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운휘의 각성. 금강불괴(金剛不壞)(5)
휘이이잉.
공터에 바람이 불며 풀잎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남량을 중심으로, 네 명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쇄애애액!
찬야의 검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경지를 뛰어넘으며 놀랍도록 정교해진 동작이었다.
파파팟.
남량은 월인비를 펼쳐 찬야의 검을 피해 냈다.
그의 신형이 둘로 나뉘며 찬야의 눈을 어지럽혔다.
‘실제와 허상을 구분해야 한다.’
찬야는 신검합일의 감각으로 허상을 찾아냈다. 그리고 실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찬야의 검은 허공만을 가르고 지나갔다. 남량의 경공술은 신검합일의 감각마저 속인 것이다.
단숨에 찬야의 배후를 잡은 남량이 수도(手刀)를 세워 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빠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찬야가 앞으로 넘어졌다.
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남량은 쓰러진 찬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고수를 상대할 땐 무조건 의심을 하도록 해. 그들은 방금처럼 네 감각에 순순히 걸려 주지 않을 거야.”
그때, 등 뒤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눈부신 화광(火光)과 함께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삼매진화의 불꽃을 휘감은 유라였다.
화르륵-.
유라는 불타는 칼을 휘두르며 남량을 거칠게 압박해 왔다.
남량은 매화천수검의 6초식, 화운용무 초식으로 받아쳤다.
채채채챙!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동작이 한결 유연해졌군. 하지만.”
쇄애액!
유라의 검이 날아드는 것과 동시에 남량이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칼날이 남량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여전히 공격을 할 때 빈틈이 보인다.”
퍼억!
남량은 손을 뻗어 유라의 아랫배에 장력을 날렸다.
“커억!”
유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간신히 멈춰선 그녀는 배를 잡고 비틀거렸다.
남량은 머리에 묻은 불똥을 털어 내며 말했다.
“비무가 아닌 실전 대련에서는 우직하게 검으로만 승부를 겨루지 않는다. 항상 변수를 염두에 두도록.”
말이 끝나자마자 위지혁이 뱀처럼 낮게 쇄도해 왔다.
슈슈슈슉!
그의 검끝이 제법 매섭게 남량의 요혈을 찔러 들어왔다.
채채채챙!
남량은 검을 들어 모든 공격을 차단함과 동시에 위지혁의 가슴팍을 걷어차 버렸다.
뻐엉!
위지혁이 괴성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남량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넌 빨리 당가로 돌아가서 강해지는 편이 낫겠다.”
남량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자세를 한껏 낮춘 운휘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쇄애액!
남량은 운휘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검기는 운휘의 어깨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크윽!”
운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남량의 검기는 그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금강불괴의 신체에 검기 정도는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검에 내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우우웅!
칼날을 타고 유형화된 기(氣)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강하게 해 볼까.’
남량은 운휘를 향해 검강을 내쏘았다.
운휘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검강을 받아 냈다.
콰아앙!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운휘는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내가 누누이 말했을 텐데. 금강불괴를 자신하지 말라고.”
후우웅.
남량은 호흡을 가라앉히며 기세를 갈무리했다.
어느새 네 명 모두 상처를 입고 물러나 있었다.
“이걸로 각자의 약점은 대충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남량은 칼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대련을 할 테니까 준비해 둬.”
남량은 손을 흔들며 공터를 벗어났다.
남은 이들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경지를 뛰어넘었음에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
그들은 더욱 강해져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다.
‘낙양까지는 대충 열흘 정도. 그동안 더욱 검을 연마한다.’
‘남 사제에게 언젠가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테야.’
‘빌어먹을! 독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검강 이거 몇 대만 더 맞아 보면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내 식대로 무식하게 들이받으면서 익혀 보자.’
그렇게 시작된 수련은 매화오절의 기량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
낭연청은 어두운 복도를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편익 문양이 새겨진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온통 음기(陰氣)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지독한 음기였다.
우우웅.
붉은 장발의 사내, 효초아가 벌거벗은 채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보랏빛의 음기가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자전마공(紫電魔功)이 극성에 달하셨군.’
낭연청은 두 손을 모으고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대략 반 시진 정도 흐르자, 효초아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사라졌다.
“언제 도착했어?”
몸을 일으킨 효초아가 물었다.
낭연청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 시진 정도 되었습니다.”
효초아는 벽에 걸려 있던 장포를 덮었다. 그의 등에 새겨진 편익 문신이 옷에 가려졌다.
“거사의 진행은 어때?”
“완성 단계입니다. 이대로면 무리 없이 거사를 진행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무림맹 놈들은?”
