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무림대회(武林大會)(3)
위지혁의 승리로 대회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상대는 남북 십성의 무예를 이어받은 최강의 후기지수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같은 후계자도 아닌 인물에게 패배한 것이다.
남북 십성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음에도 후계자들과 대등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위지혁은 관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의 입가에 걸린 웃음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내가 남북 십성의 후계자를 이겼다.’
위지혁이 다가오자 일행들이 웃으며 반겼다.
“아주 그냥 대단한 영웅 납셨네.”
“그동안 주목 못 받아서 많이 슬펐구나. 그래.”
“적당히 하고 내려오지 그랬냐.”
“제발 한 놈이라도 수고했다는 말 좀 해 줘라.”
위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남량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수고했다. 강해졌구나.”
위지혁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돌이켜 보면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엔 항상 남량이 곁에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위지혁은 진심으로 남량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시합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남량과 찬야, 유라는 후계자들과 같은 조로 묶이지 않고 평범하게 시합을 통과했다.
“나도 후계자들이랑 붙어 보고 싶었는데. 쯧.”
찬야는 가볍게 혀를 차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시합은 마지막 한 조를 남겨 두고 있었다.
“화산파의 운휘!”
운휘는 검을 집어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녀올게.”
마침 남북 십성의 후계자 중에서도 단 한 명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양악은 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무당파 진공!”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일어난 청년 도사 한 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남량의 시선이 진공을 향했다.
‘무당파라.’
흔히 말하길, 무도(武道)의 극은 한 길로 통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공의 성질에 따라 극의에 다다랐을 때 보여지는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명왕 고경홍의 무공은 웅장하며 압도적이다. 검성 남궁천의 검술은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소림 불제(佛帝)의 무공은 금강석처럼 단단하다. 검선 유우화의 검술은 현란하며 아름답다.
그럼 무당의 검술은 어떨까.
태극(太極)의 묘리를 담은 검술은 말하자면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는 검이었다.
강과 약.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그리고 그 조화가 검에 담겼을 때 비로소 태극혜검(太極慧劍)의 극의에 들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검제의 후계자는 그 조화를 얼마나 검에 담을 수 있을까. 남량은 기대가 되었다.
땡-.
종이 울리고 시합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무대의 함정이 발동되며 참가자들을 공격했다.
“덤벼라!”
“크악!”
참가자들은 열심히 무기를 휘두르며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단 두 명만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휘와 진공.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한 참가자가 진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당파 제자의 명성은 내가 가져간다!”
쇄애액!
진공은 몸을 비틀어 날아드는 검을 피해 냈다.
그리고 참가자의 옷깃을 붙잡은 다음 그의 힘을 이용해 비무대 밖으로 밀어냈다.
참가자는 너무도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찬야가 감탄을 내뱉었다.
“대단해.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 상대를 뜻대로…….”
유라는 진공과 운휘를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유(流)의 검법이라. 운휘에게는 까다로운 상대가 되겠어.”
운휘는 진공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런 녀석은 처음인데.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그때 운휘에게도 참가자 한 명이 기습을 걸어왔다.
“멍청하게 서 있으면 죽는다!”
그 순간, 운휘는 바로 옆에 튀어나온 철봉을 손으로 잡아 뜯은 뒤, 그걸 휘둘러 참가자를 후려쳤다.
쩌억!
참가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비무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허억…….”
“아프겠다…….”
관중들은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운휘는 코웃음을 치며 철봉을 바닥에 던졌다.
결국 비무대에는 운휘와 진공.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이번에도 화산파의 제자가 남았군.”
“완력이 굉장해 보이던데……. 기대되는걸?”
“설마 진공마저 지는 건 아니겠지?”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팽자엽은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비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운휘 도장.’
팽자엽은 운휘와의 대련을 통해 그의 외공(外功)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반대로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부류였다.
이런 부류에게는 운휘의 장점인 일격필살의 검격과 방어 외공도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였다.
‘저자를 어떻게 상대할 거요?’
진공은 운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산의 검을 견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운휘는 칠절매화검의 자세를 취했다.
“무당의 검을 견식하게 되어 영광이야.”
두 검객은 내력을 끌어모았다.
터엉!
운휘는 엄청난 속도로 진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진공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카가각-.
진공은 운휘의 검격을 측면으로 흘려보냈다. 운휘는 곧장 방향을 바꾸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채채채챙!
무공을 모르는 관중들이 보기에는 운휘가 진공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참가자들은 알고 있었다. 누가 압도하고 있는지를.
“운휘의 검을 저렇게 쉽게 막아 낼 줄이야.”
찬야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동작이군.”
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조금만 버티면 둘 다 통과하겠지만…….”
남량은 진공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저쪽도 적당히 끝낼 마음은 없는 것 같네.”
진공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운휘와의 대결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챙! 채채챙!
벌써 오십 합을 넘겼다. 운휘의 검은 진공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무식하게 들이받다 보면 해답이 생길 줄 알았는데…….’
