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매화검수 심사(1)
화산으로 돌아온 남량은 곧장 검창궁(劍蒼宮)으로 향했다.
검창궁은 매화검수들이 수련을 하는 장소였다.
“정말 대단해 남 사제. 매화검수 심사라니!”
옆에서 걷던 찬야가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관의 나이에 매화검수 심사 자격을 얻은 제자는 아마 남 사제가 처음일 거야. 검선께서 매화검수 칭호를 얻으셨을 때가 스물다섯이었지 아마?”
운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심사 결과는 안 봐도 뻔해요. 형님의 기량이 매화검수들을 훨씬 능가하니까요. 형님이라면 당연히 모든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매화검수 자리에 오르셔야죠.”
위지혁이 말없이 남량을 응시했다.
‘운휘의 말은 사실이야. 당장 혁련 사숙이 남량과 겨룬다면 열에 열은 남량의 승리일 테지.’
검창궁에 도착하자 네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유라는 남량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충분히 잘할 거라 믿지만……. 힘내라. 남 사제.”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걱정하지 마.”
남량은 도복 자락을 펄럭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찬야, 운휘, 위지혁의 시선이 동시에 유라를 향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 사매……. 방금 웃은 거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우와……. 바윗덩이가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남량을 대하는 모습이 우리를 대할 때와 다른 것 같던데…….”
그들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유라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 얼른 몸을 돌렸다.
검창궁 대전에는 매화검수의 수장 공월 진인과 스무 명의 매화검수들이 모여 있었다.
남량이 대전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공월 진인이 남량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대제자 남량.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매화검수 심사를 시작한다.”
공월 진인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화검수 심사는 총 8일에 나누어 진행된다. 심사 내용은 간단하다. 너는 하루에 한 명씩, 8일간 총 여덟 명의 매화검수와 대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서 인정을 받아 내면 심사에 통과할 수 있다. 인정을 받는 조건은 일각(15분)을 버티는 것이다.”
남량은 공월 진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매화검투와 대충 비슷하군.’
남량은 슬쩍 시선을 돌려 매화검수 한 명 한 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들 초절정에 든 실력자들이다. 하긴, 화산파 매화검수의 명성은 마교에도 정평이 나 있을 정도이니…….’
일순 남량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서 멈추었다.
남량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유일한 사내였다.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잘생긴 외모에 제법 분위기가 있었다. 특이한 점은, 팔 한쪽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 붙어보고 싶군.’
공월 진인은 남량의 시선이 사내를 향해 있는 걸 발견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장 강한 검사를 알아본 건가. 재미있군.’
그가 매화검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남량을 상대할 도사들을 호명하겠다.”
과연 누구와 겨루게 될 것인가? 남량은 궁금했다.
“곽윤, 문덕, 설성주, 순위, 양지후, 유민, 원진…….”
호명된 매화검수들이 남량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남량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이제 마지막 검수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남량. 네 실력을 제대로 파악해 주마.’
공월 진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너의 마지막 상대는 이화정(李話靜)이다.”
이화정은 방금 전 남량이 유심히 지켜보던 그 사내였다.
그는 이름이 불리자 팔짱을 내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이화정이라.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인데…….’
남량과 눈이 마주친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호명이 끝나자 공월 진인은 남량을 향해 말했다.
“매화검수는 화산의 최정예이자 화산을 수호하는 검이다. 남량. 너는 앞으로 8일 동안 매화검수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도록 하라.”
남량은 이곳에 오기 전, 유우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량아. 역대 화산의 장문인들은 모두 매화검수 시절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르셨다. 네가 장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사에 통과해 삼매화(三梅花)의 문양을 얻어 내야 할 것이다.’
남량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남량이 도관으로 돌아오자 유우화와 매화오절이 그를 반겼다.
유우화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래. 누가 너를 심사한다더냐?”
남량은 호명된 매화검수들의 도호를 하나하나 말해 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네 제자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번 매화검수 심사는 전례 없이 어려운 심사가 되겠는데?”
찬야가 중얼거렸다. 남량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간단히 말해 매화검수 스무 명 중에 실력이 뛰어난 순서대로 여덟 명을 상대한다고 보면 될 거야.”
남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화정 사숙이야.”
위지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은형귀검(隱形鬼劍) 이화정…….”
‘은형귀검? 아!’
남량은 별호를 듣고 나서야 이화정이란 이름을 기억해 냈다.
‘마휘란(麻揮蘭)의 눈을 가져간 그 검사였구나.’
검귀(劍鬼) 마휘란.
효초아의 심복인 칠령귀의 일원이다.