“무림대회가 코앞이라 낙양의 경계를 강화한 것 말고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흑영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치를 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효초아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알겠어? 우리가 심어 놓은 간자들은 그저 눈을 돌리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정한 거사는 계획대로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절대 알 수 없지.”
효초아는 눈을 감으며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얼마 남지 않았군. 낙양이 피바다로 변하는 날이. 하늘은 붉게 변하고 도시에는 비명 소리만이 울려 퍼지겠지. 거리는 비릿한 혈향과 시체들로 즐비할 거야. 아아. 상상만 해도 흥분으로 미칠 것 같아. 빨리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효초아는 긴 장포를 질질 끌며 의자에 앉았다.
탁자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며 그가 말했다.
“물론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도 모이겠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일 것입니다.”
꿀꺽꿀꺽.
효초아는 병째로 술을 들이켠 다음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면 남북 십성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볼만할 거야.”
효초아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물었다.
“남북 십성의 위치는?”
“각자 본진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거사가 끝나기 전까지 방해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낭연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는 명왕입니다. 그는 낙양에 있습니다.”
“명왕…….”
효초아는 이름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은 확실히 위험하지.”
명왕 고경홍.
중원 무림의 최강자로 추앙받는 무신.
마교의 교인들 중 그 이름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계획대로 되면 그 작자도 거사를 방해하지는 못할 테니까. 만약 변수가 생겨도 상관없어.”
효초아는 낭연청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직접 낙양으로 갈 거거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명왕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지만 시간을 버는 정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효초아는 남은 술을 모두 마신 다음 빈병을 던졌다.
“내가 놈을 상대하게 되면 네가 책임지고 거사를 마무리 짓도록 해.”
“칠령귀(七靈鬼)는 데려가십니까?”
“나머지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일단 두 명만 데려갈 생각이야.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두 명이면 차고 넘치지 않아?”
낭연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마침 도착한 모양이군.”
낭연청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은 창백한 피부에 비쩍 마른 남자였다.
겉보기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의 양쪽 손목과 발목은 두꺼운 쇠사슬로 묶여 있었는데, 그 때문에 걸을 때마다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다른 한 명은 두꺼운 갑옷 차림의 거한이었다.
옆에 선 마른 체구의 사내와 대비되어 더욱 거대해 보였다.
그는 손에 굵은 철봉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봉 끝에 달린 철구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들은 효초아를 향해 엎드려 절을 올렸다.
“위대하신 효초아 님을 뵙습니다.”
“너희가 낙양에서 할 일은 간단하다.”
효초아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낭연청을 도와 거사를 마무리 지어라. 대회장에 살아 있는 것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피의 축제를 거창하게 벌이도록. 알겠나?”
마른 몸의 사내는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이히히히…….”
갑옷을 입은 거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한번 즐겨 보겠군요. 하하하.”
낭연청은 속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미친 새끼들.’
주인이 미친놈이니 그 밑의 것들도 똑같이 미쳐 있었다.
낭연청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효초아와 두 사내를 응시했다.
“명심해. 거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전부 죽게 되겠지만, 최우선적으로 노려야 할 것이 바로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낭연청이 줄 거야. 그리고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놈은 남량. 매화검선의 후계자다.”
남량이라는 이름이 들리자 낭연청이 움찔했다.
아직도 운대산에서 자신을 보던 그의 눈빛이 생생했다.
‘남량…….’
효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듣자하니 최근에는 초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었다더군. 그것도 약관이 갓 넘은 나이에 말이야. 위험한 놈이다. 살려 두면 언젠가는 화근이 될 것이 분명해. 이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실히 죽이도록.”
“존명(尊命).”
두 사내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낙양은 지금쯤 축제 분위기겠군.”
효초아는 창밖을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실컷 즐겨라. 피의 축제가 벌어지기 전의 전야제(前夜祭)를.
***
무림맹의 본산은 한창 대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곳에 화산의 도복을 입은 이들이 마침내 도착했다.
“끄응.”
찬야는 어깨를 주무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수련하면서 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유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군.”
운휘는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배고파. 빨리 밥부터 먹으러 가자.”
위지혁은 손바닥 크기의 면경(面鏡) 들고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다행히도 제때 도착한 것 같구만.”
남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일행에게 말했다.
“가자. 수련의 결과를 보여 주는 거다.”
“그래!”
매화오절은 당당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운휘는 고개를 들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남북 십성의 후계자? 다 죽었어! 이 무림대회의 주역은 바로 화산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별호를 얻고 말 테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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