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무림대회(武林大會)(2)
드디어 무림대회의 막이 올랐다.
아침 일찍 무림맹에 모여든 구경꾼들은 시합이 시작되기 전부터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우승할까?”
“구파일방? 오대세가?”
“당연히 남북 십성이 속한 문파 중 한 곳에서 나오겠지.”
우승자는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 가운데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럼 그들 가운데 과연 누가 우승의 영광을 누릴 것인가?
“남궁이지! 검성 남궁천의 후계자 남궁월이 강남 제일의 여걸 아닌가.”
“무당파 검제의 후계자인 진공의 소문을 듣지 못했나? 젊은 나이에 태극혜검(太極慧劍)을 대성한 천재라 하더군. 무당파 검술은 천하제일이고 태극혜검은 무당파를 대표하는 검술이니 우승은 그의 것이겠지.”
“전혀 설득력 없는 소리네. 그럼 왜 검제의 경지가 검성보다 떨어지지?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검술이라는 뜻 아닌가.”
“꼭 검의 경지로 우승자를 예측할 수 없네. 당가의 형제들이 가진 독공과 암기술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지. 팽가 일 공자의 무예도 강북에 익히 알려진 바이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때, 염소수염의 한 사내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우승할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누구 말인가?”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백매화지! 그의 영웅담을 조금만 들어 봐도 다른 후계자들과 급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네.”
백매화 남량.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백매화의 소문들은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내용들뿐인지라 호사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명성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말 은영단과 100 대 1로 싸워서 이겼을까?”
“솔직히 폭혈검객 장태정을 혼자 잡았다는 게 좀…….”
“하긴, 그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든 사례가 지금까지 없기는 했지. 무신이라 추앙받는 무림맹주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염소수염 사내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 도사에 대한 소문이 과장인지 실제인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걸세.”
“내기꾼들만 좋아서 환장하겠구만. 허허허.”
“이러지 말고 우리도 빨리 돈을 걸자고!”
마교와의 전쟁 이후 오랜만에 열리는 행사는 온 무림인들의 심장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우와아아아아!
수천에 달하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널리 퍼졌다.
참가자들은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속속히 비무장으로 모여들었다.
“우승은 남궁세가의 것이다!”
“무당파의 저력을 보여 줘라!”
“무림의 본산은 소림임을 증명해라!”
남량 일행은 매화가 그려진 새하얀 도복을 펄럭이며 입장했다. 그들은 거대한 비무장을 발견하고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단순한 비무장이 아닌데? 맹에 이런 데가 있었나?”
“들어 보니 대회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더군. 일곱 개가 되는 원래의 비무대를 허물고 하나로 합친 모양이야.”
“참가자들을 한데 모으고 싸우게 할 생각인가?”
“난투(亂鬪)로구나. 이거 기대되는데!”
참가자들이 전원 모이자 단상 위로 한 사내가 올라왔다. 고위영의 뒤를 이어 무림맹 총대주 자리에 오른 양악이었다.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무림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양악은 함성 소리가 줄어들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시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열 명씩 조를 나누어 비무대에 올라 대결을 펼치게 될 것입니다. 제한 시간은 일다경. 시간이 흐른 뒤, 자리에 서 있는 참가자가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방식입니다. 전투 불능이 되거나 장외(場外)로 떨어진 참가자는 즉시 탈락입니다.”
유라는 묵묵히 설명을 듣다 입을 열었다.
“일단 처음부터 대거 떨어뜨리겠다는 말이군.”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형님.”
운휘의 말에 남량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글쎄다. 저들이 그렇게 간단히 준비했을까?”
양악은 처음 비무대에 오를 인원을 발표했다. 일행 중에는 가장 먼저 위지혁이 나서게 되었다.
일행은 위지혁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이며 말했다.
“힘내라. 위지혁.”
“수련의 결과를 보여 줘.”
“첫판부터 지면 망신인 거 알지? 똑바로 해라.”
“운휘 너는 그걸 응원이라고 하는 거냐?”
찬야는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래도 후계자들은 없는 것 같…….”
“마지막 참가자는 사천 당가의 당호!”
“……지 않네.”
운휘는 히죽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미리 명복을 빈다.”
“닥쳐. 내가 이길 거다.”
위지혁은 이를 부득 갈며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찬야와 유라, 운휘는 위지혁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량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물론 전체적인 기량은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놈이 위지혁을 얕보고 독공으로 상대를 한다면……. 그럼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 적어도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른 위지혁에게 독공은 바늘로 손끝을 찌르는 것보다 효력이 없을 테니까.’
비무대 위로 올라온 위지혁은 당호와 눈이 마주쳤다.
당호는 대놓고 위지혁을 무시했다.
“네놈이 아니라 계집이 올라왔어야 했는데.”
위지혁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당호를 응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조원들이 모두 올라오자 양악이 말했다.
“일다경이 지나면 종을 두 번 울릴 것입니다. 그땐 반드시 무기를 거두어야 합니다. 명심하시길.”
참가자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스릉.
검을 뽑아 든 위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았다.
땡-.
