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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04화 (104/164)

<104화>

매화검수 심사(2)

심사 둘째 날.

대련은 해가 지는 유시(酉時:17∼19시)에 화산의 중앙에 위치한 옥녀봉(玉女峰)에서 이루어졌다.

남량은 문덕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문덕 사숙.”

매화검수 문덕(文德)은 복잡한 표정으로 남량을 응시했다.

그는 옥녀봉에 도착하기 전, 매월관에 들러 곽윤의 상태를 확인했다.

곽윤이 남량에게 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문덕은 곽윤이라는 사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상대가 검선의 후계자라고 해서 봐줄 사내가 아니었다.

분명 전력을 다해 대련에 임했을 터였다. 그 말인즉.

‘남량의 경지가 곽윤을 뛰어넘을 정도라는 말인가.’

문덕은 굳은 표정으로 품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들었다.

“규칙은 알고 있겠지? 일각이다.”

모래시계를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올려놓은 문덕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곽윤과 대련했을 때처럼 나를 쓰러뜨릴 각오로 덤비거라. 나 역시 그리할 테니.”

잠시 침묵하던 남량이 검을 뽑아 들며 대답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두 검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취했다.

문덕의 자세는 검을 높이 치켜든 상단세였다.

그는 단 일격으로 남량과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내가 익힌 일자매화검(一字梅花劍)은 화산의 검학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검이다. 네가 과연 막아 내거나 쳐 낼 수 있을지 보자.’

남량은 문덕의 칼끝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일자매화검……. 이 검의 정수를 담은 초식이 바로 낙영용섬. 분명 엄청난 검속일 것이다.’

슈웅-!

바닥을 박차고 쇄도한 문덕이 남량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과연, 정말로 빠른 검격이었다.

문덕의 검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남량이 움직였다.

몸을 날리며 낙영용섬 진(眞)의 초식으로 휘둘렀다.

촤앙. 칼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두 검객이 교차했다.

“…….”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문덕이 신음을 흘리며 옆구리를 쥐었다.

남량의 검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산에서 가장 빠른 검을 자신하던 그가 검속 대결에서 패배했다.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던 문덕이 한숨을 내쉬었다.

‘곽 사제. 자네가 패배한 걸 이제는 믿을 수 있겠구만.’

문덕은 모래시계를 품에 넣고 남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훌륭한 일격이었다.”

검을 갈무리한 남량이 몸을 돌리며 마주 예를 표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대련도 남량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세 번째 대련은 북쪽에 위치한 운대봉(雲臺峰)이었다.

매화검수 설성주(說晟珠)는 남량을 상대로 처음부터 맹공을 가했다.

그가 익힌 무극청풍검(無極淸風劍)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에 바람을 일으켰다.

매화천수검의 초식들 중 이 무극청풍검의 정수를 담은 초식이 바로 7초식 유성초월과 8초식 단천열화였다.

설성주는 처음 오 합 안에 남량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량은 무려 이십 합을 넘게 그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삼십 합을 넘기자 다급해진 설성주가 절기를 내쏘았다.

“광풍제월(光風霽月)!”

콰과과곽!

검강의 소용돌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려들었다.

남량은 단천열화 초식으로 충격파를 일으켜 설성주의 절기를 상쇄시켰다.

그리고 곧장 유성추월 초식으로 반격을 가했다.

설성주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러 받아쳤다.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설성주의 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검이 부서지자 설성주는 패배를 인정했다.

“내가 졌다. 대단한 실력이구나.”

남량은 포권의 예를 갖춘 뒤 몸을 돌려 봉우리를 내려왔다.

‘앞으로 다섯 명.’

네 번째 대련은 낙안봉(落雁峰)에서 이루어졌다.

매화검수 순위(筍衛)는 구궁검(九宮劍)을 익힌 검사였다.

그는 삼십 합에서 남량의 뇌전포화 초식을 막아 내지 못하고 검을 놓쳐 패배를 인정했다.

다섯 번째 대련은 연화봉(蓮花峰)에서 이루어졌다.

매화검수 양지후(陽智逅)는 신학검(神鶴劍)을 익힌 검사였다.

그는 오십 합에서 남량의 낙영용섬 초식에 의해 칼끝이 목에 닿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여섯 번째 대련은 검창궁에서 이루어졌다.

매화검수 유민(劉敏)은 사전절검(射電絶劍)을 익힌 검사였다.

그는 열 합에서 남량의 옥녀유영 초식에 당해 팔목을 베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일곱 번째 대련은 북두봉(北斗峰)에서 이루어졌다.

매화검수 원진(元進)은 반천검(半天劍)을 익힌 검사였다.

그는 이십 합에서 남량의 화운용무 초식에 칼날이 부러지며 패배를 인정했다.

일곱 명의 매화검수가 남량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도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연히 그들의 관심은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남량이 전례 없는 전승(全勝)을 해낼 것인가?

아니면 이화정이 매화검수의 자존심을 지켜 낼 것인가.

매화검선의 후계자와 매화검수 최강의 검사.

두 사람의 대결은 청하봉(淸河峰)에서 이루어졌다.

***

저벅. 저벅.

남량은 계단을 올라 청하봉의 정상에 도착했다.

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화정이 입을 열었다.

“검선께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화정의 검은 눈동자가 남량을 향했다.

“네 비원(悲願)이 마교의 멸문이라더군.”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침묵하던 그가 말했다.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마교를 무너뜨리는 것이.”

“물론입니다. 삼천위의 목은 반드시 제 손으로 거둘 겁니다.”

“자신만만하군.”