무시무시한 검술 솜씨와 더불어 효초아가 내린 무공, 사왕멸절검(死王滅絶劍)을 익혀 칠령귀 중 두 번째 실력자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가 남북 십성도 아닌 검사에게 눈을 잃었을 땐, 모든 마교의 교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전투에서 은형귀검도 팔 한쪽을 잘렸다고 했었지. 그래도 마휘란을 상대로 그의 눈을 가져갔다는 것 자체가 은형귀검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용히 있던 운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화정이라는 검사는 나도 알아. 스승님이 지나가듯 말씀하신 적이 있었거든. ‘팔 한쪽이 잘리지 않았다면 남북 십성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하셨어.”
유우화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이화정은 내가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사내다. 팔이 잘렸지만 그의 실력은 화산 내에서 장문인을 제외하면 제일이라고 할 수 있지.”
유우화의 시선이 남량에게 향했다.
“량아. 지금의 너로서도 그를 상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거다.”
유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이화정 사숙까지 나설 줄이야…….”
찬야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남 사제. 심사는 내일부터 시작이라고 했지? 그럼 첫째 날은 누구와 싸우는 거야?”
남량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그건 몰라. 난 단지 장소와 시간만 전달받았을 뿐이야.”
“장소는 어딘데?”
달칵.
남량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부벽석(斧劈石) 아래.”
***
다음 날 묘시(卯時:05∼07시)에 남량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때라 주변에는 청소를 하는 삼대제자 서너 명이 전부였다.
둘로 쪼개진 거대한 바위 아래로 도착하자 삼매화(三梅花)가 그려진 도포를 입은 검사가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오, 왔는가.”
남량을 발견한 검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남량은 검사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곽윤 사숙.”
곽윤이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공월 진인께서 내 이름을 호명했을 때, 솔직히 기뻤다네. 검선의 후계자인 자네와 한 번쯤 검을 겨뤄 보고 싶었거든. 하하.”
곽윤은 품에서 사루(沙漏:모래시계)를 꺼냈다.
“정확히 일각. 모래가 전부 떨어질 때까지 자네가 검을 들고 서서 버틴다면 자네의 승리일세.”
“알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모래시계를 놓은 곽윤이 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바로 시작하지.”
남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곽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의 기세가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파파팟!
빠른 속도로 쇄도한 곽윤이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남량은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정면으로 부딪쳤다.
채앵! 다음 순간, 곽윤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제법이군.’
바닥에 착지한 곽윤의 검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남량의 허벅지와 무기를 든 손목을 노려 왔다.
‘태을미리검(太乙迷離劍)인가.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무장을 해제시키는 검술.’
매화천수검의 초식들 중 이 태을미리검의 정수를 담은 초식이 바로 5초식, 상청도월 초식이었다.
채채채챙!
남량은 완벽한 방어를 펼치며 곽윤의 공격을 막아냈다.
합이 길어질수록 곽윤의 표정에서 점차 여유가 사라졌다.
‘완벽한 움직임이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아.’
상대가 제아무리 전 남북 십성의 후계자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일대제자이고 자신은 매화검수이니까.
일대제자를 상대로 진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결국 곽윤은 남량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력을 발휘했다.
파파파파팟!
수십 갈래로 나뉜 검격이 허공을 가르며 남량을 노려왔다.
피할 경우를 대비해 퇴로마저 완벽히 차단한 공격이었다.
‘남량이 쓰러지면 즉시 매월관으로 데려가야지.’
곽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직후였다.
스팟. 남량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월인비를 펼쳐 곽윤의 일격을 피해 낸 것이다.
곽윤의 배후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량이 말했다.
“사숙. 뒤를 잡히셨습니다.”
남량의 검은 이미 곽윤의 등에 닿아 있었다.
곽윤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는 황급히 몸을 날려 남량과 거리를 벌렸다.
남량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버틸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뭐?”
“매화검수들을 상대로 8연승. 한번 달성해 보고 싶군요. 아직까지 이룬 사람은 없겠지요?”
곽윤은 남량의 당돌함을 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남량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무시무시한 기운 때문이었다.
“목숨을 해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길.”
남량은 천천히 허공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화의 꽃잎이 휘날리며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곽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건 검선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꽃잎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휘오오오오!
곽윤은 시야를 가득 채운 꽃의 비를 바라보다 황급히 검강을 날렸다.
쩌어어엉!
곽윤이 날린 검강은 꽃잎의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두 번째 격돌에서 곽윤은 검을 놓치고 말았다.
곽윤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누가 누굴 시험한단 말인가. 애초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곽윤은 허탈한 표정으로 날아드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콰콰콰콰콱-!
곽윤의 모습이 꽃잎에 휩쓸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량이 금방 기운을 거둔 덕분에 기절 정도로 끝났다.
저벅. 저벅.
검을 갈무리하고 걸어간 남량은 모래시계를 집어 들었다.
마침 마지막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려던 참이었다.
“흐음. 정확히 일각인가.”
모래시계를 품에 넣은 남량은 기절한 곽윤을 등에 업고 매월관으로 향했다.
부벽석에서 조금 떨어진 도관 지붕 위에, 이화정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남량과 곽윤의 대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남량…….”
멀어지는 남량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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