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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01화 (101/164)

<101화>

낙양혈사(落陽血史)(4)

남북 십성. 무당의 검제. 태화(太和) 진인.

화산의 검선, 남궁의 검성과 함께 삼검천(三劍天)의 일원이자 무당파의 태극혜검(太極慧劍)을 대성한 고수.

바로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태화 진인은 태광의 주먹을 막은 채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빈도(貧道)가 제때 도착한 것 같군.”

“스승님!”

진공은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태화 진인은 진공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아이를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거라.”

진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룡을 부축해 뒤로 물러났다.

태화 진인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으로 태광을 응시했다.

“오는 길에 시체들을 보았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상이더구나. 그 무거운 죄업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런 극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크윽…….”

태광은 신음을 흘리며 태화 진인을 노려보았다.

이 노인에게서 조금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태광이 파악한 태화 진인의 기(氣)는 마치 바다와 같았다.

잔잔하지만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바다.

섣부르게 공격했다간 바다에 빠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태화 진인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 악행의 대가를, 지금 치르게 해 주마.”

“……웃기지 마라!”

태광은 이를 부득 갈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가 효초아에게서 받은 마공은 철괴만파공(鐵壞萬派功).

묵직한 권격으로 적을 분쇄하는 위력적인 권법이었다.

쩌엉!

태광의 권강(拳罡)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태화 진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흐음.”

태화 진인은 거대한 마기(魔氣)의 덩어리를 가만히 응시하며 살짝 몸을 틀었다. 동시에 칼등으로 권강을 흘려보냈다.

태극혜검.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

상대의 기(氣)를 이용하는 태극의 무학이 펼쳐진 것이다.

태광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과연, 남북 십성의 일원답군.”

터엉!

바닥을 박찬 태광이 비호와도 같은 속도로 태화 진인을 향해 쇄도했다.

집채만한 거구가 달려드는 모습은 실로 위압적이었다.

“권강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직접 부숴 주마.”

쇄애애애액!

태광은 엄청난 박력을 내뿜으며 주먹을 내리쳤다.

태화 진인은 무당파의 신법인 구궁보(九宮步)를 펼쳐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콰앙!

태광의 주먹이 지면에 작렬하며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직후, 그의 주먹에서 피가 튀었다. 태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검상(劍傷)을 살폈다.

‘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손을 벤 건가?’

다음 순간, 태광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태화 진인이 도포를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월인비를 대성한 전성기의 유우화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는 없지만, 허공답보(虛空踏步)의 수법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태화 진인은 태광을 향해 거꾸로 떨어지며 천근추(千斤錘) 수법으로 무게를 더해 검을 내질렀다.

“얼마든지 오너라!”

태광은 마기(魔氣)를 한껏 끌어올린 다음, 철괴만파공의 철쇄권(鐵碎拳) 절기로 태화 진인의 검을 받아쳤다.

쩌어엉!

충돌로 인해 기파(氣波)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멍하니 태화 진인의 전투를 지켜보던 후계자들과 매화오절이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휘리릭.

공중에서 빙글 돌며 바닥에 착지한 태화 진인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태광이 서 있었다.

“서로 한 수 주고받은 걸로 충분하다.”

태광은 자세를 잡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승부를 내자. 무당의 검제여.”

쿠오오오-.

다음 순간, 태광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태광은 마기를 한 점에 집중시킨 다음, 그대로 태화 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철괴만파공 최강의 절기인 폭렬연환권(爆裂連環拳). 이걸로 끝이다.’

스륵.

태화 진인은 마치 붓을 움직이듯 허공에 검을 휘둘러 태극의 문양을 만들어 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공의 입에서 나직이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태극의 형(形)…….”

무당파의 최고 절기이자 태극혜검의 정수가 담긴 태극의 형.

태광은 괴성을 내지르며 태극의 형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쩌어엉!

태광의 폭렬연환권과 태극의 형이 충돌했다.

검은 마기와 푸른 광채가 얽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순간, 주먹을 밀어 넣던 태광의 안색이 급변했다.

‘닿지 않아……. 내 주먹이 저 태극에 닿지 않아……!’

허공에 일렁이는 태극의 문양은 손을 젓기만 해도 금방 흩어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태광의 주먹은 태극에 닿지 못한 채 코앞에 멈추어 있었다.

태광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최강의 절기를 발휘해도 부술 수 없단 말인가?’

바로 그때, 태광의 기운이 나선을 그리며 태극의 문양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태광은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태극 문양 너머로 태화 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극의 형은 상대방의 기(氣)를 내 뜻대로 이용하며 그것을 흘려 보내거나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태광은 경악하며 입을 쩍 벌렸다.

“태극의 기운과 역류(逆流)한 네놈의 기운. 이 두 가지를 모두 막아 보거라.”

태극의 문양이 한 차례 광채를 뿜어내며 폭렬연환권의 마기와 푸른 도기가 동시에 태광을 덮쳐 왔다. 태광은 뒤늦게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 일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으아아-!”

태광은 비명을 지르며 잘게 부서져 소멸했다. 섬광이 번득이고 나자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후웅.

바람이 불며 태극의 형이 서서히 옅어졌다.

태화 진인은 검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남북 십성이 건재한 이상, 네놈들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한편, 효초아는 고경홍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쩌엉! 고경홍의 일도(一刀)에 건물 하나가 반으로 쪼개졌다.