이화정이 품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들었다.

콰직! 그리고 손에 힘을 줘 모래시계를 부숴 버렸다.

“어차피 네 목적은 나를 쓰러뜨리는 것일 테지.”

스릉.

이화정은 검을 뽑아 들고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의 자세를 취했다.

“전력을 다해 덤벼라. 내가 너를 확인해 볼 것이다.”

남량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마휘란의 눈을 가져간 실력을 한번 보자.’

두 검객 사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한 차례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서로의 시선을 가리는 순간!

남량이 유성처럼 쇄도하며 이화정의 미간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이화정은 경공을 펼쳐 뒤로 물러났다.

파파파파팟!

남량은 계속해서 연격을 가했다. 이화정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남량의 검격을 정확하게 피해 냈다.

‘이제 슬슬 반격을 가할 때.’

남량의 예상대로 정확히 열 합에서 그가 검을 휘둘렀다.

완벽한 동작으로 펼치는 신속하고 정확한 쾌검(快劍)이었다.

남량은 월인비로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그의 목을 노렸다.

이화정은 남량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어깨를 찔러 왔다.

숨을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치열한 공방(攻防).

돌아가면서 서로의 잔상을 베는 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쇄애애액!

이화정의 일검이 사선으로 떨어지며 남량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직후, 남량이 검을 추켜올리며 이화정의 턱을 살짝 베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만이군. 피부가 저릿한 승부는.’

‘강하다. 마휘란을 벨 만한 실력자야.’

남량은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낙영용섬-.”

채앵! 섬전이 번쩍이며 일격을 막은 이화정이 밀려났다.

기세를 몰아 공격하려던 남량이 멈칫했다.

우우웅.

이화정의 전신에서 심상치 않은 기파(氣波)가 흘러나왔다. 남량은 분명 큰 초식이 날아올 것이라 짐작했다.

“오행매화검 11초식.”

남량은 검을 수직으로 세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화요란(百花搖亂).”

쇄애애애액!

이화정이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강이 허공에 잔상을 남기며 남량의 전신을 노려 왔다.

‘현란한 검격이다. 피하는 건 힘들겠어.’

남량의 눈이 일순 번득였다. 직후, 그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낙영용섬 난참(亂斬).”

콰앙! 쾅!

낙영용섬의 초식을 응용한 베기가 날아드는 검강을 공중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요격했다.

“그걸 전부 받아칠 줄이야.”

이화정은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남량은 냉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이번에는 저의 차례입니다.”

남량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검을 휘둘러 허공에 원을 그렸다.

화아아아아-.

강기의 조각이 꽃잎처럼 허공에 만발한 광경을 본 이화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벽한 천류신화 초식이로군.”

이화정은 이를 악물고 검에 내력을 집중시켰다.

그를 향해 꽃잎의 폭우가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콰!

이화정은 떨어지는 화우(花雨)를 응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오행매화검 최강의 초식인 천화만개(天花滿開)가 펼쳐졌다.

수백 개를 헤아리는 검의 잔상이 흩날리며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이화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압!”

이화정이 기합을 내지르며 내력을 발출했다. 한순간 섬광이 번쩍이며 남량의 천류신화 초식이 깨져 버렸다.

후우웅.

한 차례 돌풍이 불었다. 이화정은 검을 든 채로 서 있었다.

“이화정 사숙. 아직도 확인해 볼 것이 남아 있습니까?”

남량의 물음에 이화정은 검을 검집으로 갈무리했다.

“대련은 끝났다. 너의 승리야.”

이화정은 낙하봉을 내려가기 전 나직이 말했다.

“매화검수가 된 것을 축하한다.”

이화정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남량이 피식 웃었다.

“이제 매화검수인가…….”

남량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낙하봉을 내려온 이화정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미리 그곳에 와 있던 유우화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네.”

이화정은 유우화가 온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두 사람은 마당에 나란히 선 채 잠시 화산의 정경을 감상했다. 일순 유우화가 입을 열었다.

“직접 그 아이와 검을 나눈 소감은 어떤가.”

이화정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강하더군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습니다. 반로환동한 전대의 고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교가 뛰어났습니다. 실전 경험도 매우 풍부해 보였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능력도 대단하더군요. 솔직히 말해 끝까지 검을 나누었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일 년만 지나도 저를 한참 뛰어넘겠지요.”

유우화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도 팔만 멀쩡했다면 더욱 강해져 있었을 텐데…….”

이화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과거를 부정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도장님.”

유우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마교를 증오하나?”

이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찬가질세. 무공을 앗아 간 천마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교를 용서할 수 없어.”

유우화가 계속 말했다.

“나는 평생의 비원을 남량에게 맡겼네. 그 아이라면 분명 내 비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네.”

이화정이 동의했다.

“남량은 능히 마교를 멸문시킬 재목입니다.”

유우화가 손을 뻗어 이화정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네가 옆에서 남량을 도와주게. 혼자서 마교를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야. 그 아이의 힘이 되어 줄 강한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해.”

이화정은 잠시 유우화를 쳐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네.”

유우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화정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화정은 유우화를 거처로 안내해 차를 대접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틀 뒤, 남량은 화산의 삼백 제자가 보는 앞에서 매화검수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유우화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남량에게 말했다.

“새로운 도포를 원영에게 부탁했으니 가서 찾아오너라.”

“네. 마침 검이 많이 상해서 구풍 어르신에게 연마를 부탁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대장간에 가는 길에 들르면 되겠네요.”

남량은 매화오절과 함께 나들이 겸 화산을 내려왔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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