종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시합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점찍은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비무대 전체가 지진 난 것처럼 진동했다.
드드드드-!
참가자들은 동작을 멈추며 중심을 잡았다.
“뭐야! 비무대가 왜 이래?”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구경하던 관중들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입을 쩍 벌렸다.
비무대 바닥의 청석(靑石)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굵은 철봉이 올라왔다. 참가자들 중에서는 철봉에 맞아 넘어진 이도 있었다.
“어쩐지 간단할 것 같지가 않더라니…….”
남량은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기관 장치를 준비해 깔아 둔 거로군.”
위지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함정을?’
그제야 사람들은 이 시합의 진의(眞義)를 파악했다.
이 시합은 단순히 난투를 벌이는 시합이 아니었다.
난투를 벌이며 언제 발동할지 모르는 비무대의 함정까지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일다경이라는 시간이 조금 짧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세 명 아래로 살아남게 될지도 모르겠군.”
유라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자, 위지혁. 어떻게 대응할 거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거냐, 아니면 움직일 거냐?”
남량은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으며 비무대 위를 응시했다.
‘어떡해야 하지?’
위지혁은 고민 중에 있었다.
시합에서 살아남으려면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실력을 보여 주지 않으면 명성을 얻을 수 없다.
위지혁은 비무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호는 함정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비무대를 종횡하며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나가떨어진 참가자의 숫자만 벌써 세 명에 달했다.
그때, 한 사내가 위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산파의 풍수검! 너를 잡고 내 이름을 알리겠다!”
그가 위지혁의 앞으로 도달한 순간, 그가 밟고 있던 청석이 두부처럼 뭉개졌다.
‘또 다른 함정인가!’
사내는 다리 한쪽이 빠지며 중심을 잃었다. 위지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촤악-!
사내는 가슴팍을 베이며 바닥에 엎어졌다.
지켜보던 일행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대단하다! 함정마저 너를 돕는구나!”
“실로 행운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겠군.”
“이 시합이 끝나면 별호가 바뀌겠는데? 풍수검이 아니라 행운검으로 말이야! 하하하하!”
위지혁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이것들아! 저 자식이 멋대로 함정에 빠진 걸 나보고 뭐 어떡하란 말이냐!”
바로 그때, 위지혁을 향해 묵직한 장력이 밀려들었다.
위지혁은 다급히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피해 냈다.
‘위험할 뻔했다!’
바닥에 착지한 위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모든 참가자를 처리한 당호가 홀로 서 있었다.
“이제 한 명 남았군. 빠르게 끝장내 주마.”
당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위지혁을 향해 쇄도했다.
퍼퍼퍼펑!
그의 장력이 위지혁의 전신을 노려 왔다. 위지혁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이 장력의 기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뻐억!
당호는 어깨로 위지혁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위지혁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위지혁!”
운휘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잠깐 정신을 잃은 위지혁은 다급히 바닥에 검을 내질렀다.
카가가각-.
검이 바닥을 가르며 날아가는 속도를 줄였다. 위지혁은 간신히 비무대 끝에 발을 걸치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장외패로 실격 처리될 뻔했군.’
그러나 아직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에는 이르다.
‘당호를 상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조금 전의 무시무시한 장력을 더는 받아 낼 자신이 없었다.
위지혁은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흥. 마지막 발악을 하는군.”
코웃음을 친 당호가 서서히 내력을 끌어모았다.
“내가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네놈은 특별히 내 절기로 끝장을 내 주마. 영광으로 알아라.”
우우웅.
그의 손이 점차 붉게 물들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독수(毒手)……. 당가의 독공이다!”
“독공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당호의 주변으로 독기가 가득 모였다.
“위지혁…….”
찬야와 유라, 운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위지혁의 등을 응시했다. 저 무서운 독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받아라! 독호장(毒虎掌)!”
콰아아아아!
당호가 쌍장을 뻗자, 거대한 독기가 아가리를 벌리고 위지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라, 위지혁.”
위지혁은 바닥을 박차고 독기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후욱-!
그의 모습이 독기에 파묻혔다. 당호는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멍청한 새끼!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독기를 전신으로 받아 낸 이상, 결코 일어설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쇄애애액!
붉은 검기가 독기를 갈라내며 그 사이로 위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관중들이 경악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이, 이럴 수가!”
당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문득, 그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떠올랐다.
유라의 불꽃이 자신의 독기를 남김없이 불태우던 순간을.
그때의 광경이 이 자리에서 또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그것도 똑같은 화산파의 제자에게!
“빌어먹으으으으을!”
당호가 입을 쩍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위지혁은 깔끔한 동작으로 당호를 베었다.
당호는 가슴팍에서 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갔다.
지켜보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아!”
찬야와 운휘는 서로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다. 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흘렸다.
남량은 흐뭇한 표정으로 위지혁을 바라보았다.
‘잘했다.’
관중들은 목청을 높여 위지혁의 이름을 불렀다.
“위지혁! 위지혁! 위지혁! 위지혁!”
위지혁은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류가 흐르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는 검을 높이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내가! 내가 화산의 풍수검, 위지혁이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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