해 주겠다고 나선 거라고.”

“그래?”

남량의 날카로운 시선이 찬야와 유라를 향했다.

“이것들 봐라……. 조금 강해졌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군.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한테 비무를 청하기까지 하고.”

움찔한 두 사람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남량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누이 말하는데, 자만하지 마. 너희들은 아직 한참 멀었다.”

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흐음.”

남량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면 죽는다.”

찬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다녀올게.”

찬야와 유라는 천천히 비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위지혁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둘 다 조심해라.’

상대는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이다.

과연 두 사람이 저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찬야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대를 응시했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라…….’

확실히 대단한 기세였다.

당룡은 당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가문의 역작(力作).

그를 상대하는 건, 당가 자체를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스릉.

검을 뽑아 든 찬야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데…….

덜덜덜.

검을 든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당룡은 그 모습을 보고 끌끌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와 다르게 몸은 정직한 법이지.”

당룡은 자신의 기세에 찬야가 압도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손이 떨려 올 정도로 주체가 안 되는 감정은 두려움 따위가 아니다.

희열이다.

납북 십성의 후계자를 상대로 자신의 검이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이것이 진정 무도(武道)를 걷는다는 것인가.’

찬야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주었다.

“간다.”

당룡은 표정을 굳히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덤빌 셈인가? 멍청한 놈.”

당룡은 혁대에서 비수를 꺼내 손에 쥐었다.

당호는 장갑을 벗고 손을 펼치며 말했다.

“세상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마.”

“너와 같은 말을 했던 멍청이가 종남에도 있었지.”

유라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응수했다.

“내가 그자를 어찌했을 것 같으냐.”

때앵. 비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팟!

네 명의 무인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

쇄애애애액!

찬야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당룡을 향해 쇄도했다. 당룡은 좌측으로 몸을 날리며 비수를 던졌다.

채채챙!

찬야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러 비수를 튕겨 냈다.

그 순간, 찬야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비수에 실린 내력이 장난이 아니군.’

전부 막자니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찬야는 공중제비를 돌아 나머지 비수를 피해 냈다.

그사이 거리를 벌린 당룡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화산파 놈이라 그런지, 몸놀림이 제법 잽싸구나.”

그의 손에는 어느새 새로운 비수 열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어디까지 막아 낼 수 있을지, 어디 보자.”

파파파파팟!

내력을 머금은 비수가 찬야의 전신 요혈을 노려 왔다.

찬야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을 펼쳐 검을 휘둘렀다.

채채채채챙!

막거나 피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상승의 암기술이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그대로 끝이다.

반격을 하려고 해도 미리 예상했다는 듯 당룡의 비수가 활로(活路)를 차단시켰다.

마치 암기의 감옥 속에 갇힌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암기를 막는 찬야의 손발이 점점 더 다급해졌다.

‘으음.’

이대로면 금방 당하고 말 것이다.

파고들기 위해서는, 신검합일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겁합일의 경지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다.’

찬야는 신검합일의 경지를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 매일 유라와 대련을 하며 감각을 익혔다.

그 결과, 완벽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답은 얻을 수 있었다.

찬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떠올려라.

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검이 아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게 무엇인지 잊어라.

검이 있음을 잊는 순간, 검과 하나가 된다.

바로 그때, 당룡이 당가의 비기를 꺼내 들었다.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

슈슈슈슈슈슉!

약간의 거리를 두고 열두 자루의 비수가 쏘아져 나왔다.

나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모습이 마치 용(龍)을 보는 듯했다.

동시에, 찬야가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완벽해 보이는 공격일지라도, 틈은 존재한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찬야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들어 그 틈을 찔러 갔다.

채채챙!

비수의 용이 흩어지며 힘을 잃은 비수가 허공에 흩날린다.

찬야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검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당룡을 노려 왔다.

“이, 이럴 수가! 그럴 리 없어-!”

당룡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찬야를 바라보다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촤악-!

두 무인이 교차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다음 순간, 당룡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커억!”

당룡이 허공을 빙글 돌며 바닥에 쓰러졌다.

찬야 또한, 눈살을 찌푸리며 무릎을 꿇었다.

팔목 부분에 비수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그 사이에 공격을 성공시켰단 말인가?’

실로 존경스러운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승리는 내 것이다.”

찬야는 검을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남량을 응시했다.

‘남 사제. 내 검이……. 남북 십성의 후계자에게도 통해!’

“으아아아!”

그는 희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남량은 찬야를 향해 웃으며 중얼거렸다.

“웃기는. 독에 중독된 줄도 모르고.”

직후, 찬야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꼬꾸라졌다.

훙! 후웅!

당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장력을 날리며 유라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유라는 최대한 그의 손에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조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당호의 손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공이다.

저자의 장력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는 순간, 그대로 중독되고 말 것이다.

당호는 한껏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아까의 패기는 어디 간 거지? 제대로 덤벼 보라고! 하하하!”

당호의 쌍장(雙掌)이 유라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유라는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쩌저정!

그의 독수(毒手)에서 터져 나온 독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휩쓸렸을 것이다.

당호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유라에게 다가갔다.

“도망치는 재주 하나는 쓸 만하다만, 이제 질린다.”

우우웅.

당호는 왼손을 뒤로 돌리며 독기를 끌어모았다.

그의 손바닥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은 해독하느라 진땀 좀 흘려야 할 거다.”

“…….”

유라는 말없이 검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눈이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난다.

당호는 손을 뻗으며 한껏 끌어올린 독기를 일시에 방출시켰다.

“적련신장(赤連神掌)!”

콰아아아-!

붉은 독기의 덩어리가 유라를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르륵-.

유라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타탓!

유라는 전신을 불로 뒤덮은 채 바닥을 박차며 쇄도했다.

“멍청한 놈.”

유라는 검을 위로 치켜올리며 독기를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둘로 쪼개진 독기가 유라의 불길에 의해 흔적도 없이 불타 없어졌다.

“내가 왜 방어만 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사, 삼매진화! 그걸 네가 어떻게!”

당황한 당호는 재차 독기를 끌어모으려 했다. 허나 방금 큰 초식을 쓰고 난 직후라 쉽게 모이지 않았다.

그사이, 유라는 이미 그의 지척까지 파고든 뒤였다.

“네놈이 큰 초식을 쓰기만을 기다렸다. 큰 초식을 쓰면 독기를 끌어모으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유라의 입가에 서린 미소를 본 순간, 당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했다.

‘도, 도망쳐야 해! 일단 거리를 벌린 다음-.’

당호는 몸을 뒤로 빼려 했으나, 이미 예상했던 유라가 그의 발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딜 가려고?”

당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비, 빌어먹을!”

“하압!”

유라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추켜올렸다.

화륵!

불꽃을 머금은 검이 당호의 가슴을 갈랐다.

불길에 휩싸인 당호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끄아악!”

유라가 기세를 갈무리하자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철컥.

검을 집어넣은 유라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너 같은 놈이 종남파에도 있었다고.”

그러나 당호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이미 기절했기 때문이다.

“…….”

연무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곳에 모인 관중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눈앞에 보인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 건가? 당가 형제가?”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화산의 검이 당가를 눌렀음을.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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