간신히 몸을 피한 효초아가 고경홍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콰르릉!

자줏빛의 뇌전(雷電)이 고경홍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고경홍은 코웃음을 치며 언월도를 들어 뇌전을 막아냈다.

효초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경홍을 응시했다.

‘괴물은 괴물이군. 명왕 고경홍…….’

시간을 버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태광의 죽음을 알아차린 건 바로 그때였다.

‘태광의 기척이 사라졌어? 그리고 무림맹 쪽에서 느껴지는 도기(道氣)는……. 무당의 검제인가!’

유회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로 봐서 죽은 게 확실했다.

잠시 멍해져 있던 효초아는 짐승 같은 괴성을 터뜨렸다.

“으아아아!”

마교의 간자들을 통해 오랜 시간 준비했던 혈천마화대법의 진이 붕괴되고 유회와 태광. 두 심복마저 잃었다.

무림맹 쪽에 큰 피해를 입히기는 했지만 본래의 목적이었던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은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결국 그의 계획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노로 치를 떨던 효초아는 이내 기척을 감추었다.

계획이 실패한 이상,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우.”

고경홍은 언월도를 내리며 숨을 골랐다. 현경의 경지인 그도 작정하고 도망치는 마교의 최고수를 잡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놈을 처리하고 말 것이다.’

고개를 돌린 고경홍은 초토화가 된 낙양의 모습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또 한 차례 폭풍을 막아 낸 건가…….’

그렇게 낙양혈사(落陽血史)로 기록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진법의 핵을 파괴한 남량은 운휘를 부축해 지하를 나왔다.

두 사람은 곧장 무림맹으로 달려갔다.

전투가 끝난 뒤 치료를 받고 있던 찬야와 유라, 위지혁은 두 사람을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남 사제! 운휘!”

“다들 무사했구나!”

남량은 찬야로부터 위의 상황을 전부 전해 들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체들을 상대로 분투한 일과 태광의 습격을 받은 일. 그리고 당호가 죽은 일과 검제가 나타나 그를 처리한 일 등을.

설명을 들은 남량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당호야……. 내 아우야……. 으흐흑…….”

당룡은 당호의 시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청랑과 포훈, 팽자엽 등이 위로를 건넸다.

다른 곳에서는 남북 십성의 검제, 태화 진인이 제자 진공과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살아남은 무림맹의 대원들은 시체들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다행히도 전부 살아남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무림 전체가 입은 피해가 너무나 커…….”

위지혁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일로 또 한 번 확실히 깨달았어.”

찬야는 이를 부득 갈며 중얼거렸다.

“마교 놈들과는 결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걸.”

“동감이다.”

유라의 두 눈에도 차가운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끝장내고 말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운휘는 유회의 창에 찔린 상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힘은 그들에 비해 너무도 미약하니까.”

“운휘의 말대로다.”

남량이 일행을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당장 어젯밤에도 검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다들 태광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거야. 언제까지 그런 천운에 기대어 싸울 수는 없다.”

네 사람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 같은 밤의 끝을 고하듯, 아침 해가 떠올랐다.

***

낙양혈사가 벌어진 지도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무림맹은 총관 건옹의 지휘 아래 빠른 속도로 재건되었다.

남량 일행은 그동안 무림맹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자, 이 안에 든 은자의 개수는 과연 몇 개일까요? 맞추면 은자를 전부 드립니다. 하하.”

찬야는 왼쪽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위지혁, 당룡, 운휘, 팽자엽, 진공, 청랑, 포훈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운휘가 손을 들며 외쳤다.

“다섯 개!”

“틀렸어. 정답은 네 개야.”

찬야가 주먹을 펴며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탄식을 쏟아 냈다.

“아깝다! 내가 네 개 말하려고 했는데!”

“찬야 도장. 한 번만 더 합시다. 한 번만.”

“청랑 도장. 혹시 돈이 궁하십니까? 너무 적극적인데요.”

“이번에는 내가 해 보겠소. 팽가의 명예를 걸고 맞춰 보지.”

“팽 공자. 무슨 노름 하는 데 가문의 명예씩이나 겁니까…….”

남궁월과 유라는 한쪽 구석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의 약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창궁비연검은 변화무쌍하고 날카로우나 그만큼 커다란 허점도 존재합니다.”

“그게 무엇이죠? 유 도장.”

“공격이 들어올 때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동작이 커지며 빈틈이 생겨납니다. 비슷한 수준의 검객을 만나게 되면 그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매화홍주검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공격 범위가 단조로워 방어가 쉽다는 점이에요. 초식에 조금 더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와득. 와득.

남량은 창가에 걸터앉은 채 땅콩을 씹으며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들 왜 내 방에 모여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리고 저것들은 또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야? 낙양혈사를 거치며 동료애라도 생긴 건가.’

훗날 마교를 상대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동료들이니 미리 친해져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내 방에서 떠드는 게 거슬리기는 하지만.’

남량은 피식 웃으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응?’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춘 남량이 중얼거렸다.

“저놈들이 왜 여기에……. 맞다. 고경홍이 전부 불러들였다고 했었지.”

남량은 맹주전으로 들어가는 아홉 명의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남북 십성의 회의라…….”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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