운휘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진공의 중심을 무너뜨릴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 하단이다! 하단을 노리는 거야!’
운휘는 목을 노리는 척하면서 몸을 빙글 돌리며 다리를 노렸다.
그때, 진공이 공중으로 몸을 날리며 운휘의 검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머리를 걷어찼다.
퍼억!
뒤로 넘어진 운휘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간파당했구나! 빌어먹을.”
진공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노골적으로 다리에 시선을 돌려서 눈치를 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운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야! 제대로 붙어 보자고!”
“도장의 검격이 너무 묵직해서 받아 내기 힘듭니다.”
진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한다면 정면으로 받아 드리지요.”
운휘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 나를 도발하는 거냐?”
운휘는 자세를 낮추며 내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칼날을 타고 푸른 검기가 피어올랐다.
파파팟!
바닥을 박차며 몸을 날린 운휘가 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뇌봉전별(雷逢電別)!”
콰르릉!
천둥소리를 동반한 운휘의 검격이 진공을 당장이라도 둘로 가를 듯했다.
그 순간 진공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들어 올렸다.
지켜보던 남량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저건…….’
터억.
진공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운휘의 검과 닿았다.
진공은 검에 힘을 주어 천천히 옆으로 밀어냈다.
운휘의 검은 진공의 검이 이끄는 대로 원을 그리며 밀려났다.
“상대방의 힘을 이용한다. 그것이 바로 사량발천근의 묘리.”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바로 무당의 검이었다.
찬야와 유라, 그리고 모든 관중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원을 그린 진공의 검이 운휘의 검을 살며시 밀어냈다.
“크윽!”
검을 타고 흐르던 내력이 역행하며 엄청난 충격이 밀려들었다. 운휘는 내상을 입은 채 뒤로 물러났다.
“허억. 허억…….”
운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미 승패는 갈린 듯 보였다.
“상대가 너무 나빴어.”
찬야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다른 문파의 후계자를 상대했다면 이처럼 쉽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무당인 것이 문제였다.
“좋은 대결이었습니다. 운휘 도장.”
진공이 정중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아직 대결은 안 끝났어.”
운휘는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버럭 소리쳤다.
진공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내상을 입으셨습니다. 이만하시지요.”
“내상을 입으면 지는 거냐? 아직 순진하구만.”
운휘는 끌끌 웃음을 흘리며 검을 고쳐 쥐었다.
“내가 너에게 진정한 싸움의 이치를 알려 주마.”
운휘는 말이 끝나자마자 무작정 진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관중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끝까지 싸우려는 정신은 대단하지만 너무 무모한 돌격이었다.
“후우…….”
진공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적당히 밀어낸 다음 검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바로 손에 쥔 검을 진공을 향해 냅다 던진 것이다!
‘저, 저런 미친!’
‘검객이 검을 던져?’
검사가 대련 도중 무기를 던지는 행동은 저잣거리에서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걸 화산파의 도사가 할 줄이야!
‘운휘 도장.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로군.’
진공은 헛웃음을 흘리며 날아드는 검을 가볍게 쳐 냈다.
그 순간, 운휘는 괴성을 지르며 두 팔을 뻗어 진공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켜보던 이들이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으헉?”
진공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운휘는 진공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비무대 밖으로 몸을 날렸다. 상대방과 함께 죽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이었다.
“으랏차차차!”
“우와악!”
진공은 비명을 지르며 운휘와 함께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한데 엉킨 채 바닥을 굴렀다.
“…….”
좌중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팽자엽이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젖혔다.
“크하하하핫! 푸하하하하! 이런 미친! 설마 이렇게 대응할 줄이야! 정말 대단해! 하하하하!”
찬야도 무릎을 치며 낄낄 웃음을 흘렸다.
“저런 미친 새끼! 진짜 저질렀어! 크하하하하하!”
유라는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숙였고, 남량은 입가를 가린 채 끅끅 웃어 댔다.
뒤늦게 관중들도 폭소를 터뜨렸다.
“뭐야! 저 도사 정말 화끈하구만!”
“저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줄이야!”
“그래! 대결에 품위가 무슨 소용이냐! 이기면 그만이지!”
“운휘라고 했나? 내 이름은 제대로 기억하겠네! 으하하하!”
양악은 억지로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일다경이 지나기 전에 둘 다 장외로 떨어졌으니 실격패로 처리하겠습니다.”
“허어…….”
멍하니 한숨을 내쉬던 진공이 이내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하게 당해 버렸구나. 하하.”
운휘는 벌떡 일어나 크게 웃으며 두 팔을 들었다.
“내가 화산의 운휘다! 크하하! 제발 누가 좀 별호나 지어 줘라!”
그렇게 첫 시합의 주연은 운휘의 차지가 되었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에, 위지혁은 나직이 투덜거렸다.
“내가 주역이 될 수 있었는데……. 망할 자식.”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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